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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모모』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작품 중 『끝없는 이야기(Neverending Story)』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바스티안은 외모도 별로고, 자신감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학교 가기가 두렵고 싫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우연찮게 읽게 되고, 등교도 하지 않은 채 몰입해 읽다가 어느 순간 책 속 세계로 들어가 책 속의 주인공과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다.
화가인 아버지께 많은 영향을 받은 엔데는 '공간'이라는 소재를 상당히 독특하게 풀어간다. 3차원을 2차원으로, 2차원을 3차원으로, 공간을 줄였다가 늘였다가 비틀고, 공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극한으로까지 상상한다.
『끝없는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 세계의 넘나듦이다. 재밌는 건, 우리도 텍스트를 몰입해 읽는 순간마다 바스티안의 경험을 하지 않나. 이것을 거울이 비친 상이 또 다른 거울에 비친다고 해야 할지(엔데는 '거울'을 소재로 한 소설도 썼다!), 모방의 모방이라고 해야 할지, 그 비슷한 느낌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사람, 플라톤. 책은 어쩌면 플라톤이 비유한 동굴의 그림자일지 모르며, 우린 때때로 액자식 소설을 읽고, 동굴 벽에 비친 빛과 그림자가 또 다른 벽에 반사되어 보이는 그 '빛과 그림자'를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한 장서가, 알베르토 망겔의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를 읽었다.
알베르토 망겔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를 이스라엘에서 보내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후 이탈리아, 타히티, 프랑스, 캐나다를 거쳐 노년이 되어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저자는 세상 어느 곳에 살든, 늘 개인 도서관을 만들고 책과 더불어 살았다. 이 책은 프랑스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 3만 5천 권의 장서를 수집해 두고 15년을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관료제의 어떤 문제로 프랑스를 떠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당시의 소회를 쓴 책이다. 프랑스를 왜 떠나게 되었는지, 그 '관료제의 문제'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책에 없다.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테니까. 알베르토 망겔에겐 책을 정리할 때 자신의 마음도 간추리고 정리해야 했다.
- 발터 베냐민은 1931년 독자와 책에 대한 짧지만 유명한 에세이를 썼다. 그는 그 글에 「나의 서재 공개(Unpacking My Library)」라는 제목을 붙였다. / 책 싸기와 책 풀기는 똑같은 충동의 양면이고 둘 다 논란의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 43쪽)
- 베냐민이 지적했듯 도서관은 기억의 장소이기 때문에 책 풀기는 순식간에 기억을 돕는 의식이 된다. 베냐민은 그 과정에서 '생각이 아니라 이미지와 기억이 환기된다'고 썼다. (- 46쪽)
- 책 풀기는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내 모습을 환기시켰다. 무심하고, 용감하고, 야심만만하고, 고독하고, 오만하고, 다 아는 체했던 모습 혹은 실망하고, 놀라고, 다소 두려워하고, 혼자였고 나의 무지를 의식했던 모습. (- 56쪽)
- 반대로 책 싸기는 망각을 연습하는 것이다. (- 58쪽)
이 책의 원제가 왜 Packing my library 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p. 43 논란의 순간에 의미 부여 / p.58 망각 연습] 저자는 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그 책을 자신이 소장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런 사람이 서재를 정리하고, 사랑하는 책을 상자에 넣어 창고에 넣어두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고, 그 고통을 나름대로 승화시킬 방법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그의 할머니가 어떤 지혜를 준다.
물건을 그렇게 잃어버려도 할머니는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러시아에 있던 집을 잃어버렸어. 친구들과 부모를 잃어버렸어. 나는 남편도 잃고 언어도 잃었어." 할머니는 러시아어, 이디시어, 스페인어가 뒤섞인 기이한 말로 말했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현재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즐기게 되니까. 우리는 상실에 익숙해져야 해." (- 108쪽)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플라톤 쪽이라고 썼는데, 책의 내용이나 스타일도 확실히 플라톤스럽다. 현학적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생각 저변에 플라톤스러운 생각이 깔려 있다. 알베르트 망겔은 일상의 일들도, 관념화해서 글을 쓰는 것 같았다.
- 마치 우리가 하이젠베르크의 전자인 양 우리는 우리가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우리는 남들과 상호작용할 때, 남들이 우리를 보아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양자 물리학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 - 우리의 존재는 이러이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저러저러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현상 - 이라 부르는 것은 실체가 없는 상호작용일 뿐일지도 모른다. (- 39쪽)
- 우리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어떤 사물을 말할 때에도 우리의 생각과 발성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 사물의 그림자는 우리의 발성이 대화 상대의 수용과 이해에 이르는 과정에서 더욱 희미해진다. 우리는 언어의 전달력이 이렇게 부실하다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하면서도 언어의 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 111쪽)
- 작가의 임무는 이 세상에 올바르게 이름 붙일 말들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말들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다. 말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를 회복하는 유일한 도구다. 동시에 말 덕분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의미가 말의 경계 밖, 언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124쪽)
- 우리가 말로 무엇을 구축하든 간에 그건 당초 소망했던 것을 완전히 포착하진 못한다. (- 125쪽)
이 책은, 어렵지는 않지만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텍스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깨닫는다. 뚜렷한 스토리 없이 저자의 의식의 흐름만 따라 읽다 보면, 글에 겹쳐서 나의 여러 기억과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 꼭 꿈을 꾸는 것처럼 일관성 없이 여러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떠올랐다 없어진다. 그냥 그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데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면 텍스트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왠지 내가 아주 작은 존재가 되어 알베르토 망겔이 싼 책 상자 안에 갇혀 책과 텍스트 사이에 갇힌 느낌이 든다. 쓸쓸하고 외롭다는 느낌도 든다. 책이라는 존재를 만나서,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을 공감할 수 있어 무척 기쁜데, 그러나 말과 글은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말과 글로 엮여 이어진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영원히 미끄러져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 너무 외롭다.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해지는지.
그런데 반전 등장. 원래 프랑스를 떠나 캐나다에 완전히 정착해, 정착한 지역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갈 계획이었는데 아르헨티나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국립도서관장 자리를 제의받는다. 이 부분부터 저자의 완전히 어조가 바뀌어서 활달하다.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톡 떨어진 것 같다. (뭐야 뭐야, 내 마음은 이렇게 뒤숭숭하게 만들어 놓고선. 물려내라고~)
그림자의 그림자. 환영의 환영. 이건 세계를 책 속에 표현한 책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뭔지, '실제 현실'이 뭔지, 내가 느끼는 '감각'은 뭔지 여전히 모든 게 알쏭달쏭하지만, 이 책의 한 구절이 내게 힘을 준다.
작가의 임무는 이 세상에 올바르게 이름 붙일 말들을 발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말들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알고 있다. 말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를 회복하는 유일한 도구다. 동시에 말 덕분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은 의미가 말의 경계 밖, 언어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 124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 미하엘 엔데가 많이 떠올랐다. 그는 언어 너머의 그 무엇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아마 그것도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겠지. 그는 그런 시도를 하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매번 한 작품을 퇴고하고, 출판할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텍스트로 표현하면서도 텍스트 너머의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넘나들었을까.
언어의 한계를 알면서도 알베르토 망겔은 책을 사랑했다. 문자, 이것이 우리를 표현하고, 우리의 이야기와 지식을 남기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기 때문에. 저자가 이 책에 썼듯, 문자 기록은 작가의 임무이고 텍스트를 사랑하는 사람의 임무다. 한계를 알면서도 한계와 마주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