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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ㅣ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3년 1월
평점 :
'네모난 수영장에서 바다로 나아간 20대.' 한국사회의 청년노동자 산업재해에 관한 진정성있는 르포르타쥬로 유명한 은유작가는 자신의 저서 '글쓰기 최전선'에서 20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인상적인 묘사에서 주목한 것은 '20대의 바다'가 아니라 '20대 이전, 그러니까 10대의 네모난 수영장'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바다'보다는 '수영장'이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경계가 없는 바다에 비해, 네모난 수영장은 비교적 통제가능한 울타리안에서 노는 물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 다 시피 바다 못지않은 빈번한 물놀이 사고가 수영장에서 일어난다.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기 전, 서툰 허우적거림이 수영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들에겐 네모난 수영장이 경계가 없는 바다만큼이나 힘든 곳이 된다. 나에게 '얼음이 빛나는 순간(이금이, 밤티)'은 사각의 수영장에서 외롭게 허우적거리다가 끝내 자기만의 생존수영법을 찾아낸 십대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주인공 석주와 지오가 처음만나는 전국구 기숙형사립고등학교 태명고는, '성적세탁소' 같은 곳이다. 석주처럼 도시에서 집밖먹으며 경쟁하는 것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내신을 세탁하기위한 특수한 목적으로 선택하는 학교이기 때문이고, 지오처럼 조기해외유학까지 가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마지막 성적세탁을 기대하며 선택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속에는 기숙사 같은방 멤버중 하나인 근석처럼 지역할당분으로 입학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시의 아이들은 타의적으로 발생해 결국은 자의적이 되어버린 일종의 열등감과 패배감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학교가 강조하는 '3무(폭력, 사교육, 포기)와 인성중심' 뒷면에는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3유(폭력, 사교육, 포기)와 '학력중심'이 있다는걸 적어도, 3선국회의원인 재단이사장말고는 모두 알고 있는것 같았지만 ,어차피 목적은 '성적세탁' 아닌가. 석주와 지오의 네모난 수영장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서 두 아이가 애초의 목적을 성취해서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는 학교생활을 했더라면, 무사히 부모가 원하는 바다로 나갈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교육제도와 학력지상주의 부모가 인정하는 자유형은 모두가 왠만큼 연습하면 마스터할 수 있는 그런 자유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명중 한 두 명만 마스터할 수 있는 특수자유형만을 인정할 때, 99명의 아이들은 살기위해 저마다의 생존수영을 터득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석주와 지오는 '은설'과 '성은'이라는 여자아이를 각각 만나게 된다.
인생을 끝끝내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만 본다면, 그 만남을 통해 일어난 일연의 사건이 석주와 지오가 나아간 바다풍경을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바다로)바꾸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한 인간의 성숙의 관점으로 본다면, '은설'과 '성은'의 만남을 그런식의 결과가 되도록 선택한것은, '석주'와 '지오'가 살아온 전사(前史)에 대한 반작용이었고, 10대의 전사란 절대적영향을 미치는 부모를 포함한 타자와 환경의 총합인 바, 이금이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얼음이 깨짐으로써 빛나는 순간'을 본 것이고, 헤르만 헤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브락사스를 만나기위해 알을 깨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석주와 지오는 네모난 수영장에서 각각의 바다로 나아갔고, 어느날 석주의 초대로 재회하게 된다. 그때 두 사람은 예상치않은 서로의 모습에 놀라게 되지만, 자신들의 바다가 부끄럽지않았다. 부끄럽지않은 삶을 산다는것, 각자의 바다를 살면서 그런 마음이면 괜찮은거 아닐까. 이 책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바다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고, 내 자녀들이 나아가게 될 바다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