끝나지 않은 일 ㅣ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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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비비언고닉을 ‘언니삼은지’ 3년이 지났다. 늘 자매들을 부러워해오던 고명딸인 내가 고닉을 만나고서 ‘그래, 이 언니야!’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녀가 ‘삶’이라는 난해한 문제지의 해법을 찾기위해 ‘책’이라는 참고서를 너무나 지혜롭게 활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체호프식이든 셰익스피어식이든 둘 중 하나라는 걸 나는 일찍감치 배웠다’라고 했던 <짝없는 여자와 도시>, ‘우리는 모두 생긴대로, 자기욕구에 따라 살 뿐’이며, ‘네티는 유혹하고 싶어했고, 엄마는 고통받고 싶어했고, 나는 책을 읽고 싶었다’고 했던 <사나운 애착>,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했던 <상황과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비비언 고닉의 삶은 그 자체로 ‘책이 스며든 여정’이었다.그런 그녀이기에 그녀삶의 여정을 함께 해 온 '책과 책읽기'를 전격적으로 담아낸 이야기가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발간된 <끝나지 않은 일>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고닉은 이 책에서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껴려고 읽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야기가 무엇이든, 문체가 어떠하든, 시대가 언제이든 문학작품의 중심 드라마는 늘 치명적으로 유독한 인간의 자아분열에 달려있'으며, '자아분열이 유발하는 두려움과 무지, 그로부터 올라오는 수치심, 수의처럼 우리를 뒤덮어 말려 죽이는 그 미스터리는 항상, 언제나 문학의 관건'이기때문에, 문학을 통해 '삶의 압력을 느낄 수 있다'는 그녀의 생각은 설득력을 갖는다. 


문학을 통해 삶의 압력에 휘둘리는 것은, 현실에서 휘둘리는 가장 덜 아픈 방법임과 동시에, 가상으로 휘둘리는 가장 아픈 방법이기에 그 접점에서 우리는 '건재한체로' 지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비비언고닉이 '끝내지 않고'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며 신간을 올곧이 완독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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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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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고 말했고, 하루키는 이 어록을 74세에 쓴 자신의 최근작에서 ‘작가의 말’에 남겼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자기복제’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그 ‘제한된 수’가 ‘한 작가의 세계’를 만들어 낼 만 하다면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닐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 이어 <매니악>을 발표한 벵하민라바투트는 집요하게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파고든다. 이것이 벵하민작가가 그려내고 싶은 ‘제한 된 수의 세계’가 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분야에 관해 '그'만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매니악. 이 작품의 제목은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책 날개의 설명처럼 '매니악'의 사전적 의미는 '미치광이'지만, 작품속에서 노이먼이 만든 '수학 분석기와 숫자 적분기 및 계산 컴퓨터- 매니악'이 압도적으로 등장하는 2부 2장에서 작품이 결말을 맺었다면, 제목이 뜻하는 바는 이 컴퓨터 이름이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도 작품의 반이 남았고, '미치광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야심차게 이 '미치광이'의 실체를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1부. 진보에 대한 인지부조화, 파울 에렌페스트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파국을 시작으로 등장하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는 '미치광이' 후보로 손색이 없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형제처럼 아꼈던 뛰어난 과학자이자, 과학의 토대가 영원히 달라진 '1927년 솔베이회의' 이후 '새로운 과학에 드리운 무게를 증오하던 아인슈타인'(p20)과 '아원자 세계의 왕좌에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물리학을 앉히려던 보어'(p20)의 중재자였으나, 이 엄청난 과학적 진보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릎꿇은 희생자였다. 그 시기와 맞물려 독일에서 부상하는 나치는 ‘깊어지던 그의 시름과 완벽히 대위법’(p25)을 이루는 한 세계의 종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니 파울 에렌페스트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미치광이'의 희생자가 아닐까.

2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이 없다, 조니 폰 노이먼

분명하다. 작품 속 모든 손가락이 '미치광이'는 결국 조니 폰 노이먼이라고 가르키고 있었다. '그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똑똑한 사람'(p49)이며, 그 천재성이 '우리와 다른 외계인'(p51)이라 불렸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인류의 대재앙이 될 수도 있는 수소폭탄 제작에 동조한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그가 죽기전 마지막 총기를 끌어모아 유진 위그너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p297)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미치광이가 되어 과학기술의 위험을 초래한것이 아니라, 진보 자체가 곧 '광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3부. 치유할 수 없는 진보의 증거, 알파고와 이세돌

‘매니악'의 실체가 드러났다. 모든 손가락이 '노이먼'을 가리켰지만, '노이먼'이 자기 손가락을 들어 '과학의 진보'를 가르킴으로써 내가 찾은 '미치광이'는 '(과학기술의)진보' 였다. 그렇다면 3부의 알파고와 이세돌은 '치유할 수 없는 진보'의 증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다섯 차례 대국에서 '신의 한수 78수'로 인류에게 1승의 희망을 선사했지만, 정작 이세돌 본인은 처절한 절망을 통감한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90년전 파울 에렌페스트의 파국과 2019년 이세돌의 은퇴는 모양은 달랐지만 그 원인은 다르지 않다. 파울 에렌페스트가 ‘치유할 수 없는 진보’라는 현실과 고전물리학의 신념 사이에서 격렬한 인지부조화를 겪었다면, 이세돌은 세기의 대국을 직접 겪으며 현실을 단번에 인정했을 뿐.

’결과는 무시무시했다.'(p405) 현재 알파고의 상위버전인 알파제로는 인간이 제공하는 '학습 경험에 전혀 의지하지 않은 채'(p406)모든 게임을 프로그램 스스로 통달하며,이세돌을 이긴 알파고와 100번의 대국을 치러 전부 승리했다. 수 십년 전 노이먼이 했던 예언 그대로,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언어를 이해해 읽고 쓰고 말할 줄' 알며, '그리고 어린 아이처럼 놀 줄' 아는 진보가 눈앞에 당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매니악 #벵하민라바투트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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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 스티커 -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9
황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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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에 외운 암기는 정말 무섭다. 앞글자를 떠올리면 뒷 문장이 내 지각과 무관하게 흘러나온다. 나에게 보현행원품의 한 대목은 그런 구절이다. '마음이 모든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이 주인되어 모든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악해지리라.' 어린시절부터 반항기가 많았던 나는 동네의 작은 법당에 모여앉은 친구들과 이 대목을 암송할 때면 꼭 맘속으로 토를 달았다. '진짜 그럴까?'라고. 제 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네임스티커'는 그 시절의 나를 따라다니던 익숙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마음에 정말 힘이 있을까?'


주인공 고은서에게는 강민구라는 '이상한' 친구가 있다. 그런데 사실, 제 3자 입장에서는 은서 역시 못지않게 '이상한' 아이다. 대신 '이상한' 이라는 카테고리로 뭉쳐진 우정은 '이상하게' 단단하게 엮이곤 하는데, 아마도 그건 '우정의 원동력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 이기 때문인것 같다. 강민구는 이상하게 고은서가 좋고, 고은서는 이상하게 강민구가 궁금하다. 그렇게 둘은 이상한 우정으로 엮여 '나 빼고 무사태평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소심한 응징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네임스티커는 일종의 부적이다. 우리가 조선왕조오백년사에서 가장 숨죽이며 봐왔던 저주의 지푸라기인형을 떠올리면, 누군가의 이름을 써 붙여서' '일심'으로 저주하는 컨셉은 너무 고전적이라 이제는 약간 코믹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그걸 요즘 청소년들 식으로 바꾼다면, 뭐 복잡하게 준비할 필요있나. 네임스티커 하나면 끝. '유혜주''임선영'.


소설 속, 유혜주와 임선영은 은서입장에선 너무나 응징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우주의 모든 악의 기운을 모아 저주하는 마음에 힘을 쏟는다고 생각해보자. 결과와 무관하게 정작 저주받는 것은 은서의 마음이다. 어둡고, 탁하고, 무거워진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간명하게 '산뜻하지 않다'고 표현한다. 정말 그렇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너무 산뜻하지가 않다.


다시, 마음에 힘이 있을까를 묻는다. 세상을 살아갈 수록 깨닫는것은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쏟는 대상은 보란듯이 내 마음의 반대방향을 향해 내달려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마음에 무슨 힘이 있나.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 순간 내 마음하나 '산뜻하게' 바꿀 힘 정도는 나에게도 있다. '산뜻하지 않음을 느낀다면 잠깐 멈춰도 좋을것 같다'는 황보나 작가의 말처럼, 지금 내가 결정한 판단이 '산뜻하지 않다면' 잠깐 멈춰보자. 오늘부터 내 행동의 잣대를 '산뜻함'으로 잡아도 꽤 괜찮은 삶이 될 것 같다.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네임스티커 #황보나

"화분은 없어?"
"없다니까."
"왜?"
"안 빌었으니까."
민구는 또 내가 말을 두 번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왜 인빌었냐고."
"산뜻하지 않았으니까."
- P122

마음이 힘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안 좋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도 그 마음을 일단 접어 두게 되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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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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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너머, ‘짝없는 도시’에서 나와 만나기

리베카 솔닛은 자신의 저서<걷기의 인문학>에서 역사 연구자 G.M트리벨리언이 쓴<보행>의 한 대목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내 병을 고치는 두 의사는 내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다.” (걷기의 인문학, p199)즉, 몸과 마음은 서로 가까운곳에 살고 있어서 한 쪽이 병에 걸리면 예외 없이 다른 쪽도 병에 걸리는데, 바로 그때 두 다리가 명의(名醫)가 되어준다는 주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나운 애착>과 <짝없는 여자와 도시>를 쓴 비비언 고닉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이미 체득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녀는 든든한 두 주치의에 자신의 하중을 싣고 뉴욕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동서고금을 막론 ‘가족’, 더 정확하게는 ‘모녀’라고 불리는 ‘사나운 애착’ 너머, ‘나 자신을 알아주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을 ‘작가들의 작가’로 만든 그녀의 대표작 <사나운 애착>은 유대인이자 공산주의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만으로도 버거우면서, ‘못말리는 낭만주의자’에다 ‘결혼이상주의자’ 이기까지 한 엄마와, 사랑에 서툴고 도무지 결혼에 안착하지 못하는 딸 고닉이 ‘직설’이라는 무기로 서로의 가슴을 후벼 파지만, 끝내 서로가 선택한 세계를 연민하고 존경하는 삶의 기록이다. 그 지난한 여정속에서 만났던 브롱크스 거리의 다양한 여성들은, 엄마가 속한 여자들의 세계를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현미경이 되어주었다. 그 현미경으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 고닉은 마침내 ‘끈끈하게 얽힌 혈육이 아니라’(P301), ‘살면서 서로가 놓친 그 모든것과 연기 같은 인생을 바라봐’(p301) 주는 그윽한 시선을 갖게 된다.

 <사나운 애착>에서 고닉은 외로움이 갉아 대는 인생의 고초를 극복하려는 노

력과 자기연민 사이의 조화가 유지될 때 “짝 없는 여자들 중에 한 명이 되었다고 느낀다”(사나운 애착, p313)라고 쓴 바 있다.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출간되기 15년 전에 이미, 그녀는 기꺼이 ‘짝없는 여자’가 되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5년 뒤, 그녀는 진짜 ‘짝 없는 여자’가 되어 뉴욕이라는 도시 곳곳을 걷는다. 그녀에게 ‘도시’의 의미는 ‘쓸쓸함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p14)는데 있었고,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도시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사랑과 우정’ 따위의 ‘관계’를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의 두 권의 에세이를 덮으면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단어는 황동규시

인이 말한 바 있는 ‘홀로움’이라는 단어였다. 시인이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했을때, 그 멋진 시를 끊임없이 되뇌여도 내 것이 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비비언 고닉이 ‘사나운 애착’ 너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고, 결국 “우리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토를 힘겹게 횡단하다 국경이 맛닿는 곳에서 이따금 만나 서로에게 정찰 기록을 건네는 고독한 여행자”(짝 없는 여자와 도시, p59)라고 했을 때, 비로소 ‘홀로움’의 의미가 내 것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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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ㅣ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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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수영장에서 바다로 나아간 20대.' 한국사회의 청년노동자 산업재해에 관한 진정성있는 르포르타쥬로 유명한 은유작가는 자신의 저서 '글쓰기 최전선'에서 20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인상적인 묘사에서 주목한 것은 '20대의 바다'가 아니라 '20대 이전, 그러니까 10대의 네모난 수영장'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다'보다는 '수영장'이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계가 없는 바다에 비해, 네모난 수영장은 비교적 통제가능한 울타리안에서 노는 물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 다 시피 바다 못지않은 빈번한 물놀이 사고가 수영장에서 일어난다.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기 전, 서툰 허우적거림이 수영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들에겐 네모난 수영장이 경계가 없는 바다만큼이나 힘든 곳이 된다. 나에게 '얼음이 빛나는 순간(이금이, 밤티)'은 사각의 수영장에서 외롭게 허우적거리다가 끝내 자기만의 생존수영법을 찾아낸 십대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석주와 지오가 처음만나는 전국구 기숙형사립고등학교 태명고는, '성적세탁소' 같은 곳이다. 석주처럼 도시에서 집밖먹으며 경쟁하는 것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내신을 세탁하기위한 특수한 목적으로 선택하는 학교이기 때문이고, 지오처럼 조기해외유학까지 가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마지막 성적세탁을 기대하며 선택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속에는 기숙사 같은방 멤버중 하나인 근석처럼 지역할당분으로 입학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시의 아이들은 타의적으로 발생해 결국은 자의적이 되어버린 일종의 열등감과 패배감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학교가 강조하는 '3무(폭력, 사교육, 포기)와 인성중심' 뒷면에는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3유(폭력, 사교육, 포기)와 '학력중심'이 있다는걸 적어도, 3선국회의원인 재단이사장말고는 모두 알고 있는것 같았지만 ,어차피 목적은 '성적세탁' 아닌가. 석주와 지오의 네모난 수영장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두 아이가 애초의 목적을 성취해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는 학교생활을 했더라면, 무사히 부모가 원하는 바다로 나갈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육제도와 학력지상주의 부모가 인정하는 자유형은 모두가 왠만큼 연습하면 마스터할 수 있는 그런 자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명중 한 두 명만 마스터할 수 있는 특수자유형만을 인정할 때, 99명의 아이들은 살기위해 저마다의 생존수영을 터득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석주와 지오는 '은설'과 '성은'이라는 여자아이를 각각 만나게 된다.


인생을 끝끝내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만 본다면, 그 만남을 통해 일어난 일연의 사건이 석주와 지오가 나아간 바다풍경을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바다로)바꾸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한 인간의 성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은설'과 '성은'의 만남을 그런식의 결과가 되도록 선택한것은, '석주'와 '지오'가 살아온 전사(前史)에 대한 반작용이었고, 10대의 전사란 절대적영향을 미치는 부모를 포함한 타자와 환경의 총합인 바, 이금이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음이 깨짐으로써 빛나는 순간'을 본 것이고, 헤르만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브락사스를 만나기위해 알을 깨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석주와 지오는 네모난 수영장에서 각각의 바다로 나아갔고, 어느날 석주의 초대로 재회하게 된다. 그때 두 사람은 예상치않은 서로의 모습에 놀라게 되지만, 자신들의 바다가 부끄럽지않았다. 부끄럽지않은 삶을 산다는것, 각자의 바다를 살면서 그런 마음이면 괜찮은거 아닐까. 이 책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바다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고, 내 자녀들이 나아가게 될 바다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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