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단순한 기쁨] 피에르 신부, 마음산책

단순함 - 지금까지 얻은 경험과 앎을 토대로 볼 때, 구도求道의 과정(혹은 믿음의 길)은 너무 복잡해 보인다. 진리 자체가 복잡해서일까? 그건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하여 그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무엇이 그곳에 가는 길을 그토록 복잡하게 얽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구도의 길은 의외로 단순한 여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 담겨진 피에르 신부의 내면과 외면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단순했다.

기쁨 - 무슨 일을 하든지 기쁘게 할 일이다. 구도의 길을 가는 것도 기쁘게 걸어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진지하게(?) 산다. 단순하게, 그리고, 기쁘게 구도의 길을 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한 기쁨”은 일평생 단순하게 기쁘게 구도의 길을 걸어 간 노 신부의 힘 있는 고백이다.


1. 상처입은 독수리들

저자는 ‘엠마우스’ 라는 공동체를 세워 부랑자들과 빈민들을 위해 살았다. 피에르 신부는 인간에 대해 철저한 긍정과 무한 가능성을 기대하는 사람이다. 이 책의 1부 제목은 ‘상처입은 독수리들’이다. 이렇게 본 이유는 그가 인간을 광대한 지평과 무한한 공간을 갈구하는 존재인 동시에, 비상(飛翔)하지 못하는 구속받은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광대한 지평을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온갖 장애물에 부딛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그렇다(p29, 38). 그래서, 그는 희망을 소망과 구별하며 무엇보다 영생을 확신한다. 피에르가 갖는 희망은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다(p57). 하지만, 희망이 어디 그렇게 쉽게 붙들릴까? 세상은 온통 부조리 투성이인데? 믿을만 한 것은 신비의 커튼 뒤로 숨어 있는데?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세상이 부조리로만 도색된 듯이 보인다. 그런데, 피에르는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 안에 각인해 놓은 사랑을 보라고 한다. 이 사랑을 볼 수 있다면 희망도 붙들 수 있다. 그것은 희망이란 것이 감춰진 그 신비한 사랑 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피에르는 사람을 향한 긍정과 이러한 희망을 평생을 품고 살아 갔다. 난 이와 같은 영적 지구력(?)이 너무나 부럽기만 하다. 지나칠 수 없는 물음이 있다. 무엇이 그를 그때까지 그렇게 강하게 견디게 한 것일까? 보통은 하여(何如) 의 마음이기 쉬운데 그를 평생 단심(丹心)으로 살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2부에서는 그 동인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온다. 그 동인은 다름 아닌 타인이 아닌 듯 싶다.


2. 공감과 만족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샤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너는 홀로 족하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홀로 족하거라!' 그와 반대로, 천국은 무한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빛에 에워싸인 채 나누고 교환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_ p227



피에르는 이와 같은 표현을 중반부에서,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거듭 다루었다. ‘타인과 공감하는 자, 홀로 만족하는 자’ 거의 피에르의 좌우명인 듯 하다. ‘공감’이란 말은 한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 둘 이상의 관계에 대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다. 그와 달리, ‘만족’이란 말은 얼마든지 한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다. 예수의 生이 그랬다. 그는 결코 홀로 만족하지 않고 인류 모두와 공감하였다. 어떤 종교든, 누구의 신앙이든 영성의 깊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홀로인지 아니면 타인과 함께인지에 의해.

피에르는 그래서 사람을 신자와 비신자 라는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p93). 아~! 이 말은 얼마나 육중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1부에서 ‘희망’을 말했다면, 2부에선 ‘믿음’을 말한다. 타인과의 공감을 위해선 믿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은 너무 불확실하게 보이는 개념이다. 현실이 불확실하기에 그런다. 이런 믿음을 두고 피에르는 믿음을 ‘확실하지 않은 현실에 대해 품는 확신’이라고 했다. 희망이 사랑과 연결된다고 했듯이 피에르는 믿음도 사랑의 영역에 있다고 한다(p77).

피에르에게는 세 가지 확신이 있다. 하나는 하느님은 사랑이다, 두번째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번째는 사람에겐 자유가 있기에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대부분은 자유를 시간을 낭비하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자포자기하는데 낭비한다. 피에르는 자유가 사랑하기위해 허락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3. 만남들

피에르의 만남은 그 영역이 제한되지 않았다. 자기 땅에만 머물지 않고 바다를 건너 인류와 만났다. 그렇다고 그는 사람만 만나지 않았다. 기도와 묵상과 예배를 통해 하느님과 일상에서 만났다. 만남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죄와 고통과 죽음과 용서하지 못함이다. 이런 요소들을 충분히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이유들이 된다. 하지만 피에르에게는 걸림이 되지 않았다. 고통은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한다. 세상이 의아해 할 정도의 용서도 행한다. 죽음조차도 ‘오랫동안 늦춰진 친구와의 만남과 같다’고 까지 말한다(p225).

믿음, 사랑, 희망, 자유, 이와 같은 개념들을 우리는 얼마나 복잡하게 말하며, 비관적으로 비현실적으로 적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피에르와 같은 이에게 배울 수 있는 점은 그는 그 개념들을 품으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기쁘게 살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는 매우 현실적으로 살아냈다.

삶에 대해 몽상하지 말자. 삶을 만들어가자. 공허한 말에 만족하지 말고 사랑하자. 그리하여 시간의 어둠에서 빠져나갈 때, 모든 사랑의 원천에 다가서는 우리의 마음은 타는 듯 뜨거우리라.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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