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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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창비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전문상담교사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창비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 출판사,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와 전국의 모든 동료 전문상담교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울은 때로 타고난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애초에 우울의 뿌리를 찾았던 것은 문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가족력과 같은 통제 불가 요인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울을 발현하게 한 또 다른 뿌리를 찾아야 했고, 상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6쪽.
차열음 작가의 에세이,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는 저자의 자기고백이 담긴 글이다. 이제는 20대 성인이 된 저자가 중학생 때 거식증과 우울증을 겪어내는 과정을 회상하며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가 경험한 청소년기 거식증과 우울증의 증상과 그 내면을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어 거식증이 발현된 원인부터 우울과 관련된 가족력, 거식증에 이어 폭식증이 나타나면서 섭식장애의 양상을 지니게 된 촉발요인과 유지요인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의사인 부모님을 두고 있던 열 네 살의 저자는 학업으로는 동생만큼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경험으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과 인정에 몰두하게 된다. 그 열 네 살 아이의 인정욕구가 다이어트와 외적인 미(美)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져 거식증이 발현한 것인데, 상담과 병원치료의 여정 중에서 급작스런 환경의 변화와(급작스럽게 결정된 전학) 교사 및 친구들로부터의 낙인 등의 선행사건들이 저자가 자살 시도와 자해 등 위기이슈로까지 나아간 일들이 16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 속에 상세히 그려진다.
평생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살아왔으며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 왔지만, 직업적인 이유로 속해있는 연구회 단톡방에서 서평단에 참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왜 출판사에서 그 많은 교사들 중에서도 한국전문상담교육연구회의 전문상담교사들이 읽고 서평을 쓰기를 가장 바랐는지 그제야 알 듯했다.
이 책은 저자가 거식증과 우울증을 지나 성장해왔다는 내용의 자기 고백이 담긴 단순한 에세이임을 넘어서, 충분히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온전히 수용되는 무조건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고 그 경험을 갈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그려내고 있다.
짧은 교직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저자의 청소년기와 같이 그런 고통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을 작년에 가장 많이 만났다.
작년에 근무한 전임교는 내 전문상담교사 경력 중에서 – 아니, 교직 경력 중에서 가장 힘들었고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고통스러웠던 학교임이 틀림이 없다.
위기관리위원회를 1년에 여덟 번 열었고,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돌아가는 학교의 4계절 중 자살시도만 최소 4월(학기가 시작된 조금 후), 7월(방학 직전), 8월(2학기 개학 이후), 10월, 12월(2학기가 끝나가는 시점) 다섯 번 이상은 있었으니 말이다. 약물 과다복용, 투신 시도 등…….
가장 많은 아이들이 약물을 과다복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담교사로 상담을 하고 관련 위원회 업무를 맡아 준비해야 했던 나 역시도 반복되는 자살시도 사안에 많이 힘들었지만, 시도를 해야만 했던 아이들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는 와중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거겠지.
저자의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니 작년에 잠시나마 선생님도 힘들어, 제발, 살아만 있어줘, 라는 기도를 반복해서 올리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 아이들이 시도를 결심할 용기를 내기 직전에 나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야 하나...?
‘가방에는 집에서 몰래 훔쳐 온 수면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어디선가 봤는데,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자는 듯이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거식증이나 우울증 환자가 전보다 활력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 시기는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정신적인 회복 전에 약과 식이 조절로 몸이 먼저 활력을 찾게 되면서 실제로 이 시기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으나 마음먹은 것을 실행할 만큼의 몸의 기력은 생겼기 때문이다. ’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89쪽.
‘언니 오빠들과 있다 보면 자유롭게 나는 것 같다가도, 공기가 없는 공중에 표류하는 것같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때 컴퍼스나 커터 칼 같은 것으로 손목을 그으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예전 학교에서 어울렸던 친구의 말이 맞았다. 그 친구의 팔뚝에는 늘 붉은 별이 그어져 있었다. 컴퍼스로 그은 별이었다. 아빠에게 맞아 화가 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분이 풀린다던 그 친구의 말처럼 예리한 고통은 순간적인 쾌감이 되었다. (중략)
스트레스를 자해로 푼다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우울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름의 SOS 신호였던 것이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10-113쪽.
한편 저자가 거식증으로 인해 상담을 받는 장면을 그려내는 지점에서는 저자보다도 상담자의 발화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자살시도를 하고도 자퇴를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아이들이 그들이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처럼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거부하고도) 자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잘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병원 치료를 더 설득하고 내가 연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걱정하던 내게, 작년 4월 한 내담학생이 해 준 말이 떠오른다. 자살시도 이후 바로 연계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조력했지만, 끝까지 자퇴를 고집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걱정만 하는데 왜 제가 잘 될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사실 지금의 내가 1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기댔으면 좋겠고 할 수 있는 만큼 제도 안에서 상담과 치료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불안과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상담교사로서 상담을 하며 내가 만나는 내담학생에게 불안과 걱정을 티내거나 훈시하지 않고 저자가 만난 상담자처럼 따뜻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한 걸음을 늦추며 내담자에게 맞추는 상담자로 자리하고 싶다. 적어도, 다른 곳에 찾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Wee클래스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하러 편히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먹는 걸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들을 때마다 짜증 나요.”
“그래, 선생님이 이따가 이야기해 둘게.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지.”
“사실 할머니는 더 심하긴 해요. 방까지 쫓아와서 먹이려고 하는데 짜증 나서 가출해 버리고 싶어요.”
선생님과 있을 때는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좋았다.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먼 발걸음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상담실의 체중계와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0-51쪽.
“이번 주 식단 일기는 지난주보다 빠진 부분이 많네. 식사를 거른 거야?”
“…….”
“뭐라고 하는 거 아냐. 그래도 시간은 맞춰서 먹기로 했었지? 먹고 싶은 만큼 조절해서 먹고, 먹은 것만 잘 적어 보자.”
무리해서 다가오려는 엄마보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아빠보다
모든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사랑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가족보다 이성적인 타인이 때로 더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52쪽.
살기 위해 자해를 하고, 고통의 끝에서 조금 더 안전한 방법을 고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많은 아이들이, Wee클래스/Wee센터/병원/사설 상담센터, 그 어느 곳이라도 좋으니 그들에게 가장 가깝고 편한 곳을 찾아갔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한 사람이기에 많이 나약하고 부족하지만, 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고통은 당연하다고, 아픔을 느끼는 네 마음이 너무나 옳다고,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밀고 곁에 머무르고 싶다.
‘너를 응원한다고, 작고 연약해진 너의 이런 모습마저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6쪽.
‘물론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가 모든 우울을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주벼에서도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병행했지만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다. 살아온 시간이, 삶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테니 문제를 벗어나는 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담과 약물을 통해 문제가 나아지는 경우도 있은 병원은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주요한 방법 주 하나임은 틀림없다.
정신 병원은 학교와 같다. 환자는 모두 학생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마음을 진단하는 법을 배우면 된다. 다음에 더 강인해질 수 있도록, 다음 우울엔 더 의연히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도움도 받아 본 사람이 청할 줄 안다. 우울도 겪어 본 사람이 이길 줄 안다.’
- 차열음, 『열네 살 우울이 찾아왔다』, 창비, 2024, 148-149쪽.
전문상담교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2023년을 잘 버텨 내고(수많은 위기사안들에 소진이 심해, 작년에는 블로그에 서평을 많이 써내지 못했다), 2024년 블로그에 올리게 된 첫 서평이 이 책이었기에 더욱 유의미하다고 여긴다.
나는 학창시절 외로움을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당시에는 몰랐지만) Wee클래스가 부재하고 상담교사가 없던 시절 교과 선생님들의 지지와 격려 덕에 자라났기에 평생의 업(業)으로 교사를 목표로 하게 된 아이였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복수전공할 때만 해도 내가 전문상담교사로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교직에의 첫 동기와 가장 밀접한, 전문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도 상담을 받으며 나의 비합리적 신념을 수정하고자 노력하고(가령 상담교사로서 상담에서 실수하면 다 망할 것 같다는 비합리적 신념? 지난 주에 상담자분과 찾아봤는데 근거가 1도 없더라~)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한 개인이지만,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담을 경험하는 전문상담교사이기에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상담의 의미를 더 잘 전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저자의 학창시절을 넘어, 내가 만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진실로, 함께 근무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읽고 나누며,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잘 들여다보고 지원하면서 항상 상기하고픈 글이다.
어렵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어 주신 차열음 작가님과, 창비출판사, Wee클래스와 Wee센터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전문상담교사/전문상담사 선생님들께 다시금 깊은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