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아가 아니었을 때 다시 작가들 8
조재선 지음 / 다시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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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볼 수 없는 일들, 현재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리워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잔잔하게 나열한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그의 이야기들은 신기하게도 멀리까지 뻗어 나간다. 지금은 더운 물이 콸콸 나오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동네의 공중목욕탕을 지나 군대의 생각보다 길었던 샤워시간을 거쳐 필리핀의 샤워실과 주일학교 아이들과 캠핑 갔을 때의 물놀이 그리고 프랑스에서 묵었던 어느 대학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의 입욕 제품을 이야기 하면서 익숙한 것을 고집하는 자신의 선택이 때로는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좋지 않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며 글을 마친다. 수필치고는 상당히 긴 호흡의 글이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문체를 사용해 독자들을 보듬는다. 오래된 추억에 우리를 가둔다.

30대는 조금 낯선 일일수도 있지만 40대의 독자들이라면 조재선 작가의 책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10쪽이 넘는 수필을 읽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구절에서는 목이 콱 막히기도 하고 눈물이 글썽거리기도 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만난 것은 어린 나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지금의 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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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sun90 2024-11-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 사는 일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제라면, 더 깊고 더 넓게 살아가는 온전한 존재가 되는 과정이라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어린 시절과의 화해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살면서 특히 어릴 때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와 결핍을 겪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그것과 화해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우리 안에 어린 시절의 자아가 계속 살고 있는데 그 아이와 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이를 안아주고 품어주어야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따뜻한 서평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써 내려 갔습니다. 제가 썼다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받아 적어 쓴 것에 불과합니다. 공연히 읽는 분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는 글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언젠가 제주에서 작은 독립 책방에 갔다가 어떤 시인의 글을 읽었습니다. 어떤 천상의 장인이 있어서 그(녁)가 하늘에 못을 박아 별을 만들고 그 별을 실로 잇는 그런 이야기가 담긴 시였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시론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기억과 기억 그리고 사연과 사연을 서로 이어보자. 그래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 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잇기 시작한 실이 닿는 또 하나의 별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