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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약국
김혜선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5년 11월
평점 :
인생에서 계획한 대로 딱딱 들어맞는 것이 몇 개나 될까? 80세의 약사 엄마와 26년차 프리랜서 작은 딸, 엄마의 고관절 수술과 딸린 가족이 없는 미혼이라는 이유로 계획에도 없던 동거가 시작된다. 딸과 엄마의 동거는 엄마가 외할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물학적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2년11개월의 동거가 끝났지만, 알고 보면 둘의 동거는 80년이 넘는다는 사실! 아주 질긴 인연이다. 엄마와 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부모와 자식사이는 그렇다) 소설 『잔소리 약국』은 세상의 모든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연이 조금씩 다를 뿐, 그 안에는 부모자식이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라는 실이 존재한다.
엄마는 50년을 열 평 남짓의 약국에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와 관계된 직업을 가진 딸의 무대는 프리랜서이므로 크기를 규정 지을 수 없다. 무대나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는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한다. 엄마는 50년을 한결 같이 약국으로 나간다. 수술한 뒤에는 딸이 엄마를 돌보느라 이동택시를 알아보고, 나물 반찬을 해서 아침밥을 짓고 도시락을 싼다. 일요일엔 교회까지 모셔다 드리고 ‘점심은 먹지 않는다’는 말로 잠시의 자유를 얻는다. 엄마도 딸도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때는 아마 그것이 쓸모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지나고 난 뒤 돌아보니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책 뒷 표지의 작은 의자에 걸쳐진 엄마의 약사 가운이 쓸쓸해 보여서 조금 짠하기도다.
카카오맵 평점1점짜리 약사였지만, 왜 1점인지 알면 100점을 줘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듣기 싫은 소리를 잔소리라고 알고 쓰지만 편안한 오후 나른하게 들리는 잔잔한 소리라고 생각하면 잔소리는 곧 다감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약국에 가는 이유는 어쩌면 다다감한 위로를 받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길을 걷다가, 얕트막한 건물의 작은 약국을 본다면, 잔소리 약국의 엄마 약사님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