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차영민 지음, 어진선 그림 / 새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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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1월 8일~9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한 젊은 소설가가 낮엔 글을 쓰고 밤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고, 알바를 하면서 좌충우돌 겪은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엮어 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꿈을 꿀 시간, 거리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세상은 조용해진다. 세상도 잠든 듯 고요한 이 시간에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잠들지 않은 자들의 배는 출출하다. 입도 심심하여 주섬주섬 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간다. 간단한 안줏거리와 술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먹고 마신다. 낮의 결핍은 정말 물질적, 생리적 결핍 때문일 테지만 밤의 결핍은 아마도 마음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밤의 편의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뭔가 먹고 싶고, 마시고 싶어서라기 보다, 주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허기는 결코 하룻밤의 입가심으로 채울 수 없다. 거의 매일, 혹은 자주, 달밤이 뜬 야간 편의점에 출몰하여, 알바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때론 지치기도 하고, 화나고, 지겹고, 억울할 때도 있지만 돌아서면 이런 마음이 허기졌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라, 그래서 그런가 이 책에도 소위 '진상'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예전에 나도 알바할 때 자주 만났던 사람들(물론 그 사람들은 대낮부터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알코올을 흡입하고 출몰했다)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혹은 어제 이곳에 왔는데도 당신이 어제 왔다는 것조차 기억 못 했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건, 책 제목은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인데, 생각보다 '즐거웠'던 일은 그다지 많이 적혀 있지 않다. 즐겁고 좋았던 일을 꼽자면, 편의점 사장님(김 사장)의 결혼식 에피소드, 김 사장이 맛집 탐방을 시켜주던 일, 맨 끝에 편의점에서 만난 게 인연이 되어 형/동생 하게 된 동네 단골 형, 동생들을 알게 된 일 그리고 길거리 강아지와 고양이가 찾아왔을 때 먹을 걸 꺼내줬다는 정도의 에피소드일 뿐이고, 대부분은 태풍 때 편의점에 물 들어와 식겁한 일, 잔돈 떨어져서 근처 경쟁 편의점에 손님으로 위장 잠입 잔돈을 몽땅 100원으로 달라 하며 진땀 뺀 일, 위에 쓴 대로 술 먹고 자주 꼬장 부리는 진상 손님이나, 예의는 찹찹 똥구멍으로 쳐잡숴드신 분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아, 새벽에 등장해서 전도하려는 종교인들(허업! 이분들, 새벽에도 영업하시나 봐!), 어떻게든 알바를 속이고 술/담배 사려는 학생들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건,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재밌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에피소드는 겪을 땐 진땀 빼고, 힘들고, 지치고, 짜증 났던 일인가 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 부정적인 일을 보고, <그게 인생>이라 하는가 보다. 



이 책의 내용은, 보통 이런 내용, 이런 에피소드로 채워진다. 글쓴이가, 소설도 몇 권 낸 소설가라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게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나는 책은 자주 읽지만, 지독한 난독증이라, 글을 빨리 못 읽는데 이 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읽었다. 


요즘엔, 한 집 건너 한 집이 편의점이라, 편의점에서 물건을 잘 안 사는 사람이래도 편의점이 익숙한 곳이 되었다. 현대 도시인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애월 그 한적한 동네 편의점에도 동네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들 만큼. 누구에게나 익숙한 곳이다, 알바 좀 해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보통은, 한 번 이상?!) 해봤을 편의점 알바, 잘 아는 듯, 잘 모르는, 익숙한 듯, 그 뒷면은 모르는, 읽다 보면 내가 잘 아는 곳에 일어나는, 내가 예전 겪은 일, 혹은 겪진 않았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이 책을 통해서 재미나고 통통 튀는 문체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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