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rrendered (Paperback)
Lee, Chang-rae / Riverhead Books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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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기 괴로운 책이 또 있었던가? 끝없는 장면의 묘사, 또 묘사. 책 첫 머리 도입부부터 너무나도 끔찍할 정도로 처절하고 세밀한 그 묘사에 견딜 수 없어 책장 덮기를 몇 번.

아빠와 오빠는 죽음의 장으로 끌려가고 엄마와 언니는 능욕을 당한 후 포격에 사라지고, 이제 동생들을 데리고 기차 지붕에 올라 피난길에 나서는 11살 소녀 June. 하지만, 데리고 가던 동생들마저 결국 급정거하는 기차에서 추락.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극도의 공포 속에서의 Hector와의 만남. 이 Hector는? 어린 시절, 자신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던 아버지, 잠깐 곁을 비운 사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그, 그에 대한 자책감에서 자신의 죄 값으로 수난 받기를 자처해 한국전에 자원, 상관폭행으로 불명예제대, 고아원으로 봉사하러 가던 중. 이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틀어놓는 또 다른 사람, 그 고아원 목사의 부인 Sylvie. 그 Sylvie는? 선교사의 딸 그녀. 어린 시절, 만주. 일본군의 고문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겪을 수 없는 수치를 당한 후 죽음을 맞는 부모의 최후 현장을 목격.

작가란 누구인가. 소설이라는 하나의 나름대로의 세계를 열어가는 창조주? 그렇다면 작가 이창래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창조주다. 하나같이 어린 시절 충격적 불행한 사건을 겪어야만 했던, 그로 인해 형성된 성격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스스로 불행한 삶을 자초하는 성격파탄자 June 알코올 중독자 Hector 약물 중독자 Sylvie. 그래서 제목이 The Surrendered일까? 운명에 두 손 들고 항복한 존재들,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긴 존재들. 그런 존재와 그 고통 형태의 설정에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의 모습 하나 하나를 극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즐기는 창조주.

스토리 라인은 이렇다. 사업에는 성공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등한히 했던 June, 어렸을 적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유럽으로의 뿌리여행을 떠나버린 그의 아들, 말기 암 June, 사람을 고용해 아들의 행방을 찾는 그, 절도와 사기 행적으로 가득한 아들의 인터폴 기록, 자신이 떠나기 전 아들에게 그 죽은 남편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 Hector와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해주려는 그. 물론 어느 소설에서도 그렇듯 여기에서도 이야기가 단선적으로 밋밋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Hector의 삶, June의 삶, 또 Sylvie의 삶, 또 이들 세 사람 만남의 현장 고아원 시절의 삶. 이 네 개의 이야기 항아리에서 풀어져 나오는 실타래가 얽히고설켜가다, 마치 소설 초반 고아원으로 향하던 Hector와 June의 발걸음이 재현 되듯, 이 두 사람과 Sylvie 또 June과 그의 아들 Nicholas의 상징적 접점이었던 19세기 이탈리아의 Solferino 전투 그 현장으로의 마지막 순례라는 하나의 초점으로 이야기가 모아져 가며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보통의 작가라면 주인공의 긍정적 면을 살려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갈 텐데, 여기서는 그런 것 없이 냉혹하다. 거기에 또 끝이 없이 잔인한 창조주 작가. 이야기의 흐름을 그의 의도대로 끌어가려, June이 유럽으로 출발하기 전날 원래의 동행예정자였던 탐정을 '사고 처리'한 후 '최후의 동행인'을 Hector로 대치하고, 나중엔 그 아들조차 얼마 전 교통사고로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존재’로 만들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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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Outside: Play & Stories (Paperback, Revised)
Borchert, Wolfgang / New Directions / 197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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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돌아온 Beckmann.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부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실의에 빠져 강에 몸을 던진다. 강에서 ‘튕겨져 나온’ 그에게 소녀가 다가온다. 소녀의 집에서의 다정한 분위기는 외발 상이군인 남편의 출현으로 곧 막을 내린다. ‘다른 사람’(배역 이름 자체가 Der Andere, 이하 他人)이 권한다. 염세적 생각의 원인이 ‘책임감’ 때문으로 보이니, 그것을 돌려주라고. 옛 상관을 찾아간다. 내 부하 ‘책임’지고 이끌라 했던 명령, 그 ‘책임’을 돌려주려 왔노라고. 말하는 투를 보니 배우가 적격이겠네. 카바레의 감독을 찾아가 일자리 알아보지만, 관객들은 ‘이름’을 원한다고, 화려한 경력의 ‘이름’을 원한다고. 역시 닫히는 그곳의 문. ‘他人’이 권한다. 어머니 아버지의 집이 있지 않느냐고. 그곳 노파에게서 듣게 되는 비참하게 삶을 마감한 그의 부모 마지막 모습. 

무릎부상으로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그,  작아빠진 목소리에 방독면안경까지 걸친 그, 춥고, 배고프고, 잘 곳 없이 내쳐지고... 계속되는 ‘他人’의 희망권유. 이 세상 밝혀주는 등불이 얼마나 많은데, 이 세상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따듯한데, 이 세상에 열린 문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를 찾아봐도 닫히기만 하는 문, 문, 문. 엘베강이란 죽음의 문에서조차 거부당한 그. 

내 독일어 배울 때 가장 먼저 만났던 작품. 감상에 젖어 읽어 내려간다. 가끔은 노래하듯 소리 내어 그 운율 즐기며. 

거지꼴로 길바닥에 앉아 내뱉는 베크만의 절규. 당신이 나를 죽였어요. 그거 알아요? 대령의 싸늘한 반응, 계급이 뭐였지? 전쟁에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구먼. 카바레 감독의 반응. 지금 나 살기도 바쁜데. 노파의 반응. 불행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 그런 것이 세상. 당신이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 나를 죽게 만든 거야. 그거 알아? 남자와 팔짱끼고 지나는 자기 부인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봤어? 봤어?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 ‘他人’을 원망한다.  

모두를 향해 울부짖는다. 팡파레 울릴 땐 언제고 왜 누구 하나 아는 척 하는 사람 없나요. 배역을 맡아 나온 Gott에게 대든다. 포성이 오갈 때, 내 부하들이 죽어갈 때, 내 아이 포격 맞을 때, 어디 계셨었나요. 구원의 손길? 소녀가 나타난다. 당신을 찾았었다고. 집에 가자고. 하지만, 다시 등장하는 그녀 남자의 유령 모습. Beckmann만 당신이 나를 죽였다고. 내 여자를 차지한 당신이 나를 죽인 거라고. 피해자인줄만 알았던 자신도 가해자.  

작가 Wolfgang Borchert(1921-1947), 언어의 마술사 그의 이 작품은 절규이자 동시에 아름다운 시의 모음과 같다. 대사들이 아주 길다. 이를 소화해야하는 배우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때때로 격해지는 감정에 더 읽어 내려가기 힘들 정도로 독자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이 느껴진다. 단순히 귀환 상이군인 병사 베크만의 절망감만 담은 것이 아니다. 안식처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현대인의 아픔을 상징적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은 전쟁 중 나치에 반대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사형 언도를 받았지만 너무 병약한 몸이라는 이유로 또 아직 너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집행을 유예 받았던 작가가 26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기 몇 달 전에 쓴 작품이다. 삶에 대한 절망감, 주인공 베크만의 대사도 작가의 소리고, ‘他人’의 대사 역시 무엇인가 붙잡고 싶은 삶에 대한 애절한 희망 작가의 다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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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과학의 역사 - 우리가 미처 몰랐던
퍼트리샤 파라 지음, 김학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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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철학사 미술사 문화사 심지어는 경제사 쪽의 좋은 책을 만날 때마다, 과학사 쪽에도 이런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물론, 특정 분야나 몇몇 과학자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책은 몇 권 읽은 적이 있지만, 인류문화와 문명의 발달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책 말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사 쪽에도 좋은 책이 나올 가능성은 있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책은 일곱 개의 파트로, 기원-상호작용-실험-제도적장치-법칙-눈에보이지않는것들-결론으로, 나뉘어 있다. 파트의 제목이 그렇다고 이들 테마의 관점에서 과학을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지식탐구 역사를 단계별로 나누다보니 시대별 특징으로 이런 특징적 단어들을 내 세울 수 있겠다 그런 의미다. (기원) 옛날 옛적 그때의 철학과 종교의식 거기에서의 미신과 과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로 부터 시작해, (상호작용)십자군 전쟁과 그 후 교역을 통해 흘러들어온 아랍문명이 어떤 형태로 유럽을 다시 깨웠는지, (실험)흔히 중세를 암흑기라 하지만 사실 영웅이 없을 뿐이었지 농기구 개량이라든가 연금술과 관련해 그 무엇인가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뭐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자들의 모습과 시대상황이 어울리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각종 그림과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한다. 

책을 덮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꼭, 성격 나쁜 누구에게 며칠 동안 붙잡혀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다 드디어 해방된 느낌이다. 과학의 세계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들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채 착취만 당했는지(한 두 번이라면 글쎄, 하지만 틈날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참 괴로운 일), 뉴턴은 사실 연금술사일 뿐이지 별 것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이 보어와의 논쟁에서 패했다느니(한두 명에 대해 그랬다면 그저 양념이겠거니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구누구 이야기가 나오는 듯싶더니 '거의 항상' 이런 식이라면 이것 또한 괴로운 일), 과학사라는 큰 흐름에서 어떤 사람의 어떤 일이 그 전체의 틀에서 볼 때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이런 본질적 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듯싶더니 사라지곤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궁금하다. 원제 'Science : A 4000 Year History'대로 '과학, 그 4000년 역사'로 책을 냈을 경우와 이렇게 '우리가 미처 몰랐던 편집된 과학의 역사'라고 그 제목을 각색해서 냈을 경우 책의 판매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영업상 전략과 계산이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명색이 과학에 관한 책인데, 그것도 그 내용이 진실의 왜곡이라는 것을 경멸하는 뜻으로 낸 책인데, 그 제목조차 이렇게 뒤틀어 내는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이런 제목 쥐어틀기도 저자와 합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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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사생활 - 우리 집 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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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Inside of a Dog : What dogs see, smell, and know.

반려동물이라는 이름까지 붙이게 된 개. 그런 개가 어떤 동물인지 주인으로서 무엇을 이해해야하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전에도 개들을 키운 적이 있고, 지금도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무슨 쓸 만한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책을 손에 잡았었지만 실망, 크게 실망. 마치 개가 말하는 법을 배워 주인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는 듯, 이야기는 계속되는데 체계도 없고 초점이 없고 그저 횡설수설에 다름 아니다. 뭐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였다고? 하! 내 실망은 적어도 내 지금 키우고 있는 개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그 무엇인가라도 잦아보려 애썼지만, 결과는 無였다는 그것 때문이 아니다. 얄팍한 미국문화의 단면을 또 한 번 보게 되었다는 그것 때문일까? 그래서 저자의 약력을 찾아본다. 코뿔소인가 뭔가 하는 동물에 대한 연구가 그녀의 학위논문이었다. 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학문적 바탕으로 개에 대해 무슨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한 결과가 어디엔가 실려 있을까하는 기대를 가졌었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그런 것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개에 대한 주장을 하는 이러이러한 실험이 어디에 맹점이 있는지, 뭐 그런 이야기만 여기저기에 늘어놓았을 뿐, 저자 자신도 개에 대한 무슨 체계적 실험을 수행해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껏해야 개 산책공원에서 찍어온 비디오를 슬로우 모션으로 돌려보며 관찰해보았다는 것. 그것도 개들이 서로 어울려 놀기 전에 어떤 ‘인사’를 하고 어떻게 노는지 그저 피상적인 설명뿐. 하다못해, 양떼를 지키는 개들이나, 사냥개의 집단 행동모양을 다룬 그런 흔적도 없다. 더구나 기껏 예를 든다는 것이 영웅견은 없다며, 주인이 사고를 당했을 때 개가 딴청이나 하더라는 남의 실험 인용뿐. 하지만, 이것은 자가당착. 개가 사람의 체취를 맞는 등, 인간이 모르는 것도 정확히 알아차린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던 저자가, 이런 놀이와 다름없는 행동을 보며 무슨 위기의식을 느끼고 거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취하겠는가. 저자가 강조하듯 오랜 역사를 거치며 인간에게 길들여져 온 개는 이미 늑대와는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는 다른 존재이다. 몇몇 남아있는 야생동물의 흔적으로 개를 이해할 수는 없다. 각 챕터를 자기가 키우던 펌프라는 이름의 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냄새이야기 또 자기가 일하러 밖에 나간 후 혼자 있게된 이 개가 무엇 무엇을 하더라는 그런 이야기, 하나의 예로 자신의 이론을 일반화시키려는 시도, 이런 것이야말로 과학적 서술에서 가장 위험한 접근방법 아닐까. 나는 이런 식의 사이비 과학책을 증오한다. 매스컴 플레이를 염두에 둔 전형적 미국문화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는데 들어간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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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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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재미있고 수준 높은 책이다. 혹, 인상파 화가 그림 몇 점 소개하며 지엽적 부분에 가십성 이야기나 잔뜩 붙여 넣는 일본류는 아닐까 하는 기우는 초반에 사라졌고, 그림 설명스타일이 곰브리치 뺨치네, 흐름설명은 거의 아르놀트 하우저 수준이잖아, 하는 무슨무슨 책과의 비교하는 내 독서습관도 여기에서는 다 날아 가버리고, 그저 저자 이택광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큰 매력은 그림 하나하나에 대해 자세한 설명. 이 그림은 어디에 유의해서 봐야하는지, 여기 이 구도 또 터치는 다른 작가의 어떤 그림과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또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며 왜 여기에 등장시켰는지, 배경에 보이는 이 모습 저 소품은 어떤 의도로 들어갔지, 설명 하나하나가 자상하기 그지없다. 물론 이 책이 인상파 화가들에 관한 것이라고 그들의 그림만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와 화법의 차이를 설명할 때는 그쪽 해당 그림을 대비시키고, 한 작가의 화풍변화를 설명할 때는 또 그에 해당하는 그림을 나란히 놓는 등 독자의 이해를 돕는 일 그 목적의식엔 흐트러짐이 없다.

그냥 그림 설명만으로 가득 찼다면 다른 책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나폴레옹 3세 때 오르망의 파리 재개발 사업, 보불전쟁 패배와 파리코뮌에 따른 충격, 제3공화정에서의 혼돈, 이어지는 금융위기 등 프랑스사회가 겪는 격변과정 이야기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놓고, 권위적인 제도권 미술계로부터 배척 받는 이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거나 초상화나 그려주는 것으로 생계수단을 삼으며(심지어는 피사로의 경우, 밭에 버려진 감자를 주워서 연명하기까지도) 실험정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상파라는 전체 그림'이 하나의 꿰어진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온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딱한 내용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마네-모리조. 모네-까미유, 드가-커샛의 커플 활동, 피사로와 세잔 고갱 사이의 인간관계, 마네와 카유보트의 역할, 또 화상 드랑뤼엘의 존재 의미 등, 단순한 가십성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유익한 이야기들도 듬뿍 담겨있다.

원래 그림이라는 것은 귀족들이나 즐길 수 있는 고귀한 것이었는데, 격변의 시대를 틈 타 부를 모은 무역상이나 상인들이란 중산층이 새로운 구매 세력으로 등장하지만, 자신들의 신분상승을 과시하는 것이 목적인 이들에게 이 '고귀한 그림에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모델을 대상으로 붓 칠 몇 번 하다 만 것 같은 그림들'(전시회에 왔던 사람들이 분노에 차 그림을 훼손하려 하고 또 입장료 환불까지 요구했다고)이 구매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 그런 니치 마켓을 노렸던 한 부류가 바로 비르비종파(밀레가 여기에 속함)라는 것, 설명이 매우 논리적이다.        (追) 사실, 여기까지는 내 다른 곳에서도 읽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궁금했던 의문, 그래도 그 예술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그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들이 이렇게까지 곤궁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 아닌가하는 그 의문이 여기서 풀렸다. 화상 드랑뤼엘이나 부유한 집안 출신인 카유보트가 그림 하나 사줄 때, 또 모네가 자기가 번 돈으로 세잔의 그림을 사주었듯이 화가들끼리의 거래가 이루어질 때, 그들이 드디어 어떤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고 하는 이야기를 읽으며 대충 그 그림 값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기에. 오직 거기에 모험을 걸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나 지불할 수 있는 그런 가격. 하긴,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들의 그림을 헐값에 내 놓을 화가가 당시나 지금이나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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