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기간/ 2017년 1월 1일 (새해 첫날을 사강과 함께 ♡)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프랑스)
/읽은 동기/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지난달부터 사강의 책들을 하나씩 다시 읽고 있는 중이라 읽었다. 
사강의 책은, 뭐랄까... 읽고 나면 가슴속에 강한 여운이 남는데, 그러면서도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사강의 글은 여자로서 공감을 자아내고, 바늘로 심장을 콕콕 쑤시는 부분이 있지만, 책을 덮으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기묘함. 이 망각이 사강의 책을 다시 펼치게 하는 것 같고, 그녀를 자꾸만 알고 싶게끔 하는 것 같다. (매력적인 외모도 그중 한 이유겠죠. 세련된 파리지앤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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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강이 49살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내용은 자전적, 형식과 문체는 에세이라고 할까. 이 책은 내가 몇 년 전에 감명 깊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부르는 독특한 그녀의 문체로 인해서 대부분의 내용은 다 까먹고 겨우겨우 <장 폴 사르트르> 챕터와 <독서> 챕터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 두 챕터는 내가 관심 있는 사람, 관심 있는 소재여서 그럴 것이다) 이번에 재독할 때도 역시나, <장 폴 사르트르>와 <독서> 챕터가 제일 와 닿았다.


사강이 말하는 장 폴 사르트르는 매력적이다.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난 사강과 사르트르. 하지만 사르트르가 사강보다 30살이 많다. 사강이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 사르트르는 이미 너무 늙었다. 사르트르의 늙어버린 두 눈,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책을 읽고, 나이 50줄에 들어서는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글만 쓰는데 매진했던 그의 눈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의 모습은 추하다. 먹을 때 음식을 줄줄 흘리고, 어딘가 칠칠맞지 못하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기다린 건지도 모르겠다. 자기 힘으로 쓰러뜨릴 수 없는 지성과 행동의 거인에게서 드디어 허점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사강은 분개한다. 그녀는 그가 음식을 흘리든 말든 그런 건 아무렇지 않다고, 단지, 그의 말을 듣는 게 좋았고 그를 신뢰할 수 있었으며, 사르트르가 자신에게 애착을 가져 주기를 바랐다. 

이 챕터는, 사강이 사르트르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어느 잡지에 실은 글과 덧붙여 사르트르의 말년에 가끔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때 나눴던 대화들을 회상하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면, 사강이 얼마나 사르트르를 좋아하고 신뢰하는지 알 수 있다. 글 하나하나마다 사르트르에 대한 꿀이 뚝뚝 떨어진다. 

181쪽. 아직껏 내가 경탄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정말이지 내가 계속해서 경탄하는 유일한 작가예요. 내 나이 열다섯 살 때, 영리하고 엄숙한 나이에, 정확한 목표가 없었으므로 타협도 없었던 나이에 당신이 나에게 약속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지켰어요. 당신은 당신 세대의 가장 지적이고 가장 올바른 책들을 썼어요. 당신은 또한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재능이 빛나는 책 『말』을 썼어요. 동시에 당신은 늘 약자와 모욕 당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어요. 당신은 사람을, 대의를, 보편성을 믿었어요. 때때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실수를 했어요. 그러나 당신은 (이 측면에서는 모든 사람과 반대로) 그것을 매번 인정했어요. 

184쪽. 이 세기는 광적이고, 비인간적이고 부패한 것이 분명해요. 그러나 당신은 지성적이었고, 온화했고, 청렴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그러니 당신은 감사를 받아 마땅하지요. 

192쪽. 때때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 답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벼락 맞은 남자밖에 없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다.


사강의 말처럼 사르트르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189쪽. "당신은 정말 친절한 여자예요. 그것은 좋은 징조지. 지성적인 사람들은 모두 친절한 법이거든. (...)"

189쪽. "당신도 짐작하겠지만, 내가 실명했을 때,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쉰 살 이후 나는 하루에 열 시간씩 글을 썼고,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소), 이제는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곧 충격을 받았고 자살 생각까지 했어요."
(...)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았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평생 동안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행복했지. 나는 행복한 남자였고, 행복한 저명인사였소. 그런 만큼 갑자기 역할을 바꿀 생각은 없었소. 나는 습관에 의해 계속 행복해했소."


사강이 예찬했던 사르트르의  『말』. 예전에 사강의 예찬을 읽고 『말』을 읽어보았는데 이 책은 난해하고 웬 미치광이가 쓴 것 같기도 했지만 정말 괜찮은 책이었다.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책. 게다가 사르트르란 어떤 사람인지 잘 드러나 있다. (아마도, 이 책이 사르트르 자신이 쓴 유일한 자전적 책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사르트르가 죽기 전에 그를 알았더라면, 나도 사강처럼 그의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챕터는 바로 <독서> 챕터. 유명한 작가의 유년시절 독서 기억은 언제나 흥미롭고 알고 싶다. 나와 다른 어떤 경험을 했을지 궁금하고, 혹 내가 경험하지 못한 추억이 있으면 배가 아프고 이제라도 작가 유년 시절을 코스프레 하면서 그들의 추억을 흉내 낸다. 또 그들이 언급한 책이 넘사벽 수준만 아니면 도전하기도 하고. 

사강은 <독서> 챕터에서 자기 유년 시절을 뒤흔들었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쳤던 책 4권 소개한다. ①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② 까뮈, 『반항인』 ③ 랭보, 『일뤼미나시옹』 ④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지드의 책은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읽었을 땐 좀 처음 느낀 감정의 반도 안 됐다지만, 까뮈의 책은 여전히 좋았고, 랭보는 천재고, 프루스트는 사강에게 글쓰기의 매력, 격렬함을 던져주었다고 한다. (사강은 까뮈의 외모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그가 대머리였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감정도 덜 했을 거라고 한다. - 앙드레 지드의 의문의 한 패!) 


나는 <독서> 챕터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209쪽. 나는 또한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글을 쓴다는 일의 멋진 격렬함을 발견하면서 제어할 수 없으면서도 늘 제어되는 열정을 발견했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공허한 표현이 아님을, 그것이 쉽지 않음을, 그리고 그 시절 떠돌던 생각과는 달리 진짜 화가나 진짜 음악가보다 진짜 작가가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재능은 극소수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선물임을. 그 재능을 명예나 오락거리로 삼으려는 사람은 가벼운 바보인 동시에 비참한 불경배임을. 글을 쓴다는 일은 뚜렷하고 값지고 드문 재능을 요구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부적당하고 거의 몰상식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 문학은 감히 손가락으로 자신을 만지는 사람들을 무능하고 신랄한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때때로 잔인하게도 그들에게 일시적 성공을 안겨주지만, 결국 그들의 삶을 파멸시킨다.


사강의 생각에 동의한다. "진짜 작가가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재능은 극소수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선물임을." 블로그, SNS가 활발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고 옛날보다 훨씬 책을 쉽게 낼 수 있는 지금, 그리고 사람들의 학력 수준이 올라가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멸종된 지금, 누구나 글을 쓰고 소위 작가들로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나는 오히려 진짜 작가는 멸종되다시피한 세상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아니, 세상 어딘가에 진짜 작가가 여전히 생존해 있겠지만, 글과 책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진짜 작가를 만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원서 제목이 Avec Mon Meilleur Souvenir 이다. 직역하면, <내 최고의 추억과>정도가 된다.원제처럼 이 책은 사강이 만났던 최고의 사람들과 그들과의 추억 그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도박, 스피드(자동차/말), 연극, 도시, 독서를 예찬하는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사강은 결코 그녀의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권태에 허우적거리거나 냉소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하고,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사르트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빌리 홀리데이, 테네시 윌리엄스, 오손 웰스, 루돌프 누레예프에 대해서 정말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19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이란 작품으로 못 말리는 악동 이미지로 출발, 이후 도박과 마약 중독으로 삶의 부침이 많았고 마약 문제로 법정 앞에 섰을 때 사강이 내뱉은 한 마디,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 책에서 느껴지는 사강이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이 낯섦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없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210쪽.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강렬하게 살았던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누군가가 나 대신 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존재가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다른 누군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책을 통해 읽을 필요가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소설 등의 작품이, 작가라는 사람 자체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또한 그 사람의 전부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 따뜻한 사람이, 작은 악마라니... 사강은 단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 다양한 스펙트럼과 매력, 여러 모습을 가진 한 명의 인간(당신과 나처럼)이었다는 걸 이 책으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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