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틈새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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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결혼과 함께 연고 없는 일산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동네 지리를 익히고 버스 노선을 파악하는 데만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 안에서도 삶의 터전이 바뀌면 이토록 서먹한데, 하물며 타국이라면 어떨까. 심지어 자의가 아닌 강제징용에 의한 이주라면 그 막막함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여성 서사'와 '디아스포라 소설'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금이 작가님.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분이 또 계실까 싶다. 전작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배경이 하와이였다면, 이번 『슬픔의 틈새』는 사할린이다. 한국의 추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척박한 땅, 러시아 사할린.


일제강점기 말,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일제의 노동력 착취는 극에 달했다. 탄광과 벌목장으로 끌려가 혹독한 노동을 견뎌야 했던 그곳에 노동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광부들의 가족까지 불러들인다. 주인공 단옥네 가족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사할린 땅을 밟는다. 그렇게 시작된 이주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릴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마저도 자유로운 왕래가 아닌 '제한적, 순차적'이라는 이름의 서글픈 귀환이었다.


주단옥, 타마코, 올가.
그녀의 이름에는 한 시대의 운명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 조선, 일본, 그리고 러시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휘몰아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그녀는 단옥으로, 타마코로, 다시 올가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모진 노동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광복이 되면 고국에 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귀국선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들은 조국으로부터 사실상 버려진 존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옥네와 이웃들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버틴다. 그 안에도 여전히 삶이 있고,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 절망뿐인 것 같은 삶의 틈새로 사랑과 기쁨, 행복과 환희가 차례로 찾아온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은 이렇게 늘 슬픔과 고통의 틈새를비집고 모습을 드러냈다. ” p.318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단옥, 타마코, 올가가 존재했을까. 깊은 상실과 배신감을 안고서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분투했던 수많은 이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먼지처럼 살아야 했던 그들의 아픔이 읽는 내내 뼛속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이금이 작가님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디아스포라 소설은 늘 '현재 진행형'으로 읽힌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언제 돌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반복되는 전쟁과 폭력 앞에 무력하게 노출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읽고 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결코 과거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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