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래도록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살았다. 참을수 없는 순간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체로 견딜만했고 쉽게 잊었다. 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통제한다고믿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 지금,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이전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P9
깊은 밤의 산책은 여러모로 이롭고 안전하다. 환한 낮에는 모든 게 쉽게 드러나고, 사람들은 드러난 것들에 대해 떠드는 걸 좋아하니까. 시야가 좁아지는한밤에야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호기심도 비로소 잠이드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두운 쪽을 골라 디디며 공원을 한 바퀴 더 돈 다음 공원 입구 쓰레기통 앞에 멈춰 선다. 그런 뒤엔 반듯하게 접은 편지를 꺼내고 그것을 찢어버린다. 거기 담긴 자신의 감정을 폐기하겠다는 듯이. 두번 다시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이. - P11
저녁 식사를 하기 전까지 그녀는 주로 편지를 쓴다. 손으로 쓰기도 하고, 이메일을 작성할 때도 있다. 그것은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가벼운 인사로 시작하고 신중하게 고른 단어들을 징검다리처럼 하나씩 내려놓다가마침내 무수한 단어들 속에서 길을 잃고 마는 행위. 밤이오면 그녀는 쓰다 만 편지를 챙겨 들고 산책을 나선다. 한 시간 남짓 공원을 걷고, 공들여 쓴 편지를 폐기하고돌아오면 비로소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 P16
부드럽게 타일러 보지만 고양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환하게 켜진 두 눈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할 뿐이다. 외부를 향한 저렇듯 완고한 경계심은 타고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삶을 고독하고 힘겹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금 마음이 자기연민 쪽으로 기운다. 그녀는 그런 마음을 붙잡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 P20
그녀는 환하고 넓은 길과 어둡고 좁은 길 사이에 위치한 자신의 집을 돌아본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못한 상태로 상반된 두 세계의 경계가 된 집. 그녀는 정처없이 떠오르는 기억을 따라 걷는다. 그러면서 어떤 기억을, 어떤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난날의자신을 상기한다. 떨쳐 내려고 할수록 생각은 끈질기게달라붙고, 그녀는 이런 식으로 과오를 깨우치게 하는 시간의 무자비함을 실감하는 중이다. - P34
음끝없는 의미 찾기. 처그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Sap상담사였을 때 그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것이었다. 그렇게 질문하면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던 내담자들은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런 후엔 다급하게 찾아낸 의미들을 더듬거렸다. 그녀가 보기엔 확실하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이유들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의미들이이란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 내지 않는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진짜 의미와 가짜 의미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P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