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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자본주의
로버트 미지크 지음, 서경홍 옮김 / 청년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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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로버트 미지크의 <고장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낳은 모순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상을 고발하며, 무분별한 시장 신뢰가 어떻게 사회적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진단한 경제·사회 비평서이다. 


이 책은 '고장난'을 뜻하는 독일어 'kaputt'와 자본주의 'Kapitalismus'를 합성한 제목처럼, 현대 체제가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했다고 선언한다.  


우선 실물경제의 성장을 이끌어야 할 자본이 규제 완화를 틈타 '돈으로 돈을 버는' 투기적 금융시스템으로 전락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자본가들이 임금 억제와 복지 축소로 단기적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는 대중의 소비력 저하와 판매 부진이라는 부메랑(피루스의 승리)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남유럽(그리스, 스페인)의 재정 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허구성을 고발하는 데 주력한다. 


저자는 규제 완화와 이윤 추구에만 몰두한 자본주의가 생산력 저하와 극단적 불평등을 초래하여 왔다고 지적한다. 


위기의 구조적 원인으로 금융 팽창과 가계 부채 증가가 일시적 방파제 역할은 했으나 결국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렸음을 주장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자멸적 성격을 방치하면 사회 전체가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는 급진적 각성을 촉구한다. 


이 책은 대중적 고발서로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학술적·대안적 측면에서는 몇 가지 뚜렷한 한계를 보인다. 


1. 대안의 구체성 결여 (구호 위주의 한계) 

체제의 문제점은 현미경 보듯 날카롭게 파헤치지만, 정작 이를 치료할 구체적인 정책적 로드맵이나 '고장난 시스템을 고칠 설계도'는 다소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2. 이론적 참신함의 부족

금융화의 폐해, 불평등 심화, 유효수요 부족 등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나 포스트 케인스주의 학파가 이미 오랫동안 정교하게 주장해 온 내용이다. 미지크의 진단은 이를 저널리즘적으로 재구성

했을 뿐, 학문적인 독창성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3. 지나친 현상 중심적 서술 

구조적 모순의 근본 원인을 추적하기보다 2008년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위기 같은 눈앞의 '증상'과 자본가들의 '탐욕'에 서술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자본주의의 장기적 순환 궤적에 대한 심층적 입체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항상 위기를 넘어서 새롭게 성장해가는 현실을 도외시한다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미지크의 <고장난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나름 날카로운 필치로 폭로하여 대중적 분노를 조직하는 데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교한 경제학적 대안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현상 고발 위주의 서술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글은 수없이 많고 지금도 어디선가 씌어지고 있지만, 그 어떤 글도 자본주의를 대체할 경제학적 대안에 대해서는 딱부러지는 말을 못하는 편인데, 이 책도 그러한 글 중 하나일 뿐이다. 


결국, 자본주의는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살아가는 데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제도로서 위기때마다 매번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는 현실은 누구도 쉽사리 부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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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의 열악했던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을 지적한 저작이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 저작은 자본주의 초기 특유의 부작용을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으로 과대해석(Overinterpretation)하고, 이를 토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오류적 역사 진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즘도 <공산당 선언>을 신봉하며 자본주의의 멸망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세계적 분쟁을 유도한 사상적 불씨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역사 진단의 대표적 오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쏟아지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초기 부작용의 보편화 (일시적 현상의 영속화)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초기 영국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임금 착취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성장통'이었지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이후 노동조합의 탄생, 정부의 노동법 제정, 복지 정책 도입 등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수정하며 발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수정 능력(Adaptability)을 간과한 것이다. 


2. '빈곤의 절대적 증가' 예측 오류 (프롤레타리아 궁핍화 이론) 

공산당 선언은 "자본이 증식할수록 노동자는 더욱 빈곤해진다"며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노동자 계급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혁명의 주체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체제 내로 흡수되어 나아갔다. 


3. 역사적 결정론의 오류 (진보 시나리오의 잘못된 구성)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해 봉건제 - 자본주의 - 공산주의라는 선형적인 역사 진보 모델을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멸망을 예견하는 '타이밍의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예상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영국, 독일 등)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화가 덜 된 농업 국가(러시아, 중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4. 노동가치설과 계급 갈등의 과도한 단순화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며 사회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진영으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는 노동가치설 역시 현대 경제학에서는 공급, 수요, 한계 효용 등 다양한 요소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주장에 밀려나 거의 '화석화'된 이론으로 남아 있다. 


결론: "진단도 틀렸고, 처방은 더욱 틀렸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초기 병폐를 진단하는 데는 일말의 의미가 있었으나, '자본주의의 출산의 고통(Birth Pangs)'을 '사망의 고통(Death Rattle)'으로 오인한 역사적 서술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의 진보 시나리오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던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위적인 시도는 대부분 경제적 정체와 시민의 자유 억압이라는 결과로 실패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결국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적 결함을 보고 성급하게 사망 선고를 내린,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담긴 대표적 문헌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다만, 오류작 치고 인류 세계에 끼친 죄상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오류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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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근현대사 - 최병욱 교수와 함께 읽는
최병욱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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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트남의 사회·문화·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저작이지만, 통상적인 '역사 교과서' 스타일의 흐름을 기대하거나 베트남 근현대사의 굵직한 뼈대만을 빠르게 잡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구성과 내용의 집중도 면에서 아쉬울 것이다. 


책이 총 21개 장의 주제 중심 에세이 형태로 구성되다 보니, 베트남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정치적 사건과 거대한 흐름(식민지배, 독립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이야기가 다소 파편화되어 있다.


기존 학술 연구나 논문들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더해 엮어낸 책이기에, 저자의 특정한 세부 전공 분야(중남부 지역사, 경제사 등)에 편중된 경향도 있다. 때문에 베트남 현대사 중에서도 특정 시기나 주제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는 반면,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적 깊이는 상대적으로 얕게 느껴질 것이다. 


책의 핵심 화두 중 하나가 '베트남적 근대'를 이해하는 것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 근대 개념이나 잣대를 대입하다 보니 전개가 매끄럽지 않거나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1개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다 보니 다루는 내용이 매우 산만하다. 베트남의 역사적 흐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싶어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수많은 정보와 주제들이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겠다.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읽어 넘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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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선언 고전의 세계 리커버
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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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9세기 산업혁명 초기의 열악했던 노동 환경과 부의 불평등을 지적한 저작이다. 그러나 현대적 관점에서 이 저작은 자본주의 초기 특유의 부작용을 자본주의의 필연적 멸망으로 과대해석(Overinterpretation)하고, 이를 토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오류적 역사 진보 시나리오를 구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요즘도 <공산당 선언>을 신봉하며 자본주의의 멸망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는 의문이다. <공산당 선언>이 세계적 분쟁을 유도한 사상적 불씨였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역사 진단의 대표적 오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에 쏟아지는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초기 부작용의 보편화 (일시적 현상의 영속화)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초기 영국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아동 노동, 장시간 노동, 임금 착취를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성장통'이었지 '사망 원인'은 아니었다. 이후 노동조합의 탄생, 정부의 노동법 제정, 복지 정책 도입 등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을 수정하며 발전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수정 능력(Adaptability)을 간과한 것이다. 


2. '빈곤의 절대적 증가' 예측 오류 (프롤레타리아 궁핍화 이론) 

공산당 선언은 "자본이 증식할수록 노동자는 더욱 빈곤해진다"며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반대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은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노동자 계급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혁명의 주체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는 오히려 감소하거나 체제 내로 흡수되어 나아갔다. 


3. 역사적 결정론의 오류 (진보 시나리오의 잘못된 구성)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해 봉건제 - 자본주의 - 공산주의라는 선형적인 역사 진보 모델을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가 도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멸망을 예견하는 '타이밍의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예상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영국, 독일 등)가 아니라, 오히려 산업화가 덜 된 농업 국가(러시아, 중국)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4. 노동가치설과 계급 갈등의 과도한 단순화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며 사회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두 진영으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 지식 기반 경제로 전환되며 자본가와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는 노동가치설 역시 현대 경제학에서는 공급, 수요, 한계 효용 등 다양한 요소로 가치가 결정된다는 주장에 밀려나 거의 '화석화'된 이론으로 남아 있다. 


결론: "진단도 틀렸고, 처방은 더욱 틀렸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초기 병폐를 진단하는 데는 일말의 의미가 있었으나, '자본주의의 출산의 고통(Birth Pangs)'을 '사망의 고통(Death Rattle)'으로 오인한 역사적 서술로 평가된다.

마르크스의 진보 시나리오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던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위적인 시도는 대부분 경제적 정체와 시민의 자유 억압이라는 결과로 실패했음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결국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태동기적 결함을 보고 성급하게 사망 선고를 내린, 일종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담긴 대표적 문헌이라 결론지을 수 있다. 

다만, 오류작 치고 인류 세계에 끼친 죄상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오류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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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학의 황혼
윤해동 지음 / 책과함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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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연구할 때 최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오류가 선악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 시대의 당사자가 처했던 상황과 개인적 판단을 후세 사람이 거울 보듯 100%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잣대 또한 후세 사람들의 임의적 판단일 뿐, 절대적인 역사 평가의 도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러한 선악 이분법적 역사평가의 경향이 강한 편인데, 결코 바람직한 흐름이 아니다. 자칫 이러한 선악 판단을 프로파간다로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들에게 휘둘리게 될 뿐이다.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같은 가정은 역사 연구에 있어서 무의미한 가정법이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졌을 거라는 전제 또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건에도 음과 양의 양면적 효과가 있다.

철저한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역사를 서술하되, 당시 상황과 국제적 환경으로 인한 역사적 불가피성이나 필연성을 밝혀내는 것이 후세 사람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모든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 근대이다. 이는 식민지를 사회진화적 문명론의 발전단계론에 따라 하위에 위치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이란 언제나 유동적인고 변화하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실재는 없으며, 현재의 자기 위치에 비추어 ‘과거의 이야기’를 계속 언급하는 기억하기=회상이라는 과정이 존재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기억과 민족의 상생관계 곧 역사-기억을 해체하고, 식민지에 대한 공식기억과 국민 만들기 과정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기억을 회복함으로써, 기억을 다원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억 연구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정의는 언제나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정의를 회복함으로 도덕성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과거청산을 통하여 정의와 도덕성을 전부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또 다른 부정의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 말기 친일협력자로 규탄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국가의 억압에 의하여 민족에 대해 회의하고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로 ‘탈출’하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길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었던 바, 대중들은 광범위한 일상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인간의 선택은 소우주로서의 인간의 고뇌 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식민지기 한 자본가의 활동을 통해 말의 어려움을 새삼스레 맛보았을 뿐만 아니라, 말의 어려움은 사유의 어려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사유의 어려움이란 개념화의 어려움, 곧 인간의 삶을 유형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근대화를 식민지 기간을 통해서 이루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모든 국민이 지배세력과의 일정한 협력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역사학을 통해서 과거를 어설프게 헤집으면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고 상벌을 주자는 흑백 논리는 인간의 기억/기록이라는 부실한 근거 위에 또 하나의 악업을 쌓는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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