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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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6년 12월 28일~29일
/주제 분류/ 일본 소설
/읽은 동기/ 이것이 광고의 힘인가. 스쳐지나가는 블로그에서도, 인터넷 서점에서도 하도 많이 노출되어 이 책을 직접 봤을 때 꺼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아, 광고천국/소비사회의 노예가 된 나 자신이여!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표지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고, 제목도 이상해서 내가 읽을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광고 때문에 호기심 동해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집어 들고 말았다.... (책 표지는 지금도 마음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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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도무라 : 화자이자 주인공. 학교 체육관에서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조율사의 꿈을 키운다.
⦁ 이타도리 : 피아니스트의 기량을 전부 드러나 보이도록 피아노를 조율하는, 예술가 수준의  조율사. 
⦁ 야나기 : 친절하고 상냥한 도무라의 사수
⦁ 아키노 :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하고 조율사로 전향. 매사 삐딱하고, 대충대충 일하고, 고객을 깔보는 듯 보이나, 실은 피아노에 엄청난 애정을 가진 실력의 조율사, 
⦁ 가즈네 (쌍둥이 자매 언니) : 동생 유니와 피아노를 배우다, 유니가 더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자,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도무라는 가즈네의 연주를 듣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 유니 (쌍둥이 자매 동생) : 알기 쉬운 감동을 주는 피아노를 치는 유니. 어느 날 피아노 앞에 앉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병에 걸려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한다. 도무라의 조율을 보고, 조율사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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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의 해머로 강철 현을 때린다. 
그것이 음악이 된다.


제목만 보고는 이 소설이 대체 무슨 소설인지 알 수 없다. '믱? 양과 강철은 무슨 상관이고, 뜬금없이 숲은 무슨 숲?! '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차분히 읽어나가다 보면, 이 세 개의 조합이, 피아노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11쪽. 숲 냄새가 났다. 밤에 가까운 시간, 숲 입구. 나는 그 숲속으로 가려다가 그만 두었다. 해가 완전히 저문 뒤의 숲은 위험하니까.

모두 하교하고 혼자 교실에 남았던 도무라, 담임 선생님의 부탁으로 학교 손님을 체육관으로 안내한다. 교실로 돌아가려는 도무라, 그때 뒤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숲 냄새가 났다. 그 숲의 냄새는, 고향 집 바로 뒤에 있는 숲의 냄새였다. 조율사의 이름은 이타도리였다, 이타도리가 조율을 하고 난 후, 연습으로 쳐 본 피아노 소리가, 도무라를 고향 숲 입구로 이끌었다. 

14쪽. "보세요, 이 현을 헤머가 두드리고 있죠. 이 헤머를 펠트로 만듭니다."

시골 산골에 살았던 도무라는, 고등학교가 없는 고향에서 시내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시골 집의 옆집은 양 목장을 하고 있었다. 숲과 양. 이 모든 것이 요인이 되어 이타도리의 피아노 소리를 들었을 때 고향 숲이 떠올랐던 것이다. 

피아노는, 건반마다 양털(펠트)로 만든 망치가 달려 있고 이 양털 망치가 쇠로 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그리고 숲에 있던 나무를 잘라 케이스를 만든다. 양과 강철 그리고 숲. 양과 강철의 조합으로, 듣는 사람의 머리와 마음 속에 숲을 불러 일으킨다. 

73쪽. 이 해머가 연동해서 수직으로 뻗은 현을 쳐 소리를 내는 구조다. 해머는 양털로 굳힌 펠트로 만드는데, 너무 딱딱해도 떠 너무 부드러워도 좋지 않다. 딱딱하면 쇳소리가 나고 부드러우면 힘 빠진 소리가 난다. 해머 상태를 조정하려면 눈이 촘촘한 줄로 갈거나 바늘로 찔러 탄성력을 높여주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이 정음의 관건이다. 이 작업이 핵심이다. 결정권을 쥔 만큼 어렵다. 줄로 가는 것도, 바늘로 찌르는 것도 아주 근소한 가늠으로 이뤄진다. 갈고 질러야 할 특정 포인트와 어느 정도 할지는 손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만들고자 하는 소리의 이미지에 맞춰 하나하나 상태가 다른 피아노의, 역시 하나하나 상태가 다른 해머를 줄로 갈고 펠트를 바늘로 찌른다. 시간과 노력이 드는 작업이다. 손길이 어긋나면 그 해머는 망가진다. 피곤하겠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나 강렬한 체험을 한 도무라는, 그 순간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조율사가 되는 것. 이전에는 결코 피아노에 관심 없었고, 음악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몰랐지만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직업, 자신의 꿈을 정하고 만 것이다. 그만큼, 체육관에서의 경험, 그 체험은 강렬했다. 

도무라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민도 없이 '조율사 양성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도무라는 학교에서 실력이 제일이라고 할 수 없었으나,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졸업 후, 이타도리가 일하는 가게에 취직한다. 피아노 등 악기를 팔고, 몇 명의 조율사가 있는 작은 규모의 회사다. 

5개월 간 사무실 인턴으로 근무한 후 수습 사원으로 진급, 사수인 야나기와 함께 현장 실습을 한다. 도무라가 야나기와 처음 방문한 집은 바로 가즈네, 유니 쌍둥이 자매 집이다. 똑같이 생겼지만, 어떻게 저렇게 달리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놀랍다. 사람들은 밝고 명랑한 유니의 연주를 더 좋아하지만, 도무라는 왠지 모르게 언니인 가즈네의 연주가 더 마음에 든다. 

강렬하고 애착가는 첫 고객, 쌍둥이 자매집 방문을 비롯해서 도무라는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고, 공부하고 배워나간다. 그러다가 수습 사원이 된 지 1여 녀 만에, 두근두근 처음으로 정식 조율사로 혼자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초짜라 실수도 하고, 거들먹거리는 고객에게 이유 없이 야박 당하고, 무시 당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고 배움이라는 생각에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

108쪽.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래도 그 소리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리라. 

138쪽. 숲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 

143쪽. 재능이라는 단어로 도망치면 안 된다. 포기할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경험이나 훈련, 노력이나 지혜, 재치, 끈기, 그리고 정열. 재능이 부족하다면 그런 것들로 대신하자. 

143쪽. "재능이란 무지막지하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대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집념이나 투지나, 그 비슷한 무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야나기 씨가 차분하게 말했다. 

194쪽. 지금 고집을 부린다거나 애라는 말을 듣고야 알았다. 나는 대부분의 것에 대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고집을 부릴 대상이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고집을 부리고 싶을 때는 자신을 조금 더 믿어도 된다. 고집을 끝까지 부려도 된다. 내 안의 아이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217쪽. 길이 험준하다. 저 앞까지 너무 멀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처음은 의지, 마지막도 의지.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분발이거나 노력이거나, 혹은 분발도 노력도 아닌 다른 무언가이거나.

도무라는, 이타도리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듣고 운명적으로 자기 길을 찾았지만 이후로는 분투의 연속이다. 강한 인상, 노력만으로는 한순간에 도무라가 꿈꾸는 조율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능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위 발췌문에도 적혀 있듯이 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자 한 진정한 재능은, 실력 그 자체 보다도 '좋아하는 감정' 그 자체이고, 끈기있게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재능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기를, 처음도 의지, 마지막도 의지. 얼마나 걸리더라도. 끊임 없이 공부하고, 부딪히고 배우길 권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가 명확해 지고, 결국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119쪽. 뒷마당에서 바로 연결된 숲을 정처없이 걸으며 숲의 진한 냄새를 맡고 나무 잎사귀들이 스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서서히 감정이 정리되었다. 어디에 있으면 좋을지 모르겠는, 어디에 있어도 침착해지지 못하는 위화감은 흙과 풀을 밟는 감촉과 나무 저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나 멀리서 들리는 짐승 소리를 듣다 보면 사라졌다. 혼자 걷고 있을 때 만큼은 다 괜찮다고 느꼈다. (...) 내가 피아노 안에서 찾는 감각도 그것이다. 다 괜찮다, 세계와 조화를 이룬다. 그 감각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로는 전부 전달할 수 없으니까 소리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어쩌면 피아노로 그 숲을 재연하고자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217쪽. 빙글빙글 돌며 멈추지 않았던 나침반이 우뚝 멈췄다. 숲에서, 마을에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수많은 피아노 앞에서 흔들리던 빨간 화살표가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도무라는 그렇게 성실히 피아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자기 꿈을 구체화한다. 이건 머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만 되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강렬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이 강렬한 경험은, 평상시의 노력이 없으면 결코 겪지 못하는 것). 가즈네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던 것도 그 경험 중 하나다. 그리하여, 도무라는 가즈네가 피아니스트가 되면 그녀의 피아노를 조율하겠다고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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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가즈네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훗날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사수 야나기의 결혼식 때 가즈네가 피아노를 치고, 그 피아노를 도무라가 조율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긍정적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다. 소설에서도 몇 번 언급되는, <1만 시간의 법칙>!!! 이 법칙에 따라 도무라는 앞으로 1만시간 동안 착실하게 수없이 많고, 다양한 피아노를 조율할 것이고, 끊임없이 공부할 것이며, 조율 감각을 익힐 것이다. 그렇게 1만 시간 후, (혹은 그 전에) 카즈네에게 최고의 조율해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타도리의 조율처럼 누군가에게 강렬한 꿈과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유니에게 그런 꿈을 선사했지만. ^-^) 

⦁ 이 소설은 상당히 공감각적 소설이다. 분명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내 머릿속에는 고즈넉한 숲의 정경이 떠오르고, 한쪽에서는 목가적인 양떼 목장이 펼쳐진다. 축축하지만, 신선한 숲의 냄새, 땅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소재는 분명 피아노인데, 피아노 소리뿐만 아니라, 숲도 보이고, 목장도 보이고, 다양한 곳을 도무라와 함께 여행한 기분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떠오른 음악가는 바로 드뷔시였다. 드뷔시의 곡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어디론가 떠난다. 익숙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도 떠난다. 특히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는, 도무라가 상상하는 딱 그 숲의 모습으로 떠오른다. 

⦁ 피아노 조율사, 피아노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는 낯선 직업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 기술자인 것도 같고, 혹은 오랜 기간 동안의 숙련과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한 장인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피아니스트와 동등한 예술가로도 느껴진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처음에는 어렸을 때 단순 취미로 피아노를 치다가, 돈 받고 피아노를 쳐주는 직업으로서, 그 후에 자기 기량을 더 갈고 닦아 뭇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가로 발돋움한다. 피아니스트의 단계가 이렇게 나눠지듯이 조율사도 그런 것 같았다. 이미 존재하는 피아노를 조율하여 그 피아노만이 낼 수 있는 음색을 내도록 하고, 피아니스트의 기량을 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조율!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미 존재하는 악보를 가지고, 자기만의 작품 해석과 표현력으로 예술가 피아니스트가 되듯 말이다.  

⦁ 이 책은 여러가지를 말한다. 조율사에 대해, 그리고 근성과 의지, 끈기야 말로 바로 진정한 재능이다라고. 이 소설의 소재가 무엇이 되었든,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은 진정하고자 하는 일,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묵묵히, 끈기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라는 것 같았다. 

⦁ 주인공 도무라의 성격과 화법은 전형적인 일본인, 일본 문체였다. 일본 색채가 짙다.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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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미안하고 좋아해
도러시 지음, 허유영 옮김 / 나무옆의자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2017년 1월 7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대만)
/읽은 동기/ 삭막하고 메마른 내 마음에, 촉촉한 단비 같은 글을 뿌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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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사람이 쓴 책은 처음 읽어 보았다. 대만 사람이 그린 그림도 처음 봄! 하지만 동양이라는 같은 문명권이라 그런지, 글쓴이의 국적을 모르고 읽었다면 그냥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인 줄 알았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서문 ② 4개의 장(가족, 친구, 연인, 나 자신)으로 이뤄진 본문 그리고 ③ 후기. 본문에서는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글쓴이의 생각들이 적혀 있고 그다음 본문부터는, 왼쪽 페이지엔 글쓴이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한두 줄 정도의 짧은 글,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글쓴이의 짧은 생각이 적혀 있다. 이 단상들은, 어쩌면 시(詩)일지도 모르겠다. 시로 읽고, 시로 느껴도 충분하다. 

33쪽.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미워하는 법은 너무도 잘 알고 있네요.
허업!! 어떻게 알았지,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는데 미워하는 건 전문가 수준에다 중독자 수준인데. @ㅅ@

37쪽. 우리 산책하러 공원에 갈까요? 커다란 나무 아래서 도시락을 먹고 차도 마실까요?
별거 아닌 말, 별거 아닌 구절인데도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봄이 되고 날이 풀리면, 가족들, 특히 엄마와 함께 김밥이랑 유부초밥 도시락 싸들고 봄나들이 가야겠다. (다이어리에 체크-) 

65쪽.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서먹한 사이가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서로를 믿지 않기 때문일 거야.
한때 절친했던 친구와 서먹해지는 일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다. 나 역시 겪어 보았고, 그래서 마음도 많이 아팠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서먹한 사이가 되는 건, 도로시의 말처럼 둘의 사이에 '불신'이 끼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날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등등. 소중했던 사이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계속해서 함께 하고픈 친구와 지인 사이에 불신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진심을 다 해야지.

83쪽. 자신을 사랑해야만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사랑을 믿고 용감하게 사랑하세요.
나 자신에게 집착하기는 쉽지만, 진정으로 사랑하기는 어려운 법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도 용기 있게 다가가기는 힘들다. 자신에 대한 사랑 아닌 집착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받을까 봐 뒷걸음치는 것. 진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상대방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105쪽. 화려한 약속과 맹세는 필요 없어. 행복은 솔직한 순간에 느끼는 거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한 순간, 서로가 진심을 느끼는 순간, 해탈하는 듯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사랑이며, 껍데기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사랑은, 이래서 더더욱 필요한 것.


이 책은 이렇게 가족에 대해 느끼는 고마움과 그리움, 학교에서 만나 함께 크고, 함께 마음을 나눈 친구들,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단상이 적혀있다. 읽으면 절로 공감되고,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그리고 글쓴이 도로시가 직접 그린 그림이 참 귀엽다. 커다란 눈망울, 순박한 그림선, 길쭉길쭉하게 뻗은 팔다리, 알록달록 입은 옷들이 귀엽다. 여성스럽고 아기자기해서 사랑스럽다.  같이 실린 단상과 연관된 그림으로써, 글의 내용을 마음에 좀 더 와 닿게 한다. 나는 <친구> 챕터에서 두 여자 친구가 서로의 머리를 하나로 땋은 그림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보면, 순간순간 느낀 생각들을 글로 적고 싶고, 그 글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그림도 그리고 싶어진다. 그림일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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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기간/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을 사강과 함께 ♡)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프랑스)
/읽은 동기/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지난달부터 사강의 책들을 하나씩 다시 읽고 있는 중이라 읽었다. 
사강의 책은, 뭐랄까... 읽고 나면 가슴속에 강한 여운이 남는데, 그러면서도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사강의 글은 여자로서 공감을 자아내고, 바늘로 심장을 콕콕 쑤시는 부분이 있지만, 책을 덮으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기묘함. 이 망각이 사강의 책을 다시 펼치게 하는 것 같고, 그녀를 자꾸만 알고 싶게끔 하는 것 같다. (매력적인 외모도 그중 한 이유겠죠. 세련된 파리지앤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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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강이 49살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내용은 자전적, 형식과 문체는 에세이라고 할까. 이 책은 내가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부르는 독특한 그녀의 문체로 인해서 대부분의 내용은 다 까먹고 겨우겨우 <장 폴 사르트르> 챕터와 <독서> 챕터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 두 챕터는 내가 관심 있는 사람, 관심 있는 소재여서 그럴 것이다) 이번에 재독할 때도 역시나, <장 폴 사르트르>와 <독서> 챕터가 제일 와 닿았다.


사강이 말하는 장 폴 사르트르는 매력적이다.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사강과 사르트르. 하지만 사르트르가 사강보다 30살이 많다. 사강이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 사르트르는 이미 너무 늙었다. 사르트르의 늙어버린 두 눈,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책을 읽고, 나이 50줄에 들어서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글만 쓰는데 매진했던 그의 눈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추하다. 먹을 때 음식을 줄줄 흘리고, 어딘가 칠칠맞지 못하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힘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지성과 행동의 거인에게서 드디어 허점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사강은 분개한다. 그녀는 그가 음식을 흘리든 말든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고, 단지, 그의 말을 듣는 게 좋았고 그를 신뢰할 수 있었으며, 사르트르가 자신에게 애착을 가져 주기를 바랐다. 

이 챕터는, 사강이 사르트르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어느 잡지에 실은 글과 덧붙여 사르트르의 말년에 가끔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때 나눴던 대화들을 회상하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면, 사강이 얼마나 사르트르를 좋아하고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글 하나하나마다 사르트르에 대한 꿀이 뚝뚝 떨어진다. 

181쪽. 아직껏 내가 경탄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정말이지 내가 계속해서 경탄하는 유일한 작가예요.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영리하고 엄숙한 나이에, 정확한 목표가 없었으므로 타협도 없었던 나이에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지켰어요. 당신은 당신 세대의 가장 지적이고 가장 올바른 책들을 썼어요. 당신은 또한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재능이 빛나는 책 『말』을 썼어요. 동시에 당신은 늘 약자와 모욕 당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어요. 당신은 사람을, 대의를, 보편성을 믿었어요. 때때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실수를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이 측면에서는 모든 사람과 반대로) 그것을 매번 인정했어요. 

184쪽. 이 세기는 광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패한 것이 분명해요. 그러나 당신은 지성적이었고, 온화했고, 청렴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러니 당신은 감사를 받아 마땅하지요. 

192쪽. 때때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답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벼락 맞은 남자밖에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사강의 말처럼 사르트르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189쪽. "당신은 정말 친절한 여자예요. 그것은 좋은 징조지. 지성적인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 법이거든. (...)"

189쪽.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내가 실명했을 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쉰 살 이후 나는 하루에 열 시간씩 글을 썼고,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소), 이제는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곧 충격을 받았고 자살 생각까지 했어요."
(...)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평생 동안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지. 나는 행복한 남자였고, 행복한 저명인사였소. 그런 만큼 갑자기 역할을 바꿀 생각은 없었소. 나는 습관에 의해 계속 행복해했소."


사강이 예찬했던 사르트르의  『말』. 예전에 사강의 예찬을 읽고 『말』을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난해하고 웬 미치광이가 쓴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괜찮은 책이었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책. 게다가 사르트르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 있다. (아마도, 이 책이 사르트르 자신이 쓴 유일한 자전적 책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사르트르가 죽기 전에 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사강처럼 그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바로 <독서> 챕터. 유명한 작가의 유년시절 독서 기억은 언제나 흥미롭고 알고 싶다. 나와 다른 어떤 경험을 했을지 궁금하고, 혹 내가 경험하지 못한 추억이 있으면 배가 아프고 이제라도 작가 유년 시절을 코스프레 하면서 그들의 추억을 흉내 낸다. 또 그들이 언급한 책이 넘사벽 수준만 아니면 도전하기도 하고. 

사강은 <독서> 챕터에서 자기 유년 시절을 뒤흔들었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던 책 4권 소개한다. ①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② 까뮈, 『반항인』 ③ 랭보, 『일뤼미나시옹』 ④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지드의 책은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읽었을 땐 좀 처음 느낀 감정의 반도 안 됐다지만, 까뮈의 책은 여전히 좋았고, 랭보는 천재고, 프루스트는 사강에게 글쓰기의 매력, 격렬함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사강은 까뮈의 외모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그가 대머리였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감정도 덜 했을 거라고 한다. - 앙드레 지드의 의문의 한 패!) 


나는 <독서> 챕터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209쪽. 나는 또한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글을 쓴다는 일의 멋진 격렬함을 발견하면서 제어할 수 없으면서도 늘 제어되는 열정을 발견했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공허한 표현이 아님을, 그것이 쉽지 않음을, 그리고 그 시절 떠돌던 생각과는 달리 진짜 화가나 진짜 음악가보다 진짜 작가가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재능은 극소수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선물임을. 그 재능을 명예나 오락거리로 삼으려는 사람은 가벼운 바보인 동시에 비참한 불경배임을. 글을 쓴다는 일은 뚜렷하고 값지고 드문 재능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부적당하고 거의 몰상식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 문학은 감히 손가락으로 자신을 만지는 사람들을 무능하고 신랄한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때때로 잔인하게도 그들에게 일시적 성공을 안겨주지만, 결국 그들의 삶을 파멸시킨다.


사강의 생각에 동의한다. "진짜 작가가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재능은 극소수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선물임을." 블로그, SNS가 활발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고 옛날보다 훨씬 책을 쉽게 낼 수 있는 지금, 그리고 사람들의 학력 수준이 올라가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멸종된 지금, 누구나 글을 쓰고 소위 작가들로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오히려 진짜 작가는 멸종되다시피한 세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니, 세상 어딘가에 진짜 작가가 여전히 생존해 있겠지만, 글과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 작가를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원서 제목이 Avec Mon Meilleur Souvenir 이다. 직역하면, <내 최고의 추억과>정도가 된다.원제처럼 이 책은 사강이 만났던 최고의 사람들과 그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도박, 스피드(자동차/말), 연극, 도시, 독서를 예찬하는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강은 결코 그녀의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권태에 허우적거리거나 냉소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사르트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빌리 홀리데이, 테네시 윌리엄스, 오손 웰스, 루돌프 누레예프에 대해서 정말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19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못 말리는 악동 이미지로 출발, 이후 도박과 마약 중독으로 삶의 부침이 많았고 마약 문제로 법정 앞에 섰을 때 사강이 내뱉은 한 마디,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사강이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이 낯섦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없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210쪽.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을 필요가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소설 등의 작품이, 작가라는 사람 자체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또한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사람이, 작은 악마라니... 사강은 단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다양한 스펙트럼과 매력, 여러 모습을 가진 한 명의 인간(당신과 나처럼)이었다는 걸 이 책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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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를 대비하라 - EU 집행이사회 조명진 박사
조명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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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5일~6일
/주제 분류/ 경제 경영
/읽은 동기/ 2016년 전 세계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 2개를 고르라 하면, 하나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 안이 영국 국민투표에서 가결되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국제 정세는 신양극체제로 재편되고 있어서 세계정세를 예측하는 것이 점차로 불확실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이라는 예상치 못한 일이 2가지나 일어나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한치 앞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단지 아는 것을 하나 말하라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요거 하나 정도일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당선된 것의 여파는 그가 취임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주시해야 할 것 같고(왜냐면 트럼프 자신도 자기가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것 같기 때문), 트럼프와 함께 오리무중 깜깜한 브렉시트는 그래도 전문가의 분석과 의견을 들으면 무지로 인한 불안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브렉시트 관련 책 한 권을 읽어 보았다. 


──────────


영국은 익숙하면서도 머나먼 나라다. 미국과 친한 우리는, 역시 미국과 친한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 대한 정보와 문화를 자주 접한다. 배낭여행과 출장도 많이 가고,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나라로 영국을 꼽는 사람도 있다. 19세기 대영제국이라는 찬란한 과거와 20세기 전쟁에서 승전국이라는 우호적인 이미지,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셜록 홈즈와 해리포터의 나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막상 빈번한 문화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무역 규모 역시 별로 크지 않다. 멀고 먼, 지구 반대편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6월 23일에 있었던 영국의 국민투표의 결과는 우리나라 사람까지도 뜨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들 궁금했다. 브렉시트의 파장은 무엇이고, 그 강도는 어느 정도일지. 인터넷 질문 사이트에 꽤나 많은 질문이 올라왔지만, 이 질문은 영국사람들도 그렇게 똑부러지게 대답하긴 어려운 문제다. 생각보다 너무 복잡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말하길, 브렉시트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이혼"이라고 했단다. 어쨌거나 복잡하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 없고 복잡하게 얽힌 것도 풀고, 자르고, 나열해서 그 본질을 분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은 지난 12년간 EU 집행이사회에서 국제 안보 관련 자문을 맡아온 유럽 전문가, 조명진 박사가 쓴 책이다. 오랫동안 유럽을 연구하고, 유럽 동향을 지켜온 전문가로서 책 내용이 신뢰할 만하다. 유럽 역사와 지리, 세계 협력 기구들(국제 기구가 너무 많고, 이름도 너무 길고 다 비슷비슷해서 머리가 뱅뱅 @ㅅ@), 조약, 통계 자료, 통화, 환율 등등 다양한 자료로 브렉시트를 분석, 설명하고 있다. 책이 무턱대고 어렵거나, 때론 무기가 되는 양장본도 아니고, 사람 기 죽이는 두께감도 아닌, 보통의 단행본이라서 읽기에 크게 부담없다. 다만, 유럽 역사와 국제 관계 및 거시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는 분들이 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왜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나
2장 브렉시트가 가져온 거대한 파장 
3장 유럽 통합의 종말, 그리고 세계는… 
4장 브렉시트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1장 왜 영국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나
브렉시트는 보수당의 주장에서 출발하여, 국민투표도, 그 탈퇴 처리도 보수당에서 해야 한다고 한다. 브렉시트는 보수당의 소수 소장파 사람들이 주장한 것인데, 캐머런 총리가 2015년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재집권하면 국민 투표를 하겠다고 공약해서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버린 것이다. 캐머런은 잔류를 원했고 또 잔류를 예상했지만, 난민 문제와 반 EU, 반 이슬람 정서 때문에 놀랍게도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그동안 누적된 영국 내 계층 갈등 (세대, 학력, 소득)이 이번 투표로 전면 부상했고 이는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이 정말 브렉시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투표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그리고 영국은 유럽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로, 역사적으로 유럽에 통합되었다가 한 발짝 물러서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로마 식민지,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에 보다 가까워졌다가도 때때로 프랑스나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유럽과 멀어지기도 하고, 헨리 8세의 영국 교회 설립 문제로 유럽과 멀어지고(저자는 이것이 최초의 브렉시트라고 한다), 19세기엔 식민지 팽창에 몰두했기 때문에 유럽과 거리를 두었으며, 20세기는 양차 대전으로 독일로 대변되었던 유럽을 적대시 했다. 20세기 후반 영국이 EU에 가입한 후에도 독일과 프랑스가 EU를 주도하자 그것이 못마땅했던 영국에선 반 유럽 정서가 일어났다. 독일이 주도로 한 중동 난민 수용과 이슬람 테러는 반 유럽 정서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까. 

2장 브렉시트가 가져온 거대한 파장
일단 영국의 신용 평가 하락, 대형 건설 프로젝트 등 시일이 오래 걸리는 사업은 불확실해졌다. 또 파운드의 평가 절하로 다국적 기업들이 영국에 세워둔 공장이나 런던 지사를 옮길 기미가 보인다. 게다가 브렉시트는 국민투표로 가결되었다고 해서 카톡 단체톡방 나가듯이 뚝딱 나가지는 게 아니다. 2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EU와 계속 협상에 협상을 거듭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영국은 현재 계속 분열 중이다. 강경파(하드 브렉시트- 그냥 나가자!) 온건파(소프트 브렉시트- EU 규정 일부 받아들임) 또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을 총리가 할 수 있는지,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건지 법률 해석 여지도 많고 복잡하다. 또한 영국은 단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이다. 이들 나라 각각에 국민들의 의견(국회)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이 문제도 꽤나 복잡하다, 스코틀랜드는 EU 잔류를 지지하고, 웨일스는 탈퇴를 지지, 북아일랜드는 토착민인 켈트족은 잔류 지지, 건너온 앵글로 색슨족은 브렉시트를 지지해서 영국은 지금 사분오열된 상태다. 특히나 스코틀랜드의 경우, 2014년에 독립 국민투표를 했을 만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번 브렉시트 결정으로 다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불붙을지도 모른다. 영국령인 지브롤터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골이 아프다. 지브롤터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곳에 있는 섬인데, EU에서 영국이 탈퇴하면 스페인이 지브롤터 국경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스페인과 국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전에도 문제가 많았는데, EU가 중재했다고 한다.) 

또한 영국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이 시발점이 되어 다른 국가의 EU 탈퇴 연쇄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부정부패로 인해 재정 상태가 엉망인 그리스가 현실적으로 EU에 소속하기 보단, 탈퇴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여 언제 탈퇴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국민투표도 하였으나, 잔류로 결정났다)

3장 유럽 통합의 종말, 그리고 세계는… 
영국은 EU와 관계 설정을 다시 하면서 경제, 무역에 관해 여러 선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노르웨이처럼 유럽경제지역에 가입해서 농업, 어업, 사법, 세관 등은 영국 자국 관할로 두고, 4가지(상품, 서비스, 노동력, 자본)은 자유로이 이동 가능하게 할 것인지, 스위스 모델처럼 EU와 양자 협약을 맺을 수 있다. 이건 EU 정책이나 프로그램 등을 영국이 각각 선택해서 참여하는 모델인데, 문제는 참여 여부는 선택 가능하나 프로그램을 영국이 주도로 짤 수는 없다. 이외에도 유럽자유무역연합으로 EU와 관계를 모색하거나 WTO를 통해 EU 국가들과 경제 교류, 무역을 할 수 있다. 크게는 이렇게 4가지 모델이 있는데,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 

그런데 영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친하게 지냈던 국가들에게 브렉시트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국가 안보, 국방 문제가 아닐까 싶다. 현재 신양극체제로 국제 사회가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 친미국가) vs 상하이협력기구(친러국, 친중국)로 나눌 수 있다. 현재 러시아 푸틴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는 터키와 시리아 내전 문제에서, 중국은 동남아시아(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하나씩 일을 진척시키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옛날의 영광을 찾기 위해 발 빠르게 판을 짜고 있는데, 소위 북대서양조약기구 쪽은 그와 반대 양상이다. 특히 영국이 EU를 탈퇴함으로써 결속력이 많이 와해될 것으로 예상된다.

4장 브렉시트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4장에서는 브렉시트로 인한 한국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파장, 대응 전략을 소개한다. 우선은 한국-EU FTA를 한국-영국 간 FTA로 바꿔야 하고, 양국간 무역 규모는 작지만 장기적으로 봐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 보아야 한다고 주장. 현재 중국은 현물 구매 전략을 펴며 원자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일본은 닛산, 토요타, 혼다 3사의 자동차 생산 대수가 영국 공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수출용으로 EU에 절반 이상을 수출한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파운드가 약화되면 피해가 막심하므로 공장을 철수하거나 유럽 내 영업을 그만 둘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어느 정도 일본의 뜻을 관철해 냈다. 이를 보고 우리도 잘 대응할 것은 물론이고, 외환 포트폴리오도 잘 짜서 보다 빠르게 우리에게 유리한 정책을 펼 것을 글쓴이는 권유한다. 그리고 우리가 통일이 되었을 때 혹은 북한이 갑자기 붕괴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


이 책을 읽으면서 발췌하고, 요약하고, 포스트 쓰면서 정리했더니 브렉시트에 대해 조금 이해한 것 같다. 우선 이 책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브렉시트가 우리에게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으나 중장기적으로 보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근본적으로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고 큰 그림을 구상해야 한다고 것이다. 게다가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이 어떻게 하는지 단디 보고 벤치마킹하고!! 

나는 브렉시트 자체보다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사뭇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브렉시트가 왜 일어났는지 영국 역사까지 곁들어 읽으니, 보다 이해가 잘 되었다. 나는 작년에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듣고 영국이 왜 EU를 탈퇴하고자 하는지 뜬금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시끌시끌했던 그리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책 덕분에 영국뿐만 아니라 현재 유럽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지금 세계정세가 극도로 불확실하다는 것!! 예의 주시가 필요하다. 국제 관련 일이랑 1도 관련 없는 '나'이지만, 이미 너무나 세계화된 이 세상에서 과연 내가 현 세계 흐름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을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fin - 


/인상 깊었던 부분/
1. 우리 경제는 미영식 금융법보다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제조업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외국 큰손들이 한 번 장난치면 나라가 휘청휘청 거리는 작고 작은 우리나라, 내 생각에도 제조업으로 내실을 다져야 한다. 인간이 살면서 서비스만 이용할 수 없고 돈 자체는 있다가도 없는 것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역시 우리는 제조업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흐르는 물에 쉽게 휩쓸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2. 영국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고 영국 국교회를 만든 것을 두고 최초의 브렉시트였다는 설명, 이 부분을 읽고 허가 찔린 기분이었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알았지만 이걸 브렉시트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에드거 앨런 포우의 『도둑 맞은 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상식도 조금 달리 보고 깊이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세상만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으리오. 다 예전부터 있던 것. 단지, 관점만 달리하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고,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도 긴밀히 연관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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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시기/ 2016년 12월 18일 ~ 20일
/주제 분류/ 프랑스 소설
/읽은 동기/ 
   십여 년 전 전혜린의 에세이를 읽고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그 페이지들을 프린트했다. 그동안(그러니까 근 10년 동안)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내가 가진 책들,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프린트를 발견, 읽어보았다. 전혜린이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사강의 『어떤 미소』를 접했고, 후에 전혜린과 결혼하게 된 남자친구에게 그 소설의 줄거리를 들려준다. 남자친구의 소개로 전혜린은 『어떤 미소』를 번역 출간하게 된다. 
   이제는 중고서적에서도 찾기 힘든 전혜린의 『어떤 미소』. 그녀의 번역은 읽을 수 없지만 그녀를 움직이게 하고, 번역하게끔 한 『어떤 미소』가 과연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현재 구할 수 있는 책으로 읽었다. (재밌게도 몇 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줄거리도 다 까먹었다. 사강의 초기작들은 엇비슷한 뭔가가 있어서, 작품들끼리 헷갈린다. 줄거리보다 심리 묘사에 치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
· 도미니크 - 나 (화자), 
· 베르트랑 : 도미니크의 남자 친구
· 뤽 : 도미니크가 사랑하게 되는, 베르트랑의 외삼촌
· 프랑수아즈 : 뤽의 아내
· 카트린 : 도미니크의 여자 친구
· 알랭 : 홀로 남은 도미니크의 곁에서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 

/줄거리/
   이지적인 여대생 도미니크, 도미니크에게는 똑똑하고 자상한 남자친구, 베르트랑이 있다. 베르트랑이 수줍고 어리숙한 말고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그녀 역시 어리숙한 답변으로 둘은 사귀게 된다. 둘은 정말 좋아한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문득문득 베르트랑을 사랑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14쪽. (...) 우리 관계의 지표들을 발견하곤 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나를 따분하게 해. 나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완전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자 터무니없는 열광의 감정이 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20쪽. 내 안에는 늘 뜨겁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 같은 권태에 대한 취미가, 고독에 대한 취미가, 대로는 열광에 대한 취미가 존재했다. 나는 아마도 내 간에 이상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베르트랑은, 직업이 여행가인 외삼촌, 뤽을 도미니크에게 소개해 준다. 도미니크는 순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을 받는다. 도미니크 스스로 의식한 듯, 의식하지 못한 듯, 뤽에게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예감, 망각, 거부, 체념, 죄의식 등의 여러 감정들을  반복적으로 느끼다가 뤽과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도미니크 내부에서 뤽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진다. 
34쪽.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그것은 좋은 거라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행복해지려면 충분히 뜨겁게 사랑받고, 스스로는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자신은 매우 행복하다고, 왜냐하면 그가 프랑수아즈를 사랑하고 프랑수아즈도 그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거기에 덧붙여서, 만약 내가 당신과 연애를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텐데." (아웅, 뤽은 완전 선수!!! - 먼지잼 주*)
   뤽의 도미니크에 대한 마음은 어떨까? 바로 위의 발췌문처럼 나이 든 매력적인 유부남이 상큼하고 통통 튀는 데다가 젊고 예쁜 여대생 도미니크를 그냥 한 철 애인으로 삼을 만한 사람으로 봤을까? 뤽 역시 도미니크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뤽이 진정 사랑하는 건, 그의 아내 프랑수아즈다. 그래서 뤽은 도미니크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도미니크에 대한 마음의, 감정의 변화는 있지만, (한 철 애인에서, 오래도록 두고 싶은 애인으로) 그녀를 결코 사랑하게 되진 않을 것이다. 

81쪽. "나는 말이야, 내가 널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무척 존중해, 도미니크, 널 무척 좋아해. 내가 널 어린아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사랑할 수는 결코 없을 거야. 하지만 우린 닮았어. 너와 나 우리 두 사람 말이야. 이제 난 너와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는 않아. 난 너와 함께 살고 싶고, 너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어. 우린 굉장히 만족스러울 거고, 매우 감미로울 거야. 나는 너에게 바다를, 돈을, 어떤 형태의 자유를 가르쳐 줄 거야. 우리는 지루하지 않을 거야. 안 그래?"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마음이 이러하여, 도미니크와 뤽은 여름 바캉스를 함께 떠난다. 1주일이 2주일로 늘어난다. 그들은 해변과 호텔 침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다른 것은 생각지 않는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도미니크의 친구, 카트린은 이런 사실을 베르트랑에게 말했고, 프랑수아즈의 대학 동창 역시, 뤽과 도미니크의 비밀 여행을 목격하고 프랑수아즈에게 모든 걸 다 말해버린다. 

   바캉스가 끝나고 파리로 돌아온 도미니크와 뤽. 달콤한 휴가의 끝으로 그들의 관계도 예전 같을 수 없다. 뤽이 프랑수아즈가 마음 아파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이미 알았었고, 이미 예견되었던 실연의 아픔을 도미니크는 겪는다. 아픈 와중에도 도미니크는 뤽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의 편지를 기다린다. 
184쪽. 나는 한 달 동안 그를 보지 못할 것이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묘한 절망감이었다. 사랑을 쫓아내는 기묘함. 그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나는 더는 울지 않았다. 

186쪽. '나는 나야, 도미니크.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뤽을 사랑해. 나눠 가지지 못하는, 슬프고 불가피한 사랑. 끊어버려.'
   어느 날, 도미니크는 프랑수아즈를 만난다. 인정 많고, 애정 많은 프랑수아즈는 아파하면서도 끝까지 도미니크를 좋아하고 존중해 준다.

196쪽. "이제 난 젊지 않아요. 별로 매력이 없어요."

196쪽. 나는 이 이야기에 다른 측면이, 내가 모르는 비참함, 아니, 비참하지조차 못한 일상적이고 슬픈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나는 이 이야기가 내 소관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도미니크는, 프랑수아즈가 그들의 관계를 알면 그녀가 분명 마음 아파할 걸 알았지만 (그래서 처음 도미니크는 뤽을 거부하려고 애썼다), 진정 프랑수아즈라는 한 존재를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그녀의 마음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것, 관성적 존재다. 
199쪽. 사흘 째 되는 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강의를 들으러 갔다. 알랭이 다시 나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웃기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문장이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 "덴마크 왕국에는 타락한 어떤 것이 있다." 내 입술 위에 이 말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보름째 되는 날 나는 뜰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안단테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을, 죽음을, 어떤 미소를 환기시키는. 나는 침대 위에 꼼짝 않고 누워 오랫동안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나는 퍽 행복했다.
   몸이 아픈지 사흘 째 되던 날, 도미니크는 강의를 들으러 다니기 시작했고, 보름째 되던 날 아침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모차르트의 안단테를 듣는다. 그녀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행복을 느꼈다. 그때 뤽에게서 전화가 왔다.
200쪽. 전화를 한 사람이 뤽이라는, 그리고 그 사실이 이젠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가 내게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
미소 짓고 있는 내가 보였던 것이다. 미소 짓는 나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 나는 나 자신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혼자, 혼자라고. 그러나 결국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나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이다.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였다. 얼굴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도미니크는 첫사랑의 열병을 끝내고 거울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자신과 마주하며 소설은 끝난다. 누구나가 겪는 첫사랑을 도미니크는 이렇게 떨쳐낸 것이다. 

/느낀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분명 전혜린이 감명받았을 것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고 치밀하며 솔직하다. 소설은 짐짓 꾸며낸 이야기,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들인데도, 작가의 솔직함이 담겨 있지 않으면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 없다. 돌아서면 잊혀 버리는 이야기 조각들. 『어떤 미소』는 사강이 21세 때 쓴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지만 지금도 읽히는 건 사강의 솔직함, 자기 마음과 감정을 꼼꼼히 해부하고 샅샅이 훑어보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비록 다른 초기작들과 비슷한, 스토리 위주가 아니라 심리 묘사 중심이라서 소설의 줄거리, 등장인물들이 헷갈린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깊은 공감(혹은 불편함)을 자아내고,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는 것은 그녀의 예리한 관찰력과 솔직함 덕분이 아닐까 싶다. (뭇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게 되는, 첫사랑의 감정인데도 모두가 이런 작품, 혹은 일기로라도 이런 글을 쓰지 못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사강보다는 덜 치밀하고, 덜 자기 마음을 관찰하고, 덜 부지런해서 그럴 것이다) 

   프랑수아즈 작품을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대단한 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위고나 디킨스 등등 인류를 위한, 인류에 대한 글은 결코 아니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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