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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재킷 ㅣ 창비청소년문학 127
이현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이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라이프 재킷』’ 가제본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창작과 비평)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이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각 개인의 삶에서 성장통을 겪는 모든 아동·청소년과 청년들을 생각하며 이
서평을 남깁니다.
https://pedagogics.tistory.com/183 [Magister Ludi:티스토리]
‘라이프 재킷’ 즉 우리말로 ‘구명보트’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요트 탈래?’ 라는 한 남고생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고등학생 ‘천우’가 전학이 확정된 이후, 부산의 바닷가에 있는 부모님의 요트를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것이 그 발단이었다. 천우는 스토리를 빛삭(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삭제)했지만, 찰나에 그 스토리를 확인한 천우의 친구들이 정말 천우가 태그한 부산 마리나 8번 계류장에 나타난 것이 그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천우는 돛을 올리는 법을 모른다, 실은.
전혀 모르지는 않지만,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돛만이 아니다.
천우는 요트 모는 법을 모른다, 실은.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스토리를 올렸다.
돈 냄새 풀풀 나는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를 배경으로 ‘신조호’는 잘리고
‘천우’만 나오도록 비스듬한 각도로 요트를 찍은 사진이었다.
해시태그도 주르르 달았다.
#우리집요트 #돛을올려버려 #천우신조호 #해운대라이프.
물론 #플렉스_릴랙스도 빠뜨리지 않았다.
평소 가장 애용하는 해시태그였다.
- 이현, 「2부 하루 전」,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1쪽.
스토리를 올린 당사자인 이천우를 비롯해 스토리를 보고 계류장에 나타난 천우의 친구 김노아, 같은 반 급우 서장진, 전학생 정태호, 천우의 옛 여자친구 고은의 절친 류 그리고 얼결에 오빠가 벌인 일에 함께 엮여버리게 된 여동생 ‘신조’까지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출항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만 출항과 입항을 해본적이 있었던 천우였지만 천우도 간단한 출항 정도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시간을 계획한 그 출항은 천우신조호가 안개의 바다속에 갇히면서 하루를 꼬박 넘기게 되었다. 아이들의 조난과 함께 아이들 개개인의 서사가 하나씩 떠오르면서 소설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각각 큰아버지와 이모 댁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천우와 신조 남매의 불안감과 외로움, 그리고 스토리를 올린 장본인이자 요트에 붙은 압류장을 떼어버린 천우에 대한 약간의 원망감과 더불어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고 싶고 오점을 남기지 않고 싶다는, 노아의 완벽주의와 부담감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 그러한 마음이 내 안에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가 있었다. 마리나로 돌아간다고 끝이 아니었다.
천우를 기다리는 어떤 결과가 있었다.
어쩌면 노아 자신을 포함한 다른 애들에게도 얼마쯤 그럴 터였다.
그 때문에 지난밤에 신고를 말렸다.
노아도 겁이 났다. 압류, 형벌, 법원,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막연히 법적으로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교에서는 얘기가 다를지 몰랐다.
그건 노아가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단 한 줄의 오점도 허락할 여유가 없었다.
노아에게는 완벽한 생기부가 필요했다.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57쪽.
‘천우신조호’ 그 배에 함께 탄 모든 아이들이 각기 다 나름대로의 개인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떠나고 싶지 않은 부산을 떠나야만 하는 천우와 신조, 특히 천우는 그로 인한 불안과 불만을 약간의 허세로 표현한다. 완벽한 생기부를 만들어야만 하는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애써 모든 것을 충실하게 해야만 하고 욕구를 눌러온 노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를 결정하게 된 류, 초등학생 시절부터 수영선수로 살아왔지만 수영에 회의감을 느끼고 수영부를 그만두게 된 장진, 할머니와 같이 살아왔고 자신의 강아지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는 외로운 전학생 태호.
노아의 다른 친구들은 노아가 어째서 이천우 같은 애랑 친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우의 친구들도 어떻게 천우가 김노아 같은 애랑 친할 수 있냐고들 했다.
숨이 막혀서 어떻게 같이 다니냐는 거였다.
그건 정말 멋모르는 소리들이었다.
천우는 노아가 오히려 편했다.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기분이었다.
노아랑 같이 있으면 브레이크가 따로 필요 없었다.
김노아면 충분했다.
노아가 와 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바다로 나오지 못했을 터였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21쪽.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반장이었고,
그 직함에 어긋나지 않는 학생으로 마땅히 주어진 대가를 받았을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다가오는 날들을 꼬박꼬박 살아 내는 것이 노아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이현, 「5부 섬」,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60쪽.
그 모두가 나름의 취약성을 지니고 있는데, 배에 달린 구조물인 ‘붐’으로 인해 장진이 사고를 당하여 목숨을 잃는 순간부터 아이들의 취약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장진의 죽음 앞에서 혹시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 신고를 외면하거나, 친구의 죽음 때문에 너무나 슬프고 충격을 받으면서도 자신은 살아야만 하는, 너무나 취약하고 인간적인 아이들의 모습들.......
투둑.
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계기판 아래 페달에 묶여 있던 노란 밧줄이 스르르 풀려나는 것을 보았다.
붐에 연결된 밧줄 중 하나였다.
그 또한 그저 기억인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 들려온 끔찍한 소리였다.
퍽!
- 이현, 「3부 그날의 바다」,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82쪽.
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장진은 죽었다. 죽어 버렸다.
그 생강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궁금해하지도 않으려 했는데
그만 더없는 모습으로 들이닥쳤다.
장진을 생각하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장진을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류는 움직이고 있었다.
장진에게 눈길을 사로잡힌 채 울면서도 몸은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 이현, 「4부 표류」,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145쪽.
천우의 여자친구였던 고은이 스토리를 보았기에 아이들의 실종을 신고했고, 아이들은 돌아올 수 있었다. 일본 해역까지 흘러들어갔던 배의 조난이 끝나고, 아이들이 발견되어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6부에서 그러나 아이들의 삶은 출항 이전보다 더 망망대해에 놓였다고 느껴졌다. 그러니 6부의 제목이 「여전히 항해」인 것이리라.
여전히 취약하고, 어쩌면 그 취약성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함께 배에 올랐던 그 아이들 모두 충분히 ‘성장’했다고 느낀다.
노아는 생에서 처음으로 부모님을 거슬러 ‘장진’의 빈소에 가고자 하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내며 늘 어른들의 뜻에 따르던 착한 아들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며, (262쪽) 태호는 고은을 새로운 존재로 재인식했고(253쪽), 류는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살아 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마주했다. (250쪽) 그리고 또다른 깊은 아픔을 경험한 신조는 전과 다른 삶을 다짐할 수 있게 되었다. 파도에 삼켜지지 않고 파도를 스스로 헤쳐가는 개인.(270-271쪽)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은 마음에 드는 설정만 골라 편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다는 천우신조호였고 장진이었고 장진의 엄마였다.
호주의 바다는 부산의 바다였고 그 섬의 바다였다.
이야기와 삶은 달랐다.
삶의 이야기는 만드는 게 아니었다.
살아 내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편집은 작가의 몫, 그것만은 달랐다.
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원하느냐고, 어떤 이야기를 살아내고 싶으냐고.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50쪽.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후회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삶은 바다처럼 무정한 것이다.
파도의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바다가 신조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럼에도 파도에 삼켜지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신조는 그러기로 했다. 단 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이현, 「6부 여전히 항해」, 『라이프 재킷』, 창비, 2024, 270-271쪽.
책을 완독하던 시점(2024년 8월 2일)과 달리 서평을 쓰는 지금(2024년 8월 11일)은 개인의 체험이 바뀌기도 했고, 서평을 쓰기 위해 책에 표시한 문장들을 다시 흝으며 책에 대한 인상이 매우 달라졌음을 느낀다.
완독 직후에는 아이들의 취약성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작품을 다시 마주한 현재, 나는 비로소 이 아이들의 성장을 읽었다. 모든 주변인들이 사고를 겪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존재, 혹은 무모한 행동으로 친구를 잃게 한 비난받아 마땅할 아이들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한 발짝 성장했다고 여긴다.
물론 소중한 이를 상실하는 경험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아픔으로 인해 비로소 아이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마주하고, 그 취약성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자기 삶의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창비 청소년문학에서 표방하는 ‘성장’은 비단 청소년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 나 역시 성장하고 있고, 그 취약성을 여실히 마주하고 있다. 자기비난과 자책, 후회의 굴레 속에서 내 안의 취약성을 오롯이 마주하고 안아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나한테 내는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아직 그것이 어려운 한 개인이기에, 이미 어른이 된 내게도 이 작품은 성장,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귀한 작품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상실의 고통과 자기비난의 목소리, 관계에서의 상처, 학교(사회)부적응 등 많은 상처를 마주하고 그 취약성과 함께하는 수많은 아동,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이 서평을 바치며, 좋은 어른으로서, (전문상담)교사로서 특히 아동,청소년들의 마음과 함께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좋은 책을 마주하고, 이를 넘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이현작가님과 창비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4년 7월 26일 기준, 정식 출간본 링크입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68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