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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뉴욕의 맛
제시카 톰 지음, 노지양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꺄응, 재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도 뉴욕의 살벌한 요식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처럼 완전 감정이입된 채로, 내가 주인공 그 자체가 된 것마냥 읽었다. 책을 덮고 나니, 오잉, 한국에 있네.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하기. 다른 여러 사람을 따래해보다가 그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걸 찾아내려고."
- 74쪽, 멜린다가 주인공 티아 먼로에게 한 말.

티아 먼로가 시골(?)에서 올라와 촌스러움을 벗어던지고, 세계에서 가장 핫한 뉴욕에 걸맞은 사람으로 변신해 갈 때 나도 그렇게 되었다. (물론, 마음으로만) 예일대, 모범생 출신,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그녀, 하지만 화려한 인생을 사는 룸메이트, 에메랄드를 만나고 자신을 작게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 아니, 미국에서 권위 있는 레스토랑 비평가인 마이클 잘츠와 만나게 되고 영악하고 음흉한 마이클 잘츠의 제안을 받게 된다. 마이클 잘츠의 제안은 파우스트 박사를 홀린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과도 비슷하다. '미각을 잃은 나 대신,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음식을 맛봐. 그리고 네 글을 내 글인 것처럼 신문에 실을게. 이건 누구도 알아선 안 될 너와 나의 비밀. 이 비밀만 지켜준다면,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다 주겠어. 여자들이 못 가져서 안달인 최고급 명품 백과 옷, 구두,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한 번 가기도 두려운 최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다 먹게 해줄게.'
티아 먼로는 삶의 목표와 열정이 있지만 그러나 아직은 한낱 대학원생일 뿐임을 안다. 그래서 그녀에겐 사다리가 필요하다. 마이클 잘츠의 달콤한 유혹을 받아들인다. 이 유혹을 받아들이는 데엔 그만큼 티아 먼로의 희생도 있었다. 성격이 뭐 같고 까다로운 마이클 잘츠의 요구받아 주고, 자기 생각, 자기 글, 자기 글인데 자기 이름으로 신문에 낼 수 없다는 자괴감.
어쨌든 비위가 뒤틀릴 때가 있긴 했지만, 자신의 목표에 가닿기 위해 티아 먼로는 최선을 다한다. 마이클 잘츠의 방식대로 거짓말도 능수능란하게 하고, 룸메이트인 멜린다가 한 말처럼 그렇게 될 때까지 그런 척하기, 그리고 또 다른 룸메이트인 에메랄드처럼 모든 여자가 입고 싶어 하는 옷을 입고 자신의 매력을 뿜뿜 드러내기.
그러는 동안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뭔가 비밀을 눈치챈 사장으로부터 모멸감을 받기도 했고, 마이클 잘츠의 위압적인 행동에 굴복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매력적이어서 흠뻑 빠졌던 셰프에게 이용당하고, 그의 동료들에게 걸레 취급받고....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주인공 티아 먼로는 정말로, 정말로, 각기 다른 삶, 다양한 삶을 살아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감정, 감각을 수없이 느낀다. 뉴욕의 별 네 개짜리 레스토랑 두 개를 날려 버릴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굴욕감도 겪고, 기쁨과 환희도 겪으면서 성장해나간다.

제일 큰 보람은 배움일 테고, 지금까지 몰랐던 수많은 감각을 깨달은 것. (생각만 하고, 저 멀리 밀쳐두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돌이 살아 있는 인간이 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랄까.)
중간중간, 똑똑한 티아 먼로가 바보 같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용당했을 때... 아오, 목에 솜뭉치 든 것처럼 답답함) 어쨌거나 티아 먼로는 뉴욕의 특수부대 전투 요원이랄까. 어떤 패기, 열정, 악랄함, 욕망의 화신, 그러면서 순진무구한 모습이 좋았다. 매력적이야. 내가 좋아하는 여성상.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일단 부딪히고 깨지는 모습도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다. 일단 해보고, 욕먹으면 욕먹고, 부끄러워서 어딘가 사라지고 싶은 것도 느끼고 그러면서도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참 좋은데, 이 책의 주인공은 딱 이런 스타일. 나는 아직 이런 배짱이 없기에 뭔가 부러운 마음에서 감정이입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음, 결말은 너무 해피엔딩이라 좀 맥이 빠지고(뭔가 전투적인 분위기로 끝났어도 좋았을 텐데.... 이런 유의 책은 그냥 해피엔딩이죠.), 전쟁터 같은 키친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어 아쉽다(레스토랑의 전쟁터 같은 키친 이야기를 읽기 좋아해서 말아죠). 저자 '제시카 톰'을 읽고 싶은 책 목록 저자에 두고 앞으로 쭉 읽어볼 요량.
재밌게 잘 읽었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