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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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고요한 세계다.
나는 텅 비어 가고 있다. 어떤 소음도 없이, 기억도 없이,
마음도 없이 무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얼마 만에 이렇게 편한지 모르겠다. 조금도 힘을 쓸 필요가없다. 잠으로 빠져들고 있다. 되돌아올 수 없는 잠으로, 그러므로 되돌아오려 애쓸 필요 없는 잠으로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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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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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 나는 네가 좋아. 정말로 좋아. 너도 나를 좋아하잖아? 은기야. 괜찮아. 우리는 괜찮을 거야. 정말로? 아니. 나는몰라. 네가 모르듯 나도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줄래. 너에게. 그러니까 너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래? 우린 괜찮을 거라고. 아무도 없는 바람 속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달리다 보면 괜찮은 곳에 다다를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모를까. 그 무엇보다 온전한제 것인데.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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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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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하고 곧장 시치미를 떼지 못한 건, 어쩌면 뜻밖이어서가 아닌지도 모른다. 뭐래? 하고 잘라 말하고 돌아서지 못한 건, 당황했기 때문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로 놀라서, 당황해서, 불길한 예감에 겁에 질려서, 단지 그런 이유로하찮은 박인석 앞에 얼어붙어 버렸던 걸까.
그 순간 나는 또한 알았을 것이다. 박인석이 뭔가, 내가 은기에게 물을 수 없었던 것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간은 어째서 모르면 좋은 것을 그냥 덮어 두지 못할까.
나는 그것을 물으면 은기가 뒷걸음치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은기에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내내 묻고 있었던 것이다.
박인석의 손에 은기를 물어뜯을 괴물이 든 상자가 있었다.
나는 박인석이 상자를 열까 봐 겁이 났고 또한 그 안에 든 것이 궁금했다. 그 잠깐의 망설임이었다.
정말로 치명적인 것은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이름모를 바이러스나 천박한 호기심 같은 것들은.
15.
나는 보기 좋게 덫에 걸렸다. 철컥. 그리하여 은기를 물어뜯을 괴물을 상자 밖으로 풀어 주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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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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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기에게 묻지 못한 것들이 많다. 무언가가 내게 말했다.
은기의 마음이 보낸 소리였을 것이다. 안 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알아 버린 애들이라는것을.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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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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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기억이란 뒤죽박죽인 서랍과 같다. 정작 필요한건 보이지 않고 쓸데없는 것들만 어지럽다. 그러다 불쑥, 잊고 있던 것들이, 잊고 싶었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소중히 간직해 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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