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하고 곧장 시치미를 떼지 못한 건, 어쩌면 뜻밖이어서가 아닌지도 모른다. 뭐래? 하고 잘라 말하고 돌아서지 못한 건, 당황했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놀라서, 당황해서, 불길한 예감에 겁에 질려서, 단지 그런 이유로하찮은 박인석 앞에 얼어붙어 버렸던 걸까.
그 순간 나는 또한 알았을 것이다. 박인석이 뭔가, 내가 은기에게 물을 수 없었던 것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어째서 모르면 좋은 것을 그냥 덮어 두지 못할까.
나는 그것을 물으면 은기가 뒷걸음치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은기에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내 묻고 있었던 것이다.
박인석의 손에 은기를 물어뜯을 괴물이 든 상자가 있었다.
나는 박인석이 상자를 열까 봐 겁이 났고 또한 그 안에 든 것이 궁금했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었다.
정말로 치명적인 것은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이름모를 바이러스나 천박한 호기심 같은 것들은.
15.
나는 보기 좋게 덫에 걸렸다. 철컥. 그리하여 은기를 물어뜯을 괴물을 상자 밖으로 풀어 주었다. -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