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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ㅣ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http://blog.naver.com/sur1n/220838266175
우리나라에서 '그럭저럭 ' 살기위해서는 3개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첫째로는 대학 입시의 고비.
학벌주의이자 학벌이 많은 것을 결정짓게 되는 현실에서, 처음으로 부딪치는 관문이다. 이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기 위해서 학창시절의 수많은 시간을 쏟고 있으며, 학부모들도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많은 희생을 감내한다.
두번째로는 취업의 고비.
'첫번째 직장이 어디인지가 중요하다'는 취업가 격언이 있다. SKY로 대변되는 명문대학의 타이틀을 따는 것처럼, 취준생은 이름을 들으면 알 법한 대기업의 타이틀을 따기 위하여 취업 입시를 준비한다.
세번째 고비는 결혼의 고비이다.
남녀에 따라서 그 중요성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결혼으로 인하여 남자든 여자든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고비이다. 결혼, 즉 '혼테크'가 성공하였는지, 실패하였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남은 인생 내내 큰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사회가 잔인하다고 느끼는 점은, 실패한 자들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중요한 세 가지 고비를 모두 성공하기는 쉽지가 않다. 단순히 확률적으로만 어림잡아도 세 가지 모두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작 10프로 남짓의 확률이니 쉽지가 않다(반올림하여 13%, 1/2 X 1/2 X 1/2 = 0.125 ).
고백하자면, 나는 세 가지 고비를 그럭저럭 마친 운 좋은 인간이다. 내 생활에 별 불만이 없기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도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애를 낳아 기르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나와 같은 운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할수 있을까?'에서, 아니, 절대 확신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벼랑으로 내밀고 있는 잔인한 사회이다.
2015년에 출판된 장강명의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2015년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젊은 세대들은 흔한 입버릇으로 '한국은 답이 없다.', '한국 탈출이 유일한 희망이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 소설은 주인공 계나를 통하여 한국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던 '한국 탈출의 희망'이 무엇인지, '탈출한 후 그곳은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와 같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전개에 당혹스럽기도, 허무하기도 하고,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계나는 그럭저럭한 대학을 나와 그럭저럭한 회사에 취업하였다. 한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음을 깨닳고 호주로 이민을 간다. 이민 비자를 준비하며 웨이터로 주방보조, 서빙일을 하고 옷가게 점원으로 잃한다. 블루칼라로 일하는 것이 한국에서 그럭저럭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의 삶에 비하여 더 나을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나마 호주에서는 사람을 직업으로, 돈이 많고 적음으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등급이 낮는 사람도 사람 취급을 해준다는 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의 매끄러운 문체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그래서 오래 걸리지 않고 재미있게 잘 읽었지만 소설의 뒷 맛이 참 씁쓸하였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여서.
잔인한 우리 시대에서 나 개인의 힘이 너무나도 미약하다는 사실이 실감나서. 호주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호주에서도 녹록치 않은 시간을 보낼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삶이 과연 쉬운것일까? 쉽사리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
지금, 한번 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 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이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 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 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도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런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그런 일을 겪은 뒤 한국에 대한 고마움이 생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그렇진 않았어.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부모님이 고마워지디? 국외자라는 게 참 서럽구나. 그런 생각을 했고, 나는 이곳에서는 평생 국외자겠구나. 그런 체념도 했지. 그런데 난 한국에서도 국외자였어.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기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랬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얘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가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산순간을 살았지. 여기까지 생각하니깐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지명이나 엘리처럼 살 수 없었는지.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지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지명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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