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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찰나를 역사로 ㅣ 매그넘 컬렉션
장 다비드 모르방 외 지음, 실뱅 사보이아 그림, 맹슬기 옮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 / 서해문집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사진史의 한 획을 그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삶을 담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한 부분은 브레송의 삶을 만화로 그린 그래픽 노블 파트이고, 나머지 한 부분은 시네아스트인 토마 토드가 쓴 브레송의 해설 파트입니다.

표지는 단단하고, 야문 양장이에요. 제본은 만족스럽습니다. 낱장으로 뜯길 일 없을 것 같아요. 본문 종이 재질은 빤질빤진할 재질(이런 종이 이름을 몰라요)인데, 해설 부분에 브레송의 사진이 실려 있어서 빤질한 종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책 재질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래픽 노블 파트의 시나리오는 장 다비드 모르방과 세브린 트레푸엘이 썼고 만화는 실뱅 사보이아가 그렸습니다. 그래픽 노블 내용은, 브레송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위험했던 시기인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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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에 꿈을 꾸지만 대학 진학 시험에 실패하고 예술 계통으로 전향합니다. 그림과 사진을 이때 접하게 되죠. 마틴 문카치의 사진을 흠모해 아프리카로 사진 여행을 떠나고,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미국 등 세계 각지를 누비며 인물 사진을 찍습니다.
이 책에 실린 그래픽 노블은 1946년 5월 5일, 로버트 카파와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은 브레송의 유고전을 기획하고 있었는데요, 하마터면 세계 최초로 살아 있는 사진작가의 유고전에 될 뻔한 사건이죠. 어쨌든 로버트 카파와의 짧은 만남 이후 브레송은 아내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브레송은 자기 자신을 이끈 것은 바로 '자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회고합니다.
회고는 전쟁이 시작된 1940년 5월 프랑스 동부 보주에서 그동안 자신의 눈 역할을 한 라이카를 땅에 묻은 일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카메라를 땅에 묻고, 전쟁이 끝난 후를 기약한 것이죠.
브레송의 소중한 라이카가 땅에 묻혀 있는 동안 브레송은 참 많은 일을 겪습니다.
프랑스 군은 나치의 과시적인 선전 정책에 맞서 '필름과 사진'이라는 분대를 창설합니다. 저널리스트들로 구성된 분대죠. 브레송도 여기에 배치됩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군이 사진 부대를 지원하기엔 나치에 비해 턱없이 열세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합니다.
브레송은 나치의 전쟁 포로가 됩니다. 하지만 명예 포로로 대우받아, 포로이기는 하지만 나름 편안한 생활을 하죠. 물론 그 편안한 생활이라는 것이 12시간이라는 중노동이죠. 씻지 못해 악취가 나고, 12시간 허리가 끊어지고, 팔이 끊어질 듯한 노동도 사실 유대인이 당시 겪었던 대우에 비하면 안락하고 편안한 대우였습니다. (브레송은 나중에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대우를 알게 되고 나치를 혐오하게 됩니다.)
공장, 농장, 공사장 등 여러 곳에서 노동을 하며 포로 생활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유를 추구했던 브레송에게 포로수용소의 생활은 견딜 수 없습니다. 3번의 탈출 시도 끝에 3번째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때가 1943년 2월 10일입니다. 이후 브레송은 MNPGD에 가담하여 탈출한 포로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7월, 보주에 가서 3년 전 묻어두었던 자신의 라이카를 흙 속에서 꺼냅니다.
바로 이 라이카로,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여, <찰나를 역사로> 남기기 시작합니다. 영화 작업도 했던 독일 데사우에서의 사진들이 특히 그러하죠. 이 책에도 데사우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브레송은, 스페인 내전 때 영화를 찍었는데 다른 저널리스트에 비해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사우에서는 영화 작업은 하되, 본인은 영화를 찍지 않고, 사진기를 들고 사진 찍기를 선택합니다. 결과는 대 성공입니다.
본인도 몇 년 간 전쟁 포로로 생활했기 때문인지, 역사에 남을 순간을 잘 포착해 냅니다. 그의 사진은 설명이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잡은 순간은, 많은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도록 합니다.

책 중, 할레 독일 1945 5~6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평생 몇 가지 일을 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사진은 물론이고 어렸을 때부터 관심 많았던 회화 그리고 장 르누아르 밑에서 일도 했을 만큼 영화에도 발을 담급니다. 회화와 영화에 대한 마음은 정말 각별했던 것 같아요. 물론 사진만큼 성공적이진 못했지만요.
브레송은 건물이나 자연만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는 거의 인물 사진만 찍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그의 마음속 한가운데는 바로 '인간다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간에게 좌절하지만, 결국 인간이 기대를 걸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역시 '인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브레송 하면 라이카, 라이카 하면 브레송.
사진기를 잡을 수 없었던 포로 시절엔 수정체는 렌즈를, 홍채는 조리개를, 눈꺼풀은 셔터를, 망막은 필름, 안구는 암실, 기억은 인화된 사진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엔 늘 '자유'가 자리 잡고 있었죠. 브레송에게 카메라와 사진이 어떤 의미였는지 사실 저는 브레송 본인이 아니니 잘 모르겠어요. 그의 작은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 그 군상들... 이 작은 틀 속에 많은 것들이 담깁니다. 자유는 작은 틀 안에 갇힐 수 없지만 그 자유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이 작은 틀 속에 가둬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브레송은 이 아이러니를 즐기며, 찰나를 위해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며 결정적인 순간 셔터를 눌렀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순간을 담기 위해 한자리에서 오래 머물기. 뭔가 아이러니의 외줄 위에 아슬아슬 줄타기한 것 같네요.
브레송 본인은, 사진을 통해 그 수용소든 어디든 그 분위기와 그 사람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의도였을지 몰라도 뭐든 인간이 뭔가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 저는 의문입니다. 그의 사진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많은 상상과 많은 생각을 덧붙여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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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사진에 대해 잘 모르고, 이제 알아가고자 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브레송의 사진을 읽고 해석하기엔 무리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인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은, 음, '아직 사진에 대해 잘 모르겠다', '사진작가들은 뭔가 정말로 예술가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픽 노블이고 뒤의 해설도 그렇게 어려운 설명이 없는데도 제가 전혀 모르는 설명들 (저는 매그넘이 뭔지도 몰랐답니다. ㅠㅅㅠ) 때문에 즉각적인 이해는 조금 어려웠어요. 이 책으로 2차 세계대전 때 거물급으로 큰 사진작가들에 대한 이름을 접하고, 사진史에 대한 배경지식을 조금 쌓았다고 할까요.
사진은 상당히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매일매일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데도 사진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일상을, 가벼운 마음으로 담는 것도 좋지만 이제 조금 깊이 알아가고 싶습니다. 이 책이 그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