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세 가지 물건이 있다. 휴대폰과 테블릿 PC와 책이 그것이다. 이 셋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하지 않고 ‘책’을 선택할 것이다. 다른
두 개가 없다면 많이 불편하겠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리라. 그러나, 책이 없다면 나는 견딜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하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기 없이 하루를 떠밀려
지낸 날은 심한 정신적 갈증을 느낀다. 책을 읽지 않고 시간을 보내면 마치 내 머리 속에 비계살이 들어차는
듯한 느낌이든다.
나는 하는 일의 특성상 책을
읽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유가 멈춰지면서 게을러지고 정신적 시력 저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이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용돈의 일정 부분을 책을 구입하는데 고정 지출해야 하고 그렇게 많지도 않은 책 때문에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 센터 사람들 눈치를 보기도 한다. 만약 진로를 정할 때 이쪽 분야가평생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산모는 잘 먹어야 태아가 건강하듯이 내가 정신적으로 균형을 잃지 않아야 내가 돌보는 이들이 건강하게 된다. 종종 피곤함과 무력감 때문에 책읽기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책읽기를 통해 사유의 여정에서 현 위치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읽기는 스스로 게으르지
않게 하고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조절장치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고독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책을
읽으면 사고의 지평을 넓게 깊이 확장시키고 있다.
이권우의 <호모부커스>는 상당한 부분에 공감이 갔다. 책좀 읽었다고 잘난척하고 있던 내게 죽비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수 많은 책읽기의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읽기는 무엇보다 자기성찰을 위한 거울이 된다. ‘무언가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공자의 ‘불유구’를 알게 되었다. 책만
아는 바보 간서치(看書痴) 이덕무를
만났다. <주자어류>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죽비를
얻어 맞았다. 그 죽비 소리는 컸다. ‘마치 칼이 등 뒤
있는 것 같은 자세로 읽어라!’면서 내리쳤다. 그 만큼 긴장을
풀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 읽으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책읽기는 여투기다. 하지만 증권투자가 아닌 저축하기다. 책읽기는 순간 대박을 터트리는
일은 없다. 오래 여투다 보면 어느 수준에 이르러 인생을 든든히 받쳐준다.
저자는 1부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발견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말하면 ‘이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한 칼럼에서 깊은 각성을 한다. 그 칼럼에서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했다.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달리 세상은 어떤가? 타인에 대해 문을 열지 않는다. 이익이
되는 때에는 기꺼이 열지만 그렇지 않으면 늘 폐쇄시켜 놓는다. 이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에 따라,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는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느냐 분리된
공동체가 되느냐가 결정된다. 이 부분은 내게도 ‘이크!’가 된다.
여기까지는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고 그 다음 2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이다. 저자 이권우는 ‘책읽기’ 라는
여행에 훌륭한 가이드이다. 독자의 머리 속에 그림을 잘 그려준다. 해설과
설명이 아주 적절하다. 책읽기를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가는 마음으로 하라고 한다. 쉼표를 찍고 맑은 물에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 성찰해 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천천히 읽는 자에게 복이 있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저자와 함께 15일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다.”는 앙드레 지드의 말을 인용해 준다.
책읽기는 지식의 향연이 다가
아니다. 거기엔 만남이 있다.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이 있고
저자를 만난 그 독자는 다시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 그 만남은 다시 다른 글쓰기와 대화와 토론을 하게
하고 그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이어가게 한다. 괜찮은 책벌레를 만나 기분이 좋다. 책읽기는 기쁨이다. 읽으려고 기다리는 책이 30여 권이나 된다. 당분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