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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의 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랑의 단편
-뱅자맹 콩스탕, 『아돌프의 사랑』을 읽고-
1.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아마 『아돌프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보고 흔한 사랑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모두가 떠올릴 법한 그런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그 속에 담긴 감정선의 파고는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은 오로지 두 주인공을 위해서만 전개되며 그들이 보고, 느끼고, 깨닫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뱅자맹 콩스탕은 소설의 서두에 두 주인공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 성격, 유년 시절을 거쳐 굳어온 신념을 말해주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그들 인생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2.
편지와 수기 형식으로 작성된 이 소설은 아돌프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의연하게, 그리고 관대히 대해왔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를 사랑했지만, 자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랄한 관찰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아버지에게서 아돌프는 고통감을 느꼈다. 유년의 환경은 그가 훗날 엘레노르가 눈을 감을 때까지 절대 끝나지 않는 고뇌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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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가 되었을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런 수줍고 소심한 성격은 줄곧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아무 하잘것없는 것인데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처하게 되면, 사람 얼굴 보는 것이 거북해서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려고 사람을 피하게 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심한 이기주의 같은 것은 없었다. 언제나 자신의 문제에 골몰해 있었지만 막상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나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떤 감정의 욕구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욕구는 대개의 경우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호기심을 끌었던 대상으로부터 차례로 떨어져 나가곤 했다.(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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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아버지가 그에게 제일 영향력을 끼친 것은 여성에 대한 가치관이었다. ‘젊은이는 무분별한 짓을 하지 않도록, 그러니까 재산과 가문과 외적 조건 따위가 대등하지 못한 여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주장’이며, ‘여자란⎯결혼 문제가 뒤따르지 않는 한⎯손에 넣었다가 때가 되면 떨쳐버려도 아무 불편이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는 괴팅겐을 떠나 D시에서 머물게 된 아돌프는 그곳에서 P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만나게 되었다. 엘레노르를 처음 보았을 때 아돌프는 ‘그녀가 내보이는 교양이며 몸가짐, 그리고 그녀 성격의 큰 부분을 이루고 있는 고상한 기품과 자존심, 이런 것들과 견주어볼 때 그녀는 전혀 걸맞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정실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싫어했고 올바르지 못한 품행을 가진 여자들과 나란히 비교되는 것을 두려워했기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녀는 헌신했고, 두 아이들을 엄정하게 키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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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해서 엘레노르는 자신의 운명과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을 통하여 자신이 처해 있는 계급에 반항하고 있었던 것이다.(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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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르는 아주 젊지는 않았으나 미인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던 인물이었고, 아돌프는 때마침 사랑에 목마르고 허영심이 성공을 탐내고 있었기에 그녀를 ‘한번 정복해볼 만한 여자’로 여겼다. ‘더욱 성공하리라 확신하는 그 무경험의 자만심으로.’ 뜻을 이루고자 했으나, 도리어 제 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소심증으로 난항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P백작의 애정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엘레노르 자신도 알고 있었고, 점차 순수하게 불타오르는 아돌프의 정열적인 사랑에 그녀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3.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아돌프와 엘레노르에게 무조건적인 행복이 펼쳐지진 않았다. 나는 이토록 사람의 마음에 솔직한 소설을 처음 보았다. 둘은 사랑의 형태가 달랐다. 각자의 마음은 서로를 향해 있었으나 이는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서로를 가깝게 두기도, 떨어지지 못하게 두기도 했다. 참 잔인했다. 사랑은 정열을 띄다가도 순식간에 동정과 연민으로, 단단한 족쇄로 바뀌었다.
소설 전반에 걸쳐 엘레노르는 죽기 전까지 순수한 사랑을 그에게 쏟았다. 오직 그를 위해 행동하고, 이런 정열을 통해 그녀 자신의 영혼을 드높였다. 엘레노르는 아돌프와 함께하기 위해 자신이 수십 년간 쌓아 온 사회적 지위와 가족, 고향을 버렸고, 폴란드에서 자리를 잡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죽기 직전, 자신이 한때 다투고 나서 쓴 분노가 가득한 편지마저도 보지 말라며 애원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그에게 느꼈으며, 이를 가감 없이 드러내왔다.
그러나 소설 군데군데 영원히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문장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돌프가 현재의 사랑에도 의심과 고뇌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엘레노르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사랑을 받으면 육체적 피로는 걷히고, 가슴에 발작처럼 솟아오르던 초조한 감정은 진정되곤 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옭아매는 사랑은 그를 두렵게 했으며, 엘레노르가 고통을 받는 것 같으면 순종의 태도를 보였다.
대개 그렇듯 초반에 불타던 그의 정열은 해를 거듭할수록 식어 갔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사랑을 시작한 게 아니라, 사랑을 성공하기 위해 사랑을 시작해서 그런 것일까?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성격인 것입니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아돌프의 성격은 끝까지 그를 쫓아다니며,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정당화하고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회피하기 일쑤였다. 소설은 잔인했다. 순수한 사랑만을 쏟는 엘레노르와 대비되게끔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다짐하거나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그녀를 떨어뜨려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아돌프의 모습은 너무 적나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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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엘레노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우리 두 사람에 대해 쏟아지는 세간의 평판을 유리한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진실한 감정이란 대단한 힘을 갖는 것이어서, 그것이 입을 열기만 하면 오해라든가 부당한 인습 따위는 저절로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러나 나는 남에게 감사하고 남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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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르가 죽을 때까지도 아돌프는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고자, 그녀와 조금 더 같이 있고자. 이런 (정당화 한) 마음으로 고뇌한 결과는 더욱 처절한 불행이었다.
4.
도대체 사랑이 무엇일까? 고민은 끝이 없고, 때문에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는 천차만별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할까? 소설에서는 아돌프와 엘레노르의 사랑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둘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먼저, 아버지의 사랑이 있다. 아돌프의 아버지는 다정하게 대하다가도 냉혹하게 돌변해버리며, 여자에 대해 부도덕한 견해를 갖게 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아돌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면모를 보이고, 내칠 것 같이 행동하다가도 그가 생활에 불편하지 않게 자금을 대주고 T남작을 소개시켜준다.
엘레노르를 향한 P백작의 사랑도 볼 수 있다. 그도 나름대로의 애정을 쏟고 있었으며, 엘레노르의 헌신적 태도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녀의 인품에 존경심마저 품었다. 그녀에 대한 우월감 같은 것이 어려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마음을 엘레노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분명 속으로 느껴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이 아니라고 섣불리 말할 순 없다.
이 둘의 사랑은 아돌프와 엘레노르의 사랑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분명 아니다. 각자의 사랑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랑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사랑 자체는 진실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P백작의 사랑도 누구에게는 사랑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단 한순간도 아돌프처럼 행동하지 않았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어떠한 고뇌도 하지 않았나? 사람을 사랑하면서 상처준 적이 없었는가?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나? 결단코 그렇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주인공을 극명히 대비시키는 잔인함을 보여주기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이 마음은 어찌할 수 없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같을 수는 없기에, 사랑은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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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마음속에 숨겨진 고통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뒤따라 다니면서, 제아무리 강렬한 인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 마음 위에서 짓뭉개 버리거나, 그 인상을 표현하려는 우리의 언어를 얼어붙게 만들거나, 우리가 나타내려는 뜻을 입 안에서 전혀 엉뚱한 것으로 바꾸어버린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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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이 사랑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말미,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엘레노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아돌프는 유년 시절 보았던 노부인의 죽음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영혼의 위대함과 재능의 탁월함만 믿고 꿈을 펼치려다 몰락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외따로 들어앉아 자신의 재능만으로 만사를 헤아리던, 인생의 측면을 서로 나누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났던 그 노부인을 아돌프는 그 순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불행, 그리고 죽음에 대해 수없이 사색하면서도 죽음에 이르지 않고서야 절대로 알지 못하는 그 이후를. 이 모든 것은 인생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기에,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고뇌하고 고통 받을 아돌프의 마음을 나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