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순례자
김기석 지음 / 뜰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글은 샘이 깊은 물과 같다. 정말 깊은 우물이다. 샘만 깊은 게 아니다. 풍성하여 찾아 온 이들을 한껏 적셔 준다. 산문을 모아 놓은 글이지만 하나 하나가 묵직하다. 그의 우물은 고전과 문학, 신학과 인문학에 잇닿아 있다. 때론 시원하고 때론 달콤하며 때론 약처럼 쓰다. 마음의 물통에 가득 담아 왔다.

일상

「일상순례자」를 읽다 보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생각난다. 연금술사는 반복되는 꿈을 통해 피라미드에 있는 보물을 찾아 나선 산티아고 라는 젊은 목동이 그 여정에서 겪는 이야기인데 정작 보물은 자기가 양을 치던 지역 한 교회의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코엘료가 그 작품을 통해 얘기하려고 했던 것은 보물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사는 일상에 있음을 얘기하려 했다는 것이 「일상순례자」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김기석은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을 회상케 해 준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라고. 그렇기에 자기가 처한 일상의 하루하루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체리향기>를 소개하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다지고 있다. 

희망과 격려

이 책에는 희망이란 새소리가 들린다. 생명이 소멸해 가는 현실 앞에서 불멸을 노래한다. ‘땅을 찾아 뒤채다가 그만 밖으로 튀어나온 노근을 보면 흙 한 줌 덮어 주고 싶어진다.’고 하였고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나 씨앗이 남게 마련이다.’면서 말이다. <저 서늘한 그늘처럼>에서는 ‘세상에는 에셀나무 그늘처럼 나그네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이들이 있다’고 말해 준다. 그리고는 ‘염천의 세월이든 북풍의 세월이든 오지게 견뎌내며 하늘의 뜻을 장히 품는 사람들’이 그늘이자 기댈 언덕이 되겠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이 땅에는 여전히 넉넉히 있다고 알려 준다. 레가토의 사람들이 많아 희망새의 노래가 끊어지지 않는다.

부끄러움

“아녀자가 기른 난에도 향기가 없고 대장부가 기른 죽에도 기품이 없다. 세상 온 구석에 뼈를 찔러 넣는 한기마저 없다.”고 하는 조정권 시인의 탄식을 인용했을 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삽화로 넣은 그림들은 산뜻하지만 그의 글들은 죽비같고 메스같다. 마음놓고 있는 이를 부끄럽게 하여 풀어진 마음 경계를 바짝 조이게 한다. 얽매이지 않는 들사람을 찾는다(p44)고 할 땐 쭈뼛거렸고. 무르 익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p56) 할 땐 빈약한 자신을 가리게 되었다. <떨고 있는 문풍지처럼>의 기도문은 소리내어 읽어 보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떨고 있는 문풍지처럼 피울음으로 이 가을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애절하고 절실한 기도이다. ‘십자가의 길은, 고백 속에만 있을 뿐 그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멈춰 버린 발걸음을 부끄럽게 한다. 순례의 여정에는 싸울 일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빈혈 환자’라며 각성케 한다(p76). 그러니 죄와 불의에 어떻게 맞서 싸우겠냐고 걱정스런 마음을 보인다. 

북소리

세상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으려면 다른 북소리를 따르라고 한다. 다른 북소리를 들어야 한다. 순례의 길을 가고자 하면서 세상의 북소리를 따라 가니 괴롭기만 하다. <내 혼의 문신>에는 진솔한 자기 성찰이 나온다. 하늘의 소리를 신음하며 듣고 있고 꺼버려도 다시 들려 오는 소리에 괴로워 한다. 목자는 하나님의 실존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자임을 가르쳐 주고 세이렌의 노래소리와 같은 욕망의 소리에 귀를 틀어 막으라고 한다. 갈수록 황무지로 변하는 세상에 울더라도 참 사람됨의 씨앗을 뿌리라고 간청하듯 하고 촛불 한자루 들어 천 년의 어둠을 물리치자고 한다.

자극과 도전이 되었는가? 순례자의 외침에 아무런 자극도 도전도 받지 못한다면 틀림 없다. 아마도 나는 키에르케고르의 우화에 나온 ‘기러기’처럼, 자카리아 타메르의 작품에 나온 ‘호랑이’처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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