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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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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 캐서린 메이와,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삼십대 끝무렵에 이르러서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은 캐서린 메이. 저자의 신작에 대한 홍보문구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서평단을 신청했다. 서평단에 선정되고서는 나도 모르게 신간이 아니라 기존에 구입해 읽다가 완독하지 못했던 전작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를 먼저 완독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작의 남은 부분을 먼저 일독했다.
전작에서 저자 캐서린은 ‘윈터링’, 즉 ‘겨우나기’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삶에서 가장 어둡고고도 추운 ‘겨울’의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누구에게나 겨울은 있으며 그 겨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역설한 바 있다.
윈터링(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 ― 옮긴이)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것이다. 겨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 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행복이 하나의 기술이라면, 슬픔 역시 그렇다.
그것이 바로 윈터링이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캐서린 메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웅진지식하우스, 2021 중에서.
특히 그녀가 우울과 슬픔에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겨울을 보내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바다수영이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이번 신간인『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에서는 그 연장선상으로 ‘걷기’가 제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사실 바다수영은 겨울의 시간을 잘 보내고 고통을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 중 하나였지만 ‘걷기’라는 행위는 자신의 고통마저도 전체적인 삶으로 통합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저자의 자기고백은, 라디오를 듣다가 자신의 자폐 증상을 인지하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한다. ‘스펙트럼 선상에 있나?’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저자의 내부에 있으나 ‘걷기’를 통해 그 답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온다. 저자가 유년시절부터 겪어온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 누구도 진단해 주지 않아 겪는 답답함이 책에 잘 묘사되는데, (98-104쪽.) 사실 그녀에겐 오히려 그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서른 아홉에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저자에게 있어서 어쩌면 평생 가져온 자신의 ‘남다름’, ‘이상함’에서의 해방이 아니었을까 싶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녀는 나에게서 좀 예민한 상태이긴 해도 행복하게 잘 지내는 여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이미 구축한 나의 이미지에 반기를 들어봤자 아무 소용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니 나는 그런 단순한 문제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잘 넘겨버리는 듯하다. 넘겨버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102쪽.
‘남다름’, ‘이상함’, ‘기이함’. 자폐스펙트럼장애 뿐 아니라 세상의 기준과 달라 이해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부과되는 수식어이다. 특히 특정한 진단을 받지 않거나, 자신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무언가 괴리감을 느낄 경우 자아 스스로 더욱 큰 불안과 혼란을 느낄 것이다. 책의 추천사를 쓴 정지음작가(민음사, 『젊은 ADHD의 슬픔』 저자)님도 캐서린 메이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후 ADHD 진단을 받았기에 아마 캐서린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다.
이 책은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위한 책은 결코 아니다. (그런 책을 읽기 원하신다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권하고 싶다.) 그러나 ‘캐서린 메이’라는 한 개인이 자신의 자폐 가능성을 발견한 이후 자신의 삶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에세이는 깊은 통찰과 부드러운 사유로 자기치유의 성격을 넘어 하나의 문학작품과 같이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선상에 있지만,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는 데 탁월한 역량이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누군가는 상호작용이나 의사소통에서 부족한 점을 지닐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그러하다. 업무를 보면서도, 일상생활에서도 늘 뚝딱이곤 한다.) 누구나 조금씩 어느정도는 스펙트럼 안에 있는 한 개인으로서, 각각의 한 개인이 누구나 특별하고 가치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스러이 느낀다. 지난 여름 사랑스러운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보았고, 이번 겨울 캐서린 메이의 글을 통해 다시금 보았듯이 진정 중요한 것은 자폐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닌 개개인의 존재 자체라는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뇌신경을 가지고 있고 다른 특별함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자폐인들을 생각하면 별무리나 은하계가 떠오른다. 수백만 개의 서로 다른 별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며 반짝인다. 나는 그 무수한 별들 가운데 하나의 유형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캐서린 메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웅진지식하우스, 2022, 9쪽.
함께 읽을 책으로 저자의 전작과 함께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젊은 ADHD의 슬픔』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