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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ㅣ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평점 :
/읽은 시기/ 201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이 책과 함께!!)
/주제 분류/ 국내 소설
/읽은 동기/ 디스토피아 세상,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고,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야기를 엮어나갔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은 바로 이 시대의 문제점을 콕 집어 문제 제기하는데, 이 소설은 어떤 현실의 문제를 다뤘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국내 소설을 읽은 것이 한 150만 년만인 듯!! (국내 소설이여, 그동안 소홀히 해서 미안~)
이 소설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어딘가 유토피아 같으나 실상 알고 보면 무서운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리고 있다. (무서워, 이런 세상이 오면 안 될 텐데!!) 잠깐, 이 소설이 왜 디스토피아인지 설명!
『해방자들』 속에는 여러 나라가 있다. 우리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설정한다. 지구 위의 세상은 아니지만, 드넓은 우주 어딘가 지구 같은 행성이 있다면 『해방자들』 속 세상이 있을 것만도 같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라는 모두 여섯 나라. 우등한 사람만이 시민으로 대접받는 렌막, 손재주가 있어서 서비스업에 주로 종사하는 다압, 국민들이 강건하고 전투적인 도마치, 농업이 발달한 미사카, 수산업이 발달한 센탐, 그리고 공업이 발달한 살레오 이렇게 여섯 나라이다. 다압, 도마치, 미사카, 센탐, 살레오는 렌막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국가로서 다들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가고 자기 나라에서 기술을 익혀 렌막으로 건너가 일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소설의 주인공 지니는 다압 시민이다. 어린 나이에 실수로 지니를 낳은 엄마, 늘 술에 절어 살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람은 너무 흔해서 투신자살로 으스러진 시체를 봐도 놀라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지니의 소망은, 사랑하는 투와 렌막으로 건너가 착실하게 일한 후 렌막의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투는 기술 시험을 무사히 치러 렌막으로 무사 입성하지만, 지니는 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지니는 지옥 같은 다압에서의 생활이 죽기보다 싫어서 밀항을 선택한다. 밀항에는 엄청난 대가가 따르는 법, 진나이라는 수상한 사나이에게 차용증을 쓰고 이자가 일 년에 30%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빌리게 된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을 지지만 어쨌든 지니는 렌막으로 건너가게 되고, 여기 우리 세상도 그러하듯이 지니도 음성적인 일을 하게 된다. 유흥업소 근무.
하지만 우리가 아는 유흥업소와 사뭇 다르다.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여자들이 술을 팔고, 이곳의 손님들은 렌막에서 돈 좀 번다는 중년 남성들이다. 하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손님은 직원인 여자들에겐 관심이 없고, 여직원이 안고 온 갓난아기에게만 관심이 있다.
이유인즉슨, 렌막의 시민은 매년 복합 예방 접종이라는 백신을 맞는다. 병을 예방한다는 주사이지만 사실 성욕 억제 주사이다. 렌막이라는 나라는 철저하게 시민의 성욕을 억제하고, 문제 많고 말썽 많은 성욕을 나라가 컨트롤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성욕은 전혀 없으나, 아이는 무척 갖고 싶어 한다. 한 가정에서 키우는 아이의 수가 곧 그 가정의 부를 가리킨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많은 아이를 가질 수 있고,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아이를 가질 능력이 없는 사람은 배우자도 만날 수 없다. 배우자는, 아이를 키울 여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렌막의 시민 '소우'는 어렸을 때부터 뾰족한 것만 보면 너무 무서워서 주사조차 맞지 못 했다. 그래서 '복합 예방 접종' 주사를 수년 동안 맞지 않았다. 그로 인해, 렌막의 남자라면 누구도 하지 않는 '발정'을 한다. (이 책에선 '비뇨기 팽창'이라 함 ㅋ)
이 비뇨기 팽창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정말 친했던 '킴'에게 욕정을 느낀 소우는 어느 날, 주체할 수 없는 욕정에 킴에게 키스를 해버리고 마는데 이 때문에 렌막에서 살기 힘들어짐을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지니와 만나게 되고, 진다이에게 같이 붙잡혀 렌막과 좀 떨어진 중앙 내륙 자치 구역인 스파다인으로 끌려간다. 스파다인은 렌막에서 열심히 일하고 은퇴한 기술 노동자, 즉, 렌막의 본 시민이 아니라 다른 나라 기술자들이 오랜 시간 렌막에서 일하고 은퇴하면 이주해 사는 곳이었다.
이 스파다인에서 소우와 지니는, 유토피아처럼 여겨졌던 나라 '렌막'이 얼마나 어이없고 무서운 곳인지 알게 된다. 성욕을 억제하여 사랑까지 말살한 인정 없고 비정상적인 나라가 바로 렌막이었던 것이다.
소우와 지니는 서로 죽을 고비도 같이 넘기고, 밤 하늘의 별똥별을 보면서 우정을 넘어서 사랑을 싹 틔우고 부조리한 렌막과 렌막의 용병이었던 도마치 출신 할아버지들과 끝까지 맞서싸운다.
이 소설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소설이고, 몇 가지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중, 고등학생 때 성욕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때 아이들은 성에 관련해서 여러 가치관이 충돌한다. 몸은 이렇게 말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 몸의 말을 무시하고 억누르라고 말한다. 그냥 자세한 설명 없이 무조건 눌러야 한다고. 그래서 청소년들이 성에 관해 고민하고, 방황도 하는데, 특히 남자아이들은 죄의식 같은 것에 종종 시달리기도 한다. (뭐, 안 그런 아이들도 많지만) 이 책은 성욕은 자연스러우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이 디스토피아 세계를 빗대어 청소년들에게 말하고 있다. 음... 새로운 시도랄까. 난 이런 유의 소설을 지금껏 한 번도 읽어보지 못 해서...
그리고 우리가 경멸하는 가난, 미래 없음을 이 소설에서도 여과 없이 가난의 비참함을 보여주고 우리나라에서 말 많고 탈 많은 소위 LPG 통 할아버지들을 좀 비꼬는 것도 같았다. 맹목적으로 용맹한 할아버지들, 자기가 믿는 것, 자기가 믿고 살아온 것에 반(反)하는 것은 무조건 비난하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앞뒤 꽉 막혀 위험한 사람들. 현재 우리 사회에 문제점이라 꼽힐 수 있는 것들을 렌막, 다압, 도마치라는 국가들로 비유해 냈다.
아이들의 감정 변화가 내 기준에선 좀 설득력 떨어지고, 캐릭터의 개성과 전형성도 조금 설득력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재밌게 잘 읽었다. 청소년의 성 관련 고민을 이런 식으로도 풀 수 있구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