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읽었던 개미의 생각이 나서 이 책 두 권을 주문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가 베르베르에 졌다. 결국 1,2권을 다 읽게 되었으니. 때때로, 특히 요즘처럼 서점에 가서 책 몇 페이지라도 들쳐보지 않고 그냥 막연히 괜찮겠지 하는 기대로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경우에는. 책을 읽는 것이 인내심과의 싸움과 같이 느껴진다. 처음부분은 읽기가 무척이나 괴로웠다. 상상력의 빈곤. 표현의 어색함. 잘못 걸려들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잔재주)가 느껴지는 것 같아 그리스 신화의 복습이라는 ‘곁 소득’ 덕분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되었다. 사실 이 2권이 끝은 아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04년에 나온 연작 중 1부 ‘우리는 신’의 번역이고, 이제 2부 ‘신들의 숨결’과 3부 ‘신들의 미스터리’가 나올 예정이라니.(하지만 그 책들까지 읽을 마음은 전혀 없다.)

독자들에 어필하려면 어떻게 이야기를 꾸며야하는지 알고 있는 베르베르의 안간힘쓰기다. 소재의 빈곤을 피하려 그리스 신화를 택하였고,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지금까지의 수많은 책들과 차별화하는 방법으로 그 신들을 ‘神 후보를 키우는 학교’의 교사들로 등장시키고, 소설의 흐름이 뒤죽박죽되는 것을 피하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백과사전’이라는 저자의 지난 책을 인용함으로써 그리스 신화나 신기한 ‘이야기꺼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그런 형식을 취하고, 그 ‘神이 되는 교육을 받는 학교’의 학생으로 각 분야의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이들 신과 인물들이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에 개입해나가는 과정을 묘사한 그런 책이다. 여기에 이 신 후보들이 천사시절 인연을 맺었던 아이들의 성장과정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스토리 흐름에 양념을 섞어 넣는 변화를 주려한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어울리지 않는 군살처럼 일종의 과욕으로 느껴졌다.

작가 상상력의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 책이다. ‘총균쇠’와 비교될 만큼 자연사의 흐름을 짜임새 있게 따른 것도 아니고, ‘죽은 철학자들의 카페’에서처럼 그 등장인물들의 핵심 철학을 재현시킨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무슨 ‘창조’의 느낌이 나는 참신한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도 아닌, 그저 생각나는 적당한 재료를 이것저것 집어넣어 끓인 성의 없는 부대찌개라고나 할까. 더구나 작가가 관리했다는 그 돌고래 족에 관한 묘사는 마치 노골적으로 유대인들을 미화했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한국독자로서 좀 특이하게 느꼈던 것은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으로 등장하는 미카엘 팽송이 천사시절 돌보던 은비라는 재일교포 어린이의 등장시켜 한일역사의 억울한 그늘을 우리시각으로 대변해주었다는 그런 부분이라고나 할까.

책에 대한 불만을 그렇다 치더라도, 마치 원래부터 한국어로 쓰인 소설을 읽듯 편안한 마음으로 읽게 해준 이 책의 번역자 이세욱씨에게 찬사를 보낸다. 많은 번역서에서 느끼는 그런 덜컥거림 없이, 문장의 흐름이 매끈하고 표현이 자연스럽다. 또 단순한 번역에 그치지 않고, 작가를 대신하여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의 주석을 정성껏 또 자세히 붙여놓은데 대해 아주 큰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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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 2009-01-22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정말 잘 쓰시네요,ㅋ 다독하신 티가 나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