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역 애장판 下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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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고 많이 울었다.
그렇게 슬픈 내용은 아니지만,
우루시바라 유키의 작품은
늘 항상 내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린다.
그녀가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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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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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때, 로맹 가리가 얼마나 화가 난 상태였는지 잘 느껴진다. 가리의 다른 책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느낌. 로맹 가리는 좀 약간 우회하면서 글을 쓰는데, 이 책은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상당히 직설적이다. 중반부는 정말로 소설이라기보다는,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해 자기 생각을 쓴 블로그를 읽는 기분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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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서는 기쁨 - 우리 인생의 작디작은 희망 발견기
권영상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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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화, 동시작가이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권영상 선생님의 수필집이다. 각 글은 2-3페이지 길이로 60여 편 실려 있다. 수필집이라고는 하나,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시는 분이다 보니, 글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여운이 있다. 그리고 따뜻한 수필집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 모르나, 거짓없이 쓰셨으나, 어딘가 진솔한 진심이랄까, 그런 마음은 다 풀어쓰시지 못한 것 같다. 착한 글, 좋을 글을 읽을 때면 으레 드는 답답함 같은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이 '답답함'은 이 책을 낸 '좋은생각'이란 잡지를 읽으면서도, 혹은 미담(美談) 사례집을 읽으면서도 종종 느낀다. 뭐, 글과 글쓴이의 문제라기 보다, 나의 취향 문제인 듯.

 

   동화를 쓰시는 분은 보통 어떤 일을 하고, 평상시에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읽었다. 이 책을 읽고, 이 책과 권영상 선생님에게 5월의 뒷산 같은 느낌을 받았다. 50대의 중년이시지만, 어떤 싱그러움 같은 게 느껴졌다. 나이와 가치관 이런 걸 넘어서서 아이와 학생들을 좋아하고 위하시는 분들에겐 이런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활기도 느꼈다. - 산과 5평짜리 주말 농장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이런 느낌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싱그러움이 이 책의 지배적인 느낌이다. - 그리고 책표지의 영향도 있는 듯.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가 몇 몇 편에 걸쳐 나오는데, 부모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내가 늙었기 때문에 눈물이 많아져 그런 걸까; 요번 신정 때 팥죽 새알을 너무 많이 먹었다 =_=)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뭔가 슬프고 우리 부모님이 아련하게 느껴지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가슴에 사무쳤다. 같은 한집에 살고, 부모님 편찮으신 데 없이 잘 지내시는데 말이다(나, 뭐지;;). 우리 모두는 같이 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인간이라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기 마련이고, 함께 살고 같이 부딪게 살면서 어떤 감정이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감정은 때론 시공을 초월해서 - 그래서 아직 겪지 않은 일인데도 - 권영상 선생님이 부모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꼭 내가 20년, 30년 후 느끼게 될 그 마음 같아서 울컥, 울컥 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컥울컥 하면서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20, 30년 후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느낄지 이 책을 통해 본 것 같으니까. 지금 잘 해드려야지. 훗날 부모님을 추억할 수 있으려면, 지금 내가 애틋한 마음이어야 하니까.

 

   가볍게 볼 수 읽을 수 있는 수필집, 그렇지만 내 미래를 보여 준 수필집. 이 책의 맨 마지막 글 제목인 '오래된 미래 이야기'를 본 것 같다. 나의 '오래된 미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추억과 글을 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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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불로문의 진실 - 다시 만난 기억 에세이 작가총서 331
박희선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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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도 얇고, 글씨도 크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빨리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웬 걸. 완독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완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문체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문체가 나랑 너무 맞지 않았다. 소설을 읽을 때 문학 공부하듯 하나하나 떼어 보는 것도 아니면서 나랑 안 맞는 문쳇글엔 상당히 예민하다. 책의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에 손도 안 가고 읽어도 읽는 것 같지 않아서 완독하는데 몇 주가 걸린다. 이 책의 문체는 음, 흡사 1900년 대 초 변사가 활동사진을 설명하는 투였고, 그 시대의 변사의 대사가 그러하듯 상당히 진부했다. 클리셰 남발.

 

   이런 이유로, 1/3 정도 읽고 진도를 못 뺐다가, 약속도 약속이고 올해가 가기 전엔 다 읽고 싶어서 마음 먹고 오늘 다 읽었다. 읽다 보니, 초반에 너무 많이 나왔던 진부한 표현들도, 등장인물간 대화 때문에 적게 나왔고 이야기도 나름 전개된 터라 중간 이후부턴 읽기 수월했고, 빨리 읽혔다. 그렇게 읽다보니,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재미까지 느꼈다. - 역시 뭔가 끝까지 해보는 게 좋은가.

 

  

   박시형은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학생으로 어느날 예기치 않게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독립군으로부터 어떤 물건을 받게 된다. 그 물건은 고서 한권, 탁본, 정체불명의 약초 뿌리였다. 이것은 숙종 때 세워진 창덕궁 '불로문'과 관련된 물건들로, 일본천황궁에서 애타게 찾던 물건이었다. 일본천황궁에서 이 물건을 애타게 찾은 이유는, 진나라 진시황에 빗대 설명할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혹은 죽어서 자신의 권력을 더이상 누리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권력이 막강해지면 질수록 더 난폭해지고, 생명연장을 넘어 불로불사까지 바라게 된다. 20세기 초, 아시아의 힘과 권력은 일본으로 기울었었다. 당시 일본 권력층(일본황궁)은 당연히 그 권력을 잃을까 두려웠고, 계속 그 권력을 누리려 한 것이 당연지사였다.

 

   이 소설에도 진시황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은 탐라에 불로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복을 그곳으로 보낸다. 서복은 탐라에서 불로초를 구했지만 진나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봤자 불로초를 구했든 구하지 못했든 그는 죽은 목숨인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로초를 가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와 그의 수하들의 나라를 세워 수십세기 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조선 숙종 때, 숙종과 그의 비공식(..) 호위무사들이 지리산으로 찾아와 서복 일족과 그의 수하를 전멸시키고, 불로초를 빼돌린다. 서복은 다행히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지고, 천수당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숙종이 빼앗아간 불로초를 되찾고자 한다. 숙종은 조선시대에 왕권이 가장 강했던 왕으로, 오래 재위하고자는 염원이 강했다. 그래서 비밀리에 불로초를 재배하고 재배하던 곳으로 드나는 문 이름을 불로문이라 짓는다.

 

   이 소설은 이렇게 창덕궁 불로문과 박시형의 손에 우연찮게 들어온 고서, 탁본, 정체불명의 약초 뿌리가 단서가 되어 불로초에 대한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나간다.

   창덕궁의 불로문과 진시황이 보낸 서복의 이야기, 서복이 제주도 정방폭포에 새겼다는 '서불과지' 이야기 소재도 재밌고, 참신했고, 그럴 듯(역사소설은 요 '그럴 듯 함'이 참 중요)했다. 단, 작가의 문체만 문체와 치밀한 전개와 짜임새 있는 구성이 뒷받침 됐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책 읽다가 자꾸 변사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혼났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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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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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했던 해 쓴 소설이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그의 다른 소설도 자전적 요소가 조금씩 스며있지만, 이 소설은 특히 강하다. 자기 인생을 정리하고 글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살면서 느꼈던 삶의 고충,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를 솔직하게 썼다. 너무 솔직하게 적은 소설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호불호가 명확하다. 나는 이 소설을 정말 잘 읽어서 읽고 읽고 또 읽었는데, 어떤 이들은 이런 어둡고, 기분 나쁜 소설이 왜 고전이냐며 중간에 책을 덮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이해가 안 되는데, 이게 무에 어둡고 기분 나쁜지 잘 모르겠다. 너무 진솔해서 슬픈, 너무 연약해서 슬플 뿐이다. 다자이가 느꼈던 사람들의 몰이해를 나도 느낀다. 내게는 이 소설이 어둡고 기분 나쁜 소설이 아니라, 다자이의 슬픈 자전적 소설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내가 쓴 글 같고, 그래서 나의 생각 감정을 마구잡이로 쓴 내 일기장 같기도 하다. 나는 솔직, 진솔한 걸 좋아한다. 겉치레, 빈말 싫어한다(그래도 때에 따라 쓰고, 그걸 듣고 싶어할 때가 있지만). 다자이의 소설은 진솔하다. 그래서 좋다. 이 소설 맨 끝부분 해설에서도 분석해 놨는데, 문체가 꼭 편지투 같아서 읽는 사람이 공감하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라는 허구라는 느낌보다 진짜 다자이가 내게 진솔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감정이입이 잘 되고, 당신의 생각과 느낌이 나의 생각과 느낌 같기도 한 것 같다.

     


13쪽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설 초반 부에 나오는 저 문장이, 이 중편 소설을 이끌어 주제라 할 수 있다. 이 문장을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장황하게 자신의 일대기를 쭉 쓴 것이다.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 겉으로는 번지르르, 위선과 오만이 가득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요조는 그 사람들에 맞출 수 없었고 괴로웠고 부끄러웠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사는데, 그렇게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결국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는데, 썩 좋지만은 않다.

 


134쪽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넘은 나이로들 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가니까,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역시나 다자이의 인간실격은, 어둡고 기분 나쁜 소설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이의 슬픈 소설이다. 누군가 요조의 마음을 진정 이해했더라면(누군가 다른 이를 진정 이해할 수 있는 게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의 결말은 이렇게 나지 않았을 것이고, 다자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예전처럼 이 소설을 읽고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슬픈 여운이  남는다.

 

 

- 물고기비늘 옷

 

   단편소설. 다자이 오사무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다. 우선, 시점이 다르고, 그래서 문체도 사뭇 다르다. 다자이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면 왠지 그가 보낸 편지를 읽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는데 이건 그렇지 않다. 산골에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소녀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던 눈보라 매섭게 치던 추운 겨울 어느날 집앞 폭포에 빠져 붕어가 되어 폭포에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 일본스러운 소설인데, 단편이라 뭐가 뭔지 알지 못한 채 다 읽었는데 다 읽고 난 후 내 마음은 서걱서걱 했다. 눈 밟은 느낌. 좋은 느낌이 아니라, 춥고 시리고. 그랬단 말.

 

 

- 로마네스크

 

   일종의 옴니버스 소설이다. 이 책에서 제일 웃겼던 중편 소설이었다. '선술의 달인, 다로' 이야기가 제일 웃겼다. 다로는 범상치 않은 아기였는데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크면 집안일을 도우며 열심히 사는데, 다로는 너무 게을렀다. 하지만 다로의 아버지는 다로가 아기였을 때 범상치 않은 행동을 했던지라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다로는 부모님의 '노터치' 속에 게으르게 사는데 어느날, 선술(仙術)에 관한 책을 읽고 선술에 심취한다. 드디어 다로는 개구리가 되고 뱀도 되는 변신 능력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다로는 옆집 딸에게 반하게 되고 그녀에게 어필하고 싶어한다. 잘생기면 그녀에게 확실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술로 미남이 되게 해주세요, 미남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주문을 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미남자가 되는데, 아뿔사, 실은 다로가 읽은 선술책이 몇 백 년  불교가 융성할 때 쓰인 책이라 그 시대의 미남자로, 배 나오고 눈은 가르스름하고 배는 뽈롱 튀어나온 부처상이 된다. 다로는 너무 충격 받아 그 길로 집을 나오는데 이 이야기가 너무 웃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미남자여서. 으크. 다자이도 때로 소설에 농담도 잘 섞어 쓴다. 아니, 너무 슬픈 이야긴가.

 

 

- 개 이야기

 

   개를 증오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개를 원래부터 증오하던 남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지인이 동네 개한테 물린다. 주인공 남자는 이 사건으로 개라고 하면 더욱 치를 떨다. 개에게 물리기 싫고, 개를 증오한 나머지 늘상 개에 대한 연구를 했었다. 개를 멀리하고, 개에게 물리지 않는 법!! 그가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해서 짜낸 아이디어는 바로 개에게 잘 웃어주고 잘 대해 주는 것. 그리하면 광폭한 개들한테 물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역효과만 낳았는데, 개들한테 웃어주는 동네 개들이 주인공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버려진 강아지가 그의 집까지 따라오게 되는데, 그는 비록 새끼 강아지라도 무섭고 두려워 내쫓지 못하고(후환이 무서워서 내쫓지 못했다)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무섭고 성가신 존재와 함께 살게 되니 그는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개를 버리고 도쿄로 어서 빨리 이사가고 싶어한다. 자연스럽게 개를 버리고 갈 수 있으니까(그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중요하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에). 하지만 그 강아지는 피부병이 걸리고 강아지는 몰골이 흉해지고, 냄새도 지독하게 많이 나게 된다. 남자의 아내는 강아지를 죽이자고 한다. 그도 동의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는데, 결국 죽이지 못한다. 이미 개에게 정이 들고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처음부터 강아지를 두려워는 했지만 측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뭔가 박애주의자의 느낌이 초반부터 강하게 왔다. 개가 싫다고 워낙 강하게 부정을 하니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므로 - 말로는 부산스럽게 싫다고, 싫다고 했지만, 그는 강아지, 개가 좋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런 자신의 본심이 머쓱했던지 애먼 핑계나 대고 말이다.

 


224쪽

"안 돼. 약이 안 들어. 용서해주자. 이 녀석에게는 죄가 없어. 예술가는 원래 약한 자의 편이 되어야 하는 거야." 나는 도중에 생각해온 말을 그대로 줄줄 늘어놓았다. "약한 자의 친구란 말이야. 예술가에게는 그게 출발점이자 최고의 목적이야. 그동안 이런 단순한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어. 나뿐만이 아니야. 다들 잊고 있어. 나는 포치를 도쿄에 데려가기로 했어. 친구들이 포치의 생김새를 보고 비웃는다면 내가 두들겨 패줄 거야. 여보, 달걀 있어?" // "네에." 아내는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포치한테 달걀 좀 줘. 두 개 있으면 두 개 다 줘. 당신도 꾹 참아. 피부병 같은 건 금세 다 나아."


 

- 화폐

 

   가전체 소설 형식이다. 100엔 지폐 77851호의 회고적 소설. +_+ 100엔 77851호의 눈으로 당시 일본의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다자이가 세상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100엔 지폐 77851호의 입으로 전하고 있다. 히야, 다자이가 이런 글도 썼나 싶을 정도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소설로 표현하다니. 이 소설에 나오는 문장으로 정말 마음에 들어서 발췌해 본다.

 


230쪽

당장 오늘 저녁에 죽을지도 모를 처지가 되면 물욕이고 색욕이고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아무래도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 인간은 목숨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면 서로 웃으며 대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 간에 탐욕을 부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나도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다운 감정일 텐데, 나만 혹은 우리 가족만을 위한 잠시 잠깐의 안락을 얻겠다고 이웃을 욕하고 속이고 넘어뜨리고(아뇨, 당신도 한 번쯤은 그런 짓을 하셨어요. 무의식적으로 해놓고서도 자기 자신만 그런 줄도 모른다는 건 더욱더 분노할 일이지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인간이라면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요. 부끄러워한다는 건 인간에게만 있는 감정이니까요). 참 영락없이 지옥의 망자가 서로 물어 뜯으며 싸우는 것처럼 어처구니없고 비참한 장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뭔가 글이 과격하다(보통 다자이는 이렇게 글을 쓰지 않는데, 너무 과격해서 놀랐다). 100엔 지폐 77851호의 말 전혀 틀린 게 아니다. 인간만이 부끄러워 할 수 있으니 부끄러운 짓을 한 게 있다면 부끄러워 해야지. 그것도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면 특권. 햐- 나도 이런 특권 누리면서 이런 특권 누리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나도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면 너무 내 생이 무거울 것 같다. 그래도 염두에 두고 살고 싶다. 인간으로서, 인간이니까. 다자이, 좋은 문장 감사해요. 마음에 새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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