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한정판 더블 커버 에디션)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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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현재의 남편과 결혼한지 만 3년을 바라보고 있으며,우리는 결혼하기 전 3년 반 가량을 만나왔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친한 지인이 '어떻게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남편과 나는 둘다 입을 모아서 '이 사람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결혼한다.'라고 대답했다. 질문자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에서 나온 대답 치고는 너무나 건조하고 낭만 없는 대답에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우리 둘은 이보다 더 좋은 '결혼 이유'가 어디에 있냐며 이심전심하며 마냥 좋아했었다. 

거진 7~8년만에 알랭드보통의 작품을 읽었다. 질풍노도의 대학생 시절, 질풍노도의 여러번의 연애를 끝내고, 시작하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알랭드보통의 소설은 촌철살인의, 자기비하의 매력이 있었다. 너무나도 냉철한 그의 분석이 때로는 상처를 후벼파기도 하지만, 끊기 힘든 매력이 있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키스 앤 텔"에 흠뻑 빠져들었더랬다. 그 후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게되면서 연애는 안정기에 들어서고, 한편으로 진로와 육아와 같은 지극히 현실의 장벽들을 넘느라 알랭드보통 소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러던차  그가 21년만에 신작 소설을 출판했다는 반가운 소식에, 게다가 제목이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이라니! 결국 신작의 주제는 '결혼생활'인 것이잖아?! 더욱더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원작의 제목은 "Course of Love"이고, "낭만적 연애와 그후의 일상"은 한국판의 제목이었다. 보통은 한국판 제목이 원제를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한국판 제목이 책의 내용을 잘 살린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든다.)



알랭드보통은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연인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연애의 정점을 지나 권태에 빠지는 순간, 권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이 전작과 다른 점은 주인공들이 결혼을 하고 그 이후 과정이 펼쳐진다는 것에 차이가 있지만, 그래서 '결혼을 결정하는 순간', '결혼의 들뜬 기분이 가라앉은 후 일상이 되었을 때의 모습', '권태기의 부부', '위기의 부부'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부가 가사일을 서로 나누어 하는 것에 대하여 다투고, 잘 때 창문을 열어두는지, 닫는지 때문에 싸우게 되는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무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책은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론을 보여준다. 배우자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하여야 하며, 서로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여야만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들리는 저 말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끼는 내가 변태인걸까? ㅎㅎㅎ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예전에는 매력적이라 느껴졌던 다소 현학적인 문체가 오히려 독서에 빠져드는데 방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님 나의 취향이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변한 것인지 모르겠다.



http://blog.naver.com/sur1n/220874590155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라비와 커스틴이 결혼할 준비가 된 것은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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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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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예술가는 출퇴근 시간도 없고, 밤에 활동을 하고, 술에 반쯤 취해있어야만 '영감'이 내려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이자 은사님들은 아침 일찍 작업실에 출근하여, 해가 지면 집으로 귀가하는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였다.

'창의력'과 '영감'은 마치 자유분방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상이며, 끊임 없이 시간을 들이고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 끝에 창의적인 작품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수험가의 오랜 격언으로는 '고시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예술가 역시도 고시 못지 않은 엉덩이로 버티는 성실성이 필요한 것 같다.





라디오와 신문 지면 등을 통하여 연애, 인생 상담을 꾸준히 해왔던 저자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5가지 태도가 1) 자발성, 2) 관대함, 3) 정직함, 4) 성실함, 5) 공정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애, 직업 등 인생의 중요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답을 5가지 태도에서 찾는다. 연애 문제, 직장이나 진로 문제 등 인생의 시시콜콜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이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 읽고 덮는 순간까지 구구절절 공감되는 구절들이 많았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현실 생활에서의 평등"이라는 소제목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었다. 40대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이자,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면서 남편과 가사일 분배에 대하여 겪었던 갈등에 대한 에피소드였는데, 나 역시 4년차 워킹맘이자, 와이프이자, 엄마로서 시행착오를 여전히 겪고 있고 그러면서 남편과도 크고 작은 다툼을 겪고 있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저자는 연예 상담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일에 대한,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연애 이야기보다는 일과 사회에 대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더욱 좋았다. 저자가 오랜 기간 상담을 해오면서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딱 정해진 해답을 주지 않아왔던 것처럼, 이 책 역시도 고민에 대한 정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현재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마음이 어떤지를 돌아보게끔 하여, 그 때마다 닥친 진로 고민, 직업 고민, 애인과의, 배우자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래서 따뜻하게, 재미있게 읽었고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그 상황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창작이라는 행위를 아무런 유보 없이 계속 사랑하기로 한다. ... 욕망했던 글 쓰는 일이 막상 자기 생업이 되는 순간 그 일이 기대를 배신하기도 한다. ... 저명한 작가들의 일하는 방식을 그린 인터뷰 모음집 <<리추얼 Daily Rituals>>만 봐도 세상에 자기 자신의 흔적을 남긴 창작자들의 남다른 엄격함과 성실함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 예술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밤늦게까지 술이나 담배를 하면서 글을 쓰고 글이 도중에 풀리지 않으면 영감을 얻겠다는 핑계로 훌쩍 여행을 떠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으로 출근했다. ... 영감이 떠오르든 말든 일단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결혼이 인생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어주면서 기분 전환이나 새로운 도전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결혼은 동화책에서처럼 "그들은 그 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도 아니고 결혼 전 일상처럼 좋았다가 좋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다. ... 그래도 나는 서로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완전에 가까운 애정 표현은 결혼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하면서 다른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거나 내가 이해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면에서는 결혼이 꽤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결혼하면 "너를 행복하게 해줄게"라는 말은 그 순간에는 진심이겠지만 배우가 포함 그 어떤 가까운 인간관계도 나의 인생을, 나의 행복을, 내가 외롭지 않음을 보장해줄 수는 없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무리할 수밖에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흘러흘러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대개가 거짓이다. 무리하는 것이 되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 내게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 ‘무리‘라는 말이 버겁게 느껴지면 ‘최선의 성실함‘이라는 말로 대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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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가 말놀이
김일경 그림, 주니어RHK 편집부 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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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응가 '말놀이'라는 제목처럼, 책 내용이 말꼬리 잇기 놀이로 되어 있다는게 특징이다. 풀어서 설명하려니 어렵지만 "원숭이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하는 말 잇기놀이를 '응가' 단어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리듬에 맞추어 노래부르듯 재밌게 멜로디를 붙여서 책을 읽게되고, 응가에 관련된 내용을 재미있게 방 게 된다. 응가에 관련된 내용이니, 내용은 당연히 재미있다. 아직 갓 두돌 넘긴 울 아가도 빵빵 터졌는데, 방구 똥 설사 하면 까르륵 하는 좀 큰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다. 페이지수가 좀 되어서 한참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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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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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그럭저럭 ' 살기위해서는 3개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첫째로는 대학 입시의 고비.


학벌주의이자 학벌이 많은 것을 결정짓게 되는 현실에서, 처음으로 부딪치는 관문이다. 이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기 위해서 학창시절의 수많은 시간을 쏟고 있으며, 학부모들도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많은 희생을 감내한다.


두번째로는 취업의 고비.

'첫번째 직장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는 취업가 격언이 있다. SKY로 대변되는 명문대학의 타이틀을 따는 것처럼, 취준생은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대기업의 타이틀을 따기 위하여 취업 입시를 준비한다. 


세번째 고비는 결혼의 고비이다. 

남녀에 따라서 그 중요성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결혼으로 인하여 남자든 여자든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고비이다. 결혼, 즉 '혼테크'가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남은 인생 내내 큰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사회가 잔인하다고 느끼는 점은, 실패한 자들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요한 세 가지 고비를 모두 성공하기는 쉽지가 않다. 단순히 확률적으로만 어림잡아도 세 가지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작 10프로 남짓의 확률이니 쉽지가 않다(반올림하여 13%, 1/2 X 1/2 X 1/2 = 0.125 ).


고백하자면, 나는 세 가지 고비를 그럭저럭 마친 운 좋은 인간이다. 내 생활에 별 불만이 없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도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애를 낳아 기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나와 같은 운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할수 있을까?'에서, 아니, 절대 확신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벼랑으로 내밀고 있는 잔인한 사회이다.




2015년에 출판된 장강명의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2015년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젊은 세대들은 흔한 입버릇으로 '한국은 답이 없다.', '한국 탈출이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계나를 통하여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던 '한국 탈출의 희망'이 무엇인지, '탈출한 후 그곳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와 같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전개에 당혹스럽기도, 허무하기도 하고,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계나는 그럭저럭한 대학을 나와 그럭저럭한 회사에 취업하였다. 한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음을 깨닳고 호주로 이민을 간다. 이민 비자를 준비하며 웨이터로 주방보조, 서빙일을 하고 옷가게 점원으로 잃한다. 블루칼라로 일하는 것이 한국에서 그럭저럭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삶에 비하여 더 나을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나마 호주에서는 사람을 직업으로, 돈이 많고 적음으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등급이 낮는 사람도 사람 취급을 해준다는 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의 매끄러운 문체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래서 오래 걸리지 않고 재미있게 잘 읽었지만 소설의 뒷 맛이 참 씁쓸하였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여서. 


잔인한 우리 시대에서 나 개인의 힘이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사실이 실감나서. 호주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호주에서도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낼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삶이 과연 쉬운것일까? 쉽사리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 



지금,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이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도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런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그런 일을 겪은 뒤 한국에 대한 고마움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그렇진 않았어.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부모님이 고마워지디?
국외자라는 게 참 서럽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이곳에서는 평생 국외자겠구나. 그런 체념도 했지. 그런데 난 한국에서도 국외자였어.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기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랬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얘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가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산순간을 살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깐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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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네이선 파일러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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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9살 매슈의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어 편하게 읽힌다. 소설은 매슈가 9살에 발생한 사고로부터 19살이 되어 진정으로 형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며 진행되어, 환상적인 분위기 마저 자아낸다. 책 속에 매슈가 쓴 일기, 편지들이 여러개 등장하는데, 마치 조현병 환자가 작성한 메모처럼 글자체, 글배열, 글자 간격 등으로 보여주고 있어, 소설을 읽다가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글로 설명하려니 어렵지만 직접 보게 된다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9살의 어린 나이에 본인이 가장 의지하는 형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하였던 매슈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가지가 않는다. 매슈 본인도 스스로에게 얼마나 힘든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가족들의 분위기가 그 날 이후로 바뀌었다는 이상함'을 감지할 뿐 소년 특유의 천진난만함은 여전하다. '친구들과 놀게 학교에 가고 싶은데 왜 엄마는 학교에 못가게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런 매슈를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고통이 어땠을지 이해가 되고, 그렇기에 매슈에게 (매슈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구는' 엄마, 아빠의 심정이 왜 그랬을지 알것도 같다.


뒷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이만 줄이려한다. 찾아보니 이 소설의 영문 원제는 "The shock of the Fall"이라고 한다. 영문 원제가 매슈 인생의 가장 큰 일인 '그날의 사고'의 충격을 더욱 강조한 것 같다. 소설 속 코끼리는 남겨진 형에 대한 기억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번역 제목인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는 형의 기억을 인정하고, 형과의 작별을 고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미래의 매슈를 강조하는 제목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글판의 표지와 번역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끌어안는다'는 표현이 참 좋다. 



http://blog.naver.com/sur1n/220832368390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그때 바로 해버렸다면 커다란 작별 의식의 일부가 되어 이왕 슬퍼하는 김에 슬퍼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망설이고 미루다 보면 얼마나 미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1년이면 충분할까?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된다. 결국 5년이 훌쩍 지날 때까지 우리는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 경우엔 방 자체가 코끼리이지만.

그것은 반창고를 떼어내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단지, 반창고를 떼어낼 때 그러듯 결정을 하고 나자 금세 행동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슬픔은 이러저러하게 다뤄야 한다고 설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입을 열았다. "나 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지금 말고. 내년 여름에."
"그럼 아직 멀었잖아." 아빠가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내가 많이 아프니까. 좀 더 좋아져야죠. 이제 그 정도는 알아요."
엄마는 컵을 내려놓았다. "하고 싶은 게 뭐야?"
"말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해도 된다고 해주세요. 그냥 허락해주세요."
"글쎼......."
"저를 믿어주세요."
아빠는 상체를 내밀며 조용히 말했다. "모나미. 널 못믿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인지 먼저......"
그러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엄마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아빠에게 더 이상 캐묻지 못하게 할 줄은 몰랐다.
"우린 널 믿어." 엄마가 말했다. "좋아.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 우린 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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