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향기 - 머무름의 기술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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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모모>, 그리고 쓰지 신이치의 <슬로라이프> 이후 시간에 대하여 이토록 깊고 섬세하게 쓴 책은 처음이다.  <모모>에서는 시간도둑들이 사람들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고 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시간을 아낀다면서 분주해진다.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을 읽다보면 그 시간도둑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들의 주된 방식은 속도이다. 사건들의 처리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시간은 절약되지 않는다. 시간은 멈추지도 않고 멈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냥 흐른다. 분주하게 다니다 보면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도둑들은 사람들이 놓친 시간을 먹고 산다. 그 시간은 죽은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회색이다. 

속도, 가속, 죽음, 조급함, 활동, 목표..., 이런 단어에 익숙한 사람의 시간에는 향기가 없다.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들의 수가 아니라 지속성의 경험이다"(p65) 라고 했다. 많은 활동을 하며 목표에 도달하려는 이들은 지속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속도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머무르는 일은 사치이자 악이다. 

<시간의 향기>에서는  생각과 마음을 넓히는 단어들이 나온다. 사색, 받침대, 충만함, 의미, 안식, 자유, 향기, 향인, 등등이다. 이 땅의 생명을 가진 개체들은 공간의 제한이 아닌 시간의 제한을 받는다. 시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 공간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의미를 깨닫고 사색하며 안식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주어진 시간 속에 가능한 오래 머물며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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