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들 - 제6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황보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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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일고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지지 않고, 살아가는 게 괜찮은 건가 괜찮지 않은 건가.”
p.158~159


친구 정미가 죽었다.
그 후 1년 가까이 정미의 언니 유미는 현비를 찾아온다.
“정말 짚이는 데가 없어? 정미가 죽은 이유 말이야.”
현비는 계속 대답한다.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유미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죽음에 대한 답을 현비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읽다 보니 유미 역시 정미를 보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유라도 알면 조금은 괜찮아질까.
무엇이라도 알아야 떠나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정미가 왜 죽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다.
현비도 모른다.
어쩌면 누구도 알 수 없다.


정미가 죽은 뒤에도 현비의 삶은 계속된다.
전학을 가고, 친구를 만나고, 원하지 않는 일에 휘말리고, 때로는 누군가의 폭력을 바라보기도 한다.
별일 없는 듯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그런데 그 평범한 일상 속에 정미가 계속 있다.
죽은 사람은 사라졌는데 이상하게 더 자주 떠오른다.


현비의 마음도 그렇다.
“밥숟가락이 지나간 푸딩처럼 무언가가 내 안을 푹 떠간 듯했다.”
정미가 떠난 자리는 그렇게 움푹 파여 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안의 알갱이들이 조금씩 흘러내린다.
슬픔이 꼭 울음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닐 테니까.


어떤 사람은 매일 찾아오고,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계속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제대로 된 애도일까.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한다는 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는 [알갱이들]을 읽고 나서 오히려 모르는 채로 남겨두는 것도 애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떠난 사람의 삶을 내가 아는 이야기로 함부로 정리하지 않는 것. 이유를 다 알 수 없어도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품은 채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떠난 자는 말이 없으니 산 자는 살아가야 한다.
아마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사람과 완전히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말 없는 이와 동행하듯 그렇게 걸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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