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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네이선 파일러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은 9살 매슈의 시각에서 전개되고 있어 편하게 읽힌다. 소설은 매슈가 9살에 발생한 사고로부터 19살이 되어 진정으로 형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조현병을 앓고 있어서 그런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며 진행되어, 환상적인 분위기 마저 자아낸다. 책 속에 매슈가 쓴 일기, 편지들이 여러개 등장하는데, 마치 조현병 환자가 작성한 메모처럼 글자체, 글배열, 글자 간격 등으로 보여주고 있어, 소설을 읽다가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글로 설명하려니 어렵지만 직접 보게 된다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9살의 어린 나이에 본인이 가장 의지하는 형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하였던 매슈의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가지가 않는다. 매슈 본인도 스스로에게 얼마나 힘든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가족들의 분위기가 그 날 이후로 바뀌었다는 이상함'을 감지할 뿐 소년 특유의 천진난만함은 여전하다. '친구들과 놀게 학교에 가고 싶은데 왜 엄마는 학교에 못가게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런 매슈를 곁에서 지켜보는 엄마, 아빠의 고통이 어땠을지 이해가 되고, 그렇기에 매슈에게 (매슈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구는' 엄마, 아빠의 심정이 왜 그랬을지 알것도 같다.
뒷 이야기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이만 줄이려한다. 찾아보니 이 소설의 영문 원제는 "The shock of the Fall"이라고 한다. 영문 원제가 매슈 인생의 가장 큰 일인 '그날의 사고'의 충격을 더욱 강조한 것 같다. 소설 속 코끼리는 남겨진 형에 대한 기억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번역 제목인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는 형의 기억을 인정하고, 형과의 작별을 고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미래의 매슈를 강조하는 제목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글판의 표지와 번역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끌어안는다'는 표현이 참 좋다.
http://blog.naver.com/sur1n/220832368390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그때 바로 해버렸다면 커다란 작별 의식의 일부가 되어 이왕 슬퍼하는 김에 슬퍼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망설이고 미루다 보면 얼마나 미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1년이면 충분할까?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된다. 결국 5년이 훌쩍 지날 때까지 우리는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 경우엔 방 자체가 코끼리이지만.
그것은 반창고를 떼어내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렇지 않다.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단지, 반창고를 떼어낼 때 그러듯 결정을 하고 나자 금세 행동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슬픔은 이러저러하게 다뤄야 한다고 설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입을 열았다. "나 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지금 말고. 내년 여름에." "그럼 아직 멀었잖아." 아빠가 말했다.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내가 많이 아프니까. 좀 더 좋아져야죠. 이제 그 정도는 알아요." 엄마는 컵을 내려놓았다. "하고 싶은 게 뭐야?" "말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해도 된다고 해주세요. 그냥 허락해주세요." "글쎼......." "저를 믿어주세요." 아빠는 상체를 내밀며 조용히 말했다. "모나미. 널 못믿어서가 아니라 무슨 일인지 먼저......" 그러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엄마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아빠에게 더 이상 캐묻지 못하게 할 줄은 몰랐다. "우린 널 믿어." 엄마가 말했다. "좋아. 네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해. 우린 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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