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통해
                           - 김미혜

엄마, 토끼가 아픈가 봐요
쪽지 시험은 100점 받았어?

아까부터 재채기를 해요
숙제는 했니?

당근도 안 먹어요
일기부터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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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보석은 이 우주 곳곳에 두루 있고
내 안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께 귀한 보석을 한 움큼 드리렵니다.
그래요 오늘 아침 당신께 귀한 보석을 한 움큼 드리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찬란히 빛날 다이아몬드를 한 움큼 드리렵니다.
실은 우리네 삶의 매순간이 다 다이아몬드입니다.
그 다이아몬드에는 하늘과 땅과 햇빛과 강물이 들어 있지요.

당신이 단지 평화로운 숨을 한 번 쉬기만 하면
그런 기적이 일어난답니다.
새들이 울고 꽃이 피어나지요.

여기 푸른 하늘이 있고, 여기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여기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사랑스런 미소가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보석 하나에 다 들어 있지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당신은
그러나 가장 가난한 자식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이제 당신의 유산을 받으러 집으로 돌아오세요.

우리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법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다.
두 팔을 벌려 귀중한 삶을 소중히 보듬어 안고
깨어 있음을 잊지 말고, 절망일랑 놓아 보내십시다.

 

 p. 7

<내 안의 아이>
사람들은 저마다 내면에 고통받는 어린아이를 품고 있다. 상처다. 꼭꼭 싸맨 상처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눈을 감고 조용히 거슬러 올라가면 유년의 어느 날에 그 끈이 닿아 있다. 우린 누구나 어린 시절 한때를 아프게 보냈다고 여기니까. 그것이 트라우마로 나타나 괴롭히기도 한다. 쓰라린 감정과 기억, 불현듯 이 고통이 고개를 들면 우린 무시하거나 꾹꾹 눌러 내 안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처박아 버린다. 왜냐하면 앞으로 겪을 고통이 보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잊고 싶으니까. 우린 몇 십 동안 그 어린아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서 들여다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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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도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이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없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발을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면서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에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은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 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된 에바토트의 시집에 실린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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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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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는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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