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클래식그림씨리즈 5
아고스티노 라멜리 지음, 홍성욱 / 그림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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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느낌의 도판-


어디서 봤는고 하니 초현실적 세계를 나타낸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작품에서였다. 몇몇의 그림에선 정말 에셔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위의 도판들은 에셔가 태어나기 300여 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만든 작품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고스티노 라벨리. 태어난 곳은 북부 이탈리아, 생몰 연대는 불확실 하나 1531년에 태어나 1610년에 죽은 것으로 추측한다.


에셔의 작품은 세밀하고 섬세한 작업으로 비현실적 모습을 현실적 모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라벨리의 작품은 실제 기계와 기구의 모습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라벨리가 살았던 시대는 르네상스 후반기로 하느님이 계신 하늘을 상상하던 시대는 종지부를 찍고 지상의 것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적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법인 '원근법, 조감도, 투시도' 등이 르네상스 시대에 개발되고 발전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정신과 맞물린다.


라벨리의 시대 땐 '기계들의 극장'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자크 베송이라는 사람이, 1572년에 다양한 기계와 도구들에 대한 도판과 설명을 담은 책을 냈고 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유사한 책을 출간했다. 라멜리 역시 이 흐름에 따라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Le diverse et arificiouse machine, 1588)』을 만들었다.


라멜리의 책은 이전의 책들에 비해 매우 사실적이고 공학의 기본 원리를 충실히 따랐다고 하는데, 위의 도판에서 보듯 뭔가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지만 어딘지 복잡해 보인다. 라멜리의 그림대로 실제 기계를 만들면 제대로 작동할까?


르네상스 이후 17세기까지의 기술사에 대한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라멜리의 기계들은 실제로 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기계공학적 재능과 독창성을 뽐내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 책에 실린 간단한 기계들을 라멜리가 만들었거나 당시 작동하던 기계들을 모델로 한 것일 수 있지만, 많은 기계들은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라멜리는 독자들에게 자신이 그린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들이 설명한 대로 작동 가능하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재능과 후견인의 권능을 뽐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


'종이 위에서의 공학'의 전통은 초기 르네상스 시기부터 유행이었고, 라멜리 역시 이 전통을 계승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런 전통에 위치했던 사람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잠수함이나 프로펠러 헬리콥터가 실제 제작되지 않았듯이, 라멜리의 기계들 대부분도 실제로 제작되어 작동되던 것들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공학적 상상력의 결실이었다.


아고스티노 라벨리,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그림씨, 2018 (p. 8~9)


르네상스 사람들은 대단한 실력을 가졌지만, 그에 못지않게 허세도 많았던 것 같다(허세는 나의 힘!).



어쨌거나 라멜리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은 당시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공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도판 한두 개만 봐도 그랬을 것 같다. 지금 시대의 내가 봐도, 어딘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제로 만들어서 구현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에는 흐르는 강물이나 깊은 수조에 있는 물을 퍼내는 기계를 그린 그림이 많다. 왜 그럴까? 마을 사람들이 쉽게 물을 긷도록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물 긷는 기계들의 그림이 많은 건, 귀족 정원에 물을 대거나 분수를 만들 때 참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때도 밀이 주식이다 보니 수력, 풍력, 인력을 이용해 곡식을 빻고 가는 제분 기계의 도판도 있고, 전쟁 때 적의 성에 들어가기 위해 해자 위에 임시로 놓는 다리나, 쇠창살을 절단하거나 늘리는 기계, 무거운 문을 들어 올리는 기계, 화살이나 돌, 쇠공을 먼 곳으로 날려보내는 활이나 투석 기기의 도판도 있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를 펴낸 라멜리는 이탈리아의 메디치 아래 군인 생활을 했고, 군사 목적으로 수학과 기계 공학을 익혔으며 군사 공학 전문가로 유명해진 후엔 부르봉 왕가인 앙리 3세 밑에서 활동했기 때문인데, 이 책에 실려 있는 군사 관련 도판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흥미롭다.


당시의 수륙양용 차. 다리도 되고 마차도 되고 배도 된다(배 안에 탄 사람 닻 내리고 있음ㅋㅋ).



당시 이탈리아 내에서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서유럽도 종교 전쟁으로 시대가 불안하고 일상이 전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무기 관련 공학 지식이 중요해졌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 있었을 듯하다.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는 '종이 위에서의 공학'이라도 말이다.


책의 해설과 도판 설명을 홍성욱 교수님이 하셨다. 대학 때부터 교수님 에세이를 꼭꼭 찾아 읽었고, 이 책처럼 도판이 많이 실렸던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도 재미나게 읽었다. (사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 도판을 보고 에셔의 작품보다,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가 먼저 생각났다)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 항상 교수님의 배경 지식에 놀라곤 한다.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를 읽으면서 정말 열심히 자료 수집하고, 시대와 맥락 속에 사료를 놓고 의미를 읽으시려는 노력이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또 몇 페이지 남짓한 해설일 뿐이지만, 짧은 해설 속에서 르네상스 시대와 미술계, 과학, 공학, 출판 흐름에 대한 지식의 탄탄함도 느껴진다.


그리고 여전히 글을 잘 쓰신다. 쉽게 읽히게 쓰신다. 다만, 그림을 설명한 부분에선, 내가 '기어'나 '크랭크', '패들 구조물' 등등 이 어휘가 지칭하는 실제 사물을 몰라서 검색해야 했다. 다 들어 본 단어인데, 기계에 대해선 완전 젬병, 무식쟁이라 해설과 도판을 서로 연결해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기계들』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공학자의 상상물이 담뿍 담겨 있고, 흥미롭고 재미난 도판도 많아 르네상스나 그 당시의 공학, 군사기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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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성경
힐러리 톰프슨 지음, 에린 도슨 그림, 이지혜 옮김, 에드워드 더피 감수 / 그림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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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성경 관련 이야기를 듣거나 읽을 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성경을 한 번도 읽은 적 없고,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를 접해 볼 일도 없었다. 간혹 기독교 문화권 작가가 쓴 책을 읽을 때 조금 읽을 뿐이고, 이마저도 내용이 어렵거나 종교 색채가 짙으면 책을 덮는다. 그렇게 회피하며 살아왔는데, 그래도 성경은 조금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용기 내어 읽어보았다. 뻥뻥 비어져 있는 저의 상식과 지식을 채워주세요, 『#인포그래픽 #성경』!!



책의 제목대로 이 책은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기서 인포그래픽은, 요즘 모바일 환경에 맞춰 발달한 카드 뉴스를 떠올리면 된다. 다양한 정보(info)를 이해하기 쉽게 간결한 그림과 간단한 설명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책은 인포그래픽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긴 글이 없다. 단 한 군데, 딱 한 페이지 분량인 <들어가는 말>만 서술식으로 적혀 있을 뿐이다. 독서에 친숙하지 않으나 성경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좋을 형식이다. 또 모바일에 익숙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도 좋다.


이 책은 주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특기할 만한 사건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인물 설명이 좋았는데, 나로서는 성경 속 이름이 낯설고도 낯설며, 이름이 다 비슷하면서도 다르기 때문에 늘 헷갈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이, 자손대대 번성하게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람들이 열심히 자식을 낳는데 나는 예전에 이 계보 놀라고 현기증이 났다.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또 그 아들이고 아들이며.... 하는 부분을 읽고 '아, 책 덮자.'하며 성경 읽기를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누가 구약성서는 판타지 소설과 같다며 읽어보라고 권유해 펼쳤는데, 아들의 아들이라는 글이 끝도 없이 이어져 정신을 잃을 것 같다. 근데 이 책을 보고 좀 정리된 느낌이 든다. 또 모르겠고 헷갈린다면 당장 책 펼쳐서 보면 되고.

예전에 개념어 사전이라고 한창 출판계에 유행했었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사람들이 복잡하고 헷갈리는 성경 속 인물과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세상이 갈수록 쉬운 설명으로 가는 듯-) 나처럼 비종교인으로서 성경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식으로 조금 알고 싶으신 분들께 좋을 책 같고, 또 가정이 기독교 집안으로 어린 자녀에게 성경 속 인물이나 사건을 쉽게 설명하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아이들 학습 서적 느낌이 살짝 든다.



덧붙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해서 에게 문명이나 이집트, 그리스 문명에 관심은 많은데 그 방대한 역사가 내 머릿속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이 다루는 구약성경의 배경이 고대 문명이므로, 자세하지는 않더라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해 이집트와 중동 문명에 대한 작은 상식도 쌓을 수 있어 좋았다.


덧붙임> 다만, 저자 힐러리 톰프슨이 신자이므로(아마도....?!) 객관적 시각이 아닌 성서의 입장에서 풀이하고 있다. 종교에 크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거슬릴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대부분 현대 시각으로 해석 해서 무신론자나 타 종교인들도 읽기 무리 없다고 본다. 허황된 부분은 종교적 상상력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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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츠드렁크 - 행복 지수 1위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미스카 란타넨 지음, 김경영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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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게 : 덴마크인 라이프 스타일로 '아늑함'을 추구.
라곰 : 스웨덴인 라이프 스타일로 '적당함, 충분함'을 추구.
칼사리캔니(팬츠드렁크) : 핀란드인 라이프 스타일로 '편안함'을 추구. 

팬츠드렁크의 어원인 핀란드 어 '칼사리캔니'는 속옷을 뜻하는 '칼사리'와 취한 상태를 뜻하는 '캔니'의 합성어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에 팬츠드렁크의 본질이 담겨 있다. 쉽게 말해, 팬츠드렁크는 어디도 나가지 않고 오직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를 의미한다.

미스카 란타넨, 『팬츠드렁크』, 31쪽

핀란드 어 칼사리캔니는 영어로 번역하자면 '팬츠드렁크'! 마음 편한 집에서, 몸이 편한 옷(속옷 good)을 입고 가볍게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스마트폰 오락, 좋아하는 음악 듣기 등 마음 가는 대로 편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덴마크의 휘게나 스웨덴의 라곰은 좀 가족적이거나 소모임적 성향이 강한데 핀란드의 팬츠드렁크는 상당히 개인적이다.




팬츠드렁크는 자기답게 쉴 수 있는 완전한 휴식 방법이다. (...) 있는 척하며 분위기를 잡고 연기를 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팬츠드렁크를 즐기는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연출된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미스카 란타넨, 『팬츠드렁크』, 26쪽

휘게나 라곰은 연출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적절한데, 팬츠드렁크는 다소 부적합하다. 속옷만 입은 채 소파 위에서 혼술 하며 노트북을 하거나 스마트폰 하는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기엔, 서로 민망하잖아. >ㅁ< 하지만 마음은, 팬츠드렁크가 훨씬 편하고 하루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팬츠드렁크가 더 효율적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늘고, '소확행'이 유행하면서 혼술 문화가 많이 퍼졌는데(예전엔 가족들과 함께 사니, 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힘들었고 혼자 몰래 마신다고 해도 꼭 들켜셔 부모님이나 배우자의 잔소리 터짐), 우리 혼술 문화와 핀란드의 '팬츠드렁크'가 좀 비슷하겠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가 '술'에 집중한다면, 핀란드 인은 술보단 '편안함'에 방점을 둔다. '팬츠드렁크' 단어에 드렁크가 들어가지만, 굳이 술은 안 마셔도 된다. 술은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니까.

팬츠드렁크의 핵심은 '의미 있는 무의미함'이다.

미스카 란타넨, 『팬츠드렁크』, 31쪽

우리가 보기엔 비슷해 보이는 북유럽이지만, 북유럽도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일단 지리적 요소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북유럽에 속하지만 유럽 대륙에 위치한 덴마크는 교통이 발달했다. 그래서 가족이나 직장 동료와 집에서나 별장에서 아늑하게 함께 있는 걸 즐긴다. 스웨덴도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막강한 군사력으로 오랫동안 북유럽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발달했는데(우리나라의 '공동체 의식'과는 좀 다른 느낌) 그래서 때가 되면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그래서 발달한 것일 수 있겠다(방금 떠올린 내 생각으로, 예전에 라곰 책에서 읽은 건데 스웨덴에서 커피 초대는 민감한 문제라고 들었다. 왕따 뭐 그런 거. 상당히 공동체를 중시해서, 그런 만큼 다른 곳에 속한 사람에겐 배타적이라고 이해했다).

반면에 핀란드는 이 책에서 설명하다시피 개인적인 나라다. 북유럽 어느 나라나, 다른 지역에 비해 개인적이지만 핀란드는 더욱더 개인적인 나라인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농경국가였고 어둡고 춥고 인적 드문 땅 위로 가난한 농가가 수십 미터 거리로 흩어져 있었으니, 도시화가 된 후에도 관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멀리한다고 한다. 그 유명한 짤만 봐도 그렇다.




스웨덴 사람들도 줄 설 때 띄엄띄엄 서있지만, 핀란드 인은 그 간격이 더 심한 것 같다. 저 하얀 패딩 입은 사람... 뭐냐.... 넘 멀어.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버스 기사님들은 다 타길 못 기다리고 한 명만 태우고 떠날 듯.

이렇다 보니 가족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휘게나 라곰보다 혼자 자기만의 공간에서 편히 쉬는 '팬츠드렁크' 문화가 핀란드에 생긴 것 같다. 그렇다고 팬츠드렁크를 혼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배우자나 가족, 가까운 친구, 동료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일단 편하게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게 팬츠드렁크!

​팬츠드렁크는 마음의 평화에서 출발하는 하나의 태도이자 삶의 철학이다. 자신의 머릿속이 가볍고 마음 근육이 단단하다면 그 건강한 기운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려면 무엇보다 편안한 속옷 또는 잠옷, 적당한 양의 술, 약간의 안주, 오락기기가 필요하다.

미스카 란타넨, 『팬츠드렁크』, 179쪽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의 '팬츠드렁크'가 우리나라의 '혼술'보다는 '멍 때리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편히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게 닮았다.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시간(167쪽)....

인스타에는 정성 들여 꾸민 휘게나 라곰 류의 사진을 올릴 수 있겠지만, 사진 업로드가 끝나고 앱을 끄면 팬츠드렁크로.... 본격 편하게 있는 시간들, 그게 바로 팬츠드렁크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미 우리가 실천하는 시간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좀 더 발달했으면 하는 문화다. 혼자 있을 때 이렇게 편하게 있어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 내고 가벼워진 후, 가까운 사람들과 화목하게 잘 지내고, 업무에서는 일에 집중력과 효율성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 우린 아직 너무 날 서 있다. 릴렉싱 하는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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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게 다 고민입니다 - 동물 선생 고민 상담소
고바야시 유리코 지음, 오바타 사키 그림, 이용택 옮김,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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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당일로 서울에 갈 때 읽은 책. 250쪽 정도 되는 책인데 내용이 짧고 간결해 금방 다 읽는다. 각 내용별로 삽화도 들어있어 눈도 마음도 여유롭게 독서할 수 있다. 간혹 기차 타고 책 읽으면 머리가 어지러운데, 이 책을 읽을 땐 그런 게 없었다. 글의 흐름이 짧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이동 시 짧게 독서할 때 알맞은 책인 듯.


​─

책의 구성 방식은, 각 상황에 놓인 인간이 고민을 털어놓으면 특정 동물이 자기의 행동 방식이나 습성을 말해주며, '인간, 당신이 가진 고민은 충분히 내 행동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며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고민하는 이를 위로해 준다.




고민의 예를 든다면 이런 거.

직장에서 후배들이 자신을 꼰대 취급하며 불편하게 대한다는 고민이 있었다. 이 고민의 상담자는 나이 든 암사자였는데 그의 답변은 이랬다. '젊은 사람에게 당할 순 없으니, 경쟁보다는 선배답게 무게 잡으세요.'
사자 무리는 암컷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회이며 암컷들은 서로 협력해 사냥을 한다. 나이 들어 힘이 달리는 암사자는 사냥에 나서기보다 젊은 암컷의 새끼를 돌보거나 수사자나 하이에나가 접근하는 것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단다. 늙은 사자의 약점은 체력, 강점은 경험이니, 늙은 암사자처럼 고민자도 경쟁보다 '경험'을 살려서 후배를 이끌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존경까지 받을 수 있을 거란다. 만약 그렇지 못할 시엔 무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뭔가, 사자에서도 '교과서'가 있는지 늙은 암사자의 답변이 너무 교과서이다. 어쨌든 나는 늙은 암사자는 무리 안에서 따돌림받다 쫓겨나 초원에서 혼자 쓸쓸히 굶어 죽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마는 않은가 보다. 무리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제 밥벌이는 했던 것.


책 속 답변은 전반적으로 교과서적이고 어떤 답변은 꼰대스러운 면도 있지만 저자가 일본인이라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이고 본인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무슨 일이 있을 땐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해결한다. 본인의 생각은 누르고, 무리와 사회를 우선시하는 문화. 여러 답변에서 이런 면이 느껴졌다. 이 책의 상담 내용만 본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내가 동물들의 답변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읽다가 '과연?! 정말?!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이러면서 동물과 토론할 기세까지 됐는데,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은 동물이 인간의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한 목적보다, 상담을 가장하여 각 동물들의 습성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그러하니 고민을 해결하고 동물에게 위로받기 위한 사람보단, 동물의 습성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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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듣던 밤 - 너의 이야기에 기대어 잠들다
허윤희 지음 / 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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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인 요즘, 묘하게 노곤하고 힘이 없어 붕 뜬 느낌이 든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또 오는데, 이미 새해를 수십 번(?) 맞이한 터라 '새'해지만 '새롭지 않다'. 묵은 때를 벗기고 홀가분해지고 싶은 마음 반, 반대로 만사가 귀찮은 마음 반.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든다(근데 이 느낌마저 전혀 새롭지 않다. 매년 반복). 이런 느낌이 들 때는 잠자고 싶고 혼자 있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잠들기 싫고 혼자 있기 싫다. 나 외로워. 근데 이런 느낌 계속 느끼고 싶어! 이렇게 계속 깨어있는 상태로 붕 뜬 느낌을 유지하고 싶을 때, 티비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다. 티비를 본다고 해도 켜놓고 라디오처럼 소리만 듣는다. 그렇게 티비나 라디오 소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어, 나도 모르게 라디오 사연이나 티비에 집중하다 보면 이런 붕 뜬 느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이후로 익숙한 일상이 반복되고, 그리고 태어난 이후 한날도 빠짐없이 늘 그래왔던 대로 잠이 든다.




내가 볼 땐 세상 사람들이 다 각양각색인데, 라디오 사연은 일단 한 번 생각하고 글을 써서인가, 어딘지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다. 재미난 사연도, 슬픈 사연도, 일상의 사연도 사연을 보낸 사람에겐 특별할지 몰라도 듣는 나에겐 익숙한데 그래서 평온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스타벅스에 가길 즐겨 하는 이유가,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기 싫은 마음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곳이 스벅이고, 남들의 시선에 구애 없이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근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모두 비슷비슷 익숙한 느낌이다. 그래서 스벅이 다른 커피숍에 비해 마음이 편한데, 이런 면에서 라디오와 스타벅스가 좀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듣던 밤』


라디오 CBS <꿈과 음악 사이에>의 진행자, 허윤희 씨의 에세이다. 오랫동안 밤 10~12시 사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셔서인지, 글마다 라디오를 듣는 듯 귓가에 재생된다. (라디오를 오래 진행하면, 그분의 글마저 라디오 스크립트와 닮는군요) 조용조용, 왠지 나른해지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사연이나 허윤희 씨의 글에 집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할 수 있고, 책의 문장이 산문이지 않고 운문처럼 행이 끊어져 있어 그런지 각 페이지의 여백처럼 내 마음의 여백도 커지는 듯하다.




연말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밤과 연말, 어딘가 많이 닮지 않았나... 그냥 좀 센치해져.

익숙해서 어딘가 나와 이어져 있는 듯한 사연들, 차분차분하게 위로해주는 진행자의 따뜻한 말들... 이것도 연말의 익숙한 느낌이리라.

정답이 아닌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 속에서 
함께 걸을 누군가를 만나는 일만큼 간절한 게 있을까.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지 않더라도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보폭으로 걷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

드디어 도착한 긴 터널의 끝에서 
웃으며 서로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 
단 한 명이면 된다. 

그로 인해 
그가 건넨 작은 위로로 
우린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다. 

98~99쪽, 허윤희, 『우리가 함께 듣던 밤』, 놀


라디오를 들으며 느끼는 감정들이 이 발췌 글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사람들과 그 사연을 읽는 진행자 모두, 내 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함께 있는 것 같다. 나와 이어지진 않았으나 나와 끊어지지도 않은 존재... 이 쓸쓸한 연말에,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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