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문제 (보급판 문고본) C. S. 루이스 보급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1.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풀어낼 수 없겠지요. 고통의 문제가 그와 같습니다. 풀어 낼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고통은 두렵고 괴로운 일입니다. 고통이란 자극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도. 

문제를 풀기는 커녕 이해 능력 조차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간단합니다. 그 문제를 들고 문제를 있게 한 이에게 찾아가면 됩니다. 고통을 있게 한 이에게 가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을 찾아간 학생처럼 공손하게 문제 해결 방법을 물어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질의를 드려야 할까요? 혹시,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통을 그 앞에 던지면서 짜증을 내고 항의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루이스는 이 고통의 문제를 곧 바로 그 문제를 있도록 한 분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서론을 지나자마자 ‘하나님의 전능함’과 ‘하나님의 선함’을 다룹니다. 사실,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너무 괴롭기 때문이고 풀어낼 능력, 견뎌낼 능력이 없어서입니다. 그런 우리는 이런 항의 섞인 의문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어째서 불행을 경험케 하는 것일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어째서 인간에게 고통이 있게 했을까?"(p41) 하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 어설픈 논리이기에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자유를 의인화시키지 말자고 합니다. 사실, 그런 모습은 책임을 회피하는 꼴이 되겠지요. 고통의 시작은 위에서 주었기 때문이거나 방치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근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이 책에선 고통을 겪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다루어집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악함’과 ‘인간의 타락’입니다. 당연, 기독교적인 접근입니다.

인간의 악함은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타락’을 단순히 정해진 칸과 말 움직이는 법을 지키지 않은 체스게임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루이스는 단순히 규칙위반으로만 보지 않고 더 깊은 부분, 즉, ‘불순종’을 언급합니다. 불순종에 대해 어거스틴이 ‘피조물이 제 자리를 벗어나 자립하여 제 힘으로 존재하려 한 결과’ 라고 했습니다. 이와 연결하여서 루이스는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자아로 인식하는 순간, 하나님을 자기의 중심으로 택하느냐 자아를 중심으로 택하느냐 하는 무서운 양자택일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p124



‘무서운 양자택일의 길’이라고 하는 부분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이 타락이며 여기서 우리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루이스는 이 타락의 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자아를 되돌려 드리자고 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 것으로 주장해 온 의지를 되돌려 드리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타락하여 자기중심으로 살기에 고통은 (루이스의 표현대로) ‘가면을 벗은 악, 명백히 눈에 뜨이는 악, 무시할 수 없는 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루이스는 순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p155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 루이스는 무시할 수 없는 악으로서의 고통을 아주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루이스는 다른 모습으로 고통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고통의 본질을 다루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던져버리지 않습니다. 고통의 문제를 제시한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고 합니다.

루이스는 고통을 통해 우리에게 있는 두 가지 환상이 깨어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환상과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이 모두 우리 소유이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다’는 환상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즐겁게 느껴질 동안에는 그 삶을 하나님께 양도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루이스는 하나님을 비상용 낙하산처럼 대하지 말자고 합니다. 비상시 119를 부르듯이 찾지 말고 처음부터 조종석을 내어드리라고 말입니다.

3. 이 책 <고통의 문제>를 오래 동안 들고 다녔습니다. 문제를 풀어 보려고요. 풀어 볼 수 없다면, 조금의 이해라도 해  보려구요.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고통의 경험도 없고 지식도 바닥인지라 더욱 캄캄해졌습니다. 한 가지 배운 것은 고통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고통에 대하여는 회피도 책임전가도 거부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고통에 대하여 거부도 회피하지도 책임전가도 하지 앟는 루이스의 접근은 정말 인간다운 자세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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