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 나의 집밥 - 나를 응원하는 오늘의 요리
유키마사 리카 지음, 염혜은 옮김, 이나영 그림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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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2월 6일~7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아, 요즘 음식 에세이가 너무 좋아요!!! ♡ㅅ♡ 하트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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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곤조곤, 듣는 이야기가 참 좋다. 
나는 이 책을 표지만 봤을 땐, 그냥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 상 차려준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묶은 '엄마의 집밥'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내 예상과는 많이 멀었던 책. 더 정(情)이 가득하고, 더 사랑이 가득한 책이었던 것이다. 

글쓴이는 30대 중반까지 혼자 지내다가 30대 후반에 결혼,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의 일을 하며, 취미생활(음악, 영화 감상 및 요리와 와인)까지 열심이다. 이 책에는 두 딸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부모님과 친여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게다가 어린 나이로 미국에 갔을 때 숙식을 제공한 미국 양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생각해 보니, 이 책은 음식 에세이라기보다, 가족 에세이라는 게 더 적절한 것 같다. 

가볍고 가벼운, 긍정적이고 밝은 문체. 
전혀 구김살도, 어두움도, 찌푸림도, 걱정도 없다. 쨍하게 맑다. 글쓴이의 심성을 닮아서일까, 인격이 문체에 드러나서일까. 참 좋았다. 

물론 이야기만 보면, 실상 무거울 수 있는 죽음과 이지메, 정신적 장애를 앉고 태어난 조카 이야기 등도 쓰고 있지만 전혀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은 당연지사 겪을 수 있는 것이고, 그것과 싸워서 이기면 된다고, 으쌰 으쌰 힘내자고 쓰고 있다. 글쓴이가 사랑하는 딸들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도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154쪽. 생활을 위해 독립하려고 생각했다면 별로 주저할 '여유'는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찾아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 길을 탐구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거든요. 아빠도 엄마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의 자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로워도 힘들어도, 결국은 자신의 발로 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힘을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157쪽. '맞아. 그냥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참기만 해서는 안 돼. 아니라고 생각되면 스스로 다시 고쳐야 하는 거야.'

166쪽. 흔히 와인은 사람과 같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와인을 기른 사람의 인격이 포도에 스며든다는 뜻입니다. (...) 결국은 작업하는 사람의 인격이 그 상품의 가치를 좌우하는 법이니까요. 

184쪽. "아이들은 부모가 평생 열심히 즐겁게 살아주기만 하면, 그 뒷모습을 착실하게 보면서 쫓아오니까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196쪽. 신기한 건, 굉장히 힘들었던 일들도 전부 다 괄호 안에 넣고 덧셈, 뺄셈을 하면, 결국에는 플러스 추억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완성된 플러스 추억과 그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들의 진짜 가치는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듯합니다. 

197쪽. 월급 쓰는 방법 중 가장 좋았던 건, 어떤 물건을 사는 것보다도 누군가와 마시는 술이었다는 사실. 디자인, 음악, 술, 식사, 삶의 방식, 이런 모든 것들을 가르쳐준 사람이 많이 있었던 건 그때 그 한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으리라는 것. 

198쪽.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내일은 더 잘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223쪽. 일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는 점, 즉 모든 사물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는 명쾌한 태도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집에 한 명씩 엄마 같은 사람이 있으면 모두의 인생도 편안해질 겁니다. 

226쪽. 게다가 부모님이 자신의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은 적당히 자립할 수 있게 되지요. 

229쪽.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 나의 이상적인 어머니상. 어떤 시를 읽어줘도 다 공부가 되고, 매일 즐겁게 보내는 본보기를 보여준다. 아, 정말 멋져. 

240쪽. 부모님은 아이들만 바라보고 힘들게 아이들을 키운다지만 제 생각에는 아이들은 의외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저절로 크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51쪽. 어떤 이별이라도 이별이 슬픈 법이지만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산뜻한 이별이 있습니다. 피짱과의 이별처럼 서로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서로에게 잘해줬을 때 누릴 수 있는 이별도 그렇습니다. 

252쪽. 좋아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아낌없이 애정을 표현하고, 피짱처럼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256쪽. 언젠가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그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 너무나 공포스러운 나머지, 자신에게 남겨진 아름다운 시간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삼촌은 달랐습니다. 
좋아하던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좋아하던 음악을 더 근사하고 훌륭한 오디오 세트로 듣고, 항상 웃으셨습니다.

단순히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 생각들을 쓴 거지만,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었다. 뭐, 어디서 다 들었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조곤조곤한 말투, 따뜻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문체에 똑같은 다른 누구의 말들보다 더 나에게 힘을 주고, 우유부단 결정 장애의 나에게 어떤 결심의, 결단의 계기를 마련해줬달까. 

책을 읽으면, 그냥 책을 덮는 순간 글쓴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책도 있고, 때로는 작가로서 기억하고, 그의 말을 간직하고 싶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유키마사 리카 씨는 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나에게 거의 이모 뻘, 우리 엄마 동생 뻘이지만, 이모보다는 알고 지내고픈 '언니'랄까. 적당히 거리를 뒀지만, 더없이 세심하고 따뜻하면서도 진솔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언니. 적당히 거리를 둔 그 거리 덕분에 더 부담 없고, 스스럼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언니. 

이 책도 참 잘 읽었다.
마음이 차분해 지면서, 내 마음 속 어딘가 삶에 대한 용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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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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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 기간/ 2017년 2월 3일
/주제 분류/ 외국 소설 (영국) 
/읽은 동기/ 음식과 관련된 따뜻한 이야기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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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정체│
영국 요리사 겸 작가이자 푸드 칼럼니스트인 나이젤 슬레이터의 자전적 성장 소설. 

2. 이 책 내용│
출판사 소개 : 최고의 요리사가 들려주는 음식과 사랑 이야기
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이런 소개는 책 읽기 전 독자에게 어떤 편견을 먼저 던져준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직업이 요리사인 건 맞지만, 이 책은 '요리'에 대한 이야기보다 '음식'에 얽힌 유년 시절의 한 단면, 단면과 당시에 느꼈던 음식에 대한 맛과 평가, 그 느낌, 추억이 쓰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전체적 느낌은, 요리사의 유년 이야기라기보다, 한 미식가의 성장담이었다. 

중산층의 가정에 태어난 나이젤, 그의 엄마는 결혼한 지 20년 후에야 나이젤을 낳았고, 결혼하기 전엔 돈을 벌러 직장을 구하거나, 집에서 집안일도 해 본 적이 없다. 결혼한 후에 모범적인 중산층 가정의 안주인으로서 요구되던 덕목에 부합하려고 조금 애썼을 뿐, 요리나, 구멍 난 양말을 꿰매거나 하는 일은 나이젤 엄마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엄마 요리 실력이 형편없고, 불 조절도 제대로 못 해서 가뭄에 콩 나듯 요리를 한다고 해도 부엌은 언제나 탄 연기로 자욱했다. 맛이 없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엄마이기에, 엄마가 만든 음식이 나이젤에게 맛있었고, 다 타버려 맛없는 토스트에서도, 그 속살에 혀가 닿을 땐 그 부드러움을 찾아내고 맛을 음미했다. 바로 엄마가 해준 토스트이니까. 

나이젤의 엄마는 너무 나이 들어서 나이젤을 낳고 몸이 허약해져서 천식에 걸리는데, 그리여서 나이젤이 어렸을 때 죽었다. (이때 나이가 10살 때였나, 11살 때였나...) 외로웠던 나이젤 아버지는, 그리 오래지 않아 20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 새엄마는 청결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반질반질 집안 모든 걸 윤내고 닦고, 쓸고, 거기에다 음식 솜씨까지 탁월하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맛이 있어도 새엄마의 음식에는 중요한 재료 한 개가 빠졌다. 바로, '엄마의 사랑'이었다. 

중산층으로 지위 상승을 위해 남편과 이혼하고 나이젤의 아버지와 결혼한 새엄마는, 아무리 음식을 맛나게 하여도, 나이 어린아이에게 제일 필요한 음식 재료인 '사랑'을 빠트리고 요리를 했으므로, 맛이 없고 서툴지만 '사랑'이 담긴 친엄마의 요리와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두 엄마의 요리 차이가 나이젤의 미각과 요리에 대한 평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직접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아도 매 에피소드마다 은연중에 드러난다.  누구나 동감할, 동의할 그런 엄마 음식에 대한 평가들, 그에 대해 섬세하고 예민한 자식이 받는 영향. 

3. 좋았던 점│
① 몇몇 책에서 읽었던 영국 요리 문화에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차유진, 『손녀딸의 부엌에서 글쓰기』에서 읽었던 영국의 음식과 음식 문화를 좀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나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특히나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1년 내내 기다리고 기다리는 엄청난 음식이라는 것, 그래서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들이는 그 열과 성은 엄청나다는 걸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② 나와는 너무 먼 존재인 미식가의 성장담이라면 이럴까 싶었다. 흥미로운 상상, 지레짐작.
③ 오로지 음식에 대한 추억담으로 이런 양질의 성장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의 세계도, 글의 소재도 실상 무궁무진하구나. 

4. 아쉬웠던 점│
① 내가 모르는 음식과 재료, 영국 과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오로지 상상에만 의존해야 했는데, 때로는 배경지식이 순백의 백지장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구글신께 여쭤보면 이미지까지 곁들여 친절히 가르쳐주시겠지만 내가 구글신께 물어볼 마음보다 귀찮음이 더 컸다.
②  잊을 만하면 성(性)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뜬금없기도 하고, 맥락을 끊기도 하고, 비위가 상하기도 하였다. '먹는다'는 음식뿐만 아니라 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이 둘을 얼마든 엮어서 이야기를 쓸 수 있고, 나도 이 두 소재에 관심 많지만(?!) 이 책엔 좀 너무 노골적이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은유적으로, 잘 썼다면 좋았을 것을. 너무 동떨어지게, 생뚱맞게 도드라지게 성(性)을 서술하였기에 전체적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고, 완전 딴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5. 잡설│
영국은 좀 희한한 나라다. 보통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세계적으로 소문났는데, 재밌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들을 보면 영국 출신이 많다. 그리고 레시피 북도 세계적 스테디셀러도 여럿. TV 요리 프로그램도, 그 포맷의 출발이 영국일 때가 많다. (요리 프로그램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어떻게 음식에 악명 높은 영국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아마도 영국은 콘텐츠를 잘 개발하는 것 같다. 영국인이라면, 이 책으로도 '빌리 엘리어트' 못지않은 대단한 뮤지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인, 그들이 만들고자 한다면!!! 소재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A4 종이 두세 줄이면 끝날 이야기를 불후의 희곡으로 만들고, 두툼한 책으로 불려 쓰는 그 재주만 봐도 영국인들의 이야기 짓는 솜씨는 대단한 것 같다. 콘텐츠 만드는 능력도 대단. 일본도 콘텐츠와 이야기를 잘 만들긴 하지만 그 특유의 일본식 분위기에 호불호가 강하고, 미국은 정말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긴 하나(몇몇 이름난 작가와 픽사 등), 돈 냄새나는 엉성한 3류 이야기를 압도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기 때문에 어딘가 조금 부정적 느낌이다. 

나이젤의 『토스트』를 읽고, 새삼 영국인의 이야기 만드는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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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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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2월 2일

/주제 분류/ 외국 에세이 (일본)
/읽은 동기/ 얼마 전, 과중한 업무와 잦은 야근으로 한 일본 여성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시기에 맞게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회사원들을 위로해 주는, 『바쁘니까 회사원이다』 같은 본격 감성, 심리 위로 책인 줄 알았다. 사회 문제에 발 빠르게 영합한 책 느낌이랄까. 도대체 어떤 말로 회사원들을 위로해 줄지 궁금해서 읽었는데.... 이거 웬걸,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있었따!!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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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 완전 좋다. 
이 책은 심신이 피로한 회사원을 위로하는 책도 아니고, 회사 때려치우고 모험을 감행하라고 종용하는 책도 아니다. 퇴직 후 여행을 떠나는 여행 에세이집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경험담과 자신의 생각을 쓴 책이며,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책이다. 제안하는 책이므로, 자기처럼 살기를 권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퇴사를 했고, 퇴사 전/후의 경험담과 생각을 일본 특유의 문체로 쓴다. 

저자는 버블경제 막차 때 대학을 졸업하고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일본 경제가 휘청 걸렸어도 저자는 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나름 고소득 직업여성으로 잘 나갔다. 한 달에 한 번, 값비싼 옷들을 쇼핑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샀다. 그게 성공이고 그게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내에서 자기랑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상사가 마흔 생일을 맞이 했고,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며, 상사를 한 방 먹이는 농담을 했는데 그런데 이 농담이 되려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앉아 콕콕 쑤셔 되었다. 아직은 젊고 창창한 나이였지만, 문득, 더 나이가 든 후의 자신을 최초로 생각해 보았달까. 

그러고는, 어쨌거나 착실히 진급해 나갔다. 하지만 올라갈 때마다 성공에 한 발 다가간 느낌보다는, 자꾸만 누군가(특히나 상사)가 자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신경이 쓰였고, 동료나 부하직원이 자기보다 더 높은 자리로 진급하면 어딘지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이거 차별?!'이라는 생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도심이 아닌, 변두리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보통 진급을 하면, 도심 더 깊은 곳으로 발령이 나는데, 이렇게 변두리 지역으로 발령 나는 일은 드물었다. 뭐랄까,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상경했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진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곳에서 저자는, 인생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버는 족족 펑펑 썼던 저자는, 이 변두리에서는 돈을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일단, 살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는 날에 집에 있을 순 없으니 장에 나갔는데 이곳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야채를 사는데도, 비싼 옷을 쇼핑하는 것 마냥 물건 사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오히려 더 알찬 기쁨, 행복이 느껴졌다. 여기서 제철 음식에 새롭게 눈을 떴다. (대형 마트에서는 제철에 상관없이 4계절 내내 모든 야채를 구할 수 있지만, 이건 그리 재밌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없음, 즉, 부재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써 저자의 쇼핑에 대한 의미, 행복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근무할 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는데, 당시 원전 사고로 에너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전기를 최대한 안 쓰기에 돌입하는데, 이건 냉장고까지 쓰지 않는 것으로 치(?!) 닫는다. (으어, 다른 건 몰라도 현대인이 냉장고를 포기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냉장고 사용까지 그만두자, 저자는 딱 그날 먹을치만 사서 요리해 먹는 미니멀니스트가 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일본 미니멀리즘 책보다, 이 책이 훨씬 좋았던 것은 단순히 어떻게 물건을 버릴지 리스트를 만들어 가르쳐주는 것보다, 어떤 연유로, 어떤 과정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게 참 좋았다. 마음에 쏙 와 닿았다고 할까, 설득력이 높았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유행에 편협한 게 아니라, 정말 경험으로, 가치관에 따라 그렇게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다는 게 인상적이고 좋았기 때문이다. 

참,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 책은 처음부터 그러하다. 우리 현대인에게 회사의 의미가 무언지, 계속 질문하게 만들고, 일과 돈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저자 자신의 생각을 경험담을 곁들여 말해준다. 꼭, 이 책의 저자처럼 살 필요 없다. 그녀의 문장 속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진다. 다만, 이 사회나 회사의 시스템에 수동적이고, 어떤 이미 만들어진 관념, 허상에 끄달리지 말라고 한다. ('진급을 해서 성공하면, 거기에 행복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더 기쁘고 즐겁다' 등등의 통념들) 실상, 이미 우리 곁엔 행복이 있고, 우리가 미쳐 못 봤지만 이미 기쁨과 즐거움이 도처에 있다고. 여러 행복과 기쁨이 있는 삶 중에 저자가 선택한 삶은 또 하나의 예일뿐이다. 저자와 다른 행복의 길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사회의 통념에 짓눌리지 않기, 깝깝하고 숨 막히는 회사 속 피라미드 구조와 먹이사슬에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기. 퇴사할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으면 얼마든지 성취감도 느끼고 즐거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도전을 하면, 어디선가 자기와 뜻이 비슷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니, 생각보다 그리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고 한다. 단지, 뭔가 진정 마음이 동해서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회가 만들어낸 삶, 주어진 삶에서 한 발 떨어져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생각해보고 그 미래를 위해 오늘 자기가 어떤 삶을 살고, 생애 주기(인생 변곡점)에 따라 어떤 인생을 선택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한다.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인 줄 알았는데, 물론 가볍게 읽히기는 하나 내용과 나에게 던지는 질문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내 인생을, 내 미래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토록 해준다. 경제나 재테크 책, 그리고 수많은 에세이집들이 이런 내용을 품고 있지만, 이 책은 진정성이 달리 느껴진다. 정말 나를 생각에 잠기도록 추동한다. 

나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해보도록 이끄는 책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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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청민 지음 / 첫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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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 기간/ 2017년 2월 2일
/주제 분류/ 국내 에세이
/읽은 동기/ 온갖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오는 사랑은 듬뿍 맞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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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오며 가며 봤던 카카오톡 브런치, 이 책을 쓴 청민이라는 분은 2015년 카카오톡에서 주최한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역시, 대상을 받은 분답게, 등단하지 않은 아마추어의 에세이집에서 흔히 보이는 비문이라든가, 껄끄러운 표현 같은 건 이 책에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글이 깨끗 ♡ 

하지만, 이 분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추정하기로는 이십 대 중후반 같았는데 그래서인지 이 분의 나이와 그 나이의 경험만큼의 이야기가 이 책에 들어있다.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친구나 지인과의 추억과 경험담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삶에 대한 통찰이랄까, 관찰력, 연륜 등은 조금 빈약하지 않았나 싶다.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 특히, 글쓴이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눈물이 핑 돌았다. 수제 구두가게를 차렸는데, 얼마 뒤 맞은편에 기성 구두가게가 생겼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할아버지는 생애 첫 당신 가게를 정리하고 구둣방을 마련, 벌이가 별로 없다 보니 점심을 굶었고 그 굶은 돈을 모아 가족들을 위해 썼다는 이야기에서는, 가족 아닌 나조차도 울컥, 감동받았다. 힘들었어도, 그런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가족들이 화목하고 잘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가족과 관련한 여러 추억담이 있는데, 화나고 짜증 났던 일, 가슴 아프도록 슬펐던 일 등등 많이 실려있는데,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도 참, 행복한 가족이구나 싶었다. 자상한 아버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엄마, 때론 심통 나지만 그래서 사랑하는 동생. 글쓴이의 다양한 감정이 묻어 있는데, 읽다 보니 좀 부러웠다. 나는 가족한테서 느껴보지 못한, 그런 걸 글쓴이는 느끼며 자랐고, 온전히 가족을 믿는 그 모습이. 딱 보통의, 딱 이상적인 그런 가정의 모습. 

감성적, 감상적. 이 책이 전체적 분위기는 이러한데, 옛날 있었던 이야기를 보면 글쓴이가 결코 여리여리한 여성은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든다. 괴롭히는 남자애의 등짝도 후려갈겨 울리고, 남동생은 물론 친구들이랑도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도 있는, 뭐랄까 성격 좋은, 그래서 친구 많은 여성 같았는데, 씩씩함도 느껴져서 좋았다. 부러움. +ㅁ+ 

가족에 관한, 혹은 친구에 관한 일상적이고 소소한 에세이를 읽고 싶은 분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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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패설
김정희 지음 / 앤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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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17년 2월 1일
/주제 분류/ 음식이야기, 문화연구
/읽은 동기/ 먹고사니즘을 넘어, 음식과 요리 자체를 즐기고, 음미하고, 알고 싶다는 열망이 요즘 강해서 읽었다. 그냥 생존을 위해 혹은 습관적으로 먹고 말기에는 우린 너무 자주 먹는다. 하루에 세 번 혹은 두 번 먹는 음식, 이제는 음미하고 알고 싶다! 그것도 격조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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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읽었던 미식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요즘 음식에 대한 글을 자주 찾아 읽고 있다. 단순히 레시피가 아니라, 음식에 얽힌 이야기! 그게 참 좋다. 음식은 일상과 너무나 밀접하고, 바로 생존과 직결된 것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다. 때 되면 끼니 챙겨 먹고,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남들이 어떤 식당에 가는지만 관심이 갔지 음식 그 자체엔 무관심했다. 음식이란 세계는 실상 알고 봤더니 참으로 넓고 깊으며, 하나의 특별한 대상으로 삼고, 음미를 하면 그 세계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무궁무진한 세계인데 말이다. 음식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너무 수동적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음식에 눈을 뜨면, 끼니 때마다 '음미'라는 취미를 즐길 수 있고, 미각의 행복을 느끼며, 앎이라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삼시 세끼 행복, 유익함. 뭔가 살뜰한 취미생활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은 동기는 이러하다. 음식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랄까, 역사적 배경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 음식패설, 제목처럼 세상에 떠도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음식'이라는 단어의 뜻이 참 포괄적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뜻하는데, 이 먹을 수 있는 건 비단 요리의 결과, 완성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재료' 역시 포함된다. 먹지 못하는 '재료'가  음식일 순 없으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건 대부분 과일, 향신료, 커피, 차, 술 같은 메인 요리라기보다는 식재료, 혹은 음료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이 식재료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 신화라던가, 역사,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편견 등을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고 있다. 

저자는 과일에 관심이 많았던가, 과일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옛 선조들이 어떤 과일을 보고 떠올린 생각(보통 에로틱한 생각을 많이 했더라... 조상님들이 과일만 보고도 엉큼한 생각을 떠올린 덕분에, 우리 인류가 70억 명이라는, 대 번성을 할 수 있었던 건가요?)과 그에 대한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아마도 저자의 전공이 화학이고,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조리된 음식 자체보다는, 재료 하나하나 그러면서 각기 하나의 음식이 될 수 있는 과일을 많이 공부하신 것 같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관심이 많으신 듯 많이 언급된다. 그냥 단순히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그냥 이야기에 치우쳐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을 읽으면, 음식과 그 재료가 도드라져 와 닿는다. 뭐랄까, 신화 속 신들만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어떤 면에서는, 음식도 주인공으로 드러나 보인달까. (사실 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근 몇 백 년 밖에 안 됐다. 먹고살기 바쁜데, 음식 이야기를 쓸 시간이 어디 있을까. 방송계에서도 음식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를 것도 근 몇 년의 일일뿐이다) 

식재료에 얽힌 이야기, 신화 속 혹은 역사적 배경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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