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달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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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시지 할아버지의 탄생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소시지. 소시지가 '줄줄이 소시지'를 먹는다. 냠냠. 소시지를 먹어서 배가 빵빵해진 소시지는 꿀렁꿀렁 배가 요동을 치고, 다리 밑으로 작은 소시지 하나가 쑤욱 나온다. 아기 소시지와 아빠 소시지의 첫 만남. 아기 소시지에게 아빠 집은 하나의 우주이고, 아기 소시지에게 거실 소파는 안전하고 안락한 장소다. 아기 소시지는 어느 날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느껴 문을 열고 집 밖을 나가는데 돌아온 건 누가 던진 작은 돌멩이들. 상처받은 소시지는 다시 아빠 소시지 집으로 들어오고, 아빠 무릎을 베고 누워 안락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아기 소시지는 무럭무럭 자란다. 누웠을 때 아기 소시지의 다리 끝이 소파 반밖에 안 닿았는데, 이제는 소파 밖을 훌쩍 넘는다. 그 자세로 그렇게 낮과 밤이 지나고, 아빠 소시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기 소시지도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빠 소시지와 아들 소시지, 함께 늙어가는 소시지. 


아무도 없는 소파에 어둠이 들고, 차차 어둠이 사라진다. 낮은 밤이 되었고, 까만 넥타이를 맨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가 혼자 집에 돌아온다. 눈물을 흘리는 아들 할아버지 소시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외로웠던 소시지 할아버지는, 한때 유행이었던 곰돌이 인형을 사 와서, 언제나 아빠 소시지가 앉아 있던 곳에 놓아두고, 곰돌이 인형에 무릎베개를 벤다. 그리고 곰돌이 팔을 끌어와 자신을 감싸 안도록 한다.   



#2. 소시지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만남


소시지가 사는 별은 유행이 민감한 별, 한때 곰돌이 인형이 잘 팔렸는데, 그 인기를 지구별에서 데려온 강아지가 독차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유행이 바뀌었고 이제 화성에서 온 고양이들이 인기를 끈다. 지구별 강아지의 인기는 시들해졌다. 남은 강아지는 50% 세일, 그중에서 또 남은 강아지들은 70% 세일. 그렇게 해도 안 팔린 강아지 한 마리. 주인은 '가져가세요.'라는 푯말과 사료 한 포대, 그리고 강아지를 묶어 놓고 떠나버린다. 


콜라병 아가씨, 테니스공 친구들이 강아지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비가 오자 뛰어가 버린다. 지나가던 소시지 할아버지. 초록 우산을 강아지에게 씌워주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날이 화창하게 갰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묶여 있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왔다. 우산 가지러 오셨다. 


이제 강아지를 쓰다듬는 사람도, 귀엽다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강아지 옆에 있는 건 먹다 남은 사료와 강아지의 똥뿐이다. 어느 날 밤, 전동차에 불을 밝히고 나타난 할아버지. 전동차 바구니에 강아지를 태우고, 강아지 사료는 집으로 출발- 오는 길에 강아지 사료는 골목에 다 흘려 버렸지만. 소시지 할아버지 마당에 살게 된 강아지. 할아버지가 개집을 지어준다. 달의 모양이 보름달에서 반달로, 반달에서 하현달로 바뀌고. 할아버지는 소파 위에서, 강아지는 마당에서 외롭게 잔다. 


어느 날 개구쟁이 초콜릿들이 작은 소시지를 낚시 미끼로 삼아 강아지를 꼬여내고, 뭐가 재밌는지 초콜릿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초콜릿들을 때린다. 강아지를 집안으로 데려온 할아버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 받는 소시지 할아버지. 기계가 낯선 강아지, 왕왕 짖는다. 할아버지가 똥을 누니까, 강아지도 똥을 눈다. 할아버지가 자니까 강아지도 잔다. 


어느 날, 강아지가 소시지 할아버지의 뒤꿈치를 핥자, 먹힐까 봐 놀란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도망간다. 강아지를 피해 들어간 가게, 그 가게에서 우주복을 팔고 있다. 우주복과 유리 헬멧을 쓰고 나온 소시지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강아지. 할아버지는 여전히 강아지를 멀리한다. 소파로 다가오면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려 강아지 입에 닿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명랑하고, 할아버지가 약손 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던 것처럼 강아지도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는다. 강아지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것, 할아버지가 즐겨 하던 것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서서히 마음을 푼다. 할아버지는 강아지가 잠든 틈에 강아지 배를 살살 만지는데, 깨어난 강아지. 다시 안아 달라고 강아지가 콩콩거리는데 놀란 할아버지는 그만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다. 그런데 누군가 강아지에게 돌을 던진다. 화도 나고 눈물도 맺힌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집 안으로 들이고, 같이 소파 위에서 잔다. 할아버지의 몸부림에 헬멧이 벗겨지고, 다음날 아침 강아지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 다시 강아지를 마당에 내놓는데 또 초콜릿들이 나타나 강아지에게 소시지를 주는데, 강아지는 작은 소시지를 물었지만, 깨물지 않았다. 어떤 상처 하나 없이, 웃는 얼굴로 작은 소시지를 밖으로 내놓는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 


소시지를 먹지도 않고, 씹지도 않고 얌전히 입에 머물고 있다가 입 밖으로 낸 강아지. 그 모습을 본 소시지 할아버지는, 유리 헬멧, 장갑, 부츠, 그리고 우주복까지 모두 벗고,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떨면서 무릎 꿇고 강아지에게 손을 주자 강아지는 폴짝 뛰어 소시지 할아버지의 품에 안긴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핥는 강아지. 



#3. 헤어짐, 새로운 만남


소시지 할아버지의 부재, 할아버지는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속에만 있고 할아버지는 없다. 강아지는 오랜시간동안 곰돌이 인형과 함께 지내다가, 어느날 집밖으로 모험을 떠난다. 누군가와 친구를 하려고 해도,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손을 꼬옥 잡고 있거나 꼭 붙어 다닌다. 강아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없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 혼자가 되어 마을을 돌아다니는 강아지. 그러다 비가오고, 강아지는 아주 큰 나무 밑으로 가 비를 피한다. 그러자 폭탄 아이가 다가온다. 둘은 친구가 되었다. 둘은 숲으로 놀러간다. 숲 한가운데 있는 수영장 안에, 불씨 하나가 살고 있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에 들어가 불씨와 놀다가 폭탄 아이 머리 심지에 불이 붙어, 폭탄 아이 머리에 별이 하나 생긴다. 강아지와 폭탄 아이는 수영장 밖으로 나오고, 폭탄 아이가 불씨에게 손을 내민다. 외로웠던 불씨, 강아지와 폭탄 아이와 함께 떠난다. 하지만 불씨가 지난 숲에 불이 나고, 마을의 소방차와 소방 헬기가 불을 끈다. 강아지 집에 도착한 강아지, 폭탄 아이, 불씨. 불씨는 자기 때문에 숲에 불이 난 것 같아 초조하고 긴장된다. 강아지 집까지 태우면 안 되는데! 강아지와 폭탄 아이가 협력해서 불씨에게 문을 열어주고, 집에 들어와 보니 소시지 할아버지가 쓰시던 우주복이 그대로 있다. 불씨는 소시지 할아버지의 우주복을 입고, 그렇게, 그렇게 세 명은 소파 위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4. 죽은 이가 사는 별


죽으면 가게 되는 별이 있다. 이 별에는 천문대 하나가 있는데, 망자가 천문대 문을 두드리면 거미가 문을 열어준다. 망자들은 거미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가 살던 별을 보고 싶소.' 자기가 살던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닦아 준다. 그러던 어느날 이 천문대에 소시지 할아버지가 찾아온다. "내 개가 보고 싶소." 할아버지는 화면에 비친 강아지를 바라본다. 고요히 바라본다. 어느날 강아지는 집밖으로 모험을 떠나고, 폭탄 아이와 불씨랑 친구가 되어 옛 소시지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사는 모습을 본다. 곰돌이 인형이 앉은 소파에, 우주복을 입은 불씨, 폭탄 아이, 강아지가 함께 누워 잠을 자는데, 할아버지는 눈물 없이, 약간의 표정 변화로만 이 모든 모습을 지켜 보았다. 떠나려는데, 천문대를 관리하는 거미가 소시지 할아버지에게 맥주를 청한다. 천문대 밖에 나란히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소시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별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 수 있다고. 


이후 소시지 할아버지는, 거미와 함께 망자에게 그들이 살던 별을 보여주고, 망자가 눈물을 흘리면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살아간다. 




안녕달님의 새 그림책 『안녕』 

안녕달 님의 그림은 이전 작품들처럼 따뜻하고, 따뜻하다. 참 좋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이질감 느껴지는 살색의 소시지에 깜짝 놀랐는데, 보고, 보고, 또 보는 결에 정이 들고 참 좋아져버렸다. 


이 책의 내용은 소시지 할아버지의 어렸을 때 이야기, 아빠 소시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된 소시지 할아버지. 친구가 된 강아지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소시지 할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잡아 먹힐까봐 겁이났다. 하지만 강아지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데도 먹지 않고, 깨물지도 않고, 그냥 입밖으로 뱉는데(미니 소시지를 소시지 할아버지의 분신쯤으로 느꼈을까). 믿음이 생긴 할아버지와 강아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소파 위에서 함께 잔다. 시간이 흘러 소시지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된 강아지. 밖으로 모험을 떠나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망자들의 별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본 할아버지. 마음을 놓고 할아버지도 망자들의 별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이야기인데, 어딘가 안심이 되고, 안도가 되는 이야기다. 


이 그림책은 말이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 한 편의 무성 영화처럼 그림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상상력으로 그림을 읽어가야 한다. 나 개인적으로 무성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상에 대한 이해는 꼭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표정과 작은 행동만으로도 많은 걸 이해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강아지와 말이 통해서 함께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사람 간의 많은 대화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전달되어야 할 중요한 것들이 말에 의해서 제거되고 축소되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  


그림책 속엔 글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글이 적은 이유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위한 것이지만, 어른들의 상상력에도 좋다. 하루 종일 수없이 많은 말에 노출된 어른들, 그림으로만 이뤄진 그림책을 읽고 말의 소음에서 벗어나 그림 형태의 이야기도 즐기면 좋겠다. 그림만 봐도 사람은 그림 속 이야기를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감동과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으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책이 하나의 장르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아쉽지만, 그 풍토가 조금씩 바뀌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났을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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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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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작품 중  『끝없는 이야기(Neverending Story)』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바스티안은 외모도 별로고, 자신감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학교 가기가 두렵고 싫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우연찮게 읽게 되고, 등교도 하지 않은 채 몰입해 읽다가 어느 순간 책 속 세계로 들어가 책 속의 주인공과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다. 

화가인 아버지께 많은 영향을 받은 엔데는 '공간'이라는 소재를 상당히 독특하게 풀어간다. 3차원을 2차원으로, 2차원을 3차원으로, 공간을 줄였다가 늘였다가 비틀고, 공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극한으로까지 상상한다. 

『끝없는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 세계의 넘나듦이다. 재밌는 건, 우리도 텍스트를 몰입해 읽는 순간마다 바스티안의 경험을 하지 않나. 이것을 거울이 비친 상이 또 다른 거울에 비친다고 해야 할지(엔데는 '거울'을 소재로 한 소설도 썼다!), 모방의 모방이라고 해야 할지, 그 비슷한 느낌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사람, 플라톤. 책은 어쩌면 플라톤이 비유한 동굴의 그림자일지 모르며, 우린 때때로 액자식 소설을 읽고, 동굴 벽에 비친 빛과 그림자가 또 다른 벽에 반사되어 보이는 그 '빛과 그림자'를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한 장서가, 알베르토 망겔의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었다. 

알베르토 망겔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를 이스라엘에서 보내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이탈리아, 타히티, 프랑스, 캐나다를 거쳐 노년이 되어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저자는 세상 어느 곳에 살든, 늘 개인 도서관을 만들고 책과 더불어 살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3만 5천 권의 장서를 수집해 두고 15년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관료제의 어떤 문제로 프랑스를 떠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당시의 소회를 쓴 책이다. 프랑스를 왜 떠나게 되었는지, 그 '관료제의 문제'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책에 없다.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테니까. 알베르토 망겔에겐 책을 정리할 때 자신의 마음도 간추리고 정리해야 했다. 
- 발터 베냐민은 1931년 독자와 책에 대한 짧지만 유명한 에세이를 썼다. 그는 그 글에 「나의 서재 공개(Unpacking My Library)」라는 제목을 붙였다. / 책 싸기와 책 풀기는 똑같은 충동의 양면이고 둘 다 논란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 43쪽)

- 베냐민이 지적했듯 도서관은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에 책 풀기는 순식간에 기억을 돕는 의식이 된다. 베냐민은 그 과정에서 '생각이 아니라 이미지와 기억이 환기된다'고 썼다. (- 46쪽)

- 책 풀기는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내 모습을 환기시켰다. 무심하고, 용감하고, 야심만만하고, 고독하고, 오만하고, 다 아는 체했던 모습 혹은 실망하고, 놀라고, 다소 두려워하고, 혼자였고 나의 무지를 의식했던 모습. (- 56쪽)

- 반대로 책 싸기는 망각을 연습하는 것이다. (- 58쪽)

 

이 책의 원제가 왜 Packing my library 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p. 43 논란의 순간에 의미 부여 / p.58 망각 연습] 저자는 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그 책을 자신이 소장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런 사람이 서재를 정리하고, 사랑하는 책을 상자에 넣어 창고에 넣어두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을 나름대로 승화시킬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그의 할머니가 어떤 지혜를 준다.


물건을 그렇게 잃어버려도 할머니는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에 있던 집을 잃어버렸어. 친구들과 부모를 잃어버렸어. 나는 남편도 잃고 언어도 잃었어." 할머니는 러시아어, 이디시어, 스페인어가 뒤섞인 기이한 말로 말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현재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즐기게 되니까. 우리는 상실에 익숙해져야 해." (- 108쪽)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 쪽이라고 썼는데, 책의 내용이나 스타일도 확실히 플라톤스럽다. 현학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생각 저변에 플라톤스러운 생각이 깔려 있다. 알베르트 망겔은 일상의 일들도, 관념화해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 마치 우리가 하이젠베르크의 전자인 양 우리는 우리가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우리는 남들과 상호작용할 때, 남들이 우리를 보아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양자 물리학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 - 우리의 존재는 이러이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저러저러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현상 - 이라 부르는 것은 실체가 없는 상호작용일 뿐일지도 모른다. (- 39쪽)


- 우리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어떤 사물을 말할 때에도 우리의 생각과 발성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 사물의 그림자는 우리의 발성이 대화 상대의 수용과 이해에 이르는 과정에서 더욱 희미해진다. 우리는 언어의 전달력이 이렇게 부실하다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하면서도 언어의 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 111쪽)


- 작가의 임무는 이 세상에 올바르게 이름 붙일 말들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말들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다. 말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를 회복하는 유일한 도구다. 동시에 말 덕분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의미가 말의 경계 밖, 언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124쪽) 


- 우리가 말로 무엇을 구축하든 간에 그건 당초 소망했던 것을 완전히 포착하진 못한다. (- 125쪽) 

이 책은, 어렵지는 않지만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텍스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깨닫는다. 뚜렷한 스토리 없이 저자의 의식의 흐름만 따라 읽다 보면, 글에 겹쳐서 나의 여러 기억과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 꼭 꿈을 꾸는 것처럼 일관성 없이 여러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떠올랐다 없어진다. 그냥 그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데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텍스트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왠지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 알베르토 망겔이 싼 책 상자 안에 갇혀 책과 텍스트 사이에 갇힌 느낌이 든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도 든다. 책이라는 존재를 만나서,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을 공감할 수 있어 무척 기쁜데, 그러나 말과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말과 글로 엮여 이어진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영원히 미끄러져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 너무 외롭다.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해지는지. 


그런데 반전 등장. 원래 프랑스를 떠나 캐나다에 완전히 정착해, 정착한 지역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갈 계획이었는데 아르헨티나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국립도서관장 자리를 제의받는다. 이 부분부터 저자의 완전히 어조가 바뀌어서 활달하다.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톡 떨어진 것 같다. (뭐야 뭐야, 내 마음은 이렇게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고선. 물려내라고~) 




그림자의 그림자. 환영의 환영. 이건 세계를 책 속에 표현한 책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뭔지, '실제 현실'이 뭔지, 내가 느끼는 '감각'은 뭔지 여전히 모든 게 알쏭달쏭하지만, 이 책의 한 구절이 내게 힘을 준다. 


작가의 임무는 이 세상에 올바르게 이름 붙일 말들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말들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다. 말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를 회복하는 유일한 도구다. 동시에 말 덕분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의미가 말의 경계 밖, 언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124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 미하엘 엔데가 많이 떠올랐다. 그는 언어 너머의 그 무엇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아마 그것도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겠지. 그는 그런 시도를 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매번 한 작품을 퇴고하고, 출판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텍스트로 표현하면서도 텍스트 너머의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넘나들었을까.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알베르토 망겔은 책을 사랑했다. 문자, 이것이 우리를 표현하고, 우리의 이야기와 지식을 남기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에. 저자가 이 책에 썼듯, 문자 기록은 작가의 임무이고 텍스트를 사랑하는 사람의 임무다. 한계를 알면서도 한계와 마주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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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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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것도 사람마다 방식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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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파파 스크랩북 마음 다이어리 바바파파 스크랩북 다이어리
다산북스 편집부 지음 / 놀(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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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파파 트레이드 마크, 바로 바바파파의 얼굴! 바바파파의 얼굴이 전면에 인쇄된 『바바파파 스크랩북 마음 다이어리』 표지만 봐도, 마음이 분홍분홍 따뜻해진다. +ㅁ+


이 스크랩북 다이어리도 다이어리 겸 스크랩북이다. 본 다이어리는 하드커버로 튼튼하고 야물게 제본되어 있고, 별책부록인 『마음 스티커북』엔 바바파파와 그 외 캐릭터들이 인쇄된 스티커와 내 마음을 드러내 줄 150가지의 질문이 수록되어 있다. 



상세 구성은 '먼슬리 플랜'이 14개월 수록되어 있고(오, 12개월이 아니라 14개월!) 양옆에 'TO DO' 리스트와 '내 마음 평가'란이 있다. 매주 해야 할 리스트 적고, 또 내 마음 상태도 간단히 적으면 된다. 



그다음 나오는 코너는 '마음 거울' 페이지라고 해서, 구체적으로 오늘 내 마음은 어땠는지 적는 공간이다. ① 나의 긍정적 마음, ② 부정적 마음, ③ 겉마음, ④ 속마음 총 4가지 마음을 적을 수 있으며, 그 밑에 '마음 처방전'이라고 해서 내 마음, 내 심리 상태에 알맞은 처방을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서 내릴 수 있다. 사실 본인의 감정적 문제를 풀 방법과 해답은 이미 안에 있다. 그냥 생각만 하고 그치면 마음이 좋아지기 힘들지만 다이어리에 내 마음 상태를 객관적으로 쓰고 바라보면, 내 마음 문제를 풀 방법이 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본인 마음을 매일 체크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들께 알맞을 것 같다. 


그다음 코너는 낙서장 혹은 메모장 코너로, 마음 가는 대로 글 쓰고, 그림 그리면 된다! 



그다음은 '내가 만난 책들' 코너. ① 재밌게 읽은 책 ② 나를 울린 책 ③ 내 인생을 바꾼 책 ④ 실망한 책 (BEST/WORST)를 적는 코너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알베르토 망구엘의 『서재를 떠나보내며』인데, 이 책의 저자는 책은 곧 자신의 자서전이라며 자기 자신을 알려주는 척도란다. '내가 만난 책들' 코너의 빈칸을 채우다 보면, 나 자신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마인드 맵 그리기'도 있고, '내가 사랑한 작품들', '내가 가보고 싶은 곳', '반려동/식물, '맛집 리스트' 등 내 취향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울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 

예전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 때, 일기장에 매달렸다. 일기를 쓸 때만 좀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괴롭다는 감정일랑 든 적이 없는데, 당시에는 괴롭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때 일기장을 펼쳐서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말을 내키는 대로 막 적기도 하고, 때론 논리 정연하게 내 생각들을 적기도 했으며, 막연하게 내가 바라는 것이나, 싫은 것, 고맙고 감사한 것 등 많이 적었다. 그때 남 눈치 볼 것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적기만 해도 내 마음속에서 응어리지고 썩어가는 것들을 도려내 없애고 치유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전적으로 일기 때문에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정말로 마음의 문제를 풀 방법으로 글 쓰기가 참 좋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자기 전에 일기를 쓰고 있다. 물론 옛날보다 쓰는 글줄은 짧아졌지만, 앞으로도 매일 쓸 것이다. 


 『바바파파 스크랩북 마음 다이어리』는 다이어리 꾸미는데 취미가 있고, 마음이나 취향 등 본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정리하고 싶은 분께 알맞은 다이어리다. 그런 분께 추천하고, 또 바바파파 이야기와 바바파파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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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파파 스크랩북 웨딩 다이어리 바바파파 스크랩북 다이어리
다산북스 편집부 지음 / 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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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파파 +ㅁ+ 생긴 건 왜 저렇고, 이름은 또 왜 저렇냐고~ 


생긴 게 저런 건(?!) 바바파파가 분홍색 솜사탕이기 때문이고, 또 프랑스에서 솜사탕을 바바파파(barbe à papa)라고 하기 때문이다! 바바파파는 태어난 지 40년 된 프랑스 국민 캐릭터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다. 그냥 온몸이 사랑 그 자체! 성격도 정말 좋다. 다정다감. ♡_♡ 그런데 온몸이 분홍분홍한 색깔이라 여자 같아 보이지만, 바바파파는 남자다. 그리고 아내도 있다. 심지어 자식도(자식이 일곱 명인 것도 안 비밀)! 


바바파파는 솜사탕 모양에 솜사탕 이름을 갖고 있지만 정원에서 태어났다. 솜사탕 장인들이, 솜사탕 모양을 자유자재로 만들 듯, 바바파파도 보기엔 동글동글, 몽글몽글해도 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이 멋진 능력 덕분에 고민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멋진 녀석! 그리고 성격은 넘나 친절하고, 사랑스럽다. 


바바파파 옆에 꽃 머리띠 한 캐릭터는 바바파파의 아내로 이름이 바바마마다. 바바파파와 바바마마, 금슬이 정말 좋은데 특히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필요한 다자녀 부모다. 슬하에 자식이 무려 일곱 명. (멋져요!!) 



부부 금슬 좋은 바바 부부가 책을 냈다. (음, 책을 기획하고 편집, 출판한 건 바바파파 부부가 아니고, 출판사지만-) 이름하여, 『바바파파 스크랩북 웨딩 다이어리』!!! 이 책은 소설책 아니고, 그림책 아니고, 이름대로 스크랩북이다. 스크랩북과 다이어리가 혼합된 형식이라고 할까. 



스크랩북 구성은 대략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스크랩북 내용에 따라 결혼식 준비할 때 기본 뼈대 잡고 순서대로 행하면 결혼 준비가 여러모로 수월할 것 같았다. 특히 결정 장애가 있는 분, 우유부단한 분들은 결혼 준비할 인터넷 검색에만으로 몇 달을 보낼 수 있는데, 바바파파 스크랩북에 나온 리스트대로 큰 아웃라인만 잡아도 결혼 준비가 한결 편해지고, 선택지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결혼은 인륜지대사고, 알아봐야 할 게 무궁무진하게 많고 또 친정, 시댁 어르신 의견까지 다 수렴하고 조정하려면 높고 험난한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할 테지만요! >ㅁ<)



별책부록으로 『바바파파 스크랩북 웨딩 미니북』도 함께 딸려있다. 얇아서, 결혼 준비 미팅이 있을 때 가볍게 들고 다니기 좋아 보인다. 본 스크랩북은 하드커버에, 두꺼워서 어디 들고 다니기는 힘들다. 그래서 집에 두고두고 놔두고 볼 소장용으로 적합하기 때문에 어디 다닐 때는 '미니북' 하나 간편히 들고 가면 좋을 것 같다.


금슬 좋은 바바파파, 바바마마 부부와 함께 결혼 준비한다면, 기분이 분홍색처럼 상콤달달하고, 재밌고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ㅁ+ 결혼 후에도 바바 부부처럼 금슬 좋게 잘 지낼 가능성도 UP! 물론, 금슬 좋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예비 부부님들께 바라는 사항이에요. 결혼한 부부에게도요! :)


『바바파파 스크랩북 웨딩 다이어리』 , 바바파파 이야기와 캐릭터를 좋아하는 예비 신부님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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