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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그저 쓴 기간으로만 보자면 오랜 기간 글을 썼다. 힘들 때면 책으로, 글로 숨었던 10대와 20대였다. 에세이, 수필, 일기 … 논문은 말할 것도 없다. 간간히 소설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정식으로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배운 적은 없다. 시기마다 내가 읽는 글이 곧 내가 쓰는 글의 교재가 되었다. 내 머리와 마음 속에 뒤엉킨 상처와 고민들이 글로 쏟아질 뿐이었다.
작년, 단편 소설을 몇 편 썼다. 내 소설들을 본 지인들은 정식으로 소설 쓰는 법에 관한 강의를 들어볼 생각이 없냐는 조언들을 해줬다.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잘 쓴 이 글들에 기본적인 핵심 기술까지 습득한다면 날개 달린 듯 날아갈 것 같다는 응원들이었다. 나를 애정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조언들임을 알면서도 괜히 기운이 났다. 소설을 더 많이 써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단 번에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방법이라니, 글 쓰는 사람 치고 안 궁금할 사람 하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더 사로잡은 것은 부제였다.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이라는 표현.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혹은 내가 여럿 가르쳐 봤는데~ 하는 주장보다(물론 그런 결의 조언들도 초보인 내게는 도움이 된다) 상대적으로 과학적인 근거를 뒷 배경에 깔고 있는 주장들이 더 신뢰도가 높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주류가 된 뇌 과학이 이제 글쓰기에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핵심은 이거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끌리게 설계되어 있다. 끌리는 이야기를 쓰려면 ‘누가’, ‘왜’, ‘어떻게’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육하원칙에 따라 나열하라는 뜻이 아니다. 글로 쏟아낸 모든 문장과 표현에는 이유가 있다. 주인공과 그 대척점의 인물들, 서브 인물들 모두 각자의 서사가 존재한다. 그래서?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하거나 탄탄한 대답을 마련해야만 한다. 독자들을 향해 쏟아내는 저자의 목소리가, 메세지가 글 속에 어떤 식으로든 담겨 있어야 한다. 독자들은 그런 글을 끝까지 붙잡고 읽는다.
📍그러면 대체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야기란,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나중에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25p)
📍천재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것은 오직 ’글을 쓰는‘ 행위다. 의자에 앉아라. 매일 매일, 어떤 핑계나 변명도 대지 말고. 잭 런던이 말한 것처럼 “빈둥거리면서 영감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마라. 대신 몽둥이를 들고 그 뒤를 쫓아라.” 헤밍웨이의 결론은 이렇다. “매일 작업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일어나서 미루지 말고 써라.” (387p)
이야기 자체에 대한 담론과 더불어 구체적인 기술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정보들이 많다. 글쓰기와 관련한 기존의 관념들에 대해서도 보다 정확하고 상세하게 풀이해주거나 오해를 바로잡아 주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마지막 챕터, 읽는 뇌(독자) 말고 쓰는 뇌(작가)에 대해서도 콕 짚어 다루어주는 섬세함까지 단연 돋보인다.
플래그를 많이 붙여가며 읽었다. 이전에 썼던 소설들 중에 읽는 이들의 호응이 높았던 소설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내심 만족스럽지 못했던 소설의 이유도 톺아볼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 앞으로 글을 쓸 때 이 책에서 알려준 기술적인 지점들이 나를 방해하거나 주춤하게 만들지 않을까 잠시 염려했다. 마지막 챕터를 보고 나서는 그 염려도 가볍게 털어냈다. 결국, 수많은 기술과 기법, 원칙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쓰고 읽고 고쳐가는 과정이 쌓이면 시나브로 직관처럼 내 몸에 깃들게 될 끌리는 이야기의 법칙들을 믿고 싶어진다. 끌리는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끌리게 정리한 책이라던 김호연 작가의 추천사로 서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