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 호모 - 제1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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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기록한 리뷰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 끝내 남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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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99%가 사라졌다.
전쟁도, 전염병도, 핵폭발도 막지 못했던 인간의 세계에 붉은 몸을 지닌 자, 프라임이 나타났다.
그가 손뼉을 치자 ‘강림’이라는 재앙이 시작됐고, 세계는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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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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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거의 하지 않는 소녀 서브와
그녀를 보호하는 중년 남자 노먼이 자전거를 타고 폐허를 가로지른다.
목적지는 인류 재건의 희망이 있는 지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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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여행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여정이었다면 이토록 오래 마음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다.
노먼은 서브에게 생존하는 법만 가르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법을 알려주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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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무너진 세상에는 여전히 폭력과 욕망이 남아 있다.
인류를 다시 번성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고, 어린아이조차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모든 것이 사라졌는데 왜 인간의 폭력성만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그래서 노먼이 서브에게 가르치는 것들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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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도덕.
사랑.
어쩌면 문명이란 이런 것들로 유지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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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과 서브가 털털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흙먼지 날리는 길을 달리는 모습은 흡사 부녀의 여행처럼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지텍의 극장.
그곳에서 두 사람은 <오즈의 마법사>를 본다.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화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또 다른 빛깔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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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면을 지나면서 자꾸 책을 생각했다.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도 누군가는 책을 남기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읽으며 과거를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다음 세대에게 건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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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 것.
내가 살아가는 동안 꼭 보상받지 않아도 되는 것.
그럼에도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남겨두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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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책일 수도 있고, 윤리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겠다.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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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는 묻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상에서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사랑은 폐허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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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감 있는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문장 덕분에 책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읽힌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이전과 똑같은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에 읽었던 책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고,
책이라는 물건이 새삼스럽게 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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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다음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이 결국 인류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씨앗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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