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도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이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없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발을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면서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에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에바토트의 시집에 실린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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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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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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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정광제

 

​그 무엇인들 갈라 놓으리라

언제 누가 알았겠나

가슴에 물이 차도

갈라질 순 없는 건데

갈라진 가슴엔, 이미

곡성이 차오르고

충혈된 동공엔

짠물이 가득찬다

하루도, 밤낮도 빠짐없이

진도 바닷물에

짠 눈물 섞이고

핏빛 아우성이구나

돌아오라 어린 영혼아!

차갑고 어두운 곳에서

틈새를 비집고...

<정광제>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지구문학 신인문학상. 시집 <하다> 1집 등 4권의 시집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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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 토니 험프리스가 쓴 이 책은 30년의 경험과 상담을 통해 만들어낸 가족관계 자료의 역작이다.
가족이 과연 무엇인지, 고통스러운 가족의 전형적인 두 가지 유형을 살펴보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을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설명하며 가족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푸는 방법, 욕구충족법, 가족의 감정을 존중하는 방법, 가족간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가족간의 책임분배의 문제, 가족 내 자아실현, 마지막으로 가족의 건강도를 최종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책 중에 무지하고 눈먼 사람이 자기 배우자는 물론 우리 사회의 앞날이 아이들의 운명을 망쳐놓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목격한다고 했다. 그 무지함이 그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눈먼 폭력의 희생양인 아이들이 커서 또 다시 눈먼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굴레가 대를 이어 계속되기에 이 무지의 굴레를 바로 우리가 끊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이라는 굴레로 배우자의, 아이들의 진정성을 살펴봐 주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의지가 마치 전부인양 강요하고 윽박지르지 않았던가. 어린시절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당연히 사랑과 인정, 긍정의 표현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혹자는 인성의 바탕이 그러할 뿐 자라온 환경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몸에 밴 어린시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좌우하는지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많은 범죄자들과 성격장애자들의 어린시절을 살펴보면 대부분 정서적 학대와 절망속에 충분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의 강압과 공격적인 행동, 정서적 학대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과연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서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에 기반한 존중이 가족간에 있을 때 가족으로부터 사회까지 건강한 역할을 해나가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존중이 바탕이 된 자아존중감이 형성된 연후에라야 이것 또한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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