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대장간 문고 3
배덕만 지음 / 대장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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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금번에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에 관한 책이 출간되어서 큰 기대를 하였다. 저자의 학력이 서울대 종교학과이고 한국의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국에서 신학을 전공하신 분이기에 더욱 기대를 하였다. 책의 내용을 대해 볼 때에 그것은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 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배경도 살펴보아야 하는 때도 되었다. 양적 성장이 가져온 부작용 그로 인하여 때로는 한국 기독교는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자조에 섞인 말도 내뱉을 때도 있다.

 

주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된 기독교, 한국의 기독교 한 때 1천만에 육박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기독교가 많은 양적 성장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미국에서 출발한 근본주의가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시대적 상황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성경적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나름대로의 순수함을 가져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제의 탄압시대에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면서 민족 독림을 위하여 열심을 가졌던 민족 종교 기독교, 공산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때로는 정권의 시녀와도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던 부분, 하지만, 경제 성장과 사회적인 개방화와 세계화로 인하여 세상적인 것이 큰 여과 없이 복음의 옷을 입고 들어온 것이 많음을 볼 수 있다.

 

그로 인하여, 기독교는 복음과 성경에서부터 멀어져 버리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회로부터 칭송이 아닌 비판과 손가락질을 받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타 종교나, 아니면 무종교로의 이탈 현상을 가져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금번에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책이 발간되어서 그 부분에 대한 것을 살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저자는 근본주의에 대한 부분을 서술하면서

먼저는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둘째로,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한국 교회의 현상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셋째로, 근본주의에 많은 영향 아래 있는 한국 기도교가 어떠한 것은 버리고, 어떠한 것은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을 또한 이야기 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교회가 지금이라도 바로 서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연구와 관심이 계속해서 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잘못된 부분, 개혁되어야 할 부분은 과감하게 나 자신부터 되어져야 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나 역시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지 약 130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교 2세기에 들어선지도 한참을 지났다. 한국 개신교가 양적 감소에 대하여 안타까워 할 것 만이 아니라, 이 땅에 정말 소금과 빛의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상황을 잘 파악하여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변화되고 탈바꿈 되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좋은 책을 저술한 배덕만 교수님과 출간한 대장간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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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해리포터에도 예수님이? 신앙여행시리즈 18
코니 닐 지음, 조은찬.최아라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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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해리포터에도 예수님이~~~!

요즘은 현실인지, 공상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가끔 있다. 가뜩이나, 베스트셀러고 많은 사람들이 애독하는 서적이나 영화를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해리포터라는 책이 그렇게 히트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보았는데도 나는 보지를 않았다. 단 한권도…, 그리고 교회 내에 있는 도서실의 서가에도 책이 꽃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빼보지를 않았다. 언젠가 서점에서 전시된 책을 한 번 들춰본 기억밖에 없다.

왜 그러했을까? 천성이 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다 이해가 잘 안되는 공상 소설은 더욱 그러하다. 환타지 소설은 더더욱!

너무 메마른 사람이지 않는가? 라고 내 혼자 속으로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에세이나 다른 책들은 좋아한다.

그래서 해리포터의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종교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손을 뻗쳐 거기로 향하는 것은 더 더욱 그러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해리포터 내 마음 속에는 “ 반 기독교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에‘어! 해리포터에도 예수님이~~~!’라는 책이 출간되자, 당연히 그 책에 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어떻게 해리포터와 예수님과의 관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나의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이 조금은 누그러졌다고 할 수 있겠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나의 고지식한 면이 이번 책을 통해서 사고의 폭을 넓혔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았더 책인데 그래 나도 형편이 되어지는 데 까지는 해리포터를 한 번 살펴 보아야 겠다. 라는 조금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다.

물론 시간의 효율성을 따진다고 한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느낀점은 해리포터에 많은,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삶의 자리”라고 하는 단어가 있다. 그 사람이나, 어떤 사상, 혹은 어떤 이론 들이 형성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것이 형성되는 삶의 자리가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상황과 주변 여건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리포터도 그러한 방면에서 책이 쓰여졌을 것이고, 또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 해리포터를 살펴 보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어떻게 해리와 예수님을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을 모델링해서 그 사람의 형상을 닮아가고 만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해리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을 찾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많은 비약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어떤 기독교적인 내용, 복음의 흐름이 있다고 하면 모르지만, 너무 확대해석 한 것이 아닌가? '어! 해리포터에도 예수님이‘ 를 쓴 저자의 뛰어난 상상력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자 하고, 또 해리에게서 예수님의 모형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비약이라고 생각이 되어진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너무 비약되었다고 보아진다. 물론 어떤 인물을 예수님과 같은 동일인물로 형상화해서 나타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복음이나, 메시지나, 아니면, 예수님의 인격적인 부분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묻어 나와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수님의 형상을 구약에서 노아, 요셉, 모세, 다윗등에서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해리= 예수님]의 등식은 도저히 상상이 되어지지 않는다. 비유를 하되 조금 실현 가능하고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감안해서 해주었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의 이러한 평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도 있다고 하는 것을 살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금번에 이 책을 통해서 느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눈을 뜰 수 있는 좋은 주안점을 제공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낀다. 책을 통해서 안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부분 중에도 하나이기에 그리고,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가능성도 충분하고, 시도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꽉 막히지 않는 아름다운 시도와 비평이 함께 하면 더욱 좋은 결과물들이 나오올 것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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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들어쓰시는 여인 - 부르심에 순종함으로 들어쓰인 여인들
정영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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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들어쓰시는 여인

지구의 절반은 남자! 그 나머지의 절반도 여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정확히 얼마나 될까! 거기의 대답은(?) 지금도 이 땅에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지런히 창조주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이 땅에 살다가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그것 역시 묵묵부답(??)이라는 표현을 써야 정확할 것이다. 아니 유구무언이다. 결코 알 수 없기에 말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많은 인구 가운데 여성들이 큰 소리를 치고 살았던 때와 나라, 그러한 시대는 별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많은 국가들이 여성에 대한 권위와 평등 에 대한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국가들이 여성에 대한 부분이 미약한 형편이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이 생활하셨던 이스라엘 초대 기독교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그 때에는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은 숫자에도 계산하지 않았으니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한 시대였음은 누가 보아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그 시대에 예수님이 사역을 하시면서 과연 여인들이 빠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이 증거 되는데 있어서 그 일들이 과연 원활하고 잘 이루어졌을까? 물론 하나님의 일이기에 부지깽이라도 들어서 쓰신다고 말씀하셨기에 누가 하든지, 그 일을 맡을 사람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이름없는 여인,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여인,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여인들을 사용하셔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실 때에 준비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다시 오실 것을 준비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여인”16 명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어찌 이 책에 기록된 여인들만 하나님이 들어 쓰셨겠는가?

구약의 많은 여인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오실 것을 준비시키셨고, 예수님 승천 후, 오늘 이 시대까지도 많은 여인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것을 이루게 하셨다.

힘없고, 나약하지만, 섬세하고 자상하고 자비로운 여인 그들을 통하여 강하고 크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고, 앞으로 주어질 새하늘과 새 땅도 준비하시는 줄로 믿는다.

16명의 여인, 그들은 신약에 등장한 여인들 가운데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여인들이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 첫 부활을 지켜본 여인들, 그리고, 로마서를 전달한 여인 뵈뵈, 등등,

강하고, 부유하고 힘 있는 남성들도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적재적소에 그녀들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셨다.

특별히 이 책은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부드럽고도 섬세한 필체를 사용하여 16명의 여인들의 면면과 사역을 아름답게 펼쳐 나가고 있다.

이 책을 볼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사용하셨는가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은 부분까지 잘 보여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여성들의 사역과 사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 교회에서 여성들의 사역을 좀더 확장 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줄로 확신한다. 간절히 바라기는 독자들이 이 책에 많은 은혜를 받으며, 이 책에 기록된 내용과 같이 잘 봉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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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선 그리스도인
엘렌 오트 마샬 지음, 대장간 편집실 옮김 / 대장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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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생이 성장하고 생활하고 있는 삶의 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에 대한 사상과 관습이 형성된다. 물론 저자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의 자리와, 그가 학문한 학업의 방향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연구결과가 나와서 본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 책은 그 사람의 사고와 인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는 신학자로서 자신의 신학체계를 정리하고 강단에서 가르치는 교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광장에 선 그리스도인”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대하여 어떻게 처신을 하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나름대로 일관성도 있고, 주장에 대한 설득력도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구라고 이야기 하는 아메리카나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이 주장이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된지 약 130년 밖에 안된 상황에서 정치에 종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는 순기능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역기능적인 요소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나, 한국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는 달리 종교가 정치에 깊게 관여하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물론 정치가 바르지 않는 부분으로, 백성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그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 종교가 정치에 깊숙한 관련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영향을 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서로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협조하는 상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를 거부하는 신앙으로 사랑과 윤리적 모호성 그리고 신학적 겸손함을 그 방법론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정치와 어떠한 관련성을 가져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나름대로 신학적인 근거와,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가운데서 교회와 성도들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적 정치 상황과, 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지도와 기대치이다. 물론 교회와 성도가 그들로 인하여 가야할 길을 규제받아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교회를 향한 기대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기에 어느 정도의 상황에서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적절한 부분을 설정하고 융통성있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식견을 가진, 신학자와 목회자가 정치에 대한 교회의 대응방안을 연구하며, 모든 기독교인들이 거기에 적절한 상황을 유지하면서 정치가 바른 틀을 가지고 통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정치에 대하여 시녀가 아니며, 정치 역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시녀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가 되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가 될 수 있도록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에 바른 정치가 되어질 수 있을 줄로 믿는다. 교만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의 바른 역할, 현시대와 미래의 시대상을 제시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러할 때에 교회가 바른 방향으로, 이 땅의 정치가 올바른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자리 안에서 협력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와 정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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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어깨통증 - 어깨.팔꿈치 통증은 반드시 낫는다!
오경화 옮김, 후쿠다 치아키 감수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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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이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인생 40이 되면 아픈 곳도 많이 늘어난다고 하였다!

특히 컴퓨터를 하면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것이 거짓말인줄 알았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보통 두 세 시간씩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도 그 당시에는 별로 아픈지를 몰랐다. 하지만 2-3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의 증상이 나타났다. 어깨가 한 쪽으로 기울여지고, 고개도 한쪽으로 기울여졌다. 거기에 손 떨림현상까지 여러 가지의 치료를 받기도 하였지만, 손쉽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이른바 고질병이라고 할까!

나만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 그랬다, 병은 알리라고 그래야 치료법이나 예방법도 들을 수 있다고. 그런데 직업이 나의 고통을 남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물론 외향적인 성격이라 잘 얘기도 하고 했는데, 그런데 동일한 직종에서 근무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만이 그런것이 아니었다. 약간은 소심하고, 컴퓨터를 많이 하고 긴장을 하는 스타일은 나와 같은 현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의 노력으로 지금은 많은 회복은 가져왔지만, 완전한 회복은 힘들다. 그런데 금번에 굿바이 어깨통증이라는 책을 대하게 되었다. 어깨와 팔꿈치 통증이 회복되고, 증상 완화에 좋다는 것이었다.

책을 펼쳐들었을 때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번역서인데 이렇게 그림 설명을 잘 해내다니, 그리고 증상과 통증에 연관된 운동과 처방법도 잘 소개 되고 있다. 거기에 오해하고 있는 상식과, 적절한 운동 혹은 처방법이 연세가 많은 분들도 이해하기가 쉽게 되어 있다. 특별히 통증에 잘 듣는 여섯 가지의 방법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한 두번씩 들어본 내용도 있지만, 재활의학이나, 맛사지 혹은 카이로프락틱 혹은 여러 곳에서 받는 것은 그 때만 지나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또 혼자서 그것을 하는 것은 쉽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천천히 통증을 풀어나가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줄로 생각을 한다. 아픈 사람의 심정은 아픈 사람이 안다고, 이러한 부분을 이야기 하니 또 귀가 솔깃해 지는 주변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이내 또 알려주고, 함께 치료법이나 예방법을 나누게 된다. 아픈 부분을 서로가 이야기 해야 치료법도 예방법도 알 수 있다. 자기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건강만큼은 서로가 공유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특별히 통증에 관련된 부분은 자신이 많은 노력을 해야 완화되고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법에 따라 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남용하지 아니할 때에 부작용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체조와 운동이다. 간단한 체조라도 꾸준히 매일매일 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운동을 하게 될 때에 분명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리 미리 예방하고, 심하지 아니할 때에 풀어나가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질병 예방법이요, 퇴치법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근육이나, 뼈에 관련된 것은 방치하면 고질병이 될 수 있으니까! 늦기 전에 손을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좋은 책을 대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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