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살다 (문고본) - 소설을 쓰기까지 먹고 듣고 읽고 느끼고 배우고 경험한 소설가의 모든 것 ㅣ 마음산 문고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쓰는 대신 살아내는 소설가

이승우 저, ‘소설을 살다‘를 읽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숙명이라는 생각을 나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취미 생활이나 여가 활동, 혹은 훈련, 노력, 열정만으로는 불가능한 직업이 소설가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책은 소설가로서의 이승우 작가를 가득 담고 있다. 소설가와 소설에 대한 그의 내밀한 생각들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소설은 소설가의 기억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라고 말한다. 한 소설가의 모든 작품은 그 소설가의 자서전이라고도 말한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이 되든 소설은 소설가를 담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서든, 굳게 닫아 두었던 기억의 저장고를 열어서든, 모든 소설은 소설가의 과거로부터 끄집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파헤치고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자라고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는 신문기자가 아니다. 이는 역사가가 기자가 아닌 것과 같다. 소설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해석하고 뒤틀고 삭제하고 추가하면서 변형을 가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은 건 아니므로, 소설가는 소설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변주해서 들려주는 재담꾼인 것이다.

그는 고백한다. 그가 쓴 소설의 거의 전부가 한 개인인 그가 집단, 혹은 세상과 만나 얻은 상처와 각성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그는 자아의 깊은 곳으로 침잠하여 성찰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한 소설가의 과거 이야기의 변주인 동시에 인간 본성의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고 보편적인 깨달음과 통찰을 얻는 것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이승우 작가에게 소설은 직업의 결과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소설은 전부인 것 같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소설을 쓰는지조차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그는 소설이라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다. 제목 ‘소설을 살다’는 문법적으로 틀린 게 아닌 게다. 

아직 책장에 이승우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읽지 않은 채 꽂혀 있다. ’생의 이면‘으로 처음 만났던 이승우는 내게 거부감이 일 정도로 굉장히 낯설었다. 그의 반복되는 문체가 거슬렸다. 그러나 하나둘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며, 특히 그의 산문들을 읽으며 소설가로서의 그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나의 선입견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다. 이 책 덕분에 소설가 이승우를 조금은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다. 이제 그의 소설들을 읽을 차례다. 제대로 소설가 이승우를 마주할 차례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 이승우 읽기
1. 생의 이면: https://rtmodel.tistory.com/1588
2. 사랑이 한 일: https://rtmodel.tistory.com/1628
3. 고요한 읽기: https://rtmodel.tistory.com/1960
4. 캉탕: https://rtmodel.tistory.com/2024
5. 소설가의 귓속말: https://rtmodel.tistory.com/2037
6. 소설을 살다: https://rtmodel.tistory.com/22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채로운 여백들을 텍스트로 그려내는 작가, 클레어 키건


클레어 키건 저,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고


- 작별 선물

성인이 된 한 여성이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영국 시골집에서 가족과 작별하는 순간을 롱테이크로 담은 초단편소설. 생리를 하기 전 얼마 동안 그녀의 이버지는 그녀에게 당연하다는 듯 성추행을 일삼았다. 어머니는 남편을 혐오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오빠는 아버지를 뒤이어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한다. 그녀는 오빠나 언니처럼 기숙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다. 모든 게 다 아버지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곳에 머문다는 건 곧 아버지로부터 영영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뉴욕행을 결정한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공항으로 가는 날 아침, 그러나 그녀는 상념에 잠긴다. 해방감을 만끽할 것 같았던 그날 아침 그녀의 발걸음은 유난히 느리고 무겁다. 태어나서 자랐던 그곳, 여전히 폭군이 지배하는 그곳, 그곳에 계속 어머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인사를 건네지만, 그는 별다른 말도 없고 배웅도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아버지의 방을 나와 욕실로 가서 손과 얼굴을 씻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오빠가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준다. 자기 때문에 오빠도 진작 집을 떠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 고마운 말이다. 그녀는 처음 가보는 공항에 도착해 오빠와 어색한 작별을 하고 수속을 마친 뒤 북받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화장실을 찾는다. 들어가 문을 닫기 전까지 울지 않는 데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기 식의 교본을 보는 듯한 작품이다. 해석과 설명은 순간의 장면들을 텍스트로 옮길 때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키건의 짧고 건조한 문장들은 말 없는 것들이 말하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는 것 같다. 이 신비한 힘에 한번 매료되면 독자는 어느새 키건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 오감이 열린 채 그곳에 서 있게 된다. 공감각적인 독서를 하고 싶을 땐 키건의 문장을 읽자. 


- 푸른 들판을 걷다

이 단편집의 대표작. 한 신랑 신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어느 사제의 일과를 그린 그림 같은 이야기. 후반부에 가서야 결혼식의 신부가 사제의 옛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제직과 연인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때 사제는 사제직을 택했고 연인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바로 그 연인이 오늘 같은 동네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사제는 끝까지 참석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상념에 잠긴다. 푸른 들판을 걸으며 당도한 중국인의 집에서 마사지를 받고 가벼워진 몸을 느낀다. 주인공인 사제의 번민이 느껴졌고, 그의 신앙과 사랑,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저 덤덤하게 느껴졌다. 아직 젊은데, 마치 가장 좋은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것 같은 묘한 아쉬움도 느껴졌다. 그가 걷는 푸른 들판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비록 마사지로 인해 가벼워진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에게 깃든 휑한 마음 탓인지 푸른 들판도 휑하게 느껴진 소설. 키건 특유의 여백이 휑함으로 느껴진 소설.


- 검은 말

사랑했던 여자를 객기로 떠나보내고 무기력함에 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리석은 한 남자 브래디의 이야기. 브래디는 여전히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럴 리 없을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다음날 무기력함에 패배를 당할까 봐 입고 있던 옷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신고 있던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매일 잠이 든다.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 하고 문득 생각하게 된다. 한 남자의 어리석음과 후회와 자책이 문장 사이사이에 연기처럼 스며든 소설. 긴 한숨이 나오는 작품.


- 삼림 관리인의 딸

성실한 일꾼이나 옹졸한 에고이스트였던 남자 디건의 몰락 과정을 그린 소설. 아내를 맞이한 것도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라 아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남자. 그의 작은 머릿속 마스터플랜은 오직 자기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것들을 하나둘씩 이루기 위한 과정 가운데 가족은 없었다. 혈육인 두 아들, 혈육인 줄 알았던 막내딸 (삼림 관리인의 딸, 유난히 똑똑했던 자녀, 나중에 알고 보니 디건의 피가 아닌 어느 날 장미를 팔러 온 외판원의 피였음), 그리고 아내 모두 디건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디건으로부터 사랑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면서도 남의 시선에 민감했던 남자 디건. 어느 날 지능이 떨어진 둘째 아들의 실수로 인해 디건의 모든 것이었던 집이 화재에 휩싸인다. "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어." 디건은 처음으로 인정하는 말을 한다. 아마도 디건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삶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두 번째 인생에는 가족이 있을까?

이 소설은 클레어 키건의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막내딸의 출생 비밀이 하나의 반전 포인트이긴 하나 키건의 여백을 강조하기에는 모자란 설정 같았다. 


- 물가 가까이

어릴 적 할머니 손에 자라 하버드까지 입학한 주인공 청년은 백만장자와 재혼한 어머니와 스물한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텍사스에 잠시 방문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듯하지만 아들이 하버드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한다. 불편한 식사를 마치고 홀로 해변을 산책하다 바다를 헤엄 치며 괜히 왔다는 후회를 한다. 리조트로 돌아가면 곧바로 비행 편을 변경하여 케임브리지도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까스로 해변에 도착한 그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항공사에 전화를 건다. 대답하려는데 어머니가 방에 들어와 서 있다. 그는 할머니를 생각한다. 바다를 너무도 사랑하셨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를. 

백만장자 새아버지, 하버드 입학이라는 설정만 제외하면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정환경이다. 부모의 이혼, 재혼, 그런 부모와의 좋지 않은 관계. 그러나 주인공에게는 할머니라는 고향 같은 존재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마음을 둘 곳이 있다는 건. 그는 아마 물가에 갈 때마다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 굴복

아일랜드 소설가 존 맥가헌의 '회고록'에 실린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가학적인 성향을 가진 듯한 한 중사의 일상 이야기. 약혼녀로부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편지를 받는 남자. 그러나 계속해서 타자로부터 은밀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인간. 하지만 너무 짧은 분량에 소개된 정보로는 주인공의 성향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해 아쉬운 소설. 


- 퀴큰 나무 숲의 밤

아일랜드 설화의 짙은 향기가 배인 소설. 이 단편집 중 환상적인 느낌이 가장 강한 작품. 결혼 약속까지 했지만 남자는 사제가 되어버렸고, 그의 아이를 낳았으나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세월이 흘러 사제가 죽었고, 여자는 사제가 물려준 집에서 살게 된다. 옆집에는 염소와 함께 사는 독신남이 기거한다. 어느 날 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둘은 두 집 사이의 벽을 허물고 같이 살게 된다. 미신을 신봉하는 그녀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동네 이웃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염소와 같이 사는 남자의 꿈은 현실이 된다. 여자는 아들과 함께 돌연 그를 떠난다. 그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내게는 키건의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았을뿐더러 설화보다는 환상소설로 읽혀 낯설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키건의 작품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환상적인 요소가 배제된, 일상의 세미한 부분이 갖는 여백의 미를 최대한 증폭시키는 류의 소설이 키건의 주무대가 아닌가 싶다.

- 총평

키건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여백들을 증폭시켜 텍스트로 그려내는 작가인 것 같다. 환상적인 요소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러나 자주 놓치고 마는, 일상의 조각들로부터 진한 여백의 미를 길어 올리는 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한국어로 번역된 다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영어 원문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키건의 문체는 원어로 더 잘 느낄 수 있을 테고, 그래야 제대로 키건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다산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 클레어 키건 읽기

1. 맡겨진 소녀: https://rtmodel.tistory.com/1740

2. 이토록 사소한 것들: https://rtmodel.tistory.com/1741

3. 푸른 들판을 걷다: https://rtmodel.tistory.com/2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나는 김애란


김애란 저, '그랬다고 적었다'를 읽고


정갈한 문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느꼈던 희열을 기억한다. 그런 문장들을 찾아다니며 어떤 작가에 한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문장으로 이루어진 비옥한 토양을 만날 때면 나는 뿌리를 깊게 내려 마치 모든 영양분을 흡수하려는 듯 게걸스럽게 그 문장들을 탐닉했다. 노트에 적고,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했다. 살다 보면 마음을 안정시킬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고, 움켜쥘 만한 문장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집착을 아마 비슷한 모양으로 가지고 있지 않을까. 


온라인 서점이 아닌 오프라인 서점에 갈 때마다 즉흥적으로 책을 사게 되는데, 이번에 내 손에 들어온 책 중 하나가 김애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였다. 수년 전에 썼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사람의 얼굴, 이야기의 얼굴, 일상의 얼굴, 이렇게 3부로 되어있다. 1부의 경우,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 김애란 작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와 AI를 대비시키며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전적인 이야기와 시대를 반영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2부와 3부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별로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을 한데 모아 분량을 채우려 한 것 같은 편집의 기술이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은 내게 성의 없음으로 읽혔다). 게다가 모두 코로나 이전에 쓴 글을 포함해서 과거에 썼던 글이라 신선함이랄까 하는 느낌이 없었다. 문장은 정갈한데, 유통기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지금 내 심정을 어느 정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으려나. 2부 중간부터는 정독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대충 훑어보게 되었다. 


김애란의 소설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산문집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적어도 김애란을 모르는 독자이자, 문장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작가의 눈에 이 산문집이 강한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김애란의 소설을 한두 편 읽고 다시 이 산문집을 마주하면 다른 느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읽어 볼 테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삼 분의 일 정도 읽다가 신형철의 문장이 엄청 고팠다. 집에 돌아가면 신형철의 책을 집어 들고 한동안 시간을 보내야겠다. 해독제가 필요하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난파선의 선장들 - 당장의 삶, 다가올 죽음, 그 사이를 채운 책에 관한 216일간의 대화
김새섬.김진경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항해사가 아닌 난파선의 선장들에게

김새섬, 김진경 공저, ‘난파선의 선장들‘을 읽고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면서도 인간을 항해사가 아닌 '난파선의 선장들'이라 부르는 이 범상치 않은 책은 2025년 4월부터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으로 투병 중인 지식 공동체 ‘그믐’ 김새섬 대표의 인터뷰집이다. ‘당장의 삶, 다가올 죽음, 그 사이를 채운 책에 관한 216일간의 대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인터뷰는 스위스에 거주하는 김진경 작가가 진행했다. 

인생을 단순히 항해라고만 여길 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단 하나였다. 그 그림 속의 나는 망망대해를 항해 중이다. 파도가 넘실대지만 충분히 헤쳐나갈 만해 보인다. 옆에는 돌고래 무리도 보이고, 햇살은 바다에 반사되어 눈을 찌른다. 나는 흰 반바지, 푸른 셔츠, 선글라스 차림에 미소를 띤 채 멋쩍게 키를 잡고 앞만 보고 있다. 장애물은 없다. 전진만 하면 된다. 인생은 모험이다. 

그러나 이런 스냅샷 하나만으로 인생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해 왔던 짓이다. 나의 인생은 가끔 폭풍우를 만날지언정 결국에는 순항하게 되어있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아무도 허락해 준 적 없고,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생은 스릴 넘치는 모험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끼워 맞춘 형편없는 정신승리의 그림 한 장을 내 인생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건 수치스러움이었다. 나는 내가 키를 잡고 있는 배가 난파당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도 안 되었다. 모험은 힘들지언정 계속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주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건 너무나 주관적이고 근시안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무하리 만큼, 어이없을 만큼 나는 어리석었다.

모든 항해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이 말은 모든 인생은 끝이 난다는 말과 같고, 또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나라는 인간도 끝이 있고, 순항을 누리던 내 인생도 머지않아 난파를 당할 거라는 말이다. 이것은 예언도 저주도 아닌 사실일 뿐이다. 모든 항해의 끝에서 모든 인간은 난파선의 선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완전히 옳다.

이 책은 우리가 탄 모든 배가 난파당하고 말 거라는 명징한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종종 삶을 추상적으로, 때론 낭만적으로까지, 보이게 한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사람과 그 언젠가가 바로 오늘일 수 있다고 아는 사람은 주어진 현재를 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자신의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생을 항해하는 배는 단 두 가지만 존재한다. 난파당한 배와 아직 난파당하기 전의 배. 난파 여부가 아닌 난파 시기의 차이일 뿐이다. 자기 인생의 난파 시기를 아는 것. 그 시기가 뜻밖일지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메멘토 모리!

이 책에서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부분은 김새섬 대표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의연함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의 모습을 나는 이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들으면서 누누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어쩌다 감정이 북받쳐 일기에 써 내려간 수줍은 고백이 아니었다. 본인 얘기를 마치 다른 사람의 얘기인 것처럼 말하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자기 연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마흔여섯 해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난치성 뇌종양 앞에서 ”Why me?"가 아닌 “Why not me?"를 묻는 사람이다. 

좋은 삶 없는 좋은 죽음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웰다잉은 웰에이징과도, 웰리빙, 웰비잉과도 직결된다. 이 책에서는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위한 조건들도 하나씩 짚는다. 난파선의 선장들이 삶에서 길어 올린 깊은 말이기에 우린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난파되기 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책을 모든 난파선의 선장들에게 추천한다.

김새섬 대표는 현재 교모세포종 재발 후 2차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중이다. 이 책 출간을 계기로 그믐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종종 들려주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기쁘게 다가온다. 부디 모든 확률을 뚫고 완치까지 난파되지 않는 항해가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어크로스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말할 것
장강명.정명섭.정해연 지음 / 빚은책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이웃, 동네책방

정해연 저, ‘결백’을 읽고
- 수북강녕 단편집,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말할 것' 중 세 번째 소설

마지막으로 안녕을 비는 한자어 ‘녕‘을 부여받은 소설이다. 역시 내겐 처음 읽는 작가의 글이었다.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범죄소설이었다. 설마 했던 반전이 그대로 일어나 맥이 좀 빠지기도 했지만, 단편소설의 장점을 잘 살린 데다 흡입력이 뛰어나 이 수북강녕 단편집의 마지막 주자로 손색이 없었다. 

소설 속 수북강녕은 친모 살해가 일어나기 전 부녀가 들른, 식당을 제외한 마지막 장소로 등장한다. 지금의 창덕궁 옆이 아닌 은평 한옥마을에 위치했던 옛 수북강녕이다. 

소설에서 수북강녕 대표는 동생 서희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풀뿌리라도 잡으려 안달 난 언니 진희에게 그날 오후 모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살인이 일어날 것 같은 낌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하는 진심 어린 목격담을 증언으로 써준다. 책을 구경하거나 사러 온 고객이 아님에도 환대를 해주는 모습, 동네책방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 동네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곤궁에 빠진 이웃을 돕는 모습이 묘사된 장면을 보며 나는 수북강녕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북토크차 방문했던 순천 동네책방 ‘서성이다‘ 역시 주변의 이웃들과 허물없이 인사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동네책방은 서점이기 이전에 동네 이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좋은 이웃인 동네책방, 책도 구경할 수 있고, 얘기도 나눌 수 있고, 차도 마실 수 있고, 북토크나 독서모임 행사가 열리면 참석할 수도 있는 동네책방. 이런 동네책방이 각 동네마다 하나씩 존재하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하는, 지금은 요원해 보이는 생각도 혼자서 잠시 할 수 있었다. 

한 지역의 안녕을 조사하려면 어느 곳을 살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해 본다. 인터넷으로 전 지구가 손바닥 안에 들어왔지만, 정작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웃과의 관계가 서먹해지고 멀어지고 사라져 가는 이 시대에 파수꾼으로써의 동네책방은 어떨까. 너무 낭만적인 말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안녕은 좋은 이웃의 존재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싶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헝클어진 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차아가 물성을 가진 책을 마음껏 구경하고 읽고 살 수 있는 동네책방이 그 좋은 이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낮꿈 꾸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을뿐더러 절대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수북강녕이 이 시대 우리나라에 남은 몇 안 되는 좋은 이웃 동네책방으로 영원하길 소망한다.

#빚은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