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위하여 소설, 잇다 4
김말봉.박솔뫼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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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 도착했다. 끝내 사는 동안 만나지 못하고 말았을 근대 여성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닮은 듯 다른 현대 여성 작가들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작품을 톺아볼 수 있어서 더 빛을 발하는 기획 시리즈이다. 이토록 애정하는 시리즈의 책이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아껴 읽고 싶었다. 물론 보기 좋게 실패했다. 소설 잇다 시리즈의 모든 책이 그러했다. 일단 한 번 펼치면 쉬이 덮을 수가 없다.


특유의 위트가 넘치는 김말봉 작가의 소설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세 편의 소설 망명녀, 고행, 편지 모두 현대 소설이라도 해도 큰 괴리감이 없다. 톡톡 튀는 발상과 유머 코드가 찰떡처럼 맞아 떨어진다. 김말봉 작가는 1930년대 식민지 시기, 독보적 스타일로 혜성같이 등장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유명 작가 이름 목록에서는 쉬이 그녀를 만나기 어려웠다. 기형도, 염상섭, 현진건, 이상, 김유정은 알지만 김말봉은 알지 못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그녀만의 인생을, 글을 나열해보고 따라걸을 수 있어서 기뻤다. 교토 도시샤대학 출신인 김말봉 작가와 정지용, 윤동주와의 만남도 짧게 소개되어 있는데, 유명 작가가 그 시절 만난 누군가가 아니라 김말봉 작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더 좋았다.


박솔뫼 작가는 [기도를 위하여]에서 김말봉 작가의 작품 중 ‘망명녀’를 자연스럽게 이었다. 윤숙, 순애, 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뒷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시에 김말봉 작가의 주 본거지였던 부산의 구도심을 산책하는 1인칭 화자의 시점이(박솔뫼 작가님의 시점) 번갈아 등장한다. 처음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앞 뒤를 견주어가며 읽었다. 한참 뒤에야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 읽어내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파편적으로 흩어졌던 것들이 한 편의 소설 안에서 각자의 빛으로 새로운 조각을 꿰고 있었다. 현재에 대한 감각이 생경하게 피어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곧이어 이어지는 에세이 [늘 한 번은 지금이 되니까]는 이미 제목부터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꼭꼭 눌러 담고 있다.


통속적인 소설이면 어떻고, 순수 소설이면 어떠랴. 우리의 마음에 닿는 조각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글이고 이야기인 것을. 한 인간으로서도, 소설가로서도 강단있고 유쾌했던 김말봉 작가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글’을 통해 과거의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읽었다. 멋진 근대 여성 작가를 우리에게 꺼내어 펼쳐주는 작가정신의 노력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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