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코스 창작론
미우라 시온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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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에세이나 수필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설을 쓰는 일은 일종의 로망이라는 말을 들었다. 글이면 다 같은 글이지 소설이라고 특별한 어떤 차원의 일로 구분하여 바라볼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 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단편 소설들을 쓸 때 까지는. 점차 욕심이 생기고 장편으로 넘어가고 싶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자꾸만 무너져 내렸다. 최근 글쓰기 관련 책을, 특히 소설 작법 관련 책을 보게 된 계기도 그렇다.


저자 미우라 시온은 일본 내 문학성을 대표하는 나오키 상과 대중성을 대표하는 서점대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라는 타이틀이 반짝인다. 코발트 단편소설 신인상 심사를 오랜 기간 맡아오면서, 자연스레 응모자와 독자를 위해 소설 쓰는 법에 대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모든 연재를 묶고 추가 자료를 덧댄 완성본이다.


풀코스 메뉴, 스물 네 접시로 구성된 책은 다채롭고 탄탄하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풍성한 맛과 향이 방점인 코스 요리를 즐기는 기분으로 책을 향유했다. 소설쓰기란 대체로 자유로운 행위라는 저자의 말에서처럼, 확실하고 분명한 공식을 원한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쓰기라는 뿌연 안개숲 속에서 내가 어떤 길로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배운 적 없어도 감각적으로 써오던 소설쓰기가 전혀 틀린 방향은 아니라는 점에서는 위안을,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짚어주는 부분에서는 감탄을 했다.


인간에게 흥미가 없다면 소설가라는 직업은 맞지 않을 거라는 말(읽는 사람이 인간이다!), 진정한 객관이란 서로를 더 이해하고 싶은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말, 본인의 소설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뿐이라는 말에는 인덱스를 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긴 시간 머물며 사색에 빠지기도 했다. 저자는 ‘문장을 쓰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의 간격을 메우는 것은 정열을 품고 소설에 대해 계속 생각하는 것밖에 없다고 외친다. 생각하고, 쓰는 일. 모든 출발은 역시나 열정과 사랑이다.


(+) 전형적인 일본어식 말투를 불편해하는 분들이라면 조금 어색할 수도 있다. 일본어 특유의 어투가 가득 살아있다. 독자와 대화하듯 적힌 전체 원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번역자가 일부러 그 특색을 잘 살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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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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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 읽기도, 쓰기도 어렵다. 왜 그럴까 가만 고민해 보면 지난 교육과정에서 어렵게 배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어, 문장을 쪼개어 화자의 의도나 속내를 찾아야 했고, 왜 특정 자리에서 줄바꿈을 했는지 추측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시라는 짧은 노랫말로 세상을 향해 확실하고 중요한 의미를 던져야만 하는 것처럼 느꼈다. 사실 학습 차원을 벗어나 접하는 모든 시는, 그 시인의 유명세나 시인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그저 시였다. 내 마음에 닿는 대로 나름의 운율과 소리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학습된 자아를 마주할때면 불편하게 느껴졌고, 때문에 스스로 찾아서 시를 읽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다.


📍사랑과 고통은 동의어입니다. 시와 산문이 한 몸이듯이 사랑과 고통도 한 몸입니다. 사랑 속에 고통이 있고 고통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과 고통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고통이 산문이라면 사랑은 시입니다. 시는 고통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꽃입니다. (6p)


시가 있는 산문집이라는 데서 한시름 놓았다. 더군다나 시와 산문에 대한 저자의 소개말만으로도 지난 날 시로부터 막연히 뒷걸음치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책은 단순히 시만 실린 것이 아니라 각 시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한 꼭지씩 함께 소개된다. 초반에는 시의 뒷이야기들이 더 궁금해서 안달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는데, 점점 페이지가 쌓일수록 뒷이야기들에 넘어가기 전에 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책은, 그런 매력이 있다.


꼭 한 번, 시간과 공을 들여 필사하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편의 시들만을 옮겨 써도 좋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들도 옮겨 쓰는 정성을 다하고 싶은 책이다. 마음에 박힌 문장들을 내 손으로 옮겨쓰고, 나만의 단상을 함께 기록하는 일만큼 기분 좋은 몰입도 없다. 그런 생각의 뿌리에는 책의 모든 페이지마다 빼곡이 담긴 정호승 시인만의 강렬한 목소리가 있다. 한 권의 책을 통틀어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시인이 외치는 목소리가 시와 산문을 통해 메아리퍼져 흐른다. 부디 많은 이들에게 이 다정하고 힘있는 목소리가 퍼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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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회복탄력성 - 쉽게 꺾이지 않는 마음의 힘
존 디마티니 지음, 서지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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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실패나 고난에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은 사람들은 좌절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외상후성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 정신력, 심리적 강인성과 그 결이 맞닿아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다양한 위기 상황들에서 반짝이는 기회를 만들어내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의미의 회복탄력성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학문(심리학, 신경과학 등)을 바탕으로 회복탄력성에 접근하는 태도가 좋았다. 한 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각각의 결과들을 더 큰 틀로 묶어냄은 물론,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예시나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핵심은 이거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을 해낼 때 가장 회복탄력적일 수 있다는 것.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닌 오직 나의 기준에서 가치의 순위를 매기고 그 우선순위를 따라 살아가는 삶. 최우선가치와 일치하는 삶을 사는 순간, 우리는 (이전에는 몰랐을) 잠재력을 가감없이 발휘하고 더 큰 회복탄력성을 일깨울 수 있다.


📍사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 자체보다는 당신의 반응, 즉 당신의 인식, 결정 그리고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당신에게 힘을 줄 뿐 아니라 당신이 통제할 수 있습니다. (5p)


📍이는 누구 하나가 옳고 나머지는 그르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각자 고유할 뿐입니다. 우리 삶의 고유함은 우리의 가치순위에 따라 표현됩니다. 가치관은 서로 비슷하거나 다를 수는 있어도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린 가치관이란 없습니다. (19p)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는 식의 확언들이 없어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 무엇도 절대적인 가치는 없다는 것에서, 모든 사건이나 가치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지속적인 위로를 받았다. 어떤 개념이나 현상들을 바라볼 때 삶에 존재하는 여러 상반된 형태의 균형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은 주위의 많은 것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특히, 우리가 숭고하고 아름답게만 생각하기 쉬운 ‘사랑’마저도 “좋으면서도 나쁘고, 상냥하면서도 잔인하고,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이고, 지지적이면서도 도전적이고, 평화로우면서도 전쟁 같고, 합리적이면서도 경쟁적”이라는 시선은 결국 우리가 하루 24시간 사랑에 둘어싸여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일방적이고도 특정한 형태의 사랑을 쫓는 이들에게는 평생 손에 잡히기 힘든 사랑일 텐데 말이다. 한 번 시야가 트이면 그런 것들은 쉼없이 튀어나온다. 육아, 출생, 죽음 같은 것들은? 한 번 떠올려 보자. 그들의 다양한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저자는 삶의 역경을 관리하는 힘으로서의 회복탄력성을 어떻게 마련하고 단단하게 기반을 다질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한다. 단순히 자기계발서로 치부하기에는 아쉽다. 나같은 성향의 독자에게는 조금 납작하지만 더없이 큰 위로와 응원의 과학서로도 기억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책을 덮으며 나의 지난 발자취를 톺아보고, 앞으로 내가 나아갈 삶의 우선순위를 매겨본다.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는 힘이 거기에서 시작될 거라는 강한 확신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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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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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쓴 기간으로만 보자면 오랜 기간 글을 썼다. 힘들 때면 책으로, 글로 숨었던 10대와 20대였다. 에세이, 수필, 일기 … 논문은 말할 것도 없다. 간간히 소설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은 없다. 시기마다 내가 읽는 글이 곧 내가 쓰는 글의 교재가 되었다. 내 머리와 마음 속에 뒤엉킨 상처와 고민들이 글로 쏟아질 뿐이었다.


작년, 단편 소설을 몇 편 썼다. 내 소설들을 본 지인들은 정식으로 소설 쓰는 법에 관한 강의를 들어볼 생각이 없냐는 조언들을 해줬다.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잘 쓴 이 글들에 기본적인 핵심 기술까지 습득한다면 날개 달린 듯 날아갈 것 같다는 응원들이었다. 나를 애정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조언들임을 알면서도 괜히 기운이 났다. 소설을 더 많이 써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단 번에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방법이라니, 글 쓰는 사람 치고 안 궁금할 사람 하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더 사로잡은 것은 부제였다.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이라는 표현.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혹은 내가 여럿 가르쳐 봤는데~ 하는 주장보다(물론 그런 결의 조언들도 초보인 내게는 도움이 된다) 상대적으로 과학적인 근거를 뒷 배경에 깔고 있는 주장들이 더 신뢰도가 높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주류가 된 뇌 과학이 이제 글쓰기에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핵심은 이거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리게 설계되어 있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려면 ‘누가’, ‘왜’, ‘어떻게’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육하원칙에 따라 나열하라는 뜻이 아니다. 글로 쏟아낸 모든 문장과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 주인공과 그 대척점의 인물들, 서브 인물들 모두 각자의 서사가 존재한다. 그래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탄탄한 대답을 마련해야만 한다. 독자들을 향해 쏟아내는 저자의 목소리가, 메세지가 글 속에 어떤 식으로든 담겨 있어야 한다. 독자들은 그런 글을 끝까지 붙잡고 읽는다.


📍그러면 대체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야기란,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나중에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25p)


📍천재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오직 ’글을 쓰는‘ 행위다. 의자에 앉아라. 매일 매일, 어떤 핑계나 변명도 대지 말고. 잭 런던이 말한 것처럼 “빈둥거리면서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마라. 대신 몽둥이를 들고 그 뒤를 쫓아라.” 헤밍웨이의 결론은 이렇다. “매일 작업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일어나서 미루지 말고 써라.” (387p)


이야기 자체에 대한 담론과 더불어 구체적인 기술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 글쓰기와 관련한 기존의 관념들에 대해서도 보다 정확하고 상세하게 풀이해주거나 오해를 바로잡아 주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챕터, 읽는 뇌(독자) 말고 쓰는 뇌(작가)에 대해서도 콕 짚어 다루어주는 섬세함까지 단연 돋보인다.


플래그를 많이 붙여가며 읽었다. 이전에 썼던 소설들 중에 읽는 이들의 호응이 높았던 소설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내심 만족스럽지 못했던 소설의 이유도 톺아볼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앞으로 글을 쓸 때 이 책에서 알려준 기술적인 지점들이 나를 방해하거나 주춤하게 만들지 않을까 잠시 염려했다. 마지막 챕터를 보고 나서는 그 염려도 가볍게 털어냈다. 결국, 수많은 기술과 기법, 원칙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쓰고 읽고 고쳐가는 과정이 쌓이면 시나브로 직관처럼 내 몸에 깃들게 될 끌리는 이야기의 법칙들을 믿고 싶어진다. 끌리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끌리게 정리한 책이라던 김호연 작가의 추천사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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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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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 도착했다. 끝내 사는 동안 만나지 못하고 말았을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닮은 듯 다른 현대 여성 작가들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작품을 톺아볼 수 있어서 더 빛을 발하는 기획 시리즈이다. 이토록 애정하는 시리즈의 책이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아껴 읽고 싶었다. 물론 보기 좋게 실패했다. 소설 잇다 시리즈의 모든 책이 그러했다. 일단 한 번 펼치면 쉬이 덮을 수가 없다.


특유의 위트가 넘치는 김말봉 작가의 소설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세 편의 소설 망명녀, 고행, 편지 모두 현대 소설이라도 해도 큰 괴리감이 없다. 톡톡 튀는 발상과 유머 코드가 찰떡처럼 맞아 떨어진다. 김말봉 작가는 1930년대 식민지 시기, 독보적 스타일로 혜성같이 등장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유명 작가 이름 목록에서는 쉬이 그녀를 만나기 어려웠다. 기형도, 염상섭, 현진건, 이상, 김유정은 알지만 김말봉은 알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그녀만의 인생을, 글을 나열해보고 따라걸을 수 있어서 기뻤다. 교토 도시샤대학 출신인 김말봉 작가와 정지용, 윤동주와의 만남도 짧게 소개되어 있는데, 유명 작가가 그 시절 만난 누군가가 아니라 김말봉 작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더 좋았다.


박솔뫼 작가는 [기도를 위하여]에서 김말봉 작가의 작품 중 ‘망명녀’를 자연스럽게 이었다. 윤숙, 순애, 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뒷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시에 김말봉 작가의 주 본거지였던 부산의 구도심을 산책하는 1인칭 화자의 시점이(박솔뫼 작가님의 시점) 번갈아 등장한다. 처음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앞 뒤를 견주어가며 읽었다. 한참 뒤에야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 읽어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것들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각자의 빛으로 새로운 조각을 꿰고 있었다. 현재에 대한 감각이 생경하게 피어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곧이어 이어지는 에세이 [늘 한 번은 지금이 되니까]는 이미 제목부터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꼭꼭 눌러 담고 있다.


통속적인 소설이면 어떻고, 순수 소설이면 어떠랴. 우리의 마음에 닿는 조각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글이고 이야기인 것을. 한 인간으로서도, 소설가로서도 강단있고 유쾌했던 김말봉 작가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글’을 통해 과거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읽었다. 멋진 근대 여성 작가를 우리에게 꺼내어 펼쳐주는 작가정신의 노력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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