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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평점 :
/읽은 기간/ 2017년 2월 2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얼마 전, 과중한 업무와 잦은 야근으로 한 일본 여성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시기에 맞게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회사원들을 위로해 주는, 『바쁘니까 회사원이다』 같은 본격 감성, 심리 위로 책인 줄 알았다. 사회 문제에 발 빠르게 영합한 책 느낌이랄까. 도대체 어떤 말로 회사원들을 위로해 줄지 궁금해서 읽었는데.... 이거 웬걸,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있었따!!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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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 완전 좋다.
이 책은 심신이 피로한 회사원을 위로하는 책도 아니고, 회사 때려치우고 모험을 감행하라고 종용하는 책도 아니다. 퇴직 후 여행을 떠나는 여행 에세이집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경험담과 자신의 생각을 쓴 책이며,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책이다. 제안하는 책이므로, 자기처럼 살기를 권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퇴사를 했고, 퇴사 전/후의 경험담과 생각을 일본 특유의 문체로 쓴다.
저자는 버블경제 막차 때 대학을 졸업하고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 경제가 휘청 걸렸어도 저자는 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름 고소득 직업여성으로 잘 나갔다. 한 달에 한 번, 값비싼 옷들을 쇼핑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샀다. 그게 성공이고 그게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에서 자기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상사가 마흔 생일을 맞이 했고,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며, 상사를 한 방 먹이는 농담을 했는데 그런데 이 농담이 되려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앉아 콕콕 쑤셔 되었다. 아직은 젊고 창창한 나이였지만, 문득, 더 나이가 든 후의 자신을 최초로 생각해 보았달까.
그러고는, 어쨌거나 착실히 진급해 나갔다. 하지만 올라갈 때마다 성공에 한 발 다가간 느낌보다는, 자꾸만 누군가(특히나 상사)가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신경이 쓰였고, 동료나 부하직원이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로 진급하면 어딘지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이거 차별?!'이라는 생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도심이 아닌, 변두리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보통 진급을 하면, 도심 더 깊은 곳으로 발령이 나는데, 이렇게 변두리 지역으로 발령 나는 일은 드물었다. 뭐랄까,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상경했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곳에서 저자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버는 족족 펑펑 썼던 저자는, 이 변두리에서는 돈을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일단, 살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는 날에 집에 있을 순 없으니 장에 나갔는데 이곳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야채를 사는데도, 비싼 옷을 쇼핑하는 것 마냥 물건 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오히려 더 알찬 기쁨, 행복이 느껴졌다. 여기서 제철 음식에 새롭게 눈을 떴다. (대형 마트에서는 제철에 상관없이 4계절 내내 모든 야채를 구할 수 있지만, 이건 그리 재밌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없음, 즉, 부재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써 저자의 쇼핑에 대한 의미,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근무할 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는데, 당시 원전 사고로 에너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전기를 최대한 안 쓰기에 돌입하는데, 이건 냉장고까지 쓰지 않는 것으로 치(?!) 닫는다. (으어, 다른 건 몰라도 현대인이 냉장고를 포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냉장고 사용까지 그만두자, 저자는 딱 그날 먹을치만 사서 요리해 먹는 미니멀니스트가 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 미니멀리즘 책보다, 이 책이 훨씬 좋았던 것은 단순히 어떻게 물건을 버릴지 리스트를 만들어 가르쳐주는 것보다, 어떤 연유로, 어떤 과정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게 참 좋았다. 마음에 쏙 와 닿았다고 할까, 설득력이 높았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유행에 편협한 게 아니라, 정말 경험으로, 가치관에 따라 그렇게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다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기 때문이다.
참,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러하다. 우리 현대인에게 회사의 의미가 무언지, 계속 질문하게 만들고, 일과 돈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저자 자신의 생각을 경험담을 곁들여 말해준다. 꼭, 이 책의 저자처럼 살 필요 없다. 그녀의 문장 속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다만, 이 사회나 회사의 시스템에 수동적이고, 어떤 이미 만들어진 관념, 허상에 끄달리지 말라고 한다. ('진급을 해서 성공하면, 거기에 행복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더 기쁘고 즐겁다' 등등의 통념들) 실상, 이미 우리 곁엔 행복이 있고, 우리가 미쳐 못 봤지만 이미 기쁨과 즐거움이 도처에 있다고. 여러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 중에 저자가 선택한 삶은 또 하나의 예일뿐이다. 저자와 다른 행복의 길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사회의 통념에 짓눌리지 않기, 깝깝하고 숨 막히는 회사 속 피라미드 구조와 먹이사슬에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기. 퇴사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으면 얼마든지 성취감도 느끼고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도전을 하면, 어디선가 자기와 뜻이 비슷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니, 생각보다 그리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고 한다. 단지, 뭔가 진정 마음이 동해서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삶, 주어진 삶에서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생각해보고 그 미래를 위해 오늘 자기가 어떤 삶을 살고, 생애 주기(인생 변곡점)에 따라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한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인 줄 알았는데, 물론 가볍게 읽히기는 하나 내용과 나에게 던지는 질문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내 인생을, 내 미래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토록 해준다. 경제나 재테크 책, 그리고 수많은 에세이집들이 이런 내용을 품고 있지만, 이 책은 진정성이 달리 느껴진다. 정말 나를 생각에 잠기도록 추동한다.
나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해보도록 이끄는 책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