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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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내린 단비처럼 내게 다가온 글쓰기 선생님

안정효 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고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글쓴이가 전면에 등장하여 자화자찬이나 연대기 형식의 지루한 자서전을 읊어댄다면 어떤 독자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글쓴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정보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글 역시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에세이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글쓴이는 가능한 자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위를 지혜롭게 조절해야 한다. 자신만으로 도배해서도, 자신을 죽여서도 안 된다. 한 편의 짧은 글이 아닌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면 이러한 수위 조절은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까지 내 돈 주고 사서 밑줄 그으며 읽거나 서점에 들러 주의 깊게 훑어본 글쓰기 관련 책은 스무 권도 넘는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은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드러난 정도에서 찾는다. 어떤 책 (소수에 해당)은 저자의 유명도가 거의 전부인 경우였고, 또 어떤 책 (대다수에 해당)은 마치 ‘ctrl c & ctrl v’를 한 듯 저마다 비슷한 내용을 정리해놓은 경우였기 때문이다. 전자는 글쓴이가 과도하게 부각된 경우에, 후자는 글쓴이가 사라진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독자로서 전자를 읽은 후엔 ‘저자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상만이 남았고, 후자를 읽고 나서는 저자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을 만큼 동일한 내용의 반복에 진저리를 치며 정독하지 못한 채 대충 훑어보다가 끝내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하곤 했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선생이 가르치냐에 따라 학생의 반응과 흡수력이 달라지는 법이다. 이 논리는 앞서 말한 글쓴이가 드러난 정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유명한 선생의 가르침이 그저 그 선생의 영웅담 정도로 요약되는 경우, 그리고 어떤 선생이 가르쳤는지 모를 정도로, 나아가 강의를 듣는 것이 교재만 쳐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르치는 주체가 증발된 경우가 각각 이에 해당된다. 요컨대 가르치는 선생과 학생 간의 거리, 그리고 저자와 독자 간의 거리는 가르침 혹은 책이 써진 목적 달성과 내용 전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강의가 아닌 에세이 형식의 글쓰기 책인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이러한 거리가 절묘하게 맞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모든 글쓰기 책에서 동일하게 언급하는 항목들, 이를테면 ‘접속사 사용을 줄여라’, ‘~것 사용하지 마라’ 등의 식상하지만 동시에 기본적인 가르침도 내겐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나의 글들을 꺼내어 찬찬히 읽어보며 점검할 수 있었고, 매일 하는 글쓰기에도 적용하려고 실제로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마치 글쓰기 책을 처음 읽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고 실천하기까지 나에겐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게다.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책이 아니다. 한 단계 더 세부적인 목적을 가진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글쓰기 기초에서부터 소설 한 편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소설 한 편 쓰기를 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있는 나에겐 이 책은 그야말로 ‘때마침 내린 단비’와도 같은 선물이었다. 

저자 안정효는 번역가이자 소설가이다. 평생을 읽고 번역하고 쓴 작가다. 1941년생이라 책에서 든 예문의 출처가 오래된 작품 위주이고, 그래서 1977년생인 내가 모든 글을 쉽게 공감하며 읽어내기엔 약간의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사소한 단점만 제외한다면 나에게 이 책은 최고의 글쓰기 선생 노릇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덧붙여 나는 글쓰기 기술만 배운 게 아니라 이 책 덕분에 안정효라는 작가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미적대던 나의 습작 소설도 덕분에 조금이나마 진도를 더 내는 계기가 되었다. 약 한 달 가량의 정독 기간이 전혀 아까지 않은 책. 글쓰기를 시작하고 살짝 슬럼프에 빠진 동료들에게 조용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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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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