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물건 - 매일 쓰는 좋은 물건 100 교양 시리즈
하기와라 겐타로 지음, 전선영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읽은 기간/ 2017년 1월 13일~14일

/주제 분류/ 디자인/인테리어

/읽은 동기/ 북유럽 디자인이 나를 유혹해요




◈ 책 구성 ◈

좌 페이지 : 사진 (북유럽 디자인 일상용품)

우 페이지 : 사진에 실린 용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디자인한 사람 및 생산 회사 소개.


◈ 느낀 점 ◈

진짜! 오리지날! 북유럽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컵에서부터 의자, 접시, 전등, 텍스타일 등등을 소개하는 책. 물건들이 하나같이 너무 예뻐서 다 소장하고픈 욕망이 생겼다. 하지만, 언감생심, 그림의 떡!!! 이 책에 소개된 제품들은 대부분 1950~1960년 대에 생산됐던 빈티지 제품들이다. 글쓴이가 빈티지 숍이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현재 생산되거나 근래 제작된 상품도 실려 있다) 반세기도 더 된 물건들인데 사진에 실린 제품들은, 관리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빈티지 제품인지, 공장에서 갓 만들어진 따끈한 제품인지 분간이 안 된다. 오래된 물건이라도 애정을 담뿍 담아 아껴 쓰고 물건 그 자체, 만든 사람의 정신을 존중해 주는 건 북유럽이나 일본이나 비슷한 것 같다. 


2010년 대 이후, 일본에서 북유럽 디자인 열풍이 불었고, 이 바람이 잔잔한 서풍을 타고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와서, 우리도 카피된 북유럽 스타일의 제품을 많이 접하고 있다. 나는 그냥 깔끔하고, 정갈하면서도, 귀여운 패턴들이 단순히 세계적으로 좀 유행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게 다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북유럽 스타일이었다. 아웅, 나의 무지여!! 컵이나 접시의 단순하면서도 어딘가 단단하고 실용적으로 느껴진 제품들 역시 북유럽 디자인이었던 게 많았다. 


이 책에 실린 예쁘고, 심플하면서도 귀여운 북유럽 제품을 쓴다면, 나도 일상에서 쉽게 작은 행복, 소박한 즐거움을 매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물건들의 가격에서 제곱 혹은 세제곱까지 비싸더라도(그 이상은 무리다요. ㅠㅅㅠ) 북유럽 디자인이라면 충분히 지갑을 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돈 많이 벌어야지! (일상의 행복도 돈 없으면 얻기 힘들구나)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얻은 깊은 깨달음 하나! 현재 내가 가진 물건들, 비록 북유럽 디자인은 아니더라도 내가 그 많고 많은 물건 중에 유독 마음에 들어서 샀던 물건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아끼고 좋아한다면, 그것은 나에게로 와 한 떨기 꽃이 될 것이다. 지금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이나 정갈한 일본식 디자인도 누군가들이 아끼고 좋아해서 덩달아 나도 그것이 좋아 보이는 요인도 분명 있다. (유행이란 이런 심리의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물건, 우리만의 디자인도,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보고, 아끼고,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물건으로 대해준다면, 한낱 소유품에 불과했던 물건이 하나의 디자인, 정감이 가는 물건으로 탈바꿈되어 내게 보일 것이다. - 이 책을 읽고 얻은 깊은 깨달음이올시다!! 


◈ 읽고 좋았던 점 ◈

사진 보는 내내 행복했다. 이렇게 예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이 내 손 닿는 곳에, 내 눈길 닿는 곳마다 있다면 그냥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싼값의 요상하고 못난 물건 그래서 정이 안 가는 물건이 아닌, 진짜 내 마음에 들고, 내가 좋아하는 들을 내 주위에 몇 개만 흩여 놓아도 나는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 눈이 가고, 정이 가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참 행복한 것이다. 굳이 사람에 국한해서 살 필요는 없잖아 ♡

그리고 세상에 이런 디자인의 제품도 있구나 싶었던 게 많았다. 이렇게 심플하고 예쁜 물건을 나는 왜 상상하지 못했을까. 창작욕 탄생, 상상력 자극,구매욕 상승, 


◈ 읽고 별로였던 점 ◈

글쓴이의 제품에 대한 소개, 디자이너와 생산 회사에 대한 소개가 너.무.나. 디테일하다. 너무 디테일한 설명과 북유럽 고유 명사들의 계속된 공격에 난독증 재발. (안 돼!!!!) 다행히 내용이 길지 않아 천만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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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외 범우 사르비아 총서 501
루쉰 지음, 허세욱 옮김 / 범우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읽은 기간/ 2017년 1월 9일~11일
/주제 분류/ 외국 소설 (중국) 
/읽은 동기/ 책꽂이에 꽂힌 나의 책들이 내 관심과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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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에서 낸 루쉰의 중/단편집. 그의 대표작들 수록. 

1. 아Q정전
아Q │ 저항할 줄 모르고 폐습에 물든 인물. <정신승리법>이라는 걸 고안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모멸감, 부당함을 느낄 때마다 얼토당토않게 자기 합리화를 하여 의기양양하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게는 대꾸조차 못함. 강자에게 울분이 쌓이면 자기 상상 속에서나 통쾌하게 복수하고 욕하는 쪼잔한 캐릭터. 
조 영감 │ 구시대 전형적인 마을 지주. 
조 영감 아들 │ 전통 유교적 교육을 받았으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중국 옛것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람. 
마을 사람들 │ 마을 바깥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모르고, 자기 생각일랑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 
(위 등장인물 설명은 오로지 내 생각일 뿐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중국 역사를 잘 모르고, 배경지식이 없으니 단편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 『아Q정전』은 인물 하나하나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전형성을 갖고 있다. 아Q는 전형적인 구시대 중국인으로, 루쉰은 아Q를 희화화하고 비판한다. 일본에 나가 유럽 선진 문물을 보고, 또 옛날과 달라진 일본을 보며 느낀 것이 많았나 보다. 우리처럼, 루쉰도 구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당시 중국이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무덤'으로 보였을 것이다. 
1920년 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 자본주의의 습입, 그리고 지금, 중국은 엄청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20세기 초처럼 폐습에 물들어 외세를 배척하다가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뭔가 세계를 호령하려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뭔가 기묘한 형국, 각 지역마다 발전 속도도 너무나 다르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너무나 다르다. 『아Q정전』을 읽고 중국 사람들이 느낄 생각도 다 다를 테고, 이 소설을 평가하는 것도 다 다를 것이다. 지금의 중국 사람들이 『아Q정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 사뭇 궁금하다. 

2. 광인일기
한 미치광이가 쓴 일기. 미치광이의 눈에는 마을 사람 모두 다 사람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식인귀 들이고, 그런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기 친형마저 자신을 경계하고 자신을 먹을 생각에 입맛 다시고 있다고 믿는다. 
── 읽으면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다. 자기 파괴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하게 나타난 그런 소설이었다. 

3. 풍파
혁명이 있은 지 1년 후, 황제가 다시 등극하였다. 이때 황제가 변발을 하였기에 단발을 한 사람들이 당장 무슨 일 벌어질까 전전긍긍한다는 이야기. 변발을 하지 않고 잠시 틀어올렸던 사람은, 단발한 사람에게 우쭐하며, 단발한 사람들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죽을 죄인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변발한 황제 등극 후에도 마을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제야 사람들은 마음이 풀리어 예전처럼 마음 놓고 지낸다. 
── 우리도 개화기 때 단발을 하느냐, 상투를 트느냐가 첨예한 문제였으나,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우리와 복식 문화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좀 고개가 갸우뚱했다. 아무튼, 그때 중국 사람들도 변발의 머리가 잘리면, 아내가 몇 날 며칠로 대성통곡을 하고 우물로 몸을 날리는 등 자살을 서슴지 않았던가 보다. 신문물을 접한 루쉰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이었을까. 사라져야 할 폐습이었을 것. 

4. 고
어렸을 때 마을 유지의 아들로 잘 살았던 화자. 도시로 나가 공부도 하고 그곳에서 자리도 잡지만 사는 게 팍팍하다. 결국 고향의 살림살이를 다 정리하고 어머니와 조카까지 데리고 나와야 할 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3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화자. 세상은 변했는데, 고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가슴이 답답했고, 고향에 왔다는 기쁨도 별로 없다. 하지만, 어렸을 적 친구 윤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 신비롭기만 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던 윤토.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윤토는 자신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던 꼬마가 아니다. 자신을 깍뜻하게 모시는 아랫사람, 삶의 부침 속에 열심히 일해도 사는 게 팍팍한 가난한 일꾼일 뿐이다. 

5. 고독자
화자는, 독특한 인물로 소문이 난 위연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소문으로 듣고 있다가, 위연수의 의붓 할머니의 장례식 날 그를 만난다. 철저한 신식 인물이라는 소문과 달리, 위연수는 생각보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다. 그것으로 그들의 만남은 끝이었다가 화자에게 사정이 생겨 잠시 일을 쉬게 되고, 심심해서 위연수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둘은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사는 것이 팍팍하다. 두 지식인은 학교에서 선생을 하며 글을 쓰는 문인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쉽게 공격받기 십상. 화자와 위연수는 자기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중상모략을 받아 직장까지 내쫓긴다. 다행히 화자는, 겨우겨우 선생 자리는 유지하나, 위연수는 편지 부칠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을 만큼 극심히 궁핍해진다. 그리하여 그동안 자기 뜻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냉정했던 위연수가 닫았던 자기 방을 열고 시류에 영합하는 자들을 초대한다. 자기를 공격했던 사람의 입맛에 맞춰 글도 쓴다. 돈도 많이 벌고, 선물도 많이 들어온다. 이제 그의 인생은,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는데 그만 병에 걸리어 곧 죽고 만다. 방안에 콕 박혀 고독자로, 자기 생각을 꺾지 않았던 고고한 위연수는 배고픔 앞에서 변절하여 아사는 면했지만, 결국 그렇게 죽은 것이다. 
── 당시 중국의 치열했던 사상 투쟁의 한 단면을 소설로 그린 것. 비단 사상투쟁뿐만 아니라, 편가르기의 병패가 느껴져 참 씁쓸했던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병패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니까. 어느 분야이든, 편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은 채, 제 입맛에 맞는 글만 쓰고, 그 반대인 사람은 괴롭히고, 못살게 쥐어짜고... 이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백 년, 이 백 년 된 문제가 아니라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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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일간의 마음공부 - 천년 동안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이야기
송석구.김장경 지음 / 싱긋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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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12일
/주제 분류/ 국내 교양 (불교 철학)
/읽은 동기/ 새해도 됐겠다, 혼탁하고 더러운 내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읽음


──────────

저자가 두 명이다, 우선, 송석구 저자는 동양 철학을 전공, 김장경 저자는 송석구 저자의 제자인데 사업을 하면서 공부와 강의를 하시는 분이다. 이 책은 이렇게 스승과 제자가 함께 만든 책인데, 어떻게 분업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 문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 어쨌든 저자가 두 분이라 서문도 두 개, 후기는 없다. 

이 책의 구성은 정말 제목을 따른 구성이다. 하루에 한 챕터씩, 70일 동안 읽도록 되어 있다. (하루에 하나의 깨달음?!) 각 챕터마다 불교 일화가 실려 있고, 저자의 첨언(일화에 대한 설명이나 저자들의 생각, 주장)이 나온다. 이 책의 기획의도는 독자들이 매일매일 70일 동안 하나의 이야기를 읽고, 저자들의 생각을 천천히 음미하여 수행(修行), 수신(修身) 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나는 성질이 급한 관계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이 어찌나 재밌는지 어서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속독했다. 불가 수행에선 조급함을 버리라던데 난 막 조급함을 부렸어. >ㅁ< 이것도 욕심의 소산이겠지요?! 그래도 이야기가 재밌는 걸 어떻게 해!! 난 좀 이런 옛날 이야기, 단순하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는 주로 5세기 경 인도에서 만들어진 『백유경』이라는 불교 경전에 발췌한 것들이다. 『백유경』 외에 다른 경전에서 발췌한 것도 있고, 신라시대 핫피플이었던 원효 대사 일화도 실려 있다.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었고, 불교 교리 혹은 인간이 어디서 어리석음을 범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색해 놓았다. 불교 그런 거 하나도 몰라도, 전혀 부담 없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불교 경전에 실린 일화가 이렇게 쉬운 이유는, 아마도 싯다르타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싯다르타에게 지혜를 얻으려고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몰려온 사람들 중에는 브라만도 있고, 귀족도 있고, 글은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들도 있었다. 부자든, 권력 있는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도를 깨닫는 것은 어렵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사람들이 무명에서 벗어나도록 쉬운 일화를 들려주어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다. 그래서 이 책에 쓰인 일화도 들으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이야기 구성은 최대한 심플, 군더더기 없다. 


경전 속 일화를 발췌한 다음에는 이 책의 저자들이 덧붙여 쓴 글이 적혀있다. '일화'에 대해 부연 설명이나, 관련 불교 교리/개념을 적고 저자의 생각과 주장을 적어놓았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새기고 싶었던 부분은 바로 저자들의 이 첨언이었다. 저자의 첨언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 옳고 옳은 도덕적 이야기이지만, 살면서 누구나 잊고 살기 쉬운 것들이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설사 마음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경계에 부딪히면 누구나 평소와 다르게 분별심에 휘둘려 사리판단이 흐려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겨야 할 부분은 노트에 발췌했는데, 발췌하는 동안 흐트러진 내 마음을 바로잡기도 했다. 물론, 발췌하기를 멈춘 순간부터 열반의 세계로 가던 내 영혼이, 현실계로 뚝- 떨어져 버린다. 그래서 수행을 잠시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하나 보다. 

이하는 발췌한 것. 

27쪽. 문제와 대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풀기를 미뤄놓은 대가는 불안의 지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32쪽. "재물이 많으면 걱정도 많다. 재물을 쌓아놓고 먹지도 나눠주지도 않으면, 죽어서 아귀가 되어 의식이 부족할 것이요, 아귀가 되지 않더라도 천한 자가 되어 고통을 겪을 것이다. (...)"

36쪽. 쉽게 얻어지는 즐거움치고 우리를 망치지 않는 것은 없다. 

53쪽.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특정한 대상, 인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근본이 되는 내 마음을 직접적으로 바로 보고 들여다보고 관찰하야 한다. 

60쪽. 목숨이 다할 때까지 매일 온갖 살림살이 걱정에 빠져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79쪽. 게으르게 세월을 흘려보내거나 다투고 번뇌만 일삼으며 보내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이다. 

79쪽. 일을 하지 않는 것만이 게으른 것이 아니다. 관성에 빠져서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현재의 세상에만 젖어 있는 것도 게으른 것이다. 더 크고 더 나은 세계를 찾아 떠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82쪽. 자신을 제대로 잘 보아야 그때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86쪽.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아상 현실을 직시하고 끝까지 파고 들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94쪽. 상대방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떻게든 자립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103쪽. 어느 시점부터는 반드시 혼자서 가야 한다. 

124쪽. 훈습은 그대로 업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업식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126쪽. 마음공부는 자기 변혁을 위해, 이렇게 훈습되어 온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136쪽. 근본적인 답은 스승이 대신해줄 수 없다. 결국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0쪽. 선을 구하는 것에 게으르면 해태라고 하고, 청정하게 마음을 씻어내는 것에 게으르면 방일이라고 한다. 

195쪽. 잘못된 관념의 늪이 생기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체로 애초에 무엇인가를 남보다 쉽고 빠르게 얻으려는 탐욕으로 바른길을 걷지 않았거나 교만한 마음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200쪽. 불신은 참된 진리에 대해서 믿지 않는 마음이다. 깨달음의 실체와 힘, 덕성스러운 것들을 믿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마음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해태나 방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5쪽. 먼저 두드러지게 좋은 일을 하기보다는 비록 사소한 일이라도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 좋은 말 ♡ 
불교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어디서 다 들어 본 말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문화엔 불교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어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공부란 반복 학습할 때에야 비로소 공부가 되듯, 다 아는 내용도 화두로 삼아 깊이 생각해 보아야 진짜 공부가 된다. 

이 책을 읽고 좋았던 점은 - 여느 불교 대중 서적도 그러하지만 - 중간중간에 불교 교리 및 불교 개념들을 설명해 놓은 부분이 참 좋았다. 연기법이던가, 공사상이라던가, 그리고 20가지 번뇌들(108가지를 뽑기엔 지면이 부족했으려나요?! ㅋ)... 예전에 책을 읽고 공부했으나 잊고 살다 보니 또 다 까먹었다. 불교 교리를 완전히 익히지 않은 분들, 불교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분, 불교 초보자들에겐 좋은 설명일 듯하다. 그리고 이 역시 내가 따로 짬을 내어 곱씹고, 또 곱씹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공부한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다. 요런 책(불교 경전 포함)은, 진짜 제대로 읽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깨달음(혹은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을 얻고, 그 깨달음으로 내가 옳은 방향으로 변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독서/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책을 곱씹는 만큼,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고, 책 내용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지혜로운 말씀을 마음에 담는 것, 그 말씀으로 깨달음의 길에 다가가는 것도 다 독자의 몫, 다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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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의미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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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2일~10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대담록)
/읽은 동기/ 지난달에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또 읽었다.
읽어도 또 좋구나, 앞으로도 자주, 많이 반복해서 읽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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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0년 로맹 가리가 죽기 몇 달 전, 라디오-캐나다의 「말과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구술 제작했고, 2년 뒤 1982년 2월 7일에 공개했다. 이 책에는 질문자는 없고 오로지 로맹 가리의 진술로만 엮어져 있다. 한 편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이다. 전반부는 로맹 가리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고, 후반부 역시 로맹 가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아는 내용이다. 그래도, 작가가 처음부터 글로 써서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것과, 입으로 진술한 것을 글로 옮겨 공개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인터뷰를 한 것이니, 내용은 최대한 솔직하게, 하지만 그것을 담은 말은 최대한 예의 바르고 점잖다. (입으로 하는 직접 화법은 이렇게 직설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작가들이 소설을 통해, 간접화법으로 직설적으로 말하나 보다) 

로맹 가리의 인생은, 그야말로 부침 많고, 우여곡절 그 자체의 인생이었다. 로맹 가리라는 한 사람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새벽의 약속』을 자서전이라 하지 않고, 자전적 '소설'이라고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생각일 뿐 오해하지 마시라) 

로맹 가리의 어머니는 35살, 여자로서 한창일 나이일 때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하고,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그렇게 하나 뿐인 아들의 인생을 설계를 한다. "너는 커서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사관이 되겠지." 그리고 어머니는 작가와 대사관 못지않게, 아들이 프랑스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프랑스 장교가 되길 바란다. 로맨틱한 남자, 목숨을 걸고 악랄하고 못된 적과 싸우는 남자! 물론, 진짜 전장에서 아들이 죽기를 바랐던 건 아니다. 딱, 몸이 성한 수준만큼 싸우기를 바람 - 이 부분은, 『새벽의 약속』에 나왔던 부분으로 기억한다.)

로맹 가리는, 어머니가 설계한 대로, 그 삶을 살았다. 어렸을 땐 정말 꿈처럼, 하나의 실현 불가능한 상상일 뿐이었는데 로맹 가리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걸었던 꿈과 기대를 하나씩 이루어 간다. 물론 중년 이후엔, 어머니로서는 전혀 뜻하지 않았던 할리우드 영화계로도 로맹 가리가 진출했지만, 이건 어떻게 생각해보면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몇 년간 살아 보았다고 해도 될 듯하다. (로맹 가리가 배우로써 연기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미국에 살 때 배우 제의는 받았따!)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 스스로 삶을 살았다기 보다, 삶에 의해 살아졌다고.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어머니에 의해서,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폴란드의, 프랑스의 역사 부침에 의해서 일 것이다.)

11쪽. 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 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 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109쪽. 이 대담 초반부에서 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삶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여러분의 카메라를 통해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기이한 현상은 사실 인간의 실제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에 관해 쓰는 모든 것에서 매일 나를 보지만 나는 내가 끌고 다니는 그 이미지 속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 합니다. 어쨌든 작가의 창작물과 작가 자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는 자기 자신의 최고의 것을, 자기 상상에서 끌어낸 최고의 것을 책 속에 담고 그 나머지, 앙드레 말로의 표현대로라면 "한 무더기의 보잘것없는 비밀"은 홀로 간직하지요.


이 구술록은, 로맹 가리가 한 평생 어떻게 '살아졌'는지 차분히 그리고 담담하게 담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격앙된 목소리나, 어떻게 살아야겠는지 모르는 한 아이의 목소리는 없다. 그냥 경험 많은 중년 남성이 담담하게 자기 삶을 회고하고 있다. 그중에서 자기 인생에서 특기할 만한 사건이나 존재(어머니와 드골)를 언급하고, 어떤 직업을 가졌었고, 어떤 일을 했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자기의 책들이 세간의 말 혹은 비평가들의 말과 무엇이 어긋나는지 말한다. 문체(말투)는 담담하나, 결코 그의 인생까지 담담할 수 없다. 로맹 가리는 한 평생, 자기 삶을 살았고,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삶에서 최대한 자기가 할 수 있는대로, 치열하게 삶과 맞서 싸웠음을. 

46쪽. 우리는 많은 대원을 잃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밤마다 글을 썼습니다. 장교 네 명이 함께 스는 방에서 첫 소설 『유럽의 교육』을 썼지요. 끔찍이도 추웠는데 잠도 거의 자지 못 했습니다. 내가 새벽 2~3시까지 폴란드 레지스탕스를 무대로 한 『유럽의 교육』을 쓰는 동안 동료들은 잠을 잤고, 6시나 7시 때론 5시 반이면 일어나 임무 수행에 나서야 했습니다. 거의 잠을 자지 못 했던 셈이지요. 나는 먼저 손으로 글을 쓴 다음에 두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타자를 썼습니다. 이 소설은 내가 아직 영국에 있는 동안 영어로 번역 출간되어 프랑스 해방 전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영미권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거죠.


전쟁 중뿐만 아니라 외교 관련 일을 하며, 바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짬을 내어 계속해서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짧은 소설을 쓸 때도 있었고, 가끔은 어떤 일에 휘말리거나 상관의 오해 때문에 오랜 기간 일을 하지 못한 기간이 있었는데, 이럴 때 아주 긴 작품이 완성하기도 했다. 가령, 1956년에 공쿠르 상을 받은 『하늘의 뿌리』 같은 두툼한 책을 말이다. 책도 두툼하고, 로맹 가리가 이 세상에 바라는 것, 그가 원하는 세상도 두툼.

사실 로맹 가리는, 20세기 현대 작가라는, 아는 사람은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그런 작가다. <공쿠르 상> 두 번 수상이라는 소동도, 사실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사람,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만 알고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앞의 생>을 읽어 본 사람만이 아는 것 아닐까) 

그래서, 디킨스니, 빅토르 위고니, 뒤마니 이런 사람들은 알아도, 로맹 가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두들 이런 대 문호는 그의 책들을 읽어보지 않아도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로맹 가리에게는 대단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의 책은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책, 내용은 알아도 읽기엔 부담되는 대문호의 책과 달라서 일까. 혹은 최근의 작가라서 아직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고, 또 사람들이 동화로 각색한 그의 소설을 접해 본 일이 없어서일까. 어쨌거나 나는 로맹 가리 역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작고한 지 삽 십 몇 년밖에 되지 않아서, 그리고 그의 화법이 에두른 화법이 아니라, 직설 화법을 즐겨 쓰고, 정신적으로도 독자가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인지, 상당히 낮게 평가되는 작가라 생각할 뿐이다. 

나는 로맹 가리가 왜 위대하다고 생각하냐면, 바로 사랑을 예찬했기 때문이다. 물론, 20세기 작가, 현재의 수많은 작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 거의 모든 작가들이 사랑을 예찬하고, 사랑을 권하고, 사랑으로 이 사회의 모순이 해결되기를 꿈꾸는 그런 소설을 쓰고 또 써왔지만어딘가 그 사랑은 날조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고, 그냥 머리로 사랑을 쓴 것만 같다. 가슴이,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부딪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로맹 가리는, 정말 진정한 작가라고.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 어떤 평가를 받든, 나에게는 그가 정말 사랑에 헌신했고, 삭막한 세상에 사랑을 구현하기를 애쓴, 최고의 작가이다. 

114쪽.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성입니다. 주의하세요. 여자들이 아니라 여성, 여성성 말입니다. 여성들, 여성을 향한 사랑이야말로 내 삶의 큰 동기이자 큰 기쁨이었습니다. 

115쪽. 그러니까 나의 모든 책, 내가 어머니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쓴 모든 것에 영감을 준 것은 여성성, 여성성에 대한 나의 열정입니다. 

116쪽. 나와 여성들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숭배였고, 물론 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책을 쓰더라도 여성성은 그 책에 결핍으로서, 구멍으로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117쪽.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언제나 나는 - 예술적인 목적이 아니고는 교회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는 참으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이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말이 여성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내게는 여성성의 구현 그 자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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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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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8일~9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한 젊은 소설가가 낮엔 글을 쓰고 밤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고, 알바를 하면서 좌충우돌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엮어 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꿈을 꿀 시간, 거리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세상은 조용해진다. 세상도 잠든 듯 고요한 이 시간에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잠들지 않은 자들의 배는 출출하다. 입도 심심하여 주섬주섬 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간다. 간단한 안줏거리와 술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고 마신다. 낮의 결핍은 정말 물질적, 생리적 결핍 때문일 테지만 밤의 결핍은 아마도 마음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밤의 편의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뭔가 먹고 싶고, 마시고 싶어서라기 보다, 주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허기는 결코 하룻밤의 입가심으로 채울 수 없다. 거의 매일, 혹은 자주, 달밤이 뜬 야간 편의점에 출몰하여, 알바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때론 지치기도 하고, 화나고, 지겹고, 억울할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이런 마음이 허기졌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라,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도 소위 '진상'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예전에 나도 알바할 때 자주 만났던 사람들(물론 그 사람들은 대낮부터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알코올을 흡입하고 출몰했다)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혹은 어제 이곳에 왔는데도 당신이 어제 왔다는 것조차 기억 못 했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건, 책 제목은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인데, 생각보다 '즐거웠'던 일은 그다지 많이 적혀 있지 않다. 즐겁고 좋았던 일을 꼽자면, 편의점 사장님(김 사장)의 결혼식 에피소드, 김 사장이 맛집 탐방을 시켜주던 일, 맨 끝에 편의점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되어 형/동생 하게 된 동네 단골 형, 동생들을 알게 된 일 그리고 길거리 강아지와 고양이가 찾아왔을 때 먹을 걸 꺼내줬다는 정도의 에피소드일 뿐이고, 대부분은 태풍 때 편의점에 물 들어와 식겁한 일, 잔돈 떨어져서 근처 경쟁 편의점에 손님으로 위장 잠입 잔돈을 몽땅 100원으로 달라 하며 진땀 뺀 일, 위에 쓴 대로 술 먹고 자주 꼬장 부리는 진상 손님이나, 예의는 찹찹 똥구멍으로 쳐잡숴드신 분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아, 새벽에 등장해서 전도하려는 종교인들(허업! 이분들, 새벽에도 영업하시나 봐!), 어떻게든 알바를 속이고 술/담배 사려는 학생들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재밌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에피소드는 겪을 땐 진땀 빼고, 힘들고, 지치고, 짜증 났던 일인가 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부정적인 일을 보고, <그게 인생>이라 하는가 보다. 



이 책의 내용은, 보통 이런 내용, 이런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글쓴이가, 소설도 몇 권 낸 소설가라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게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나는 책은 자주 읽지만, 지독한 난독증이라, 글을 빨리 못 읽는데 이 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읽었다. 


요즘엔, 한 집 건너 한 집이 편의점이라, 편의점에서 물건을 잘 안 사는 사람이래도 편의점이 익숙한 곳이 되었다. 현대 도시인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애월 그 한적한 동네 편의점에도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들 만큼. 누구에게나 익숙한 곳이다, 알바 좀 해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보통은, 한 번 이상?!) 해봤을 편의점 알바, 잘 아는 듯, 잘 모르는, 익숙한 듯, 그 뒷면은 모르는, 읽다 보면 내가 잘 아는 곳에 일어나는, 내가 예전 겪은 일, 혹은 겪진 않았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재미나고 통통 튀는 문체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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