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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외 ㅣ 범우 사르비아 총서 501
루쉰 지음, 허세욱 옮김 / 범우사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읽은 기간/ 2017년 1월 9일~11일
/주제 분류/ 외국 소설 (중국)
/읽은 동기/ 책꽂이에 꽂힌 나의 책들이 내 관심과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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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사에서 낸 루쉰의 중/단편집. 그의 대표작들 수록.
1. 아Q정전
아Q │ 저항할 줄 모르고 폐습에 물든 인물. <정신승리법>이라는 걸 고안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모멸감, 부당함을 느낄 때마다 얼토당토않게 자기 합리화를 하여 의기양양하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게는 대꾸조차 못함. 강자에게 울분이 쌓이면 자기 상상 속에서나 통쾌하게 복수하고 욕하는 쪼잔한 캐릭터.
조 영감 │ 구시대 전형적인 마을 지주.
조 영감 아들 │ 전통 유교적 교육을 받았으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중국 옛것은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사람.
마을 사람들 │ 마을 바깥에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모르고, 자기 생각일랑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
(위 등장인물 설명은 오로지 내 생각일 뿐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중국 역사를 잘 모르고, 배경지식이 없으니 단편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 『아Q정전』은 인물 하나하나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전형성을 갖고 있다. 아Q는 전형적인 구시대 중국인으로, 루쉰은 아Q를 희화화하고 비판한다. 일본에 나가 유럽 선진 문물을 보고, 또 옛날과 달라진 일본을 보며 느낀 것이 많았나 보다. 우리처럼, 루쉰도 구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당시 중국이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무덤'으로 보였을 것이다.
1920년 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에서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변화, 자본주의의 습입, 그리고 지금, 중국은 엄청난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20세기 초처럼 폐습에 물들어 외세를 배척하다가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뭔가 세계를 호령하려고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뭔가 기묘한 형국, 각 지역마다 발전 속도도 너무나 다르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너무나 다르다. 『아Q정전』을 읽고 중국 사람들이 느낄 생각도 다 다를 테고, 이 소설을 평가하는 것도 다 다를 것이다. 지금의 중국 사람들이 『아Q정전』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 사뭇 궁금하다.
2. 광인일기
한 미치광이가 쓴 일기. 미치광이의 눈에는 마을 사람 모두 다 사람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식인귀 들이고, 그런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기 친형마저 자신을 경계하고 자신을 먹을 생각에 입맛 다시고 있다고 믿는다.
── 읽으면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다. 자기 파괴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하게 나타난 그런 소설이었다.
3. 풍파
혁명이 있은 지 1년 후, 황제가 다시 등극하였다. 이때 황제가 변발을 하였기에 단발을 한 사람들이 당장 무슨 일 벌어질까 전전긍긍한다는 이야기. 변발을 하지 않고 잠시 틀어올렸던 사람은, 단발한 사람에게 우쭐하며, 단발한 사람들은 가족과 마을 사람들로부터 죽을 죄인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변발한 황제 등극 후에도 마을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제야 사람들은 마음이 풀리어 예전처럼 마음 놓고 지낸다.
── 우리도 개화기 때 단발을 하느냐, 상투를 트느냐가 첨예한 문제였으나,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로 우리와 복식 문화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좀 고개가 갸우뚱했다. 아무튼, 그때 중국 사람들도 변발의 머리가 잘리면, 아내가 몇 날 며칠로 대성통곡을 하고 우물로 몸을 날리는 등 자살을 서슴지 않았던가 보다. 신문물을 접한 루쉰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일이었을까. 사라져야 할 폐습이었을 것.
4. 고향
어렸을 때 마을 유지의 아들로 잘 살았던 화자. 도시로 나가 공부도 하고 그곳에서 자리도 잡지만 사는 게 팍팍하다. 결국 고향의 살림살이를 다 정리하고 어머니와 조카까지 데리고 나와야 할 사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30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화자. 세상은 변했는데, 고향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가슴이 답답했고, 고향에 왔다는 기쁨도 별로 없다. 하지만, 어렸을 적 친구 윤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기분이 좋다. 어렸을 때 신비롭기만 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던 윤토.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윤토는 자신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던 꼬마가 아니다. 자신을 깍뜻하게 모시는 아랫사람, 삶의 부침 속에 열심히 일해도 사는 게 팍팍한 가난한 일꾼일 뿐이다.
5. 고독자
화자는, 독특한 인물로 소문이 난 위연수라는 사람을 알게 된다. 소문으로 듣고 있다가, 위연수의 의붓 할머니의 장례식 날 그를 만난다. 철저한 신식 인물이라는 소문과 달리, 위연수는 생각보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다. 그것으로 그들의 만남은 끝이었다가 화자에게 사정이 생겨 잠시 일을 쉬게 되고, 심심해서 위연수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둘은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사는 것이 팍팍하다. 두 지식인은 학교에서 선생을 하며 글을 쓰는 문인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쉽게 공격받기 십상. 화자와 위연수는 자기 글을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 공격을 받게 되고 결국 중상모략을 받아 직장까지 내쫓긴다. 다행히 화자는, 겨우겨우 선생 자리는 유지하나, 위연수는 편지 부칠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을 만큼 극심히 궁핍해진다. 그리하여 그동안 자기 뜻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냉정했던 위연수가 닫았던 자기 방을 열고 시류에 영합하는 자들을 초대한다. 자기를 공격했던 사람의 입맛에 맞춰 글도 쓴다. 돈도 많이 벌고, 선물도 많이 들어온다. 이제 그의 인생은, 겉으로 보기엔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는데 그만 병에 걸리어 곧 죽고 만다. 방안에 콕 박혀 고독자로, 자기 생각을 꺾지 않았던 고고한 위연수는 배고픔 앞에서 변절하여 아사는 면했지만, 결국 그렇게 죽은 것이다.
── 당시 중국의 치열했던 사상 투쟁의 한 단면을 소설로 그린 것. 비단 사상투쟁뿐만 아니라, 편가르기의 병패가 느껴져 참 씁쓸했던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 병패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니까. 어느 분야이든, 편을 나누고,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은 채, 제 입맛에 맞는 글만 쓰고, 그 반대인 사람은 괴롭히고, 못살게 쥐어짜고... 이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백 년, 이 백 년 된 문제가 아니라 참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