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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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남으로 채우는

마쓰시에 마사시 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혼자 사는 삶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언제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혼자일 때의 자유를 잘 알고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슴 한 편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찾아내고 또 사수하려고 애쓴다. 물론 혼자 사는 삶과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은 내게 있어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나는 이 시간이 좋고, 이 시간이 주는 유익을 사랑한다. 읽고 쓰는 일도 모두 이 시간에 이뤄진다. 그러나 이런 내 삶이 우아한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작품 제목처럼 말이다.

주인공 오카다 다다시는 사십 대 남성이다. 최근에 이혼했고 대학생 아들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산다. 요컨대 오카다는 돌싱이다. 이 작품은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 턱 하니 주어진, 그래서 감당하기 벅찬 자유 앞에서 주인공이 어떤 삶을 개척해 나가는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겠다.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항상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둘로 나누었을 뿐, 어쩌면 둘은 원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 있는 어떤 특정한 시간을 떠올려보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시간인가, 공간인가. 공간일 것이다. 공간이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정한 시간에 구속된 공간일 것이다. 

이 자명한 이치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카다가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되는 과정, 그 집을 리모델링하는 과정, 그리고 다시 그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집 짓는 계획을 세우는 과정 순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주인공 오카다의 돌싱 1년차 삶을 이 작품은 공간의 변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공간의 이동 가운데 ‘가나’라는 옛 애인과의 재회가 주어지고, 그녀와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독자의 시선을 가로채지만, 그 과정 또한 공간 이동의 플롯을 충실히 따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카다가 얻은 집에서 자전거로 십 분 거리에 우연찮게 가나가 살고 있었고, 작품의 마지막에서 오카다가 새로 지을 집 위치도 가나의 집 바로 옆에 위치한다.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새로운 공간의 이동으로, 그리고 그 시공간은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가 볼 땐 우아하게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삶.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 만남을 채워넣는 우리네 삶은 본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삶이지 않겠는가.

저자인 마쓰이에 마사시의 작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단번에 매혹되었던 나는 그의 모든 작품이 읽고 싶어졌고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내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의 마쓰이에 마사시를 기대했던 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나는 같지만 다른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상대적인 분량이 짧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만난 마쓰이에 마사시는 조금 더 간결했고, 조금 더 절제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조금 더 유머스러웠다. 굳이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여전히 식상한 주제, 혹은 뻔한 일상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아 마지막 책장까지 끌고 가는 그의 힘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전작 읽기 작가로 마쓰이에 마사시를 정한 건 아무래도 잘한 선택 같다. 꼭 배우고 싶은 글쓰기를 그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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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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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과 감사

켄트 하루프 저,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고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지도 이미 오래된 두 남녀의 교감. 너무 늦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용기 내어 남의 눈치 보지 않는 행복을 찾아나선 것일까. 어느날, 배우자를 잃은 지 한참 지난 칠십 대의 애디 무어는 같은 상황에 있는 이웃 루이스 워터스를 찾아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올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루이스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섹스 이야기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애디는 그런 루이스를 눈치채고 말한다. “섹스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궁금했어요.” “아니, 섹스는 아니에요. 그런 생각은 아니고요. 나야 성욕을 잃은 지도 한참일 텐데요. 밤을 견뎌내는 걸,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에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거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에디의 제안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루이스도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낸 후 혼자 밤을 지새우는 경험을, 그 외로운 나날들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둘은 금지된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칠십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을 행동에 옮긴다. 루이스는 가끔, 혹은 매일 밤마다 애디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애디와 루이스의 잦은 동침은 금세 동네 소문거리가 되었다. 내막을 알지 못한 채 표면적으로 드러난 둘 사이의 행동만을 보고 섣불리 내린 판단은 좋을 리가 없었다. 꼴사납다, 남사스럽다, 추태다, 등의 반응을 일으켰다. 급기야 루이스의 딸 홀리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아버지를 나무랐고, 애디의 아들 진 역시 가정 문제를 빌미로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가 어머니를 비난하고 면책했다. 유일하게 그들을 정죄하지 않는 존재는 손주 제이미와 애완견 보니였다. 주위의 좋지 않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애디와 루이스는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받아주고 만족한다면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맘먹었다. 이웃들이 그들을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늙은 남녀가 배우자가 죽었다고 해서 바람난 것처럼 밤마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었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보편적인 선입견을 개별적인 상황에 무분별하게 적용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암묵적인 폭력이었던 것이다. 

소설의 결말에선 끝내 둘의 관계는 예전처럼 유지되지는 못하게 되지만, 애디와 루이스에게 그 짧았던 기간은 서로에게 많은 치유와 위로를 안겨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밤에 이루어진 영혼의 교감은 나이와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 본성에 다다르는 그 무엇이지 않을까. 낮과 달리 밤이 가져다주는 고요는 적막과 외로움으로 이어지기 쉽고, 종종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벼랑 끝으로 개인을 몰아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긴긴밤을 그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것. 축복일 것이다. 나도 이젠 그런 사람이 매일 밤 곁에 있다는 사실, 또 내가 그 사람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한다.

#뮤진트리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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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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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해 준 작품


마쓰이에 마사시 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평생 잊히지 않을 작품. 반드시 소장해야 할 책. 곁에 두고 자주 읽으며 필사하고 또 외우고 싶은 책. 그 어디로 이사를 가더라도, 혹은 무인도에 가게 되더라도 가장 먼저 챙길 열 편의 작품 리스트에 당당히 오른 책. 아, 이런 축복이 또 나에게 주어지다니!


기발한 발상도, 놀랄 만한 사건도, 특별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 그러나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고 내 눈과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아버린 글의 전개는 작품을 읽는 내내, 그것도 장장 400 페이지에 걸쳐 지속되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어퍼컷처럼 체중을 실은 큰 한 방은 없지만, 무수히 많고 작은 잽들로 독자를 압도시키고, 나아가 중독까지 시켜버리는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말하자면 문체다. 탄탄한 문장력과 필력은 아름답고 고유한 문체로 인해 더욱 빛이 났다. 책을 덮고 내 마음은 보슬비에 흠뻑 젖은 옷처럼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들로 흥건하다. 그의 문체를 몽땅 흡수해버리고 싶은 강한 욕망이 부러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함께 지금도 내 안에서 들끓는다. 나는 문학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이다.


이 작품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10년 전인 2012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은 나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고전 문학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현대 소설이라니! 내가 지향하는 소설의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하나의 실례를 본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전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마음속으로 그렇게나 바라던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공간에서 턱 하고 마주치게 되었을 때의 마음이랄까. 그 당황스럽고 황당한 기분, 그러나 한 편으론 놀랍고도 감당하지 못할 것처럼 복에 겨운 이 감정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뻔한 내용을 뻔하지 않게 풀어낼 줄 아는 것도 능력이지만, 뻔한 내용을 뻔하게 풀어내면서도 독자들이 빨려 들어가며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은 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을 충분히 읽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것을 다 표현하지 않고 충분히 절제한 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화자의 독백을 이용하면서도 독자의 개입을 자유로이 허락하여 이야기를 함께 느끼고 즐기고 전개해나가는 방식. 이런 방식이야말로 이런 작품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팁이지 않을까 싶다. 진심으로 모방하고 싶고 내 것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문장들이 실로 넘쳐나는 작품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모든 작품을 보관함에 담았다. 연구할 가치가 차고도 넘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이 작품이 가지는 위상을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 책을 읽고 한국 번역본의 제목이 참 잘 지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니. 내가 작가로서 읽은 감상이 아니라 독자로서 읽은 감상은 정확히 그것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 한 구석에 여름 별장에서 현대 도서관 건축을 위해 보내던 주인공을 비롯한 무라이 슌스케, 또한 그의 사무소 가족들의 일상이 아련하게 남는다. 그리고 제목처럼 이 아련함은 아무래도 나에게도 오래오래 지속될 듯하다.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468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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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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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햇살에 비친 일상의 긴 그림자

가즈오 이시구로 저, ‘녹턴’을 읽고
비록 나지막하지만,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작은 단편집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단 하나다. 다섯 내러티브, 다섯 내레이터, 그리고 한 명의 작가. 이 엄연한 사실을 주지하기라도 하듯, 다섯 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음색과 같은 톤으로 채색되어 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목소리다. 묻히기 쉬운, 마치 읊조리는 듯한 그의 작은 목소리를 알아챈다는 것은 곧 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낸다는 말과 같은 의미라 생각한다. 그렇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는다는 건 평범한 일상에 녹아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수가 깃든,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이다.
나의 가즈오 이시구로 전집 읽기의 마지막 정거장인 이 작품은 부제에서도 밝히고 있듯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이다. 때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을 통해, 때론 노래하는 사람, 때론 음악 감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다섯 가지 이야기는 모두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비춘다.
특히 내레이터가 음악가인 경우, 이야기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아래의 삶을 조명한다. 여기서 무대 아래의 삶이란 쉬는 시간이라든지 휴일의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대 위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음악인들, 다시 말해 유명인의 대열에 끼지 못한, 성공하지 못했거나 이미 그 시기를 놓쳐버린 음악인들의 일상을 통칭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이름을 알린 음악인보다는 그렇지 않은 음악인들이 현실에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이 작품은 대부분의 음악인의 현실적인 일상을 조명한다고 볼 수 있다. 무명 음악인의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정오의 강한 햇빛이 아닌, 비스듬히 비치는 늦은 오후의 햇살로 조명한다고나 할까. 그로 인해 생기는 긴 그림자는 작품을 읽고 난 이후에 남는 여운이 된다.
각 단편은 이렇다 할 위기나 사건의 부재 위에서 잔잔하게 진행된다. 비루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훌륭하다거나 특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삶.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고는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정적이라거나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삶. 충만함이나 성취감보다는 결핍과 공허가 일상을 가득 메우는 삶. 차라리 형편없는 실력의 음악인이었더라면 그들의 빈자리는 그렇게 크지는 않았으리라. 차라리 그들에게 여전히 젊음이 허락되었더라면 그들의 여백엔 적어도 우수가 깃들진 않았으리라.
절반도 남지 않은 인생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음악인들. 한때 꿈이었던 삶을 뒤로하고, 여전히 미련을 가슴 한 편에 간직한 채 그 삶 근처에서 맴돌며 살아가고 있는 음악인들. 왜 나는 그들의 삶에서 내 인생을 읽어내고 아파하며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는 걸까. 왜 나는 어느덧 마흔 중반에 접어든 내 나이를 곱씹으며 텅 빈 공간을 응시하게 되는 걸까.
밋밋하지만 그게 바로 내 삶의 현주소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면 나는 조금은 우수에 차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그들을 향해 마음 담아 응원하게 된다. 무대 아래야말로 일상을 이루는 베이스캠프이며, 내가 나와 동지와 세상과 연대하는 곳 또한 다름 아닌 바로 이곳, 나의 허름한 일상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견딤의 미학 가운데 성실히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동지들아, 화이팅.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457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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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 - 사도신경에 담긴 그리스도교 신앙 해설
김진혁 지음 / 복있는사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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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에서 기독교 신앙의 신비를




김진혁 저,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를 읽고




저자 김진혁의 글을 처음 만난 건 그가 해제를 담당했고 칼 바르트의 절친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쓴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에서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이자 일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 책을 놓칠 수 없었다. 그 책을 통해 문학 속에 녹아든 신학을 맛볼 수 있었으며, 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 아닐까 하는 현재의 내 지론에도 이르게 되었다. 특히 김진혁의 해제는 도스토옙스키를 해제한 투르나이젠에 대한 해제, 혹은 두 거인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해제라고 볼 수 있기에 제삼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두 번째로 만난 책은 C. S. 루이스의 삶과 사상을 훑어보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상상력, 이성, 신앙의 조화를 촉구하는 ‘순전한 그리스도인’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물론 루이스의 작품도 대부분을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김진혁의 글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잘 정돈되고 겸손하며 잘 써진 글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나는 김진혁이 쓴 두 책에서 맛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는 그의 최신작인 이 책,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에서 정점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언뜻 보면 사도신경 주해인 것처럼 보이는 이 책은 부제에서도 밝히고 있듯 사도신경 그 자체에 대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기독교 신앙을 해설한다. 조직신학자이자 철학 박사 학위 소유자답게 저자 김진혁의 글은 사도신경의 각 조항에 담긴 교리를 신학의 언어만이 아닌 철학의 언어와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한다. 신학에 철학까지 가세했기 때문에 생각만 해도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신학 책 한두 권이라도 읽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이 상당히 쉽게 써졌고 가독성이 높으며 저자의 철학적인 관점과 해석 덕분에 오히려 다른 신학 책보다 더 풍성하다는 느낌은 물론 그것이 만들어낸 깊이까지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2021년 우드베리 연구소에서 ‘선교 현장을 위한 기독교 교리 해설’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연속 강의를 보완하여 엮었다고 한다. 교리를 기본적으로 다루되 신앙의 실천적 지평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책 소개가 내 시선을 끌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사도신경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역사적, 교리적인 지식을 넘어서 전반적인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신비에 대해 다시금 묵상할 수 있었고,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어야 할 바를 핵심적으로 요약한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이다. 십계명이나 주기도문처럼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도신경이 가지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통해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전 생애를 걸겠다는 공동체적 고백이 역사와 전통과 함께 오롯이 담겨있다는 점은 여러 교단의 신학을 초월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김진혁은 특정 교단 신학을 변증하듯 사도신경을 풀어내지도 않을뿐더러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개성 있는 생각과 주장을 조심하며 글을 써 나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관심 있는 비기독교인이 읽어도 치우치지 않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으로 기독교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기독교인에게는 입문서로써 손색이 없을 것이다.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은 사도신경을 읽어 내려가는 순서를 따르며 기독교 교리와 전통적인 신앙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1부 하나님, 2부 예수 그리스도, 3부 사람, 4부 성령과 교회, 5부 죄 사함, 그리고 6부 종말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 등의 조직신학적 주제를 가볍게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유일신론, 삼위일체론에 대한 부분도 좋았지만, 성자의 자기 내어주심에서 하나님의 전능을 읽어내는 전복적인 해석을 읽을 때 나는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창조와 새 창조의 대비가 아담과 그리스도로 표현되듯, 하와의 첫 불순종에 대비되는 마리아의 순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해석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또한,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이나 개척자가 아니라, 자신을 만드시고 자신에게 말을 건네며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반응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해 가는 존재”라는 문장을 읽을 땐 숨을 멈추고 책을 덮고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수동태적’ 존재”가 요구된다는 문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 주는 궁극적인 기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 ‘성육신한’ 말씀이어야 한다는 문장 역시 나를 환기하기에 충분했다. 




“‘거룩함’이 요구하는 ‘구분됨’과 ‘보편성’이 빚어낸 ‘개방성’ 속에서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이를 현실화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는 문장이나, “공동체에 현존하는 성령은 ‘다원성과 자율성’의 원천”이라는 문장을 접했을 땐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암담함이 떠올라 가슴 한 편이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사건으로서의 구원과 과정으로서의 구원의 의미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수동적 위치에 처한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셨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는 부분에서 균형 잡힌 칭의의 논리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종말론적 희망의 핵심 내용이 “죽음 이후 그리스도인이 경험할 진정한 피안은 단지 천국이 아닌 하나님 자체”라는 부분을 읽을 땐 전율이 돋았다. 부활과 영생 부분에 있어서도 삼위 하나님의 교제하는 삶에 영원히 초청되어 함께 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의 의미라는 문장을 접하고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이 책 덕분에 매주마다 참석하는 교회 예배에서 고백하는 사도신경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와 그 교리를 이루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점검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가 회복되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아무리 문학 책이 좋지만, 신학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아닌가 싶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복있는사람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454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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