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의 열악했던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을 지적한 저작이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 저작은 자본주의 초기 특유의 부작용을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으로 과대해석(Overinterpretation)하고, 이를 토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오류적 역사 진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즘도 <공산당 선언>을 신봉하며 자본주의의 멸망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세계적 분쟁을 유도한 사상적 불씨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역사 진단의 대표적 오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쏟아지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초기 부작용의 보편화 (일시적 현상의 영속화)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초기 영국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임금 착취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성장통'이었지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이후 노동조합의 탄생, 정부의 노동법 제정, 복지 정책 도입 등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수정하며 발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수정 능력(Adaptability)을 간과한 것이다. 


2. '빈곤의 절대적 증가' 예측 오류 (프롤레타리아 궁핍화 이론) 

공산당 선언은 "자본이 증식할수록 노동자는 더욱 빈곤해진다"며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노동자 계급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혁명의 주체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체제 내로 흡수되어 나아갔다. 


3. 역사적 결정론의 오류 (진보 시나리오의 잘못된 구성)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해 봉건제 - 자본주의 - 공산주의라는 선형적인 역사 진보 모델을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멸망을 예견하는 '타이밍의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예상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영국, 독일 등)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화가 덜 된 농업 국가(러시아, 중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4. 노동가치설과 계급 갈등의 과도한 단순화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며 사회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진영으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는 노동가치설 역시 현대 경제학에서는 공급, 수요, 한계 효용 등 다양한 요소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주장에 밀려나 거의 '화석화'된 이론으로 남아 있다. 


결론: "진단도 틀렸고, 처방은 더욱 틀렸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초기 병폐를 진단하는 데는 일말의 의미가 있었으나, '자본주의의 출산의 고통(Birth Pangs)'을 '사망의 고통(Death Rattle)'으로 오인한 역사적 서술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의 진보 시나리오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던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위적인 시도는 대부분 경제적 정체와 시민의 자유 억압이라는 결과로 실패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결국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적 결함을 보고 성급하게 사망 선고를 내린,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담긴 대표적 문헌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다만, 오류작 치고 인류 세계에 끼친 죄상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오류작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트남 근현대사 -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최병욱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베트남의 사회·문화·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저작이지만, 통상적인 '역사 교과서' 스타일의 흐름을 기대하거나 베트남 근현대사의 굵직한 뼈대만을 빠르게 잡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구성과 내용의 집중도 면에서 아쉬울 것이다. 


책이 총 21개 장의 주제 중심 에세이 형태로 구성되다 보니, 베트남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정치적 사건과 거대한 흐름(식민지배, 독립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이야기가 다소 파편화되어 있다.


기존 학술 연구나 논문들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더해 엮어낸 책이기에, 저자의 특정한 세부 전공 분야(중남부 지역사, 경제사 등)에 편중된 경향도 있다. 때문에 베트남 현대사 중에서도 특정 시기나 주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는 반면,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적 깊이는 상대적으로 얕게 느껴질 것이다. 


책의 핵심 화두 중 하나가 '베트남적 근대'를 이해하는 것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 근대 개념이나 잣대를 대입하다 보니 전개가 매끄럽지 않거나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1개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다루는 내용이 매우 산만하다. 베트남의 역사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어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수많은 정보와 주제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겠다.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읽어 넘길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산당선언 고전의 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의 열악했던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을 지적한 저작이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 저작은 자본주의 초기 특유의 부작용을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으로 과대해석(Overinterpretation)하고, 이를 토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오류적 역사 진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즘도 <공산당 선언>을 신봉하며 자본주의의 멸망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세계적 분쟁을 유도한 사상적 불씨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역사 진단의 대표적 오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쏟아지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초기 부작용의 보편화 (일시적 현상의 영속화)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초기 영국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임금 착취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성장통'이었지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이후 노동조합의 탄생, 정부의 노동법 제정, 복지 정책 도입 등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수정하며 발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수정 능력(Adaptability)을 간과한 것이다. 


2. '빈곤의 절대적 증가' 예측 오류 (프롤레타리아 궁핍화 이론) 

공산당 선언은 "자본이 증식할수록 노동자는 더욱 빈곤해진다"며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노동자 계급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혁명의 주체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체제 내로 흡수되어 나아갔다. 


3. 역사적 결정론의 오류 (진보 시나리오의 잘못된 구성)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해 봉건제 - 자본주의 - 공산주의라는 선형적인 역사 진보 모델을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멸망을 예견하는 '타이밍의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예상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영국, 독일 등)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화가 덜 된 농업 국가(러시아, 중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4. 노동가치설과 계급 갈등의 과도한 단순화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며 사회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진영으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는 노동가치설 역시 현대 경제학에서는 공급, 수요, 한계 효용 등 다양한 요소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주장에 밀려나 거의 '화석화'된 이론으로 남아 있다. 


결론: "진단도 틀렸고, 처방은 더욱 틀렸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초기 병폐를 진단하는 데는 일말의 의미가 있었으나, '자본주의의 출산의 고통(Birth Pangs)'을 '사망의 고통(Death Rattle)'으로 오인한 역사적 서술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의 진보 시나리오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던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위적인 시도는 대부분 경제적 정체와 시민의 자유 억압이라는 결과로 실패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결국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적 결함을 보고 성급하게 사망 선고를 내린,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담긴 대표적 문헌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다만, 오류작 치고 인류 세계에 끼친 죄상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오류작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대역사학의 황혼
윤해동 지음 / 책과함께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연구할 때 최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오류가 선악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 시대의 당사자가 처했던 상황과 개인적 판단을 후세 사람이 거울 보듯 100%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잣대 또한 후세 사람들의 임의적 판단일 뿐, 절대적인 역사 평가의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선악 이분법적 역사평가의 경향이 강한 편인데, 결코 바람직한 흐름이 아니다. 자칫 이러한 선악 판단을 프로파간다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들에게 휘둘리게 될 뿐이다.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같은 가정은 역사 연구에 있어서 무의미한 가정법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을 거라는 전제 또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건에도 음과 양의 양면적 효과가 있다.

철저한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역사를 서술하되, 당시 상황과 국제적 환경으로 인한 역사적 불가피성이나 필연성을 밝혀내는 것이 후세 사람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모든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 근대이다. 이는 식민지를 사회진화적 문명론의 발전단계론에 따라 하위에 위치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이란 언제나 유동적인고 변화하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실재는 없으며, 현재의 자기 위치에 비추어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 언급하는 기억하기=회상이라는 과정이 존재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기억과 민족의 상생관계 곧 역사-기억을 해체하고, 식민지에 대한 공식기억과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기억을 회복함으로써, 기억을 다원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억 연구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정의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정의를 회복함으로 도덕성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청산을 통하여 정의와 도덕성을 전부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다른 부정의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 말기 친일협력자로 규탄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의 억압에 의하여 민족에 대해 회의하고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로 ‘탈출’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길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었던 바, 대중들은 광범위한 일상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인간의 선택은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고뇌 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식민지기 한 자본가의 활동을 통해 말의 어려움을 새삼스레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말의 어려움은 사유의 어려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사유의 어려움이란 개념화의 어려움, 곧 인간의 삶을 유형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근대화를 식민지 기간을 통해서 이루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모든 국민이 지배세력과의 일정한 협력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역사학을 통해서 과거를 어설프게 헤집으면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고 상벌을 주자는 흑백 논리는 인간의 기억/기록이라는 부실한 근거 위에 또 하나의 악업을 쌓는 어리석은 짓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깨달은 눈으로 본 인생
진푸티종스 지음, 권중달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하늘이 나를 내신 것은 반드시 쓸 데가 있어서이지만, 반드시 노력해야만 어떤 일에 종사하더라도 모두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하나의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하여 절대로 득의만만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스스로 다시 하나의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은 비로소 즐겁고 빛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쳐도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일의 전문성과 자신감도 길러져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원망과 책임회피로 시간낭비만 한다면 결국 그대의 인생에는 아무것도 수확할 것이 없게 된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 해도, 자비심이 없다면 모든 일에서 부족함과 결함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철저하게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스스로 최선을 다해 절반은 노력하는 양의 행동을 해야 하고, 나머지 절반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선한 일을 즐기며 베풀기를 좋아하는 음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음덕(陰德)을 쌓는 것이다. 


선(善)을 심어야 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남을 도와야 비로소 근본적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행복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욕망을 줄이고 마음과 행동을 고치고, 만족함을 알아 항상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간단한 생활을 맛본다면 행복은 근본적으로 뒤따라와서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바로 우리들의 옆에 있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