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건축 기행 - 익숙한 도시의 낯선 표정을 발견하는 시간
천경환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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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을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기록입니다.


20대에는 강남의 화려함을 사랑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건물들, 누가 더 화려한가 내기라도 하듯 뽐내는 풍경에 입이 쩍 벌어지곤 했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정겨움과 소박함이 더 마음을 끕니다. 스카이라인을 가로막는 고층 빌딩보다는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 주변 풍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에 자꾸만 시선이 머뭅니다. 강남보다 강북을 선호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은 길, 북촌

저는 궁궐 산책을 즐깁니다. 서울의 5대 궁궐 중에서도 특히 경복궁과 창덕궁을 좋아하는데, 그 두 궁 사이에 자리한 북촌을 사랑하게 된 건 운명이랄까요? 이곳의 한옥들이 비록 전통 양식 그대로는 아닌 '도시형 한옥'일지라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겨움은 변함이 없습니다.


북촌은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늘 같은 얼굴인 듯해도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살짝씩 변하는 그 미묘한 표정들이 매번 새로운 인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인파로 북적이는 주말과 고즈넉한 평일의 공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적함과 평온함 속에 머물 때 비로소 북촌의 진짜 매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듯합니다.


건축가의 눈으로 다시 본 익숙한 공간

천경환 건축가의 글을 따라 기억과 눈으로 다시 한번 북촌을 걷습니다. 원서동, 안국동, 계동, 삼청동, 가회동…. 무심코 스쳐 지났던 건물들이 품은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마치 눈이 새로 떠지는 기분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옛 기무사 건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 건물이 견뎌온 시간과 역사가 겹쳐 보이며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창덕궁 옆 공간사옥을 읽으며 설계자 김수근 건축가를 떠올립니다. 인간을 살리는 건축(공간사옥)과 죽이는 건축(남영동 대공분실) 사이의 아이러니. 성혜나 작가의 '구의 집'이 자연스레 떠올랐어요. 우리가 마주해야 할 시대적 아픔이기도 합니다.


창덕궁과 공간사옥을 지나 북촌 초입까지
건축 여행자의 눈으로, 북촌 미술관 탐방
느긋하게, 계동길 골목 산책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인 삶의 기록

책에서 소개하는 19곳의 공간을 따라 걷다 보면,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옵니다. 세상 그 어떤 건물도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법은 없습니다. 그곳을 드나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간이 페이스트리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을 뿐이죠.


북촌의 건축물을 툭 건드렸을 뿐인데, 그 안에서 줄줄이 딸려 나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마음을 울립니다.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인 공간.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누군가의 미래에 가 닿아 있겠지요. 책을 덮으며 그 신비로운 연결 고리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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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강아지의 사생활
앨리슨 프렌드 지음, 최지원 옮김 / 한경arte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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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유키랑 함께 산 지 7개월하고도 16일 차.
밥 먹는 것, 자는 것, 산책하는 것 모두
신기하기만 했던 날들을 잘 지나왔다.
형이란 말을 알아듣고, 산책이란 말에 온몸으로 반응하며,
밥 먹자는 말, 간식 서랍 여는 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듣는 걸 볼 때마다 ‘개 탈을 쓴 사람 아냐?’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혼자 두고 나갈 때 안쓰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아무도 없을 때 드디어 탈을 벗고
‘어후, 개 연기하기 힘드네’하며 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기도 했다.


보호자가 집을 비우는 동안 개들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BTS 뷔가 선택한 아티스트
인스타그램 91만 팔로워
SNS 화제의 그림 [타코 먹는 강아지]의 작가
앨리슨 프렌드가 그려낸 강아지들의 비밀스러운 세계!!!
화제작 및 미공개 작품 등 125점이 수록된 놀라운 책!


그림 하나하나에 위트와 사랑이 가득하다.
인간이 없을 때 비로소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강아지들.
저마다 취미 활동, 몸단장, 독서까지!!!!
유화의 매력과 강아지들의 특징을 잘 살린,
강아지들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그림을 보면서
피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림들!!
심지어 “유키”라는 이름이 나와서 너무 놀라고 좋았네.
히히~~


반려견을 키우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세계.
무해함과 귀여움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알려주는
사랑으로 가득한 세계.
책을 보면서 유키의 친구들도 떠올랐다.
탄, 라떼, 달래, 싱푸, 해나, 머털.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어디서든 맘껏 매력 발산하며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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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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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결혼과 함께 연고 없는 일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동네 지리를 익히고 버스 노선을 파악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 안에서도 삶의 터전이 바뀌면 이토록 서먹한데, 하물며 타국이라면 어떨까. 심지어 자의가 아닌 강제징용에 의한 이주라면 그 막막함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여성 서사'와 '디아스포라 소설'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금이 작가님.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분이 또 계실까 싶다. 전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배경이 하와이였다면, 이번 『슬픔의 틈새』는 사할린이다. 한국의 추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척박한 땅, 러시아 사할린.


일제강점기 말,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일제의 노동력 착취는 극에 달했다. 탄광과 벌목장으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을 견뎌야 했던 그곳에 노동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광부들의 가족까지 불러들인다. 주인공 단옥네 가족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사할린 땅을 밟는다. 그렇게 시작된 이주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릴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마저도 자유로운 왕래가 아닌 '제한적, 순차적'이라는 이름의 서글픈 귀환이었다.


주단옥, 타마코, 올가.
그녀의 이름에는 한 시대의 운명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 조선, 일본, 그리고 러시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그녀는 단옥으로, 타마코로, 다시 올가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모진 노동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광복이 되면 고국에 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귀국선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들은 조국으로부터 사실상 버려진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옥네와 이웃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버틴다. 그 안에도 여전히 삶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 절망뿐인 것 같은 삶의 틈새로 사랑과 기쁨, 행복과 환희가 차례로 찾아온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이렇게 늘 슬픔과 고통의 틈새를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 p.318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단옥, 타마코, 올가가 존재했을까. 깊은 상실과 배신감을 안고서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분투했던 수많은 이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먼지처럼 살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이 읽는 내내 뼛속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이금이 작가님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디아스포라 소설은 늘 '현재 진행형'으로 읽힌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 앞에 무력하게 노출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읽고 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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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플
글라피라 스미스 지음, 권가람 옮김 / 바람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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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지만 다정함이 배어있는 남편, 그리고 시니컬한 농담을 툭툭 던지는 아내. 이들에게 찾아온 작고 까만 털뭉치 '트러플'.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는 트러플의 눈에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요? 비록 한 공간에 머물지라도 인간과 개는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보는 색채도, 어둠의 깊이도, 움직임의 속도도 모두 다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다르지 않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혼자 조용히 저녁을 준비하던 남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는, 아빠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딸의 목소리. 트러플은 왜 아빠 곁이 아닌 딸의 집에서 살게 된 걸까요? 그리고 지금, 딸과 트러플에게는 왜 아빠가 그토록 필요한 걸까요.

개는 인간보다 훨씬 짧은 생을 살다 갑니다. 열정적으로 살기에 생이 짧은 것일까요, 아니면 생이 짧기에 그토록 모든 열정을 다 바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은 한 가족의 일상과 사랑, 그리고 트러플과 공유하는 시간들을 다채로운 색감을 통해 보여줍니다.

읽는 내내 곁에 있는 '유키'를 자꾸만 바라보게 됩니다.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유키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그 끝을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마지막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늘 24시간을 함께하려 노력하고, 되도록 혼자 두지 않으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공백의 시간들은 늘 생기기 마련입니다. 밖에 나가 있어도 마음은 온통 집에 가 있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는 않을까?', '편히 쉬고 있겠지만 혹시 어디가 불편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밖에서도 내내 애가 타고 맙니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의 사랑, 그리고 사람과 반려견의 사랑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묻습니다.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없이 반갑고 선물 같은 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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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성실 지음 / 초록서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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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넘어가렴. 알았지?”
나는 피해자이면서 방관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있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있었다.
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성추행이 있었다.
티 내지 말고 적당히 넘어가란 암묵적 강요가 있었다.
피해자가 방관자가 되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었다.
추한 욕망이 있었다.


“없었다.”
참 어른이 없었다.
육체뿐 아니라 마음을 보듬는 사람이 없었다.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다.


차오름보육원, 열 몇 명의 아이들.
그리고 성추행.

뉴스 보도 후 가해자는 구속되고
보육원은 폐쇄됐다.
이것으로 사건은 해결되는 것이라고,
역시 사회 정의는 살아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사건 이후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주던 보육원이 폐쇄되면서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던 청이는 다섯 살 연이와 떨어질 수 없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자신에게 온 연이.
연이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청이였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은 사건에 초점을 둔다.
사건 이후에 아이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우리의 사회는 더욱 문제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교육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지만,
일어난 이후에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이 책은 바로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 이후의 아이들의 삶.


어쩌면 아이들에겐 지금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마주해야 하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방관자가 되어야만 했던 비겁한 자신을 마주할 시간.
진실 앞에 자신을 세워야 하는 시간.
청이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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