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리커버 및 새 번역판) -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셀렉션 시리즈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오윤성 옮김 / 동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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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은 거의 모든 것이 쉼 없이 변화하는 이 세상을 '유동하는 현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책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이탈리아 여성 주간지 《La Repubblica delle Donne》에 2년간 연재했던 글 44편을 엮은 것으로,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유동하는 현대'에서 불안정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논의합니다.

저는 제목에서 "고독"이라는 단어가 핵심이다보니 허울 뿐인 소통과 인간관계를 지적하는 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물론 실제로 본문 중에서 책의 제목과 같은 글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 세대 갈등, 교육, 불평등, 소비, 실업, 인종, 유행, 도시와 이주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현대 사회가 겪는 거의 모든 쟁점을 넘나듭니다.

그리고 약 10여년 전에 발표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에 예리하게 부합하는 부분이 있어 놀라웠습니다.

혹은 안타깝지만 어떤 면에선 그동안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저자가 특히 힘을 주어 말하는 "교육" 측면에서 이런 생각이 강화되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현대에 보내는 44통의 편지들은 전부 저마다의 완전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중 한 편인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제목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며 읽었습니다.

44편의 글을 한번에 관통하는, 어떤 일정한 결론을 도출하려고 애쓰다보니 과한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았을지 염려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현대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고독'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듯 합니다.

인간의 철저한 고독을 피부로 느끼고, 나아가 그 고독을 다 같이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서들은 특유의 현학적인 언어 때문에 다소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다고 합니다.

독서력, 독해력이 미약한 저도 당연히 쉽지 않았습니다.

문장의 호흡이 긴편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 선택에 그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독서였기에 분명히 언젠가 다시 집어들 것이라는 예감 아니 확신이 듭니다.

한편 그 때 쯤에도 지그문트 바우만의 분석이 날카롭게 맞아들지,

혹은 우리가 이미 '고독'을 감내하고 상황이 변화하여 이 책이 틀린 말이 되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현대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 만큼은 변화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현대 안에 존재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고독의 기회를 놓친다.

사람이 생각을 '그러모아' 숙고하고 반성하고 창조하는 능력. 그 마지막 단계에서 타인과의 대화에 의미와 본질을 부여하는 능력에 바탕이 되는 숭고한 조건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고독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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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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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말콤 글레드웰이 6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동시에 각종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낯선 사람을 대할 때 범하는 오류와 그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고, 앞으로의 전략을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왜 낯선 사람이 면전에서 거짓말을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까요? 왜 낯선 사람을 만나기 전보다 직접 만났을 때 더 알기 어려울까요? 다시 말해 우리는 왜 타인을 파악하는데 서툴까요?  말콤 글레드웰은 이에 대답하고자 '샌드라 블랜드 사건'을 언급하며 운을 떼었습니다.

샌드라 블랜드 사건이란- 백인 남성 경찰관(브라이언 엔시니아)에 의해 강제적으로 차를 세우고,  그와 말싸움을 하다가 체포된 흑인 여성 운전자 샌드라 블랜드가 그로부터 사흘 뒤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입니다.

 

 

 

저자는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처음부터 직설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대신 잠시 다른 이야기로 눈을 돌립니다. 《타인의 해석》은 언뜻보면 연관성 없는 사례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끝에, 저자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공통점을 찾아냅니다.

정리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1) 타인이 정직하다고 믿어서(진실 기본값 이론)

(2) 타인의 태도와 내면이 일치한다고 생각해서(투명성 가정)

(3) 타인의 행동이 장소와 맥락에 밀접하다는 점을 간과해서(결합성 무시) 일어난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책은 마무리되며 다시 샌드라 블랜드 사건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대화가 틀어진 까닭에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책은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다소 상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타인을 해석하는 우리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도록 합니다.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하고, 삶에 큰 지혜가 되는 메시지를 영리하게 전달하는 책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례들을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단계적으로 결론을 도출하여 얻은 결론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말콤 글레드웰의 탁월한 통찰력과 명료한 글솜씨에 또 한 번 반하게 하는 《타인의 해석》의 일독을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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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오리지널 커버 에디션)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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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잊혀졌을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은 읽어봤을 소설,《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오리지널 초판 표지 디자인으로 재현되어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채색 없이 거친 선으로 그린 삽화들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에 한층 더 잘 어울립니다. 양장본이라는 점도 소장가치를 높여주여 마음에 듭니다. :) 


저는 여러 번 다시 읽어 사건 순서와 문장 몇 줄을 꿰고 있는 소설들이 있는데요. 《몽실 언니》와 《고래》, 그리고 바로 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입니다. 10살 전후로 처음 읽고 어린 마음에 충격 받아, 그후 하루에 두세 번씩 연거푸 읽은 날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 특별판을 손에 쥐었을 때 반가움과 묘한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이 저를 어떻게 만들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제제와의 만남이란! 어렸을 때 저는 마치 제제가 된 것처럼 제제에게 일어난 일들에 슬퍼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먼 길을 부지런히 걸어갔지만 결국 선물을 못받아서, 정성스럽게 만든 풍선을 터뜨려서, 사랑하는 뽀르뚜가를 잃어서.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 저는 자연스레 제제를 지켜보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조숙한 제제,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을 겪으며 더욱 철 들어가는 제제. 그 모습은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저를 가라앉혔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소설 속으로 들어가 제제를 끌어안아주고 싶었어요. 아가, 너는 아직 천진난만해도 된단다. 


어차피 누구나 언젠가 어른이 된다지만 저는 왜 유독 그게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아이다워야지'하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답다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요.) 다만 생각이 깊은 어린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어떤 사연으로 이 아이가 이토록 성숙해야 했는지 마음이 쓰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를 법한 5살에, 자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거나 마음 속에서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하는 제제를 볼 때처럼요.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해맑은 시기를 충분히 누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 속 새장의 작은 새는 때가 되면 날아가겠지요. 그 새를 일부러 내쫓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이 억지로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돌아보면, 새가 멀리 날아가는 것은 찰나같은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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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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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문헌에 담긴 전통의 가치를 현대의 언어로 되살리는 고전학자 정민 교수님의 신작, 《습정》을 소개합니다. 습정은 '고요함을 익힌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무분별한 정보가 쏟아지고 각자 주장만 하기 바쁜 요즘, 침묵과 고요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지어졌습니다. 


마음의 소식, 공부의 자세, 세간의 시비, 성쇠와 흥망- 이렇게 총 4장에 걸쳐 100편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전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문인들의 문장을 인용하고, 정민 선생님만의 해석이 더해진 짧은 글입니다. 그 안에는 시대를 꿰뚫는 중요한 삶의 자세가 녹아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 말로 제가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고전의 진가인가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떠다니는 말들은 많지만, 우리가 진짜 귀기울여야할 진실의 목소리는 여기 모여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들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참된 도리란 무엇인지 묵묵히 보여주는 것으로 제목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여담이지만 이전에 김영사에서 출간된 <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이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서도 마음 수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마음의 수행을 권하는 책이 아니지만, 저는 저에게 와닿는 문장들을 필사하며 마음수련을 하는 자세로 읽었습니다. 제목 <습정>이 고요함을 익힌다는 의미인 것에 비추어, 필사 또한 마음을 차분해지게 하므로 아주 적합한 독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한편 저는 습정을 읽고 따라 쓰며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무게감있는 사람이 되고자 애썼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개를 명목으로 말을 과히 하고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감히 이 책을 평가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정민 선생님께서는 가르치는 데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으로 하여금 증명하셨지만, 아직 저는 말을 아끼고 책을 권유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가르쳐주신 것과 모순되는 저의 행보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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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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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는 범죄자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해. 어떤 큰 벌이 내려져도 억울해할 자격도 없어!' 그리고 당사자인 양 피해자의 입장에만 쉽게 이입했지요. '판사님! 판사님 가족의 일이라도 겨우 이정도의 벌로 끝내실 겁니까?!'

그러나 <어떤 양형 이유>를 읽으면서 크게 반성했습니다. 처벌은 범죄자에게 보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지요. 그가 사회로 복귀했을 때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돕는 '교화'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점을- 저는 철저히 무시했던 것입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의 경제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다면 무턱대고 가해자에게 큰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장 초반부에 해당하는, 판사님께서 소년재판을 담당하시던 내용입니다. 저는 청소년 범죄야말로 자신들이 어리다는 사실을 악용해서 날로 악질이 되어가는 것 같아 더 엄중한 처벌만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주변환경을 돌아보고,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을 통감하며, 아이들이 진심으로 갱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시는 판사님을 보며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저자 박주영 판사님은 법보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었고, 그 자애로움은 저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사실 죄질이 어떠하든 간에 기계적으로 강한 처벌을 내린다면 재판은 한결 수월해지겠지요. 그러나 제가 기대보다 적은 형량에 분노할 때도, 그것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큼 억울한 가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염두하며 판사님들께서 신중을 기하신 결과였습니다. 합당한 형량을 결정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 문제인지- 판사님의 진지하고도 외로운 고뇌를 지켜보며, 저 또한 제가 생각해온 정의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과 연민조차 품고 있지 않다면,

재판이라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정녕 용인될 수 있겠는가.

법이 곧 정의고, 법이 곧 사랑일 수는 없지만,

법은 정의이면서 사랑일 수 있다.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한 치 틀림없이 설명할 수 없다면,

법은 적어도 사랑에 기반하고, 사랑에 부역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떤 누군가는 반드시 시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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