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거친 호흡과 깨달음
김기석 지음 / 청림출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 표지가 너무나 인상적이다. 울퉁불퉁하고 구불거리는 비포장 길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나 있고 그 길 이 사라진 곳 부근에 지평선 저어 끝에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사진이다. 구불대는 길이지만 걷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없다. 그래서인지 길이 외로워 보이고 저 멀리 있는 나무가 외로워 보인다. 모르겠다. 누군가 이미 지나간 길일 수도 있겠고 책을 읽는 이들에게 걸어가라고 남겨 둔 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그 길을 한참이나 걸어가고 있었다. 드넓은 들판 언덕길이고 먼지 나는 황량한 길이다. 지나가는 이도 따라 가는 이도 없는 한적한 길을 걸어간다. 몇 장 넘기지 않아 저자가 가고 있는 길은 낯설지 않아 보였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고 누구나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걸음은 달랐다. 외로워 보였는데 누군가와 쉼 없는 대화를 하고 있다. 가만가만 걷는 듯 했으나 거친 호흡을 하며 걷고 있다. 그러나, 그의 걸음걸이는 단정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이정표가 될 듯 하다. 특히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저자의 대화에서 언어에 담겨지는 의미의 깊이는 무겁고 빠르며 정확하다.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존재의 피부’라고, 그 벗겨진 피부에 비단 옷자락만 스쳐도 아픈 법(p41) 이라고 할 때는 깊은 공감이 갔고 ‘봄볕 한 줌 보태줄 사람(p59)’이라든지, ‘정신의 독립(p127)’이든지, ‘웃으면서 싸울 수 있으려면(p161)이라고 할 땐, 그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다. 그리고, ‘딱딱한 얼음을 깨는 데는 망치보다 바늘(p199)’ 이라고 했을 때는 나의 얼음 같은 정신이 깨어져 나가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레가토(legato)’가 있는 페이지에선 레가토가 없는(실제론 레가토의 개념도 이해 못하는)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동안 저자가 이 길을 지나 오면서 이미 만났던 이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고 그들 연락처를 적어 주고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알려 준다. 내가 가는 길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자의 대화 내용은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샘물과 같다. 진리에서 시작된 밝은 빛줄기이다. 그의 이야기는 소음 속에서도 잠기지 않고 퍼져가는 맑은 선율이며 흑백의 배경에서 시선을 멈추게 하는 한 점 천연의 색과 같다. 다른 이에게 향하던 시선이 어느덧 내게도 향하였고, 그 음성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다. 

정신의 크기보다는 교회의 크기가, 인격의 향기보다는 타고 다니는 차의 크기가 그 사람의 존재로 인정되는 오늘의 교회 현실이 암담합니다. ……,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러려면 그러라지요. 저는 제 속도에 따라 살겠습니다. _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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