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명상
고진하 지음 / KMC(기독교대한감리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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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는다>


이 책은 종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종이의 여백을 얘기하더니 창조의 여백을 꺼냈다. 마치 연상 게임을 하듯이 주제들이 이어지고 물에 물감이 번져 나가듯이 개념들이 퍼져 간다. 이 책은 여백이 많은 책이다. 읽어 가기에 편하다. 편집에도 여백이 많다. 그런데, 그 넉넉한 여백이 있는데 장을 넘기는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여행 가운데 빨리 달려 가야 함에도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속도를 줄여 아주 천천히 가게 되는 그런 때처럼 속도를 점차 늦추게 되었다. 책은 여백이 많지만 그 여백 속을 돌아다니는 이에겐 뭔가를 가득 채워주는 듯 했다.

나는 산에 오르기를 무척 좋아한다. 함께 오르기 보다는 나 홀로에 더 익숙해 졌다. 홀로 산 오르기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침묵과 고독이 좋기에 그렇다. 나는 그 시간에 내 안에 알게 모르게 담겨진 불필요한 것들을 떨어 버린다. 짐을 가볍게 만들고 거짓 욕망들을 깨뜨려 버린다. 혼자이기에 자연히 침묵한다. 그러면 누군가의 소리를 듣게 된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그런 내게 ‘나무 명상’은 내 가슴을 꼭 붙들어 주는 책이다.


지은이는 나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묵상해냈다. ‘고요의 향기?’, 시인답게 말의 사용이 무척이나 감각적이다. 나 역시 숲 속에서 고요함 가운데 가득한 향기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무엇을 그리는지를 충분히 안다. 열매 맺음은 사랑의 수고라고 하고 그리스도를 큰 나무 그늘에서 찾아낸다. 나무를 기다리는 모성으로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모성으로 묵상한다. 그러다가 내 가슴이 콱 붙들린 곳이 있다.

   
  “우리는 말의 어미母인 하나님의 침묵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숲은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 모습입니다.” _ p81  
   


숲은 침묵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움직인다. 아주 크게. 침묵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해 낸다. 자랑도 없고 불평도 없으며 고통의 소리도 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면서 창조와 구원의 일을 이루셨듯이 숲도 침묵 가운데 생명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또, 한 군데 가슴을 멈추게 하는 말이 있다.

   
  “나무는 자신을 위해 그늘을 만들지 않습니다.” _ p156  
   

어딘가에서 많이도 들었던 말이긴 한데, 새삼 전류가 흐를 때처럼 짜릿함을 갖게 했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한 그늘을 펴고 있는데(되지도 않는 일이지만), 나무의 그늘 지음에 대한 이 말은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책 표지 위에 ‘나무와 깊이 사귀며 존재의 근원이신 그분을 만나다’ 고 적혀 있다. 저자는 나무의 뿌리를 타고 내려가 존재의 근원을 만났고 나무의 줄기를 타고 가다 하늘에 계신 분을 만났다.

멀리 두고 싶지 않은 책이다. 팔 뻗으면 닿을 곳에 다시 꽂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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