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46년 10월 25일 캐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한 강의실에선 철학사에 있어 두고두고 회자 될 미증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초청 연사로 나온 칼 포퍼와 그의 강연을 듣던 희대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도중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집어들고 포퍼를 위협한 것이다. 그리고는 제지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 사건의 현장에 버트런드 러셀을 비롯해 여러 명이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책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이 두 인물의 삶을 역추적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간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은 취미삼아 읽기엔 너무 가혹할 뿐더러 애초에 감히 읽을 엄두가 나지도 않지만 그를 지적영웅으로 떠받들었던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에는 흥미가 생겨 희미한 냄새나마 맡고자 제일 만만해 보이는 책을 골랐다.
빈학파는 헤겔, 칸트 등의 독일 관념론을 비판하며 철학의 주요기능은 형이상학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에 의해 사용되는 개념을 날카롭고 명징하게 다듬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들이 보기에 관념론은 안개같은 흐릿함, 허풍, 혼란이 뒤섞인 잡탕일 뿐이었다. 또한 이들은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따라서 가만히 앉아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칸트의 주장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 그저 오류일 뿐이었음이 밝혀진 셈이었다. 그간 이런저런 철학책에 등장하는 형이상학적 진술을 되풀이 읽으며 현실과의 아무런 접점을 찾을 수가 없어 명치께가 답답해짐을 느끼곤 했는데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은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이거야!를 외치게 만드는 그런 뭔가가 있었다. 송과선의 기능에 대해 헛다리를 짚었다는게 과학적으로 밝혀진 이상 데카르트의 극장에 대해 더 이상 무의미한 논쟁을 지속 할 필요가 있을까? 뇌과학과 영혼의 존재는 또 어떤가?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없으며 언어적 수수께끼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논리실증주의 였지만 그러나 그것 역시 내부적으로 해결해야할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고 이 책을 통해서는 그런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는 매우 도움이 됐다. 개인적으론 포퍼와 비트겐슈타인의 라이벌 구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지라 성장과정을 서술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길고 좀 지루했지만 재밌고 가벼우며 또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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